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제국의 고민 국제, 시사




최근, 동남아시아에 밀어닥친 변화와 불안정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지적될 수 있다. 첫째는 통일 베트남의 군사적 위협이며, 둘째는 중소(中蘇)의 세력 각축인데, 주지하다시피 소련은 미군(美軍) 패퇴로 인한 '힘의 공백'을 이용해 '집단안보' 구상으로 세력 진출을 도모하였다. 이미 베트남과 라오스에 발판을 구축한데다, 극동함대의 남하(南下) 등, 태평양에서의 해군력을 착실히 증강하고 있다.

중공은 이러한 소련의 세력팽창을 우려, 더 이상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미군의 아시아 잔류 희망은 물론, 미국 ・일본 ・호주 ・중공으로 연결된 '4국동맹체' 결성을 프레이저 호주 수상에게 제의할 정도였으니, 동남아 지역을 둘러싼 공산 양대세력의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노이가 소련으로 기운 것은 당면한 전화(戰禍) 복구를 위해 물질적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심산이외에도, 중공과는 역사적으로 오해와 불신감이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라오스는 정치 ・경제적으로 하노이의 외교노선을 이탈할 수 없는 처지인 만큼, 친소(親蘇) 성향이 강하다. 그러나, 캄보디아만은 반(反)베트남 감정에 수뇌부가 마오이즘 노선을 추종하는지라, 북경(北京)의 입김이 강한 편이다.

한편, 공산권 3위의 군사대국으로 등장한 베트남은 인근 국가들의 입장에서 커다란 복병적 존재로서 향후, 동남아 정세의 기류는 통일 베트남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거의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가 공산게릴라와 그 사주를 받은 테러분자들의 활동에 골머리를 썩이는 실정이지만, 그 중에서도 게릴라 활동이 가장 격심한 곳은 역시 태국이다.

현재, 태국은 캄보디아와 무역재개에 합의한 상태이고, 말레이시아는 아세안 5개국 중 최초로 공산 베트남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인도네시아 ・싱가포르도 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등,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으나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다. 이같이, 대내외적으로 유동적인 정세속에서 각국이 스스로의 생존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대응책으로 시급한 것은 아세안 제국의 결속 강화다.

이에 따라, 아세안은 로물로 필리핀 외상의 아세안독트린 제창에 의해 외상회의에서 비동맹 ・중립화 원칙을 재확인, 선언했으나 강대국의 보장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동남아 제국이 미국의 후퇴속에 또 하나의 도미노패가 되지 않기 위해선, 강대국의 역내(域內) 간섭이 배제된 중립화가 유일한 대안일지도 모르나, 미소중(美蘇中)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중립 보장을 받아내기란 불가능하다. 더욱이, 베트남이 모든 미군 및 외국군 기지의 철수를 요구하는 만큼, 중립화 실현은 더욱 힘든 과제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동남아 각국은 저마다 국내 안정과 안보를 위한 대책 강구에 여념이 없다. 75년 이후, 중소(中蘇) 양국과 수교한 필리핀은 국내 미군기지의 협상 과정에서 모든 기지에서의 성조기 게양을 불허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고, 북경과의 약속에 따라 필리핀 거주 화교(華僑)가 결혼시에 중공 대사관의 허가를 받도록 명령하는 친(親)중공 시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한편으로, 남사(南沙) ・서사(西沙) 등 4개군도의 영유권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기 위해, 로물로 외상을 북경에 파견할 계획이다.

태국은 국내의 2개 미군기지를 접수함으로써 베트남측의 우호적 자세를 기대하고 있고, 싱가포르도 이광요(李光耀) 수상 본인이 북경을 방문, 대(對)중공 자세를 온건노선으로 선회시키는 등, 외교적 노력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설리번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가 강조한 바와 같이, 아세안 제국이 경제성장과 사회 안정을 통해 자활책(自活策)을 모색하는 것이 제일 현명한 방도라 하겠다.

동남아 정세의 변화가 우리에게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 추이에 깊은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으며, 하루속히 안정과 자유 ・평화의 정착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짤방은 1977년 8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개최된 아세안 정상회의의 풍경



덧글

  • 위장효과 2011/10/14 15:00 # 답글

    그런데 정작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로 진행되었으니...

    아무리 폭탄맞아도 논에는 벼가 자란다! 라지만 전후복구라는 문제 때문에 베트남이 라오스나 캄보디아까지는 건드릴 수 있어도 태국이나 바다건너 말레이지아등에 집적대기는 어려웠을 거라 보입니다.

    소련은 미국이 잘 만들어놓은 캄란만 해군 기지를 잘 이용해 먹었죠. 그러면서 태평양의 섬나라들하고도 우호조약이라든가 함대 기항지 사용 조약도 맺고 그랬는데 결과적으로는 안으로 곯아서 폭삭 망하고.

    최근 베트남 정부가 캄란만 기지를 미,러 양국에게 개방했다는군요. 베트남이 엉클 샘에 불곰 끌어들여서 판다네 막으려는 생각이니 참...세상은 요지경입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소련, 중국을 이용해서 미국 몰아내려고 노력했는데 이제는 미국,러시아 이용해서 중국막아야 하는 처지니)
  • StarSeeker 2011/10/14 15:30 #

    백두산의 호랑이보다도 당장 뒷산의 늑대가 더 무서운법이니까요...

    더 이상 삼국간의 대립도 없고,, 게다가 뒷산 늑대가 주제 모르고 깝치고 있으니 때려잡을 필요도 있어서 삼국간의 이해관계도 그런대로 맞아 떨어지고...
  • KittyHawk 2011/10/14 16:18 # 답글

    중국이 20~30년전 자기들이 벌벌 떨어야 했던 구조를 잘 상기하고 있다면 지금 보여주는 힘자랑은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을 만도 할 텐데 참 알다가도 모르는 세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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