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憲政) ・정본(政本)의 합병에 임하여...




헌정회(憲政會)와 정우본당(政友本黨)의 합당(合黨)이 마침내 현실화되기에 이르렀다. 헌정회의 입장에선 당세(黨勢) 확장이란 의미에서 환영 일색임은 물론, 정우본당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결과다. 정우본당의 도코나미 다케지로(床次竹二郞) 총재는 그동안 당내(黨內) 정우회 복귀론자를 억제해왔는데, 설사 아무리 '뿌리'가 같을지라도 탈당(脫黨)한 이상, 복당(復黨)은 총재로서 도저히 면목이 없는 셈이다.

만약, 정우회에서 도코나미氏에게 총재직을 제안한다면 정우본당의 복당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겠으나,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男이 '3년간의 고생(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끝에 내각을 조직한 현재에 있어서, 정우회가 그런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다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된다. 정우본당이 현(現) 상태로 총선에 임할 경우, 그 결과는 필시 '파국적'으로 작용하리란게 정계 소식통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정우본당이 1백명 안팎의 의원을 거느릴 수 있었던 비결은 기요우라(淸浦) 내각 당시, '실질적 여당'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한데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나카하시(中橋) ・하토야마(鳩山) 양씨(兩氏)를 포함한 유력 간부의 정우회 복귀 ・금력(金力) 후원의 불충분 ・무산(無産)정당의 기반 침식 등, 당세가 점차 악화일로를 걸어온지라, 캐스팅 보트로서의 지위 유지는 커녕, '최악의 사태[解黨]'조차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실상이 비록 '헌정회로의 흡수'나 다름없음에도 불구하고, 도코나미氏는 신당(新黨)내에서 일정한 지위를 얻는 대가로, 부득이 합당을 추진했던 것이다. 이렇듯 복잡한 사정을 지닌 정우본당과는 달리, 헌정회는 와카쓰키(若槻) 내각의 총사직으로 야당 신세를 감수한 지 얼마되지 않아, 중의원 제1당(헌정 ・정본 양당의 의석수를 합치면 2백석 이상을 상회)에 등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였다.

그런데, 결당(結黨)에 앞서 '당수(黨首)의 선정 문제'란 난제가 가로막혀 있었으니, 명색이 '대등한 입장에서의 합당'인 만큼, 기존 헌정회 총재 와카쓰키氏가 당수직에 취임할 경우, 정우본당계(系)의 반발이, 도코나미氏가 취임할 경우엔 헌정회계의 반발이 초래되리란 우려가 적지 않았었다. 다행히 노련한 재정통이자, 견실한 인품으로 명망이 높은 하마구치 오사치(濱口雄幸)氏가 당수로 추천되어 만장일치의 환호성과 세간의 호평이 쏟아졌고, 남은 것은 6월 1일자로 예정된 대망의 결당식(結黨式) 뿐이다.  

근년(近年)에 결실을 맺은 보선법(普選法) ・양대정당제의 실현이 '일본 정치의 혁신(革新)'을 증명했다는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편으로, 기성정당의 잦은 추문 ・도덕적 타락에 염증을 느껴 회의적인 여론이 증가한데다, 무산계급의 성장에 대비해 '단호한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정당정치에 불만을 품은 군부(軍部) ・우익 일각에서의 움직임도 있어, 향후 정국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육군 기밀비 사건 ・마쓰시마(松島) 사건 ・박열(朴烈) 괴사진 사건 ・천황폐하 붕어(崩御) ・3당수 회담 ・금융공황 ・다나카 내각 발족 ・민정당 결당에 이르기까지... 지난 1년여간 숨가쁘게 달려왔던 정계의 동향을 뒤로 하고, 쇼와(昭和)시대엔 '헌정상도론(憲政常道論)'에 입각, 국정의 원활한 운용을 기대한다. 
 

덧글

  • BigTrain 2011/09/20 22:02 # 답글

    우연의 일치인지 역사적 배경에서 따온 명칭인지 알 순 없으나, 헌정(憲政)이나 특히 정우(政友)같은 명칭을 보니 민주화 이전 이런저런 정치 이벤트나 정치단체들이 생각이 나네요.
  • 에드워디안 2011/09/20 22:20 #

    설마, 군사정권 위정자들이 전간기 일본의 정당정치에서 영감을 얻었을리가...^^;; (하기사, 모르는 일이죠)

    ps. '입헌민정당'이란 명칭에서 5공시절이 바로 연상되더군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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