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9월 매킨리 美 대통령의 암살 전후의 모습들...


 President McKinley's Speech at the Pan-American Exposition - Sept. 5th, 1901
                1901년 9월 5일, 뉴욕주 버펄로에서 개최된 全美산업박람회에서 연설하는 매킨리 대통령

 'The
                                     최후의 공식 사진. 중앙의 턱시도를 입은 이가 매킨리 대통령이다
                 
 President and Mrs. McKinley touring the Exposition - September 5, 1901.
  박람회장을 떠나는 대통령 일행. 이들은 나이애가라 폭포에 들른 뒤, 다음날 다시 박람회장을 방문한다

 McKinley and his entourage visit Goat Island, at Niagara Falls - September 6, 1901.
                         1901년 9월 6일 오전, 나이애가라 폭포의 고트섬을 방문한 매킨리 대통령 일행 

 President McKinley in Carriage on Way to the Reception at the Temple of Music - September 6, 1901
    9월 6일 오후 3시경, 박람회장의 음악관에서 개최되는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발하는 대통령 일행

 
                                                      음악관에 도착한 매킨리 대통령

 President McKinley Greeting Well-Wishers at a Reception in the Temple of Music - September 6, 1901 (minutes before he was shot)
    음악관 홀에서 담소를 나누는 매킨리 대통령. 저격당하기 불과 수 분 전에 촬영된 장면

 T. Dart Walker - The Shooting of President McKinley on the Stage of the Temple of Music - September 6, 1901.
                                                   저격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삽화

 The Exposition's Emergency Hospital, where President McKinley was Taken for Treatment
                                  저격 직후 매킨리 대통령이 긴급 이송된 박람회장 內 병원의 전경

 The Milburn Residence on Delaware Avenue.
                    박람회 위원장 존 밀번의 자택. 매킨리 대통령은 치료를 위해 이곳으로 이송되었다

 'The
              밀번의 자택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기자들의 모습. 매킨리 대통령은 9월 14일 사망하였다

 McKinley's Casket Arrives at Buffalo City Hall
                        1901년 9월 15일, 버펄로 시청앞 광장을 행진하는 매킨리 대통령의 운구 행렬

 The President's Funeral Train Leaves Buffalo for Washinton, D.C.
                       9월 16일, 대통령의 운구를 실은 열차가 버펄로를 떠나 워싱턴으로 향하는 장면

 McKinley's Casket enters the Capitol Grounds in Washington, D.C.
                                     9월 17일, 워싱턴 시가지를 행진하는 매킨리 대통령의 운구 행렬

 Funeral services at the First Methodist Episcopal Church in Canton
                            9월 18일, 오하이오의 고향 마을에서 치뤄진 매킨리 대통령의 장례식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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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컨, 가필드에 이어 세 번째로 암살당한 미국 대통령이 된 매킨리를 풍자한 삽화


덧글

  • KittyHawk 2010/11/21 21:59 # 답글

    무정부주의자의 소행이었다는데 실소를 머금을 수 없죠. 동네 단위에서조차 실현 가능인지 의심스러운 걸 세계 각지에 행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고학력 바보들이 지금도 있다는 게 신기할 뿐입니다.
  • 에드워디안 2010/11/21 22:18 #

    거의 같은 시기에 프랑스 대통령, 오스트리아 황후, 이탈리아 국왕도 모두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했죠.

    ...그나마 10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국제 테러리즘'이 활개를 치고 있으니, 지구촌의 미래가 심히 걱정스러울 따름입니다.
  • 위장효과 2010/11/22 08:01 # 답글

    사디 카르노, "시시" 엘리자베트 황후, 움베르토 1세, 알렉산드르 2세. 러시아야 워낙 당시 혼란 그 자체였고, 이탈리아도 통일 후에는 그냥 미봉되었던 사회문제들이 1차 에티오피아 전쟁을 계기로 터져나오면서 시끌벅적하던 때였고...

    19세기 중반의 합스부르크 왕가를 보면 정말 수난사라 할 만 하더군요. 프란츠 요세프 황제와 시시 사이의 아들인 루돌프 황태자는 사냥 오두막에서 정부하고 자살했고, 동생인 막시밀리안 대공은 나팔륜 3세의 정치놀음덕에 엉뚱하게도 멕시코 황제가 되었다가 거기서 총살당했고, 나중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야 뭐...다 아는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고 말이죠.
  • 에드워디안 2010/11/22 09:55 #

    움베르토 1세의 경우, 1898년 밀라노에서 일어난 데모를 무자비하게 진압한(사망자는 약 100~350명 정도) 장군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바람에,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2년 후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했는데, 범인은 암살 동기를 '밀라노에서 희생당한 시민들의 복수'라 밝혔다고 합니다. 사실 움베르토 국왕은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암살 미수를 겪은 경험(1878년과 1897년에)이 있었던 탓인지, 국민들을 불신했다고 하네요.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가정사는 안습하기로 유명하죠. 아내와 동생, 아들, 조카가 모두 비명에 갔으니... 다만 조카인 페르디난트 대공이 암살당했을 적엔 전혀 슬픈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는데, 그것은 대공이 황실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보헤미아 백작의 딸과 결혼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조카의 죽음을 '천벌'로 여기기까지 했다네요...
  • 위장효과 2010/11/22 10:26 #

    그래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두 아들에게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왕국의 계승권이 주어지지 않았다죠. 1차 대전 후에는 카를 1세의 아들이자 현재까지 합스부르크 종가의 당주인 오토 폰 합스부르크 대공하고 페르디난트의 두 아들 사이 누가 왕위계승권자냐 하는 다툼도 있었고 두 아들은 한 때 나치당쪽에 기울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다하우 수용소에 잡혀들어갔기도 했죠.
  • 행인1 2010/11/22 15:15 # 답글

    매킨리의 부통령이었다가 대통령 자리를 승계한 태디 루즈벨트는 퇴임하고 나서 1912년 불무스당을 창당해 대선에 뛰어들었다가 역시 권총에 맞았는데 요행히 살아남습니다.(물론 대선에서는 집니다.)
  • 에드워디안 2010/11/22 17:24 #

    테디는 너무 지나칠 정도로 행동주의적인 인간이었죠. 그 때문에 과로사하고 말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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