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치하의 포르투갈 세계사




전통적으로 보수적이며 가톨릭 신도가 많고, 교육수준도 낮은 농촌 주민이 대부분이었던 포르투갈인들은 혼란만을 되풀이하던 의회민주주의 체제에 그다지 동조하지 않았다. 1920년대말, '정당정치의 무용론'을 주장하며 등장한 인물이 바로 안토니오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박사였다.

조심스러우며 비밀주의적이고, 고집이 센 성직자 유형의 경제학 교수는 1932년부터 포르투갈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살라자르는 무솔리니를 본받아 조합주의적 국가 형태인 'Estado Novo(新國家)' 헌법을 제정하였는데, 이는 전통적이고 교회 중심적 구조를 기반으로 反民主 ・反의회 ・反자유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新國家는 용어와는 정반대로 전근대적 구시대로 회귀하는 독재체제로, 모든 경제적 ・사회적 근대화나 변화에 반대하며 생산수단의 산업화와 국민 교육마저도 거부한 채, 가족 ・질서 ・규율 ・노동 ・겸손 ・신중함 ・전통과 같은 가치를 강조하였다.

제도면에선 파시즘을 모방했지만, 근본적으로 反근대주의자였던 살라자르는 파시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규모의 스펙터클한 모든 것을 기피하고, 농민들의 서정적인 민속과 행복한 겸손을 이상으로 삼았다.

국가 행정은 학자와 관료들이 주로 담당하였고(교수들의 통치), 경제는 몇몇 영향력 있는 가문(지방 土豪층 중심)이 담당하였다. 소규모 영농업과 가내수공업이 경제의 중심으로 여전히 자리매김했다.

살라자르는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모두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재정 원조(마셜플랜)도 부분적으로 받지 않았다. 그의 진정한 목표는 포르투갈 제국을 외부세계와 시간으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킨 채, 1914년 이전의 유럽과 같은 질서(舊세계)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포르투갈이 외부세계에 종속되거나 다른 나쁜 의도에 휘말리게 되는 위험을 피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가난한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낫다. 살라자르는 포르투갈을 외부세계로부터 차단하는 대신, 大洋을 누비던 선조들의 과거를 위대한 신화로 설명하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다민족 문화'의 대제국을 선전했다.

이러한 쇄국주의적 고립은 특히 민주화와 식민지 독립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이 증가한 1950년대 이후, 정부의 주도로 국가 차원의 슬로건이 되었다. '우리는 혼자라는 사실에 늘 자부심을 갖는다.'라고.

그렇다고 포르투갈이 완전히 깊은 잠에만 빠진 것은 아니었다. 독재정권은 비밀경찰 ・검열 ・검거 ・고문 ・유배 ・단일정당 ・퇴폐문화 억압 ・출입국 통제 ・노조 금지, 그리고 의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등, 다양한 파쇼적인 국가통제기구를 동원하였다.

독재체제의 견고함도 사회 변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난제들을 피할 수가 없었고, 날로 급변하는 시간과 세계정세 속에서 이런 문제를 막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포르투갈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점차 낙후되어 유럽의 최빈국으로 전락했으며, 농업에 대한 잘못된 투자로 문제는 한층 심각해졌다.

농민들은 아무런 기반 시설이 마련되지 않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노동자들은 기술을 습득하지 못했다. 1960년~74년 기간 동안, 약 1백만명의 포르투갈인이 조국을 떠났으며, 국가는 해를 거듭할수록 가난해졌다. 경제의 악화는 오랫동안 식민지와의 교역을 통해 숨길 수 있었다.

이렇게 문제가 많고, 유지 불가능한 제국의 종말이 시작을 고한 것은 아프리카 전쟁이었다. 1961년, 앙골라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에 대한 리스본의 반응은 아집과 고집, 그리고 비유동성으로 가득한 것이었다.

식민지 전쟁으로 포르투갈은 경제적 ・군사적, 그리고 도덕적으로 완전한 파탄 직전까지 몰리고 말았다.


덧글

  • 누군가의친구 2011/04/26 23:36 # 답글

    살라자르 하니 최근에 읽었던 책에서 그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주 프랑스 영사관의 영사였던 아리스티데스 데 소사 멘데스의 관직 박탈및 그의 집안을 완전 가난하게 만들었죠.
    사실 멘데스가 한 행위는 당시 프랑스에서 해외로 망명, 피난가려는 사람들에게 비자 3만장을 찍어준 것이었는데 정부 정책을 위반하였단 이유 하나만으로 다른 이들도 이해할수 없는 직무 박탈까지였으니 말입니다. 멘데스의 명예가 회복된건 88년, 그가 죽은지 34년 후의 일이니 뭐...ㄱ-

    아무튼 경제학 박사라는 자가 경제뿐만 아니라 국가 자체를 구렁텅이로 몬 행위는 경제학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경계하지 않을수 없겠습니다.
  • 에드워디안 2011/04/27 00:19 #

    1. 유대인 탈출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멘데스가 그런 수난을 당했군요...

    2. 집권 초기엔 강력한 긴축정책으로 균형재정을 달성했고, 2차대전 직후 서유럽 각국의 부흥과 맞물려 농수산물 수출에 열을 올린 덕에, 나름의 호황을 구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60년대 들어와 부흥경기가 마무리된데다, 과도한 규제도 한 몫하여 점차 불황의 늪에 빠지기 시작. 때마침 발발한 식민지전쟁이 포르투갈 경제에 결정타로 작용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 행인1 2011/04/26 23:41 # 답글

    진정한 복고 반동이로군요. 어지간한 복고는 명함도 못내밀듯.
  • 에드워디안 2011/04/27 00:21 #

    본래 성직자를 희망했던 양반인 만큼, 속세에 어지간한 불만을 품었을지도...(?)
  • 만슈타인 2011/04/27 13:20 #

    메테르니히 저리 가라는 수준 (...)
  • ArchDuke 2011/04/26 23:54 # 답글

    엉....왜.....
  • 에드워디안 2011/04/27 00:22 #

    1914년 이전의 세상이 그렇게 좋아보였던 모양입니다...-_-
  • winbbs 2011/04/27 00:38 # 답글

    포르투칼은 살리자르 독재 종식 이후에 성공적으로 선진국에 도약했지만, 과거 식민지였던 앙골라는 실패의 연속이였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입니다.

    이에 반해 모잠비크는 내전을 성공적으로 종식하고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편입하여 현재 경제성장을 이루어 낸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 에드워디안 2011/04/27 09:42 #

    그런데 포르투갈도 최근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처지로 몰락한지라...-_-;
  • 네비아찌 2011/04/27 08:51 # 답글

    선동가도 장군도 아닌 책상물림 출신이 죽을때까지 독재자로 군림한 걸 보면 지식인에 대한 좌파적 관점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지요.
  • 에드워디안 2011/04/27 09:44 #

    레닌도 따지고 보면 지식인 부류에 속하지 않았습니까.ㅋㅋㅋ
  • 만슈타인 2011/04/27 13:21 # 답글

    일개 경제학 교수가 군림 집권하다니 참 -_-;;
  • 에드워디안 2011/04/27 20:35 #

    자신을 발탁해 준 카르모나 장군을 비롯한 군부 유력인사들을 완전한 장식물로 전락시킨 점을 보더라도, 보통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 들꽃향기 2011/04/28 03:14 # 답글

    '다민족 문화'의 대제국을 선전 -> 무려 파시즘 체제에서 이런 주장이 나오니 뭔가 좀 하이브리드(?)한 느낌이군요. ㄷㄷ 물론 단일민족을 주장하기 힘들었던 이태리의 무대리의 경우도 있지만, 그 경우조차도 자신들을 대놓고 다민족 제국이라고까지 하진 못했는데...ㄷㄷ

    역시 살라자르는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 -_-)b
  • 에드워디안 2011/04/28 08:51 #

    '한국적 민주주의'가 존재했듯이, '포르투갈적 파시즘'도 존재하는 법이죠.ㅋ

    살라자르는 적어도 외교분야에선 능력이 있던 양반인데, 그마저도 식민지에 집착하는 바람에...;;
  • KittyHawk 2011/04/28 15:02 # 답글

    살라자르에게 좀 더 현실적인 면이, 산업을 중요시하는 면이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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