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rdinand Sarrien 1840~1915 세계사




프랑스의 정치가. 부르고뉴 지방의 부르봉-낭시에서 출생.

법률학교를 졸업한 이후, 리옹에서 변호사업을 시작했다. 레옹 강베타 계열의 공화주의자였던 그는 1873년, 고향에서 시장으로 선출되었으나 왕당파(王黨派) 정부로부터 경질당했는데, 오히려 3년 후엔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중앙 정계로 진출, 급진공화파(20세기초, 급진사회당으로 발전)의 일원으로 활약하게 된다.

1885년 4월, 브리송 내각의 체신상으로 처음 입각(入閣)한 이래 총 5차례에 걸쳐 내무상과 법무상 등의 요직을 역임했다. 2차 브리송 내각에서 법무상으로 재임할 당시(1898), 최대 이슈로 부각되던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하여 재심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으나, 군부의 반발로 내각이 총사직함과 동시에 사퇴하였다.

1906년 3월, 의석(議席)의 다수를 점하던 급진사회당-중도좌파의 지원을 받아 수상에 취임(법무상 겸임), 내각을 출범시켰다. 사리앵 내각의 특징은 클레망소 ・푸앵카레 ・브리앙 ・두메르그 등, 장차 프랑스 정계를 주름잡게 될 거물들이 대거 입각한 사실인데, 특히 클레망소는 행정부의 주요 실력자로 부상하게 된다.

수상으로 재임하면서 드레퓌스 사건의 종결 ・정교분리(政敎分離) 원칙의 강화 ・노동부 설치 등의 안건(案件)을 처리하였고, 1906년 5월의 총선 승리로 장기정권의 가능성도 점쳐졌다. 그러나 만성적인 장염(腸炎)에 따른 건강상의 문제로 7개월만에 사직했으며, 후임엔 클레망소 내무상이 임명되었다.

1908년, 상원의원에 선출되어 사망시까지 의석을 유지하였고, 상공회의소에서 재직하기도 했다.

1915년 11월 28일, 파리에서 사망. 향년 75세.
 

덧글

  • 들꽃향기 2011/06/23 02:44 # 답글

    공화주의자 중에서 레옹 강베타 계열이라면 진성이군요 ㄷㄷㄷ
  • 에드워디안 2011/06/23 10:31 #

    드레퓌스 사건의 해결은 강베타 계열 공화주의자들의 승리이기도 했지요.
  • 담배피는남자 2011/06/24 13:14 # 답글

    사리앵 내각의 인물들 중에 푸앵카레는

    앙리 푸앵카레 (수학자)의 동생인 레몽 푸앵카레를
    말하는거겠죠?
  • 에드워디안 2011/06/24 14:29 #

    물론입니다(직위는 재무상). 훗날 공화국 대통령까지 역임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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