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의 불모지대 국제, 시사




금(金)과 다이아몬드 ・우라늄에 빛나는 아프리카 대륙의 남반구의 풍요한 대지(大地). 백인(白人)에게는 천국을, 흑인(黑人)에게는 지옥을 의미하는 이곳은 '20세기의 이방(異邦)지대'가 되어버렸다.

1948년 이래 남아공화국 정부가 실천해 온 흑인탄압은 그 종류도 다채롭다. 전체 인구의 70%에 이르는 흑인의 선거권이 전혀 인정되지 않고 있음은 물론, 정당 결성도 금지된 실정. 학교 ・레스토랑 ・극장 ・버스 ・화장실 ・엘리베이터, 심지어는 공원 벤치에까지 '백인 전용'이 따로 마련돼있다.

흑인이 백인과 결혼하면 8년의 강제노동형을 부과하는 배덕법(背德法)이 존재하며, 주민등록법에 의해 모든 국민을 黑白으로 공식 분류하고 있다. 이 분류의 목적은 탄압할 상대자를 가려내기 위해서라는 것.

주민등록법의 시행에 앞서 전국적인 신체검사가 실시되었는데, 얼굴의 피부色度에 따라 형은 유색인, 아우는 백인으로 등록되는 웃지못할 에피소드까지 생겨날 정도다. 경찰은 기소가 없이도 6개월 동안 감금할 수 있는 법률을 배경으로 조금이라도 반항의 기미가 있는 흑인은 무조건 체포, 감옥으로 직행한다.

모든 흑인은 패스법에 따라 정부가 발행한 일종의 통장을 항시 휴대해야 한다. 결혼 ・취직 ・여행은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하며, 허가되면 통장에 고무도장을 찍어준다. 그러나 이 도장은 언제 어느곳에서나 아무 이유도 없이 취소할 수 있다. 이 통장을 휴대하지 않고 도시에 들어오면, 그것으로 감옥행이다.

매일 1천명 정도가 이 통장 不휴대죄로 즉결 심판에서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따라서 감옥 인구의 비율도 세계 1위를 자랑(?)한다. 236명에 1명 꼴이다. 더구나 진행 중인 반투스탄 계획은 흑인들을 모두 변두리의 불모지로 이주시켜 8개의 자치국가로 독립시켜준다는 것으로, 실상은 대단히 기만적이다.

반투스탄에 할당된 영토는 남아공화국 전체 國土의 14%에 불과하고, 나머지 86%는 전체 인구의 19%에 불과한 백인이 독점하다시피 한다. 그 방법도 흑인이 낮에는 도시로 출근하여 백인들을 위한 노동에 종사하고, 밤에는 다시 거주지로 돌아간다는 일종의 '주노야경식(晝勞夜耕式)'인 것이다.




백인과 유색인종 간의 스포츠 경기도 금지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뉴질랜드와의 친선 럭비시합이 예정된 것도, 뉴질랜드 대표팀에 유색인종(마오리족)이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게임을 취소시켰으며, 미국의 흑인 테니스 선수가 입국을 거절당한 사례도 있다. 그야말로 철저한 인종격리인 셈.  

로마 올림픽 당시, IOC는 남아공의 인종정책을 문제삼아 출전을 금지시키려 했다. 이에 남아공은 '팀 내부에서 그 어떠한 인종차별도 금지한다'는 조건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출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출전한 선수단은 모두 백인들이었다. '백인들만의 대표팀'이니, 인종차별이 있을 수가 없다는 논리였다.

페르부르트 前 수상은 '백인과 흑인은 서로 전통이 다르므로, 분리가 당연하다'는 논지를 강조했다. 따라서 백인은 백인 고유의 전통을 이어가는 한편, 흑인은 백인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흑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창조적인 정책이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괴악한 주장을 내세웠다.

남아공 정부는 '남아프리카 흑인의 경제 수준이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월등히 높다'며 인종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 풍부한 자원에 비하면, 최하 수준이라는 반박이 있다. 사실, 백인 광산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흑인의 15배. 이러한 불평등을 무시한 남아공 정부의 주장은 애시당초 설득력이 없다.

제3자가 보기에도 너무나 불공평한 남아공의 인종정책은 압도적인 흑인에 대한 '數의 공포'에 시달리는 백인의 자위본능이란 견해가 있다. 화란系 백인 특유의 선민사상과 자부심도 주요 원인이다. 어쨌든, '大地는 神이 백인에게 하사한 선물'이라는 견해로 '검은 사자'들을 우리안에 가둬두려는 속셈이 틀림없다.

각처에서 폭동에 대비하기 위한 호신술(護身術) 교습이 행해지고 있다. 사격 ・유도 ・가라테 등 무예를 가르치며, 젊은 백인여성들은 습격을 염려하여 핸드백 속에 권총을 넣고 다니는 것이 습관처럼 됐다. 소위 컬러드 및 중간 유색인들도 이제는 완전히 흑인의 지위로 격하되었다.




외국 이민에 대한 태도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 남아공화국과 무역관계가 빈번한 일본인은 '법적상 백인'으로 분류되며, 인도인은 아시아인으로 공식 분류된다. 그리스인은 엄연히 백인이지만, 어느 이민자는 오랜 항해 도중에 얼굴이 햇볕에 그을린 탓에, 입국이 거부된 사례도 있다.

이러한 독선적인 인종정책으로 남아공화국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고립되어 버렸다. 남아프리카 항공은 아프리카 상공을 통과하지 못한 채, 대서양을 우회하여 유럽으로 취항하는 노선을 채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덧글

  • winbbs 2011/04/30 14:54 # 답글

    1980년대인가 어느 한국사람이 남아공에서 일본인과 한국인은 "명예 백인"으로 대우해서 좋아했다는 기사가 생각나는 군요.
  • 에드워디안 2011/04/30 21:02 #

    대만인은 아예 '정식 백인'으로 인정되었습니다.
  • winbbs 2011/04/30 14:55 # 답글

    그리고 이런 아파르헤이트 체제가 끝나고 흑인 정권이 찾아오자 시작된 폭동, 납치, 방화 살인등 범죄와 사회 전반의 비능률은 넬슨 만델라가 조금만 온건하게 해결을 봤더라면 될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일단 하부 구조를 흑인으로 고용 한 다음에, 능력 좋은 흑인을 승진하면 될 것이지요.
  • 에드워디안 2011/04/30 21:08 #

    흑인정부의 삽질이 문제지만, 아파르트헤이트 당시 지나칠 정도로 우민화를 강요한 보어인 권력층에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 지나가던과객 2011/04/30 17:49 # 삭제 답글

    그러고 보니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도 삼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거의 사우디아라비아보다는 낫지만, 다른 유럽국가보다는 심한 정도라더군요.
  • 에드워디안 2011/04/30 21:05 #

    출산율 저하를 노렸던 정부의 탄압에 시달린 흑인여성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칼뱅주의에 근거한 보어인 사회의 가부장적 제도로 인해 백인여성들도 상당한 차별을 받았죠.

    여성이 정치에 입문한다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었으며(헬렌 수즈먼은 예외적 사례), 경제적으로도 제한이 많았습니다. 재산 상속의 권리가 인정되지 못했고, 고용 ・임금 ・교육면에서 남성에 비해 불리한 입장에 놓인 실정. 이혼도 남편의 동의가 있을 경우에만 가능했던 것으로 압니다.

    그밖에 공산주의자 ・무신론자 ・동성애자 역시 탄압과 차별의 대상이었는데, 특히 동성애자는 행위가 발각될 경우, 강제노동형에 처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네요.
  • KittyHawk 2011/04/30 21:36 # 답글

    차별과 분리, 구분은 고집을 부려서라도 하겠다면 신중히 그리고 완급을 조절해가면서 써야 하는 것인데 남아공 백인정부는 그런 부분이 약했다는 감이 들더군요.
  • 에드워디안 2011/04/30 22:17 #

    21세기까지 백인에 대한 유색인종의 비율이 10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 통계, 즉 소위 '數의 공포'가 보어인들로 하여금 아파르트헤이트의 실행을 재촉하는데 일조했지요.
  • 누군가의친구 2011/05/01 00:36 # 답글

    당시 인종차별정책때문에 남아프리카 항공이 갈 항로가 줄어들었죠. 생각해보니 항공사고 수사대 시즌 5에서 다루었던 87년 남아프리카 항공소속 747 콤비가 대만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운행중 기내 화물에서 불이 나서 결국 인도양 상공에서 추락한바 있었지요.(탑승자 전원 사망) 그 사건에 대해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내에서도 말이 많았던게 화물내에 기내 수화물 목록에는 없던 무기제조에 쓰일 화학물질이 있던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었고 말입니다.



  • 에드워디안 2011/05/01 01:14 #

    모리셔스섬 근해에서 발생한 그 사고는 현재까지도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수수께끼로 남아있지요. 여객기 잔해가 마다가스카르섬까지 흘러갔지만, 남아공의 적국이었던 관계로 돌려받지 못한 사정도 있었고...

    어업시찰차 남아공 방문길에 오르던 일본인들의 희생이 컸는데(47명 사망), 한국인 1명도 희생자 명단에 포함되었다네요. 대만인은 30명 사망...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날, 김현희가 자행한 대한항공 폭파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이 사건은 상대적으로 묻혀버린 감이 있습니다.
  • 공손연 2011/05/01 10:48 # 삭제 답글

    몽골인들도 색목인들을 우대했는데 이 친구들은 인종주의자체에 빠져서 생각이 너무 없었죠.
  • 에드워디안 2011/05/01 11:58 #

    '보어식 시오니즘'을 극단화시킨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융통성을 기대하기란 무리일 듯...
  • 행인1 2011/05/01 16:03 # 답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하의 남아공은 그저 로디지아의 확장판이었을뿐이군요. 그리고 얼굴이 그을려 입국 거부된 그리스인의 사례는 블랙 코메디 소재로 딱일듯 합니다.
  • 에드워디안 2011/05/01 20:49 #

    온갖 모순이 가득했던,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남아공 사회였습니다.

    저런 유사 파시즘 체제가 영구히 지속되기란 애시당초 불가능한 셈이죠.
  • Esperos 2011/05/23 02:02 # 답글

    남아공이 인종차별정책을 펼쳤음은 알지만 이건 너무 심했군요. 흑인들이 이처럼 모든 면에서 차별받았으니 흑인 정권이 들어선 다음에 그 반동으로 무개념자들이 속출할 수밖에요;;; 시민사회의 덕목이란 게 앉아서 생기는 게 아니니...
  • 에드워디안 2011/05/23 11:25 #

    '분리 발전'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웠지만, 실상은 20세기판 노예제 그 자체인 셈이었죠.

    고집불통의 보어인 지배층이나, 포스트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흑인 집권층이나... 현재의 남아공을 막장으로 치닫게 만드는데 모두 책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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