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정말 사실일까? 잡소리





경상남도 통영(충무)에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이 존재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통영시와 미륵도를 연결, 1932년 완공된 터널인데...


당시, 일본 내지에도 미처 건설되지 않은 해저터널을
 

왜 굳이 식민지 조선에, 그것도 하필 통영에 건설했냐는 점이 의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장이 있다.


이곳은 당포해전에서 참패한 왜군 패잔병들이 몰살당한 장소로,


1930년대 당시, 통영군수 야마구치는 구름다리가 왜군 영령들을 짓밟고 있다면서


구름다리를 해체하고 대신 해저터널 건설에 착수하였다는 것이다.


바다 밑으로 통로를 만들면 곧, 영령들의 밑으로 기어가는 셈이 되니까...


개통 당시의 이름도 통영 태합굴(太閤堀) 해저도로로,


이순신의 전적지에 히데요시를 기리는 건축물을 세움으로써


제대로 앙갚음(?)을 하고자 했다는 후문도 있다.


이것이 정말 사실일까?


당시의 기술수준으로 터널을 굴착하는 건 상당한 모험이었고,


그 장소가 바로 이순신과 연관이 깊은 통영이라는 사실에서


선조들의 영령을 기리기 위해 터널을 건설했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사 중 어두운 부분을 가급적 윤색하는 일본인들이,


자기네 조상이 몰살당한 것을 위로한답시고 대놓고 저런 토목사업을 추진했을까? 


단순히 풍수지리설과 민담만으로 터널공사를 시도했다기보단,


어디까지나 통영 일대의 개발이 주목적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의도야 어찌됐든 일본인들이 건설한 해저터널은 30여년간 제 기능을 발휘하다가,


충무대교의 건설로 차량운행이 중지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덧글

  • 대한민국 친위대 2011/04/24 19:25 # 답글

    아무리 치트공이 싫어도 그렇지 저런 찌질한(?) 짓을;;;;
  • 에드워디안 2011/04/25 10:24 #

    그렇게 단순하게 볼 문제는 아닌것 같습니다.
  • 행인1 2011/04/24 19:53 # 답글

    뭔가 풍수지리설 같은 느낌이로군요.
  • 에드워디안 2011/04/25 10:04 #

    일본에서 풍수지리설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였습니다.
  • 천하귀남 2011/04/24 20:10 # 답글

    국중에서 관련 자료를 얼핏 봤는데 당시에 일본어부들이 충무인지 통영인지에 진출해서 엄청나게 흥청거렸다고 하더군요.
    더군다나 저 터널은 뚷은게 아니라 가물막이를 세워서 바다를 막고 땅파서 콘트리트 구조물을 만든뒤 메우는 방식이고 거리가 그렇게 멀지는 않더군요. 어업쪽 이득으로 충분히 감당 가능한 공사였던듯 합니다.
  • 에드워디안 2011/04/25 09:06 #

    저의 표현 실수였습니다.-_-;

    ps. 서울지하철 1호선도 유사한 방식으로 건설되었죠.
  • 누군가의친구 2011/04/24 22:56 # 답글

    저게 사실이면 참으로 찌질하다고 할수 밖에요.ㄱ-
  • 에드워디안 2011/04/25 09:04 #

    ^ ^;;
  • KittyHawk 2011/04/24 23:05 # 답글

    북관대첩비를 갖고 저주의식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 에드워디안 2011/04/25 09:01 #

    실제 기록으로 확인되었나요?
  • KittyHawk 2011/04/25 09:35 #

    최초 확인은 주말 신문에서였는데 저로서는 확신은 못하는 사안입니다.

    그런데 사명대사의 공을 기리는 비를 놓은 사당 주위를 건물로 막았다던지

    , 왜란 때 공을 세운 다른 대사분의 비를 깨뜨렸었다는 이야기가 신동아에

    올라오기도 했던 걸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 싶어 지더군요.

    (사명대사님 비와 관련해 지역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비를 막은 사방의 건물

    들에 들어가 산 일본인들은 단 한 명도 아들을 얻지 못했다는군요.)
  • B군 2011/04/25 00:55 # 답글

    이 이야기 꽤 오래전에 오기로 판명났는데 아직도 떡밥이 도는군요;

    일본어 堀는 동굴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흙을 파 만든 수로, 즉 운하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태합수로인거죠;;;

    참고로 당시 일본 당국은 이 수로 공사를 「태합굴 굴착공사(太閤堀掘削工事)」, 해저 터널 공사를 「통영 해저도로 축조(統営海底道路築造)」라고 불렀습니다.


    정리하자면, 당시 통영시와 미륵도간 수료 준설공사가 태합굴 굴착공사, 해저터널 공사는 통영 해저도록 축조였던 거죠;;; 이게 묘하게 두 이름이 합쳐져서 저런 떡밥이 돌았던 겁니다.

  • 에드워디안 2011/04/25 08:54 #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일본인들은 임란에 출정한 왜군과 연관이 있던 지역마다 태합(太閤)이라는 명칭을 즐겨사용했는데, 울산과 부산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고 하네요. 통영의 태합굴(太閤堀)이란 왜색지명도 그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라 추정됩니다.

    문제의 태합굴은 본래 판데목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는데, 1910년의 <한국수산지>를 보면...

    미륵도와의 사이에 형성된 해협의 최협부(最狹部, 가장 좁은 위치)에 있고, 同 섬 남수동(南修洞)과 상대하여 교량으로 서로 접하는데, 이 해협은 임진의 역(임진왜란) 당시 일본인이 개착(開鑿)한 것이라는 구비(口碑, 전설)가 있어 일본인은 이를 태합굴(太閤堀)이라고 부르며, 요즘은 모래뻘이 침체되어 대선(大船)은 지날 수가 없고, 간조시에는 어선도 통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인가 36호가 있고, 주민은 농상업을 영위하고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없다.

    통영 일대의 개발이 운하굴착과 터널공사를 추진한 주요 목적이었겠지만, 그렇다고 임진왜란 당시의 전설과 완전히 무관하리라곤 생각치 않습니다...
  • B군 2011/04/25 09:58 #

    넵 그렇습니다.

    왜정때 새로 붙은 지명들 중에는 말씀주신 내용대로 특히 남해 인근은 분로쿠의 역(임진왜란)시 출정한 곳이면 태합이란 단어가 붙은게 있지요. 보통은 저렇게 패전한 장소가 상호 오픈된 동네면 타이코 명칭은 안 붙이는게 나을 거라는게 제 생각인데(;;) 그래도 붙인걸 보면 단순히 히데요시의 조선 출병과 관계있다...는 정도로 가볍게 넘겨서 그런거지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임진왜란에서 대패한 일본군 원혼을 달래고저 저런 이름을 붙였다"

    는 주장은 앞뒤가 잘 맞지 않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일본에선 정말 숨기고픈 결정적 패전은 어떻게든 숨기고 윤색하고 말지 저렇게 자군 패전지에 태합이란 명칭을 붙여가며 기를 억누른다...즉 위에서도 지적하셨지만 이런 풍수적 발상은 한국만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나 메이지~다이쇼 쇼와 초기까지라면 이런 류의 미신이 일본 내에서도 전반적으로 부정되고 있던 시기였기도 했고 말이죠.

    즉 태합굴이란 이름이 저 동네에 붙어버린건 사실이지만 그건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만큼 풍수적인 의도는 별로 없었다는게 제 주장의 요지입니다.
  • 만슈타인 2011/04/25 04:59 # 답글

    용케도 차와 사람이 왔다갔다하는 수준 (...)
  • 에드워디안 2011/04/25 08:51 #

    콘크리트 보강 공사로 내부 공간이 더욱 협소해졌지요...
  • rumic71 2011/04/25 14:12 # 답글

    한국에선 노기장군이 이순신빠였다는 사실을 늘 망각하더군요.
  • 백범 2011/05/04 12:25 #

    그들에게 그런건 중요한게 아니죠. 내가 보고싶은 것만 골라서 믿으면 장땡이니까...
  • 에드워디안 2011/05/04 16:08 #

    rumic71//

    한국이 일본의 역사왜곡을 당당히 욕할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문입니다...-_-;
  • 백범 2011/05/04 12:25 # 답글

    일본 쇼와시대 하고, 지금의 한국의 차이점이 대체 뭔지...
  • 에드워디안 2011/05/04 16:09 #

    그 나물에 그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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