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美中)관계와 일본의 딜레마 국제, 시사

 


일본 정치권과 언론들은 중국 문제를 놓고 연일 백가쟁명(百家爭鳴)식 논전(論戰)을 거듭하고 있다. 이들의 논전 요지는 미중(美中)관계의 화해를 목적으로 한 적극적인 접근 페이스에 밀려나버린 일본의 국제적 지위가 무엇이며, 또한 전후(戰後) 미국 일변도 외교의 시대적 의의가 사라졌다는 것 등이다.

전통적으로 서부 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둘러싼 미국 ・일본 ・중공간의 세력 각축 패턴은 미국과 중공의 접근으로 다시 재연되고 있는데, 일본의 소외는 '불가피한 사실'이란 점에서 집권 자민당의 딜레마가 더욱 심각해졌다. 일본의 입장에서 볼 때, 오키나와(沖繩) 반환을 통해 '전후시대의 종료'를 유도하면서도, 한편으론 미국의 닉슨-사토(佐藤) 공동성명 불변(不變) 확인 요구는 일본을 대미(對美) 종속관계에 묶어놓으려는 속셈이라 풀이되는 만큼, 사토 수상의 '대륙진격작전'은 미국 페이스에 편승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닉슨의 방중(訪中) 발표와 달러貨 방위조치, 상해(上海) 공동성명 속의 실질적인 '대만(臺灣) 포기'를 인정한 미국의 움직임은 일본에 '3연속 쇼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1월초, 샌클레멘트 정상회담에서도 대만에 대한 '미일(美日) 양국의 의무'를 사토 수상에게 강조했던 닉슨이 궁극적으로 대만 포기라는 초유의 폭탄 선언을 내놓는 식의 이중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사토 정권을 결정적으로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닉슨의 방중을 수행했던 그린 美 국무성 극동담당 차관보가 일본을 다녀간 후, 사토는 평정심을 되찾아 소위 '대만에 대한 통일된 견해'라는 것을 제시하였다. 상해 공동성명을 계기로, 사토 수상은 대만 문제를 두고 갈팡질팡하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사회당 등, 야당들은 대만 문제를 對자민당 공세의 정치 쟁점으로 이슈화할 것을 다짐했다. 야당은 물론, 심지어 자민당內 비주류파 소속 의원들의 정치적 공세는 '포스트 사토'를 둘러싼 문제와도 관련, 심각한 파문을 야기시킬 가능성도 있다지만, 단순한 기우에 그칠 듯 하다.




닉슨의 방중에 대해, 대다수 일본 언론은 '보도의 자율적 기피'로 일관했었다. 대표적 신문 아사히(朝日)만 하더라도 닉슨의 북경(北京) 도착 직후부터 의식적으로 닉슨의 북경 체류와 중공측과의 회담 내용에 대한 보도를 자제하는 대신, 간접적으로나마 미중 양국의 접근을 경계하고 나섰던 것이다. 최근, 언론기관의 좌담회나 해설기사 내용들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 데탕트가 일본에 미칠 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사토 수상의 '대만에 대한 통일된 견해'도 바로 이러한 바탕에서 비롯된 것 같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의 對중공 접근은 경제 위주의 실리 추구가 목적이다. 미쓰비시(三菱) ・히타치(日立) ・이토추(伊藤忠) 등, 대표적 상사(商社)들의 중공 진출 러쉬는 민간 차원에서 출발했으며, 국교 정상화에 앞서 일본 상품의 통로 확보를 노린 셈이다. 닉슨 쇼크를 계기로 이러한 민간 차원의 對중공 러쉬를 정부에서 물심양면 지원하고 나서는 등, 한마디로 '일본주식회사'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對중공 봉쇄정책의 좌절을 상쇄하기 위해 별도의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추세다. 그 실례로 對몽골 국교 정상화 ・미즈타(水田) 대장상의 시베리아 유전(油田) 개발을 위한 대소(對蘇) 차관 공여설 ・사토 수상의 '아주(亞洲) 집단안보체제' 검토 발언 ・'아주 제국(諸國)회의설'을 퍼뜨리고 있는 후쿠다(福田) 외상의 거동 등은 치밀하게 계산한 對중공 견제 효과를 노린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미-중공 데탕트 무드에 대처하며 對소련 관계 개선과 일본-동남아 제국간의 유대 강화를 위한 움직임인 것이다. 


덧글

  • jaggernaut 2011/07/28 12:02 # 답글

    대중관계에 있어서는 일본은 호구였다는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시장 개척과 투자에 상당히 일찍부터 공을 들였음에도 정작 얻은수익은 들인 공에 비해서 신통찮지요.
  • 2011/07/29 02:3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