終戰 2년 반, 오늘의 공산 베트남... 국제, 시사


공산화된 지 2년 반이 지난 오늘의 베트남은 식량과 약품 부족으로 기아와 질병이 만연하고 있으며, 이른바 '新경제지역 개발'이란 명목으로 山間 벽지에 강제 이주당한 都市民 중엔 그 곳에서 살 수가 없어, 도망쳐 나오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베트남을 방문하고 방콕에 돌아온 한 외국인의 증언에 의하면, 사이공 인구 350만명 가운데 150만명이 新경제지역으로 이주당했고 앞으로도 1백만명이 추가로 이주될 계획이며, '재교육'이란 명분 하에 20여만명의 舊정권 관리 및 군인들이 아직도 수용소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사이공 시내의 일부 시장과 가게들은 공산화 이후에도 계속 문을 열고는 있지만, 상품의 대부분은 공산화 이전에 사놓은 美製 등의 재고품이며 물건이 다 팔린 가게는 더 이상 물건이 없어, 아예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현재 베트남에서 자체적으로 생산되어 시장에 나와있는 상품은 수건 ・내의 ・양말 ・학용품 등 몇몇 가지에 불과하다. 그래도 베트남은 이웃 캄보디아에 비하면 상황이 나아 주일이면 신도들이 성당이나 사찰에 모여 예배를 보는 등, 종교의 자유는 '비교적' 확보되고 있다.

공산 베트남 정부는 赤化 1개월 뒤부터 미처 탈출하지 못한 외국인에 대한 등록과 출국비자 신청 업무를 시작했다. 출국비자를 신청한 외국인들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비자를 받을 수 있었으나, 출국비자가 발급되었다고 해서 마음대로 출국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매주 1회씩 외국인 출국자 수송을 위해 운항하는 에어 프랑스 특별기의 좌석 사정 때문에 이민국에서 출국자 명단을 발표해주고 나서야, 비로소 수속을 해서 떠날 수가 있었다.

76년말부터는 외국인들도 1인당 매월 9kg씩 告示가격으로 쌀배급을 받을 수가 있었는데, 식량사정이 더욱 악화되자 77년 7월 하순부터는 외국인들에 대한 쌀배급이 다시 중단되어 이들은 5배나 비싼 市中의 쌀을 사서 근근히 연명하고 있다. 배급쌀은 1kg의 新화폐로 1동인데 비해, 市中 쌀값은 1kg에 5동씩이나 된다.

1년에 2모작, 3모작을 할 수 있는 쌀 생산국인데도 식량난을 겪고 있는 이유는 농민들이 각각 자기들이 먹을 만큼의 농사만 짓기 때문이라고 한다. 쌀농사를 지어봤자 1인당 13kg씩을 제외한 나머지는 정부에 의무적으로 헐값에 외상 판매를 하도록 규정되어있기 때문에, 농민들이 의도적으로 쌀생산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북부 하노이의 경우는 질서는 잡혀있으나 기분 나쁜 정적만이 감돌고 있다는 소식이다. 방문자의 증언에 의하면 한밤 중의 하노이는 일찌감치 인적이 끊어진다고 한다. 전쟁 당시 격추된 美軍機나 그밖의 美軍 장비들은 현재 하노이 국립박물관에서 사람들의 조용한 눈길을 끌고 있을 뿐이다.

전쟁 중에 市外로 소개되었던 상당수 인구가 다시 돌아온 덕에 현재 하노이 인구는 130만을 넘어섰는데, 베트남 정부는 중부고원지대에 새로 개발한 '新경제 지구'로 이들 중 수십만 명을 다시 소개시킬 계획이다. 그러나 전쟁의 상처는 급격히 치유되고 있어 시외곽에 포진되어 있던 對空砲臺는 철거되었으며, 군용기가 우선적으로 사용하고 있던 공항에는 지금은 소련제 민간 항공기들이 몰려있다.

외국인만을 상대로 한 하노이의 호텔은 더위에 익숙치 않은 러시아인들과 베트남의 철강산업을 지도하기 위해 최근 부쩍 늘어난 東獨人들이 주요 고객이나, 통일 이후에 이주해 온 남부 지방의 여인들이 호스티스로 있어 아직도 美軍 속어가 종종 들린다. 그러나 하노이 백화점에 진열된 물건들은 아직도 과도체제를 못 벗어난 사이공에 비해 더욱 초라하다.

반대로 하이퐁港에는 주로 東歐에서 보내온 철강재와 건축 자재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다. 그러나 현재의 베트남은 이러한 자재들을 처리할 수송 수단과 기술력을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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