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군사혁명 세계사




4월 25일, 무혈혁명에 성공한 포르투갈 군부는 카에타노 수상과 토마스 대통령을 축출하고 스피놀라 장군이 전권을 장악한 임시정부를 구성하였다. 포르투갈의 쿠데타는 아시아 ・아프리카 또는 남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쿠데타와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는데서 우리의 관심을 끌고있다.

대개 군부 쿠데타는 대부분 극우 또는 극좌정권을 대표하는 것으로, 정치체제와 행정에 대한 개혁이란 미명 하에 軍의 정치참여와 통제체제로 전개된 것이 특징이다. 반면 포르투갈의 경우, 그 성격을 단정짓기란 아직 이르지만 쿠데타의 배경과 공약을 검토해 볼 때, 분명히 상이한 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쿠데타에 성공한 軍 수뇌부는 공약으로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독재정치를 제거하고 권력남용과 부정부패를 일소할 것을 선언했다. 또한 軍의 의무는 '국가를 방위'하는 것이며, '민주개혁과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한다고 밝혔다.

부패일소에 대한 공약은 어느 혁명에서도 자주 들을수 있는 말이지만, 軍의 임무를 국가방위에 국한하고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한다는 공약은 틀림없이 예외적인 사례라 하지 않을수 없다. 서유럽의 특징인 자유주의 풍조가 포르투갈에도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군부는 13년간 계속되어온 아프리카 식민전쟁을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 軍이 전쟁의 당위성을 객관적으로 평가, 스스로가 식민전쟁의 무용론을 주장하며 맹목적인 국수주의에서 탈피한 셈이다. 이는 지난 1958년, 알제리 독립과 행정의 능률화를 주창하며 등장한 드골의 공약을 연상하기에 족한 것이다.

사실 포르투갈은 지난 1932년, 살라자르가 집권한 이래 42년간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체제를 모방한 독재 일변도로 통치되어왔다. 살라자르는 포르투갈인의 개인주의성을 지적하며 정당정치의 무용론을 주장했고, 비밀경찰 PIDE를 앞세워 반체제인사 탄압과 의회활동규제 ・언론통제 등을 실시하였다.

대내적으로 철권을 휘두르던 살라자르의 독단은 해외식민지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살라자르는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 등, 본국영토의 수십배에 달하는 거대한 식민지를 武斷으로 다스려 국가예산의 4~50%를 군비에 지출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여론의 지탄을 면치 못했다.

앙골라에서 채광되는 광물은 전쟁비용을 부분적으로나마 충당시킬 수 있었지만, 이 식민戰役은 포르투갈의 국력을 분산시키는 작용을 촉진시켰다. 기간산업인 농업조차 침체하여 경제사정은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국민의 불만은 壓政으로부터 경기불황 ・식민지전쟁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1968년, 살라자르가 신병으로 퇴진하고 후계자 카에타노가 집권하자 국민들은 잠시나마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있었다. 그러나 카에타노는 초기의 자유화정책을 폐지, 다시 반동으로 되돌아가 오로지 탄압으로만 일관하였고, 결국 오늘의 군사혁명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쿠데타의 주역인 스피놀라 장군이 '자유의 우상'으로 추앙받고 있다는 점, 쿠데타 공약이 軍의 기본의무를 명시했고 국민에게 자유를 보장한 사실, 그리고 식민전쟁을 부정한 사실 등을 되새기며, 쿠데타 이후의 포르투갈 정국의 전개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덧글

  • 행인1 2011/04/25 23:12 # 답글

    예산의 40~50%가 군비라... (배트남과 알제리에서 탈탈 털린)프랑스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절대 오래갈 수 없었을듯 합니다.
  • 에드워디안 2011/04/26 11:03 #

    13년간 버틴 것이 어찌보면 기적이었습니다.-_-
  • 에드워디안 2011/04/26 11:20 #

    ps. 그러고보니 앙골라-모잠비크 전쟁을 가리켜 '포르투갈판 베트남 전쟁'이라 부르기도 했지요.
  • winbbs 2011/04/27 00:44 #

    행인/웃기게도 알제리를 독립하게 허가 해 준것은 사회당 좌파 정부가 아닌 우파 드골이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서구 좌파의 정치력이 노련한 우파보다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죠.
  • 에드워디안 2011/04/27 09:48 #

    winbbs//

    인도차이나전쟁 종전과 튀니지 독립을 결행한 것은 급진사회당 좌파 출신의 망데스 프랑스였죠.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 KittyHawk 2011/04/26 02:29 # 답글

    권력자의 장기 집권이 결국 국익과는 배치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반증이라고 해야겠지요? 물론 포르투갈의 집권층이 굉장히 유연하고 유능하게 움직였다면 식민지들의 독립은 굉장히 어려워졌겠지만 말이지요...
  • 에드워디안 2011/04/26 11:11 #

    포르투갈인과 식민지 원주민과의 소위 '융화'에 나름 신경을 쓰긴 했지만, 그럼에도 정치적 ・경제적으로 원주민이 불공정한 대접을 면치 못한 것은 어쩔수가 없었죠.

    게다가 독립을 허용할 경우, 수백년에 걸쳐 형성된 혼혈인종의 처리 문제를 꺼려한 탓에 식민지 유지에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 2011/04/26 09:1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에드워디안 2011/04/26 11:11 #

    그 영감님은 참... 노망이라도 들지 않았나 싶네요.-_-;
  • 萬古獨龍 2011/04/26 09:19 # 답글

    군부의 움직임이 흥미롭군요. 보통 독재로 이어지기 마련인데 말입니다.
  • 에드워디안 2011/04/26 11:18 #

    소련의 포르투갈 정정 개입으로 문제가 다소 복잡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2년만에 무난히 민정 이양을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사례였습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1/04/26 15:11 # 답글

    군부가 순순히 민정 이양을 했다는 점은 보기 드문 사례지요. 군사 쿠테타가 일어나면 독재의 연속에다가 쿠데타의 연속이라는 악순환을 타고마는 사례가 많았는데 말입니다.
  • 에드워디안 2011/04/26 19:30 #

    서유럽식 자유주의 사상에 공감한 소장파 장교단이 주동이 된 혁명이었던만큼, 민정 이양의 결과는 당연한 셈이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함월 2011/04/26 17:31 # 답글

    세계사적으로 대단한 일이었죠.
    시민혁명이 민주주의로 곧바로 이어진 일도 적은데, 하물며 군사 쿠데타가 민주주의로 바로 이어진 경우는 이게 유일한 사례가 아닌가 싶군요.

    그런데 포르투갈군이 사라진 식민지들에는......
  • 에드워디안 2011/04/26 19:32 #

    일종의 '긍정적인 쿠데타'라는 점에서, 매우 희귀한 케이스죠.

    ps. 앙골라의 비극은...ㅠㅠ
  • winbbs 2011/04/27 00:41 # 답글

    이에 반해 제 3세계의 쿠데타는 대부분 말썽의 연속이였죠. 특히 중남미의 볼리비아는 군 쿠데타가 3번이나 연속으로 발발해 이게 뭔지 저게 뭔지 할 정도로 혼란이였습니다.

    저는 이 때문에 볼리비아가 풍부한 천연가스 자원과 칠레 못지 않은 구리광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남미에서 빈곤을 면치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보사카 황제는 쿠데타를 일으켜서 황제까지 올랐으나 국고는 텅텅 비고 최빈곤 국이라는 악 순환을 면치 못했죠.
  • 2011/05/04 12: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에드워디안 2011/05/04 16: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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