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高油價) 사태가 각국에 미친 영향 국제, 시사


최근 일본에서는 석유 부족에 따른 에너지 위기의 강도(强度)가 일본경제를 전후(戰後) 사상 최악의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며 아우성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본경제가 커다란 타격을 받고 있는 이상, 일본에 의존적인 주변 아시아 제국도 소위 '도미노 이론'에 따라 격랑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이 생산을 감축할 경우, 그나마 싹트고 있던 이 지역의 플라스틱 ・섬유류 ・화공품(化工品)系 산업들은 모두 꼼짝없이 몰락하고 만다. 석유를 전적으로 자급하는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마저도 이번 위기의 영향을 받고 있는 실정. 그들의 걱정은 이미 손쓸 기회를 놓친 인플레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데 있다.

야심적인 경제계획을 추진 중에 있는 한국 ・자유중국[臺灣] ・싱가포르 같은 개발도상국에 미친 영향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중동(中東)과 일본의 중간지점에서 최대의 정유시설을 갖추고 있는 싱가포르도 이미 5개 정유공장의 1일 생산량을 60만 배럴에서 54만 배럴로 10%나 감산(減産)했다. 심지어 파동이 있은 직후, 일본 선박 몇 척은 기름이 없어서 싱가포르 항구에 발이 묶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에너지 위기가 경제적인 파국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파국마저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자유중국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홍콩의 한 경제 전문가는 '대만이 기존의 성장률을 지속할 수가 없게 된다면, 국민당(國民黨) 1黨 체제가 끝장이 날 수 있다'고 지적할 정도다. 경제성장을 국정(國政) 기조로 삼으며 사회 내부의 갈등을 봉합해왔던 만큼, 불황은 대륙의 공산당과 더불어 국민당이 가장 경계해야 할 난적(難敵)인 셈이다.

유럽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영국 정부는 72년 기준으로 유류 10%를 절감시키는 시책을 마련했지만, 실제로 그폭은 17%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에너지 위기와는 상관없이 보수당(保守黨) 정권의 경제정책 실패 ・불황의 장기화로 노조의 쟁의(爭議)가 그치지 않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다. 경제 전문가들은 영국의 산업 생산량이 2차대전 이후 최저기록을 갱신하게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원유가(原油價) 인상으로 영국은 10억 달러를 추가로 지출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노사(勞社) 대립 ・행정의 비능률성 ・산업의 침체 ・만성적인 국제수지 적자로 '영국병(英國病)'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신조어까지 유행하는 암담한 상황에서 과거 대영제국(大英帝國)의 영화는 이제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모양이다.

지난 20여년간 일본과 더불어 최대의 경제붐을 일으켜왔던 서독도 드디어 주춤하게 되었다. 서독 최대의 화학회사인 훽스트社는 폴리에스테르와 석유기초 섬유류를 15%나 감산한다고 밝혔으며, 서독 포드社는 해고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시켰다. 또한, 정부는 제3국 노동자들의 고용을 취소했다.

당초, 낙관론자들은 아무리 에너지 위기가 격심하더라도 서독의 경제성장은 半영구적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제 이같은 낙관론은 자취를 감추었다. 프랑크푸르트 독일은행의 한 고위간부는 '정부가 74년도 GNP 성장률을 3%로 잡았지만, 현실적으로 봐선 1.5~2%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일부 전문가들은 사태가 더욱 악화된다면 제로에서 마이너스로 추락하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다.

서독의 경기침체는 바로 이웃인 프랑스의 산업마저 둔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프랑스는 서독과 최대 규모의 통상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퐁피두 대통령의 親아랍 외교가 그런대로 주효하고 있지만, 석유 공급의 감량은 피할 수가 없어서 10%가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일각에서는 20~25%까지 감량될 전망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배급제가 불가피해진다. 각종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는 눈치다.

지난 4년간 극심한 스태그플레이션 불황에 허덕이다 최근들어 회복 조짐을 보이던 이탈리아는 전체 에너지의 75%를 해외에 의존했기 때문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 국내의 외국기업 소유 정유공장들은 북유럽에서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이탈리아에 공급하던 석유를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호주의 경우, 석유 소비량의 70%가 자급이 가능한 상태로 향후 8년간의 비축분을 저장해 둔 상태다. 그러나 에너지 위기는 산업생산을 크게 저해하였으며, 원유가 인상은 250척의 선박 운항에 타격을 주어 수출산업이 크게 둔화될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호주는 자국 원자재의 최대 고객인 미국과 일본이 그간 수십억 달러나 투자했지만, 이번 위기로 주춤해질 가능성을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가솔린을 포함한 석유제품의 적절한 배급계획으로 아랍권의 전면 금수(禁輸)를 무난히 극복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주탄종유(主炭從油)의 에너지 정책을 실행하는 남아공은 연료용으로 21%의 유류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봉쇄에 대비하여 여러해 동안 막대한 전략 석유비축을 실시해 왔다. 주목할 만한 것은 폐광(廢廣)을 활용, 대규모 석유 저장시설로 변모시켰다는 사실이다.

폐광된 수 개의 지하 금광(金廣)들은 그 깊이가 무려 1천m 이상이나 되기 때문에 가장 저렴하고 안전한 석유 저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남아공화국內 중부지역에 위치한 이러한 지하 저장소들에는 무려 수백만톤의 원유 혹은 정유가 저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너지 위기에 앞서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춘 셈이다. 


덧글

  • 누군가의친구 2011/06/07 15:17 # 답글

    허... 남아공의 대비가 참 독특하군요. 폐광을 이용한 저장은 이제 처음 들어봅니다.
  • 에드워디안 2011/06/07 20:27 #

    정치 ・외교적 고립 상황이 역설적으로 지혜로운 대비책을 유도한 셈이죠.
  • 들꽃향기 2011/06/07 16:55 # 답글

    천하의 일본도 기름이 없어서 항구에 발이 묶이는 사태;;;; 정말 지금이라면 상상하기조차도 힘들군요. ㄷㄷ
  • 에드워디안 2011/06/07 20:24 #

    일본이 저러했으니, 다른 개발도상국은...-_-;
  • KittyHawk 2011/06/08 23:53 # 답글

    저때의 정치외교적 여파도 엄청났다지요? 한국으로 하여금 이스라엘과의 단절까지 택하게 했으니...
  • 에드워디안 2011/06/09 09:15 #

    미국을 비롯한 몇몇 서방국가들을 제외하면 거의 전세계가 아랍권에 고개를 숙여야 했었죠.

    70년대 중후반은 아랍 제국의 영향력이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시기였습니다.
  • 마즈 2011/06/24 23:07 # 답글

    폐광에 석유라;;;;지하수오염은 ;;;;참 기발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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