한반도? 그런 거스름돈 어떻게 써먹을까요? 세계사








케넌은 선(善)과 악(惡)에 대한 절대적인 구분에 기초하여 국제 정치를 바라보고, 정치적 현실의 한계를 무시하고 추상적인 도덕주의적 원칙을 적용시키려는 시도를 '도덕주의(Moralism)'라고 비판한다. 케넌은 이 도덕주의가 미국 외교의 뿌리깊은 전통의 하나로 이 전통은 미국이 [1898년 이후]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국제 정치 무대에 등장하게 되었을 때 부정적인 결과들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국가의 생존을 위해 폭력의 행사가 정당화될 수 있는 현실에서 오히려 폭력 행사 그 자체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도덕적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강대국들간 권력 균형 및 이해와 저촉되어] 오히려 더 많은 폭력이 행사됨으로써 인류는 더 많은 고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도덕주의가 미국인의 뿌리깊은 법리주의적 사고와 결합될 때 더욱 큰 문제점을 낳게 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케넌은 국제 정치를 국내 정치와 동일시하여 국내에서나 가능한 사법적 판단을 국제 정치에 그대로 적용시키려는 시도를 '법리주의(legalism)'라고 비판했다. 미국은 13개의 주(州)들이 상호간의 법적인 합의를 통하여 유럽 대륙과 같은 무정부적 국제 질서의 형성을 지양하고, 단일의 연방을 건설하여 평화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미국은 자국의 연방 형성 과정에서의 경험이 국제 정치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국제 정치 현실에서의 문제점들도 국가간 조약이나 법적인 합의를 통하여 해결할 수 있다고 간주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케넌은 1928년의 파리 부전조약[켈로그-브리앙 조약]을 들고 있다. 국가간의 조약 체결과 합의를 통하여 전쟁을 국제 정치의 현실에서 제거하려는 시도는 일본의 만주 침략과 무솔리니의 에티오피아 침공, 히틀러의 등장으로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결국, 법리주의는 법적 합의를 집행할 수 있는 마땅한 중앙 권력체가 존재하지 않는 국제 정치의 현실에서 국가간에 존재하는 이해관계의 충돌의 상존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형식적이고도 법적인 기준을 통하여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려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이러한 법리주의적 사고는 도덕주의와 결합될 경우 국제 정치에서 한층 더 위험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케넌은 주장한다. 국제 정치에서 사법적 판단을 적용시키려는 측은 법을 위반한 국가에 대해서 분노함과 동시에 도덕적 우월감을 만끽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분노가 군사적 대결의 양상으로 발전하게 된다면, 상대국으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어 그 국가를 완전히 굴복시킬 때까지 전쟁 수행을 지속할 수밖에 없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는 2차대전 당시 미국이 독일과 일본에 대해 내걸었던 무조건 항복 조건을 들 수 있다.

설령 전쟁에서 군사적으로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전쟁의 목적이 상대국 국민들의 태도와 전통을 바꾸고, 기존 정치 체제의 성격을 완전히 변화시키기 위한 '도덕적'이고도 '이념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목적들은 결코 군사적 수단을 통해서 단기간내에 성사될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하다. 이처럼 전쟁을 통하여 성취될 수 없는 도덕적 이상을 추구한 과정에서 인류 문명엔 또다른 파탄이 초래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의 목적은 '실질적'이고도 '제한적'이어야 하며, 우리는 그 목표에 대한 근사치를 중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케넌은 [태프트의 중재조약이나 윌슨의 국제연맹 구상, 루스벨트의 신탁통치론 같은] 비현실적인 도덕주의와 법리주의의 한계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무정부적 국제 정치 현실이 만들어내는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가간의 '세력 균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포스트 나폴레옹 시대를 맞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에서 소집된 범유럽 국제회의 석상의 각국 전권
            보수 반동과 신성동맹의 외피를 두른 강대국간 유럽 균형 질서의 구축은 협조 체제의 기원이 되었다.




그는 특정 시점에서 국가간의 힘의 분포 상태는 불균등성에 의해 특징지어지고, 국제 정치는 주요 강대국들 사이의 힘이 균형을 유지할 때 안정적이라고 본다. 물론, 특정 시점에서의 강대국간 세력 균형의 성립에 의해 국제 정치에 존재하는 불확실성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 상태가 파괴되었을 때 발생하는 힘의 공백 상태는 불안정한 세력 균형보다도 훨씬 더 불확실성으로 특징지어진다는 것이다. 국제 정치에서 평화를 유지하고, 폭력의 행사를 완화시킬 수 있는 주된 임무는 외교에 있다고 케넌은 주장한다. 외교는 국제 정치 현실을 개혁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외교는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도 없다. 따라서 외교는 '무정부적 국제 정치 질서에 내재적인 한계'를 뚜렷하게 인식하고, 그 범위 내에서 '폭력의 행사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나간다는 것이다.

케넌은 2차대전 이후 현대적인 군사력을 양성할 수 있는 산업 시설 기반과 고도로 훈련된 기술 인력을 갖추고 있는 국가는 전세계적으로 다섯 곳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엔 미국 ・영국 ・일본 ・서유럽 제국 ・소련이 포함된다. 케넌에 의하면 당시 중국은 인구 문제와 취약한 산업 기반 ・원시적 농업 조건 ・1세기간의 정치적 불안정 등 때문에 향후 상당한 기간 동안 군사적 강대국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케넌의 봉쇄정책의 핵심은 소련이 이 국가들 가운데 어느 것도 차지하지 못하도록 서유럽과 일본을 미국의 동맹권으로 흡수시킨 다음, 이러한 전략적 구도 하에서 미국이 인내심을 갖고 봉쇄를 추구하면 정통성이 결여된데다, 체제 생존의 여부마저 검증받지 못한 소련은 미국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채 내부 모순이 분출되어 붕괴하리라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5대 중심국가론을 통하여 케넌은 중국이 아닌 일본을 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라는 전후 미국 외교 전략의 전제를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일본의 부흥을 통하여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는 케넌의 주장엔 전후 이 지역의 세력 균형이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에 처해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케넌은 이 불안정의 원인을 동아시아의 역사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는 외교관 존 V.A. 맥머레이(John V.A. MacMurray, 1925~29년 주중 공사 재임)가 1935년 작성한 예언적 각서를 원용하고 있다. 맥머레이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일본을 완전히 패배시키더라도, 아시아가 떠안고 있는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패배는 오히려 아시아에서 소련의 영향력 증가를 초래해 미국의 극동 정책 수립을 더욱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며 경고했다.

2차대전의 결과, 일본 제국주의가 아시아 대륙으로부터 완전히 패퇴한 후 그와 반비례해 만주와 한반도에선 소련의 영향력이 증대됨으로써 미국은 이 지역에서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는데 일본 제국이 과거에 해왔던 역할을 떠맡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케넌은 주장했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대소(對蘇) 봉쇄정책을 추구해가는 과정에서 미국의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선 일본의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민주화된 일본을 미국의 확고한 동맹국으로 만드는 것이 긴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당시 미국 내에선 야당인 공화당을 중심으로 중국의 장개석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었기 때문에 케넌의 일본 중시 정책 구상에는 중국 문제가 자칫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대한 국내 합의점을 도출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해야 된다는 고도의 전략적 판단도 깔려 있었다.

한편,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마찬가지로 5대 중심국가에 속하지 않는 한반도에 대해서 케넌은 한반도에 반드시 소련에 적대적인 체제가 들어설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그는 일본으로부터 이제 막 해방된 한국이 명목상으로는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해야 하지만, 소련의 영향권 아래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1947년 9월, 미소 공동위원회가 전격 무산되고 난 후에 국무성 정책 기획실장이었던 케넌은 미국은 재정적이고 군사적인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 남한에서 가능한 한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는 미국이 한국을 버리고 도망쳐 나오는 듯한 인상을 다른 국가들에게 줄 경우 미국의 위신은 많은 손상을 입을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품위있게 한국에서 철수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보고, 한국 신탁통치 문제의 유엔 이관에 적극 찬성했다.




           포츠머스 강화의 중재자 테디 루스벨트를 묘사한 삽화, 이 공적으로 그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극동의 세력 균형이란 전략적 관점에서 대일 후견인이라 자처하면서도 러일간 상호 견제를 추구했다.   




실제로 국무성이 자신에게 한국 문제에 관해 정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해 줄 것을 요청했을 때 케넌은 이상의 주장을 간단한 비망록으로 제출하는데 그쳤으며, 정책 기획실 명의로 된 한국 문제의 보고서조차 쓰기를 거부했다. 결국, 케넌은 미국이 군사적으로나 재정적으로 확고하게 한국의 독립을 보장해줄 수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없다면, 미국의 위신을 손상시키지 않는 방식을 선택해서 일단 한국에서 철수해야 하며, 그 이후의 한국 정책은 사태의 추이를 봐서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몰락 후 아시아에서 발생한 권력의 진공 상태를 메우고 들어온 것은 중국이 아니라 소련이었다는 사실을 케넌은 지적했다. 일본이 패전의 늪에서 당분간 재부상할 가능성은 없고,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한반도 전체는 소련의 잠정적인 영향권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던 것이다.

케넌이 한반도가 실질적으로는 소련의 영향권으로 들어가면서 명목상의 독립을 유지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일본의 국력이 회복되었을 때 일본이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다시 행사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데에 있었다. 케넌의 주장은 2차대전 후 일본이 여전히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면, 한반도에서 미국이 직접 소련에 대항하는 부담을 떠맡지 않아도 되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전략적 발상이지만, 미국의 대외정책이 얼마나 철저하게 '국가 이익'이란 관점에서 입안되는지를 보여준다. 1947년 11월에 작성된 정세 보고서인 PPS/13에서 케넌은 한반도에서는 더 이상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발전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고, 앞으로 한국에서의 정치적 삶은 미성숙 ・편협함과 폭력에 의해 지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인들로부터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는데 필요한 어떠한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고 간주했다. 결국, 한반도는 미국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의 중요한 목적은 미국의 위신을 크게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한반도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라는 이전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미국이 한반도 전역에 대한 소련 영향력의 팽창을 인정하면서 한반도의 배후지인 만주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완전히 넌센스(Nonsense)라고 주장하면서 장개석에 대한 계속적인 지원을 요구한 미국 내의 일부 세력[중국 상실론을 주장하게 될 공화당 강경파 등]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케넌에게 만주와 한반도가 중요성을 갖는다면, 그것은 오로지 일본의 경제적 부흥을 뒷받침하기 위한 원자재 공급처와 시장으로서였다.

전후 동아시아에선 일본의 몰락과 중국의 국공내전으로 소련의 세력이 급격히 팽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결과, 미국은 이 지역에서 제정 러시아 및 소련에 대항하여 전통적으로 세력 균형을 유지해왔던 일본과 중국을 대신하여 현지의 안정을 도모하는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 내전에 직접 개입한다는 것은 미국의 국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고, 한국은 미국에게 전략적 가치가 없다고 케넌은 판단했다. 따라서 그는 5대 중심국가론에 기초하여 일본을 경제적으로 재부흥시켜 이 지역의 세력 균형을 회복하고, 소련의 팽창에 대응하고자 했다. 이처럼 케넌은 미국이 과거처럼 '문호 개방(Open Door)'이나 '중국의 영토 보존'이라는 애매모호하고도 비현실적인 정책적 입장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군사 ・경제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동아시아를 바라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 By 김영수 著 <동아시아와 케난(Kennan)의 딜레마>에서 발췌




            쿨리지 행정부에서 '최고의 중국통(通)'이라 지칭되며 공사로 부임한 국무성 차관보 존 V.A. 맥머레이          
            미일전쟁 발발과 볼셰비즘의 확산을 경고했던 그의 선견지명적 각서는 케넌으로부터 절찬받았다.  




만주랑 반도는 그냥 넘겨줘라 세계사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에드워드 7세의 장례식 참가 특사로 영국에 파견한 루스벨트가 미일간 3가지 외교 현안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해주었다. 녹스(Knox) 국무장관의 부탁을 받은 전임 대통령 루스벨트는 일본 사절인 후시미노미야(伏見宮)를 수행한 전(前) 주미 일본 대사 다카히라(高平)와 런던에서 가진 사적인 접촉을 통해 만주철도 및 조미(朝美) 통상조약과 한국 병합의 저촉, 미일 통상조약 갱신의 장애물인 이민 문제 등 3가지 현안의 일괄 타결을 제안함과 동시에 본국 정부를 설득했다. 만주와 한국은 일본의 사활적 이익으로 간주하되, 대신 이민 문제를 미국의 사활적 이익으로 보장받으라는 것이다. 루스벨트의 제안은 미국이 만철 중립화를 철회하고, 일본의 한국 병합을 추인해주는 대신 신(新) 미일 통상조약의 적용 대상에서 이민 문제를 제외시키라는 것이었다.

이하는 녹스 국무장관이 태프트 대통령에게 루스벨트의 특사 활동 결과를 보고한 내용이다.



"그[=테디 루스벨트]는 자신이 다카히라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이 나라에 일본인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들어오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 다른 한편 미국은 일본이 한국과 만주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Paramount) 영향력과 이익(Interest)을 인정해야만 한다. 동양에서의 상황은 조약들에 근거한 이익이라는 이론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일본인은 야심이 있고, 긍지를 지니고 있으며, 진보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숫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활동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팽창의 공간'을 필요로 하며, 또한 소유하고 있어야만 한다. 만일 그들을 우리의 [캘리포니아] 해안으로부터 격리시킬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주장해야 하지만, 우리는 한국과 만주에서의 그들의 [대륙 팽창] 계획을 간섭해서는 안 된다."



녹스의 보고서가 제출된 지 사흘 후인 1910년 12월 22일, 루스벨트는 직접 태프트에게 다카히라가 이미 봄[5월]에 영국 체재 중 자신에게 접근해왔던 사실과 아울러 그 내용을 통보하면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조언을 하였다.


 
"[합중국] 정부는 만주에서의 우리의 위치에 대해 잘못 해석하고 있다. 이 점은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지난 봄 다카히라와 런던에서 회동하여 대담을 나누었다. 그는 나에게 만주 문제에 대한 일본의 감정이 얼마나 예민한지를 말했으며, 녹스에게 그의 말을 전달한 바 있다. 나의 견해는 간단하다. 우리의 사활적 이익은 한편에서는 일본인을 우리나라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는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우의(友誼)를 유지하는데 있다. 일본의 사활적 이익은 만주와 한국이다. 만주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이유 ・정도를 불문하고 일본인들로 하여금 우리가 만주에서 그들의 이익을 적대시하고, 위협하고 있다는 느낌을 들도록 만들 것이다. '중국[淸朝]과의 동맹(Alliance of China)'은 중국의 절대적인 군사적 무능함에 비추어 볼 때 우리에게 힘을 보태주기는 커녕 추가적인 의무를 지게 할 것이다.

지금은 '방아쇠를 당길 의사가 없다면, 총을 들지 말라'는 변경의 오래된 교훈을 상기할 시기이다. 중국에서의 문호 개방(Open Door)은 멋진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반적인 외교 협정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경우에나 그렇다. 만주의 전체 역사를 되돌아 볼 때 그것이 일본의 수중이든, 러시아의 수중이든 그것을 부정하는 순간 사라지고 말 것이다. 만주는 일본에게 사활적 이해가 걸린 지역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곳에 외부 세계의 개입을 불허할 것이다. 나는 작년에 영국인 키치너(Kitchener)로부터 들었는데, 영국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철도 복선화에 대항하기 위해 영국의 해안 기지로부터 목단(牧丹)까지 철도를 부설한다는 계획이다. 겉으로 러일관계가 아무리 긴밀해 보여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러시아는 복수전을 감행할 것이다. 반대로 만주에서의 우리의 이익은 실제로도 중요하지 않다."

- by 최정수 著 <대통령 태프트의 대일(對日) 특사외교와 한일 병합조약의 법적 추인>에서 발췌



테디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뚱보 윌리엄아, 왜 중대한 이해도 걸려있지 않은 만주에 수저 얹히려다 로스케랑 쩍바리가 한 편 붙어먹어 우리를 견제하는 X같은 상황을 자초했니? 내가 대통하면서 맞춰놨던 동아 ・태평양의 질서 균형을 니가 말아먹게 생겼다. 현실성 결여된 철도 중립화 따위 단념하고, 쩍바리가 선점해 애지중지하는 만한(滿韓)을 쿨하게 걔네들 세력권이라 인정해주는 반대급부로 이민 유입 근절하는 상호 윈윈에 러일 연합도 균열시킬 수 있는 대안이 있거든?ㅇㅇ"  




             1905년 8월 8일, 포츠머스에서 회동한 러일 전권 대표단. 최선두의 우측 네번째가 다카히라 공사이다. 
             동아시아 분할을 놓고 대결했던 양국은 이후 미국의 문호 개방에 맞선 공동 전선을 구축하게 된다. 




열도에서도 북미협상이 임박했을 가능성에 대비하는 모양새네? 잡소리









러시아 순방길에 올라 푸짜르와 회동한 아베 쇼군께서 브리핑에서 암시한대로 대북 압박의 기조는 유지하되, '모든 당사국이 차분하고 건설적인 대화로 이 문제[북핵]를 해결해 나아가기를 촉구'함을 언급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한반도 유사 사태를 상정해가며 미중(美中)이 군사적인 옵션의 행동으로 나설 공산은 지양한데다, 나아가 6자회담 재개를 희망한다고 부연한 점에서 사실상 대화 재개 찬성의 의사를 러일 양국이 공동으로 타진한 셈이지. 트럼프-아베 라인의 미일간 소통은 물론, 중국에서도 우다웨이가 동경으로 건너가 현지 당국자들과 접촉한 것만 보더라도 이미 한반도 주변의 4강(强)들끼리 협상 대비 포석을 깔며 상호 교감이 오갔으리라 예상하고 남음이 있겠다. 

북미 대화 재개의 조짐은 앞서 오바마 2기 행정부부터 전략적 인내란 장막 아래 몽골 등의 제3국을 장소로 활용한 양국간 비밀 접촉이 가시화되어온 터. 신빙성은 얼마나 높은지 모르겠으나, 작년 상반기 쯤 미국으로부터 평화협정 체제로의 전환을 떠보는 시그널이 이따금 전달되어 왔다는 건 주지하는 바인데. 그게 팩트라면, 이는 동북아 구녕자 시즌2를 시전중이던 그네꼬 정권에 대한 경고와 압박의 의미 또한 포함된 것일테고, 탄핵 정국을 맞이해 누가 차기 대권에 등극하느냐에 따라 미국의 대북 접근 속도 역시 조절될텐데 현재로선 달님 or 간찰스의 당선이 유력시되는 만큼, 펜스의 면회 거절로 드러났듯이 현재 워싱턴의 서울에 대한 불신도는 상당한 수준이라 가늠할 수 있겠지.

결론적으로 당분간 외교적 발언력을 낼 수 없는 권력 공백기 혹은 정립기의 남한을 페이드 아웃시킨 상태로 북한 및 주변 열강들 간에 대화 태세가 점차 조성되어가고 있는 단계라 생각된다. 물론 여기엔 혹부리 3세가 또다른 엉뚱한 생각을 품거나 추가 도발만 벌이지 않는다는 전제가 따라야 할 것이고, 조건에 충실(?)하기만 한다면 북핵을 둘러싼 긴장 모드는 급격히 해빙으로 넘어갈거라고 사료해본다. 덧붙여 북미 협상의 타결은 일본 입장에서도 소위 납치자 문제로 교착 상태인 북일 교섭에 진전을 기대할 수 있거니와, 일정한 자금 각출을 각오해 수교까지 성사시킨다면, 과거사로 짖어대는 남한을 견제할 만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계산상 결코 나쁘지 않은 시나리오가 되겠고.

냉전기 이래 남북한을 둘러싼 주변 4강은 외연상으로야 대치와 반목을 거듭해오는 듯 하면서도 속내는 항시 '현상 유지'의 골격을 선호해왔다는데 있어서 공통 분모를 지녔음을 반추할 때 일견 북미협상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수동적 소극 외교로 일관했다는 일본조차 남북한 등거리 노선을 견지한 채 평양과의 채널을 접속시켜 'Two Korea' 정책의 평형추를 유지했다는 건 외교사만 조금 파보더라도 상식 아니던가?  문세광 사건 직후 기무라(木村) 외상이 국회 석상에서 무심코 내뱉은 '한국[남한]이 조선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전후(戰後) 일본 정부와 외교 담당자들의 대(對) 한반도 인식을 여과없이 방증한 선례였음을 상기하면 답이 나오는 것이다.     


PS. 마침 오늘 트럼프 황상께서 타이밍 절묘하게 사드 배치 청구서로 무려 미한(美韓) FTA의 전면 폐기라는 카드를 내미셨던데,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도 모자라 천조님의 조센 버르장머리 길들이기가 본격화된 시점에서 검증없는 선거에 정신팔린 반도의 나 잘난 깨시민과 위정자들은 천하 태평스럽기만 하는군? 철쭉도 서서히 시들고, 장미가 피고 있으나 이르디 이른 혹한 풍파가 밀려오고 있건만, 그 속에서 받게 될 빠따를 감내할 곤조는 있는지.ㅉㅉ 




            어줍잖은 중립화 운운하다 싸대기 맞고, 안방까지 황군의 전장으로 내준 동북아 구녕자 반도의 위엄ㄳ




아베가 물러나긴 왜 물러나냐? 잡소리








아직도 상황 돌아가는 판단이 제대로 안 서고 아베 Out! 외치는 양반들 더러 계시던데, 한 마디로 꿈 깨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거라 본다만?ㅋ 마누라 스캔들이고, 나발이고, 열도에선 진작 식어버린 떡밥을 계속 물어대며 무언가 타격이 갔으면 하는 희망 고문성 센부짖음들을 보아하니, 확실히 아베가 반도에 두려운 존재이긴 했나봐?

근데 어쩐담? 문제의 학원 이사장 국회 증언-주장은 유일한 증빙 서류랍시라고 내민 기부금 영수증의 필적 위조로 신뢰도에 치명상이 갔고, 기부자 명단에도 총리 부처의 이름조차 확인되지 않은 채 미디어나 여론 모두 페이드 아웃 모드이거늘. 본질인즉슨 학원 운영상 자금난에 시달리던 이사장이 정계에 연줄 좀 대보려고 허언증과 오지랖으로 나대는 것을 야권에서 정권 공격의 소재로 삼을 수 있겠다 싶어서 미끼를 물었다가 용두사미로 끝나버린거지.

게다가 모리토모 스캔들(?)이 전파를 타는 과정에서 야당인 민진당 소속의 츠지모토 키요미라는 전과 경력도 갖춘 의원이 민주당 정권의 국토교통성 부대신으로 재직하던 시절 학원 근처 공원 부지를 1/10 가격으로 불하한 선례가 뒤늦게 조명되면서 3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신나게 사학 비리 운운하던 야권은 슬며시 발을 빼버린 형국이다.

이걸로도 모자라 츠지모토 의원과 콘크리트 노조 연합의 유착 및 학교 공사장 감독에 대한 청부 살인 교사 의혹마저 제기되는 등 이번 사건을 파면 파볼수록 오히려 거대한 부메랑 비수로 돌아오게 될 공산이 농후해지니깐, 야당들은 바짝 엎드리거나 다른 이슈로 물타기하느라 급급한 실정인데, 반도 언론 가운데 '츠지모토'의 '츠'자 거론한 신문은 한 군데도 없더라? 하기사, 허구한 날 아사히나 교도 기사를 번역기 돌린 거 복붙하는 수준이니, 오죽하겠냐만.

총리가 마음만 먹으면 츠지모토의 3대 의혹 건수만 가지고도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달려들 경우, 일본 정가에서 야권을 궤멸시켜 가면서 자민당은 풍파는 감수할지언정 확실하게 국회를 틀어쥔 결과도 기대할 수 있어. 아베라고 그런 마음이 없었을까? 생각 같아선 가뜩이나 상상력부터 부족한 주제에 대안다운 대안은 제시 못하면서 사사건건 발목만 잡으려 하는 야당 놈들을 이참에 확실히 조져버렸으면 하는 마음 역시 굴뚝처럼 들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4월내로 천황 양위 관련 특례법이 상정되어 심의할 예정인데다, 미중 정상회담 전후로 전개될 북한의 추가 도발 우려를 포함한 국내외 정세가 엄중한 현재 시점에서 필요 이상의 정쟁을 유발시킨다는 건 정치공학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바람직스럽지 않기 때문에 아베로선 부득불 '전략적 인내'의 자세로 정국에 임하고 있는 셈이다.

반도 언론에선 내각 지지율의 저하가 마치 정권의 명운을 가르는 것마냥 떠들어대지만, 그래봤자 유동적 지지층의 변동이 반영된 일시적인 현상일 뿐 크게 의미를 둘만한 수준까진 아니고... 애당초 저 정도 하락 가지고 흔들린다면, 30%대까지 낙하했던 안보법제 성립 당시 진작 교체되고도 남지 않았겠는가?ㅋ 최근 회자되는 4월 중 해산설 역시 정국 스케줄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없고, 결국 내각에서 야권을 교란시키는 견제구 날린 것으로 봐야할 거다.  

이런 관점에서 일본내에선 여론이 부정적인 주한대사 귀임 시일을 앞당겨 전격 결행한 점도 표면상 한반도 정세의 위급함에 따른 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나, 그 배경엔 이제 사학 비리 의혹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와진 아베 내각의 선택 결정권에 여유가 생겼음을 방증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터. 복귀한 대사는 뭐, 보나 마나 본국의 훈령에 따라 완급을 조절해가며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척 국제 사회 상대로 나름의 이미지 명분 쌓기를 시도할테고. 

그래서 결론은 뭐다? 탄핵뽕 맞은 반도인들은 아베-트럼프 실각설 같은 몽상 따위 접어두고, 이들과 2020년대까지 마주할거란 가정하에 대미 ・대일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하느냐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가져 볼 때라는 것.ㅇㅇ


  

만장일치로 K.O됐구만? 잡소리








전가보도인 '사심 없는 순수한 선의'나 '엄청난 의혹 엮이기' 드립을 곁들이며 수사에 성실히 응하겠다는 호언장담이 아몰랑~ 정권다운 식언으로 희석되버렸고, 변호인단 역시 덩달아 재판관들 심기까지 긁어놓은 괘씸죄가 가장 크게 적용된거라 본다만.ㅉㅉ 그래도 소수 의견조차 없이 전원 인용에 손을 들어준 건 솔직히 조금 깨기는 했다.

어차피 판결이 확정된 이상 진영 불문하고 결과에 승복하며, 무주공산의 X판 5분전 나라 꼴 추스리는데 진력해도 모자를 형국이건만, 야권은 이 기세를 몰아 대권 탈환욕에 정신이 팔려있는데다, 박정희 신드롬의 총체적인 붕괴를 맞아 보수 방면은 그로기 상태이니 당분간 혼돈은 지속될 듯 싶고. 게다가 유력 대선 주자란 것들의 군상을 보자니 또 한편으론 달러나 엔화를 미리 사재기해두는 대비책 또한 진지하게 고민하고픈 우려가 앞선 것도 사실이다.

혹부리 3세의 도발과 중공의 남조선 길들이기가 교차하고, 천조의 대북 타격썰도 심심찮게 거론되는 등 조선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의 격랑이 격화되는 가운데 나같은 소시민 따위야 각자도생의 각오로 임전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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