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자르의 최후... 세계사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정치 지도자들이 죽음에 임박해서 보여준 초인(超人)적 의지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임종을 오래 끄는 것은 그 개인과 유족의 입장에선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정치적 관점에서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사후(死後)를 준비할 시간적 여유를 준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1968년 8월 3일, 리스본 교외 에스투릴의 '상투 안토니우 다 바라 성채'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던 살라자르 포르투갈 수상은 테라스에 설치한 해먹에서 낮잠을 자다가 낙마, 머리를 강타당하여 중태에 빠졌다. 일설에는 접이식 의자가 부서지는 바람에 넘어졌다고도 하고, 혹은 화장실 욕조에서 미끄러졌다는 주장도 있으나,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경위야 어찌되었든, 살라자르의 36년 독재는 그것으로 끝장이었다.

놀라운 것은 자신들의 독재자가 치명적인 머리 부상을 당했음을 한 달이 넘도록 포르투갈 국민들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살라자르의 투병이 보도된 것은 9월 6일에 가서였다. 9월 16일, 포르투갈 정부는 긴급 각의에서 살라자르의 조기 회복이 가망이 없음을 인정, 수상직 경질을 최종 결정했다.




여하튼, 뇌출혈로 사경(死境)을 헤매던 살라자르는 머리에 응결된 피를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은 끝에 간신히 목숨을 건지기는 했으나, 반신불수에 半실명 상태까지 겹쳐 더 이상 공무를 관장하기란 불가능해졌다. 일련의 공작에 의해 9월 27일, 前 리스본 대학 총장인 카에타노 박사가 수상직을 계승하게 되었다. 정작, 살라자르 본인은 이러한 사실을 몰랐는데, 측근과 의료진이 환자의 절대 안정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1969년 2월, 자택으로 옮겨져 요양 중이던 살라자르에 대해 측근들은 이전과 비슷한 집무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실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가짜 신문과 가짜 문서를 열람케 하여 권좌에서 축출당한 살라자르가 심리적 충격을 받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놀랍게도 그는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 가짜 문서에 일일히 서명했음은 물론, 매일 가짜 업무보고까지 받았다고 하니, 권력에 대한 그의 집념을 새삼 짐작할 수 있을 듯 하다.

이런 식의 연극이 가능했던 것은 본래 살라자르가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히 비밀에 붙혔을 뿐만 아니라, 평시에 공식 기자회견을 거의 소집하지 않았고, 평생 단 한 차례도 외유(外遊)를 나가지 않았을 정도로, 폐쇄적 ・은둔적인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인물 자체가 수수께끼인 셈이다.




수상 재임시, 살라자르는 '현재 이 나라엔 너무나 많은 난제들이 쌓일대로 쌓였기 때문에, 내가 물러난다면 엄청난 파국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라는 발언을 내뱉었다고 한다. 독재자들이 흔히 지니기 십상인 관념,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엘리트 ・오너의식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애처로울 정도의 집념과 끈기에도 불구하고 결국 1970년 7월 27일, 살라자르는 향년 81세로 사망했다. 임종 당시, 40년간 시중을 들어 온 가정부와 주치의만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독재자의 매우 처량한 최후였던 것이다. 신국가(新國家) 체제가 붕괴된 것은 그로부터 3년 9개월 후의 일이었다.


덧글

  • 위장효과 2011/06/02 07:38 # 답글

    이베리아 반도의 독재자들이 하나같이 최후가...
  • 에드워디안 2011/06/02 10:07 #

    프랑코 총통도 사망하기 십수일 전부터 거의 식물인간이나 다름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 위장효과 2011/06/02 10:11 #

    김동길 교수님의 책 "대통령의 웃음-이걸 과연 장르를 뭐라 해얄지, 일종의 만담집도 아니고"에 보면 프랑코가 지옥갔다가 한국으로 휴가나온 이야기-김교수의 창작-가 있는데 거기서 "내가 죽기직전 고통스런 투병생활했다고 뉴스 나왔지? 실은 내 부하란 놈들이 내몸에다가 튜브 있는대로 꽂고 생명연장시키면서 지들끼리 권력 나눈 거래한거라고. 그꼴보면서 내가 평생 안흘린 눈물을 흘렸다니까. 오죽하면 우리 마누라는 이제 그만 죽게 해줘라!하고 고함을 질렀겠나" 이렇게 말을 하지요. 뭐 독재자의 말년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 KittyHawk 2011/06/02 09:01 # 답글

    프랑코 제외하면 다들 끝이...
  • Joker™ 2011/06/02 09:21 #

    The saviour of Catholic Spain

    이 칭호가 괜히 붙은 게 아니겠죠 ㅋ
    밖에서는 아무리 뭐라고 해도 현지에서는 영웅으로 칭송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라고 하더군요.
  • 에드워디안 2011/06/02 17:44 #

    조커//

    당초 성직자를 목표로 신학교에서 공부한 전력이 있는 살라자르 역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죠. 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공화국의 反교권주의 정책에 저항하는 캠페인을 벌인 것이 정계 진출의 계기로 작용했다고 합니다.
  • 행인1 2011/06/02 09:19 # 답글

    황당하다면 황당하달까... 참 어처구니 없게 권좌에서 내려왔군요.
  • 에드워디안 2011/06/02 10:09 #

    더욱 아스트랄한 것은 자신이 권좌에서 축출당했다는 사실을 임종시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
  • 2011/06/02 10:3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에드워디안 2011/06/02 10:39 #

    그렇습니다. 혹여 있을지도 모르는 비로그인들의 공격을 받느니, 차라리...
  • 대공 2011/06/02 10:58 #

    아아 뒤는 제가 잇겠습니다
  • 지나가던과객 2011/06/02 11:00 # 삭제 답글

    저 양반이 경제학자 출신으로 독재자가 된 인물이라죠?
  • 에드워디안 2011/06/02 11:11 #

    코임브라 대학의 경제학 교수였는데, 군사정권에 의해 재무장관으로 기용되어 '1백년만의 흑자재정 달성'이라는 업적과 국민적 명성, 특유의 천재적인 정치 감각을 밑천 삼아 서서히 권력을 잠식해간 끝에 독재자가 된 케이스죠. 살라자르를 발탁해 준 카르모나 장군은 완전한 괴뢰로 전락하여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았고...;;
  • Montcalm 2011/06/02 11:48 # 답글

    이른바 포르투칼판 쇄국정책을 주창하시던분의 최후라 .. 저사람의 최후에 비하면 프랑코는 정말 천수를 누렸죠 .. 물론 저 사람도 나이로만 보면 금방 간거는 아닙니다만..
  • 에드워디안 2011/06/02 17:26 #

    프랑코와 살라자르 모두 동시대 인물로 비슷한 연령대에 사망했습죠(프랑코 83세, 살라자르 81세).

    일개 학자이면서도 쟁쟁한 軍장성들을 제치고 독재권력을 장악한 것이나, 수 차례에 걸친 암살 ・쿠데타 기도를 모두 극복하고 (여기엔 비밀경찰 PIDE의 역할이 컸음) 40년 가까이 장기집권할 수 있었던 살라자르가 오히려 더 대단하게 보이더군요. 저 개인적 시각에선 말입니다...ㄷㄷ
  • 대한민국 친위대 2011/06/02 12:40 # 답글

    독재자가 훅 갈 수 있기는 한데... 저건 좀 개그같습니다. 의자같은 곳에 앉다가 머리에 충격을 받질 않나, 자기가 권좌에서 쫓겨나는지도 모르고.... 엑!
  • 에드워디안 2011/06/02 17:26 #

    '포르투갈판 굿바이 레닌'...
  • 누군가의친구 2011/06/02 12:55 # 답글

    죽을때까지 그사실을 모르던게 혹여나 편하겠습니다.ㄱ-
    알아버렸다면 좌절감과 분노에 의해 쇼크사했겠죠.
  • 에드워디안 2011/06/02 17:29 #

    심적으로 지극히 평온한 상태에서 갔다고 합니다...
  • 백범 2015/07/09 17:01 # 답글

    한세상 저렇게 살다 가는 것도 딱히 나쁘지는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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