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시베리아 도착 국제


동구권 순방길에 나선 김일성이 5월 18일, 시베리아 동부의 자바이칼스크에 도착했다고 소련 국영 타스통신이 보도한 데 이어, 신화사(新華社)도 김일성이 소련 국경으로 진입하기에 앞서 만주의 3개 도시를 통과, 궁달비(宮達非) 중공 부(副)외상이 김(金)을 영접했음을 밝혔다. 북경(北京)방송에 따르면, 청진에서 출발한 김일성의 특별열차는 두만강을 건너 길림성 도문(圖門)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길림을 경유해 목단강과 만주리(滿洲里)에 잠시 정차한 열차는 중소(中蘇)국경을 통과, 자바이칼스크에 도착해 소련에서의 첫 여정을 푼 것이다. 이처럼, 특별열차는 청진~모스크바간 9200km를 1주일간 달리게 되는데 쉬지않고 달려도 130여시간, 만 닷새 이상을 소요해야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김(金)의 이번 순방은 출발에서부터 통행코스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 배경이 어렴풋이 짐작간다.

정기적인 시베리아 열차편 대신, 어째서 굳이 청진에서 출발한 것일까? 청진 출발은 사실상 그의 여행이 중소 양대 후견국에 대한 배려를 고려했음을 일부러 선전하는 것이다. 북한은 작년부터 청진항을 중공에 임대, 만주지방의 중공산 농산물이 일본에 쉽게 수출되도록 배려하였으며, 한편으로 김책(金策)제철소와 청진화전(火電) 등 기간시설의 80% 이상이 소련의 기술 및 원조로 건설, 가동중이다.

또한, 해방 직후 북한으로 몰려든 소련군 전사자의 묘역도 청진에 위치하는 등 청진은 중소에겐 똑같이 의미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김일성이 청진을 '마지막 외유(外遊)'라 공언한 이번 순방의 출발지로 잡은 것은 계산된 양면효과를 겨냥한 셈이다. 순방 목적에 대해 야스나가(安永) 국제관계공동연구원은  '단순히 정치 ・경제적 목적을 넘어 김일성 본인이 반드시 가야할 여행'이라고 지적했다.

노년을 맞아 40여년 후견인에 대해 '그간의 신세'와 관련한 인사를 올리고, '정일(正日)을 잘 부탁한다'는 세습체제 보장의 취지라는 것이다. '감사의 인사'를 타인에게 대리시킬 순 없는 노릇이며, 동유럽 제국에 대한 열차순방 역시 이같은 의미를 내포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LA 올림픽 참가 여부라던지, Mig-23 제공 요청을 포함한 군원(軍援) 등은 수행 간부들에 의한 실무자 협의가 진행될 것이다.



中華民國圖 세계사






15만 Hit 돌파 잡소리



나흘이 넘도록 확인하지 않았다가, 그새 15만 Hit을 돌파했군요. 허허...;;


보잘것없고 누추한 블로그에 들르신 모든 방문객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20만 고지를 향해 꾸준히 전진해 나가리라 다짐하는 바입니다.



평화협정의 허실(虛實) 국제


파리협정은 '베트남 포기'를 전제로 한 조약이었다. 요란스럽게 떠들어 온 '명예로운 평화'란 미사여구의 배후엔 전쟁에서 발을 빼기 위한 속셈이 있었다. 전사상(戰史上)으로 보아서 닉슨이 실천하였듯이 지상군 50여만을 투입했다가, 철수할 시엔 그만큼 많은 각오를 다졌던 셈이다. 특히나, 닉슨독트린이 아시아 대륙에서의 철수를 기본으로 삼았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파리협정이 정치적 기초로서 크게 변모한 것은 미국의 '도미노 이론' 포기였다. 도미노 이론은 베트남이 무너질 경우엔 인도지나 전체가 넘어가며, 인도지나가 붕괴되면 동남아시아가, 더 나아가 태평양정책의 핵심인 일본열도란 복합기지가 위협받는다는 식이다. 결국, 도미노 이론의 핵심은 미국의 대일(對日)정책과 관련한 것인데, 그러나 현재는 도미노 이론을 포기할 만한 충분한 사유가 있다.

우선, 베트남을 포기, 장기적 안목에서 크메르 ・라오스를 포함한 인도지나반도를 하노이가 석권하더라도 민족주의적 경향이 강한 사회주의 국가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도미노 이론에서 주장하듯이 곧 동남아 전체를 위협하지는 않으리란 예상에서다. 또한, 국내 공산좌익세력을 숙청, 우경화된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도미노 이론은 효력이 떨어진다.


                                 1973년 1월 27일, 파리평화협정에 서명하는 트린(Trinh) 북베트남 외상



미중(美中)간의 상호 핵(核)분리 및 정치적 타협은 태평양에 대한 중공의 군사적 위협을 정치적으로 제거함으로서, 도미노 이론의 완전한 수정을 의미했다. 즉, 파리협정의 기초발상은 베트남을 어떻게 포기하는가란 '방법'에 촛점을 맞춘 것이었다. 당장, 군사적으로 '현(現)위치 휴전'이란 전선(戰線)없이 표범형 반점 모양으로 구성된 상태에서 미국이 철수할 동안만은 '멈추어달라'는 형식이었다.

도대체,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게릴라전에서의 휴전이란 불가능하다. 73년도 협정은 54년도 협정보다도 더욱 악화된 것으로 54년 당시엔 특정지점으로 병력을 재집결, 적어도 17도선을 규정하여 정치 ・군사분계선을 확실시했으나, 73년도엔 '현재위치 휴전'이란 휴전선 없는 휴전을 떠넘겼다. 또한, 17도선을 남하한 월맹 정규군의 철수를 조항화시키지 않았던 점도 치명적이었다.

정치상 마무리 역시 베트남 포기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공산측의 '잠정연립정부'안(案)에 대해서 미국은 '선거관리위원회'를 주장, 그 타협점으로 나온 '민족화해위원회'를 통하여 '남부 베트남의 양(兩) 당사자'인 사이공 정부와 베트콩이 해결토록 조치했는데, 베트콩 철수가 보장되지 못한 마당에 사이공을  고스란히 바쳐버린 꼴이었다. '당사자주의'를 엄격히 적용, 미국은 발을 빼고자 의도했던 것이다.


                                            1950년대 전반, 도미노 이론(Domino Theory)의 개념도



군사조약인 동시에 무리하게 정치적 해결방안마저 포함된 파리협정은 사실상, 애시당초 누구도 준수할 수 없는 '휴지조각'이었다. 재차 강조하지만, 파리협정은 미국이 어떻게 정치 ・군사적으로 빠져나오면서 체면을 유지하는가 하는 방법론적인 구상에서 성립된 총결산이다. 협정에서 나타난 핵심은 역대행정부를 지배한 도미노 이론의 수정에서 기원된 남베트남의 희생이었다 할 수 있겠다.

아시아 대륙의 변경기지를 포기한다던지, 72년도 '안전보장 소(小)위원회'가 내린 결론에서 보듯이 모국이 공산화되더라도, 미국에 위협적이란 이론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파리협정 발상을 가늠하고도 남는 것이다. 미국의 국익(國益)에 결정적이라 판단될 경우에 한해서만 군사개입을 허용하며, 그 반대의 경우라면 과감히 포기한다는 전략들이 기존의 도미노 이론을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미국의 발상엔 대륙변경기지에서 공산당을 봉쇄한다는 군사전략 대신, 해군력을 바탕으로 일본과 한반도, 동남아 도서(島庶)국가 뿐만 아니라, 대륙까지도 통제하는 '도서수로(水路) 전략'이란 새로운 전환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베트남 평화협정은 미국의 인도지나 패퇴에 따른 손실을 재정비, 제해권을 내세워 아시아 방어선을 수호한다는 대전환의 기점으로 집약할 수 있는 것이다.

 

餘滴 국제




서방세계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져왔다. 크메르루즈가 장악한 캄보디아에서 대규모적인 '유혈숙청'이 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발, 그러한 집단학살 행위가 지구상에서 다시는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건만, 기어이 현실화되고 말았다. 론 놀 정권에  충성했던 관리 뿐만 아니라, 위관급 이상의 모든 장교 ・경찰이라면 처자식까지 포함시켜 죽여버린다고 한다.

미국 정보기관이 청취한 크메르루즈 무선통신에서 탐지된 사실에 의하면, 앞으로도 수만명 가량의 대량학살로 숙청이 확대되리라 추정된다. 닉슨-키신저 전략에 따른 침공작전과 연쇄 반응으로서의 시아누크 추방, 군사 쿠데타는 베트남전의 불길을 캄보디아에까지 확산시켰고, 70만 사상자와  전체 인구의 절반이 이재민 신세로 전락하는 등 지난 4년여간 전국토에서 하루도 총성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제, 캄보디아 국민들은 지배층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자유마저 잃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숙청의 공포 뿐이다. 나라를 파국에 빠뜨린 론 놀은 하와이의 호화저택에서 휴양 중이고, 기타 고관대작 ・추종 실력자들도 저마다 안주의 땅을 찾아 뿔뿔이 떠나 버렸다. 이웃국가 남베트남 또한 마찬가지로 탈출의 길마저 끊겨버린 수많은 반공 베트남인들은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이공 함락 직전까지 탈출한 피난민은 12만명 정도. 그러나, 이들은 또다시 희망을 잃어가는 실정인데, 취업난과 인종감정으로 말미암아 '이주 반대'란 미국내 여론의 반발(갤럽 여론조사 54%)에 마주쳤으며, 하원은 3억 2천만$ 액수의 피난민 원조기금법안을 부결시켰다. 인도적 ・도덕적 입장을 넘어서 피난민을 계속 외면한다면, 우방으로부터 등을 돌렸다는 원망의 눈총을 두고두고 사게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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