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 총리 휘하에서 육군상과 외무상을 역임, 지난 56년 영불(英佛) 연합군의 수에즈 침공 당시 보수당 내각의 수상으로 재직하던 영국의 원로 정치가인 앤서니 이든경(卿)이 14일 오후, 잉글랜드 남부의 향리(鄕里) 알베드스턴에서 지병으로 별세(別世)했다. 향년 79세.
에이번 백작(伯爵)의 작위를 가진 이든경은 1957년초, 수에즈 침공 실패의 여파로 수상직을 사임한 이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으며, 최근 오랫 동안 앓아 온 간장병이 악화되어 지난 9일, 휴양 중이던 미국 플로리다에서 급거 귀국한 후 혼수상태를 헤매다가, 끝내 이날 별세한 것이다.
1897년 6월 12일, 대사(大使) 2명, 총독 1명, 경제학자 프레드릭 모턴 이든경 등 쟁쟁한 선조(先朝)를 자랑하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이튼학교와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앤서니 이든경은 1923년, 워위크 리밍턴 선거구에서 보수당 후보로 처음 하원의원에 선출되었다. 1934년, 국제연맹 문제 담당상을 거쳐 이듬해 38세의 젊은 나이로 외무대신에 취임했다가, 체임벌린 수상의 유화정책에 항의, 사임했다.
1940년 다시 외상으로 복귀, 45년까지 재직했으며, 애틀리 수상의 노동당 집권과 동시에 다시 야인(野人)으로 돌아갔다. 처칠을 따라 스탈린 ・루스벨트 등 거물급과의 회담에 참석했던 그는 1951년, 처칠이 재차 집권하자 세 번째로 외상에 임명되어 한국전쟁 ・인도지나 문제 등을 다루었다.
1956년 7월,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이든은 미소(美蘇) 양대 강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공모하여 군대를 파견, 운하 지대를 무력으로 점령하려다 국제사회의 격렬한 반발을 받아 결국 철군시키고 말았다. 중동전쟁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침공의 정당성을 강조했으나, 이미 국내 정계에서 그의 입지는 완전히 실추되었고, 건강도 악화되어 재임 21개월만에 사임하고 말았다.




덧글
(어린이용 전기에는 "평생 자신이 활동했던 하원에 남기 위해서"라고 써놨지만 사실 자기 아들 정계 보내기 위해서 그랬었던 거죠. DUKE Of LONDON 이라는 작위까지 다 준비해뒀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