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期) 취임을 맞이한 닉슨의 정치 노선... 국제, 시사




건국(建國) 2백주년을 향한 닉슨의 집념에는 그 자신의 정치 철학과 이데올로기가 집약되었다. 지난 4년간 베트남 문제를 놓고 끈질긴 씨름을 벌여온 정치 스타일과 국내외적으로 보여준 행태가 닉슨식 정치 이념의 전개 과정이었다면, 제2기 집권기는 그러한 자기 이념의 정리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침묵하는 다수를 위한 정치'란 슬로건을 앞세운 닉슨의 이념은 두 번째 임기를 맞아 성숙기를 거칠 것으로 기대되며, 그러한 기대는 집권 1기에 나타난 중소(中蘇)와의 현상 세력을 바탕으로 초강대국 우위 질서의 유지를 본질로 한 3극(極)체제의 모색이라던가, 대내(對內)적으론 보수 ・중산층을 토대로 삼은 경제정책 ・정치적 조작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닉슨 행정부 집권 2기 출범의 안팎을 살펴본다.

압도적 표차로 재선에 성공, 전대미문의 화려한 취임식을 앞두고 미국의 어떤 평론가는 닉슨을 다소 과장하여 드골에 비유하였다. 드골이 전후(戰後) 은퇴로부터 12년만에 알제리 전쟁의 여파를 기회로 정치적 개선을 했듯이, 닉슨은 62년의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패배한 직후 참담한 은퇴 성명을 발표했으나, 6년만에 재기하여 백악관에 입성(入城), 이제는 '재선 대통령'이란 영예의 타이틀마저 얻었다.

드골이 엘리제 궁전의 숲속에 파묻혀 군주적 ・카리스마적인 정치를 시도했다면, 닉슨은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 틀어박혀 주요 정책을 구상하는 경우가 많다. 기자회견을 기피한 드골과 마찬가지로, 닉슨도 기자들을 싫어하여 '장막(帳幕)속의 비밀정치'로 이름이 높다. 드골이 잦은 순방과 독자외교를 통해 여론의 지지를 이끌었듯이, 닉슨도 파격적인 외교 행보를 통해 국내의 정치기반을 구축해가고 있다.

또다른 칼럼니스트는 'B-52 중폭기가 하노이 상공을 뒤덮어 히로시마 원폭의 10배 규모로 융단 세례를 퍼붓는 순간에도 미국인들의 화제는 풋볼 경기였으며, 그 와중에 닉슨과 키신저는 매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미국의 철학과 도덕을 어떻게 정립해야 할 것인가'라며 풍자, '당선 소감을 통해 새로운 다수의 정치를 약속했지만, 새로운 다수를 이끄는 수법은 본래의 Old Nixon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협상으로 상징된 외교 운영과 최근 불거진 '워터게이트'로 대표되는 정당정치, 그리고 '백악관 동창생'으로 집중화된 신(新) 내각 개편이 Old Nixon으로의 복귀를 이미 실감있게 제시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볼 때, 닉슨의 우경화는 현재 미국이 요구하는 시대 정신의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노이와의 의견 차이를 '언어상 표현의 난점'이라고 지적한 키신저의 파리회담 고충은 동맹국의 공개적인 도전을 피하면서 지난날의 교전(交戰)세력과 어떻게 악수를 나누고, 이익을 확보하는가 하는 닉슨의 고민을 반증한다. 냉전시대의 리더로서 확보된 기준의 원칙과 데탕트 시대에 당면한 미국의 현실이 맞부딪치는 분수령에서 닉슨이 향후 4년을 구상하는 그래프는 대체로 두 가지의 특징을 띌 것이다.

우선, 국제적으로 전후(戰後) 분쟁의 개입을 통해 이룩된 미국의 영향력과 이익 확보를 '분쟁으로부터의 탈피'를 통해 유지할 듯 하다. 미국은 6대륙에 걸친 중소(中小)지역 분산의 전면 개입으로부터 대국(大國)을 상대로 한 중점주의로 전향하는 시기에 이미 들어섰다. 아시아 문제에 있어서 중공과의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일본과의 새로운 협력 패턴을 정립함으로써 태평양 세력으로서의 명예를 지키려 한다. 또한, 서유럽을 하나의 단위로 상대함으로써 마셜 플랜 이후의 대서양 이익선을 사수할 의향이다.

이러한 전략은 전후 협상의 고착이라기 보단, 현상 유지에 미국의 새로운 국제보호주의가 더해진 닉슨 특유의 방정식을 성립시키려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닉슨의 중소국(中小國) 분쟁 처리 방향은 신경질적인 면을, 강대국 관계의 처리는 합리주의적 ・공리적 측면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짙어져가고 있다. 국제 외교의 개선을 통해 국내적으로 60년대 이후 고질적인 사회 불안과 모순을 해결, 중산층 위주의 정치기반 강화를 노린다는 것이 닉슨의 계산이다. 또한, 의회와의 마찰을 고려, 행정부의 체제를 강화시켰다.

'행정부 운영의 혁명'이라고도 불리는 이번 개편은 거대한 연방 관리체제에 대한 효율적인 통제와 정책 지시를 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닉슨은 1기 집권 동안 백악관에서 자신을 보좌해왔던 측근 인사들을 대폭 기용했다. 2기 닉슨체제는 내각과 보좌관 시스템으로 나누어지는데, 내각에선 국무장관 로저스, 재무장관 슐츠, 농무장관 부츠, 법무장관 클라인딘스크, 내무장관 모턴 등 4명이 유임되었다.

이어서 후생복지 ・교육장관이었던 리처드슨이 국방장관으로, 예산국장이었던 와인버거가 후생복지 ・교육장관에, 상무차관이었던 제임스 린이 주택도시개발 장관에 임명되는 등 3명이 전임되었고, 상무장관엔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방직공장주인 프레드릭 덴트가, 노동장관엔 전(前) AFL-CIO의 리더 피터 브레넌이, 교통장관엔 캘리포니아 석유회사 사장 클라우드 브라잉거가 임명되어, 3명이 새로이 입각했다.

특히, 리처드슨 신임 국방장관은 백악관에서 닉슨을 보좌했다가 국무차관에 임명, 후생복지 ・교육장관으로 승진한 데 이어 다시 국방장관의 요직을 맡게 되었는데, 전임 레어드가 처리하지 못했던 펜타곤 내부의 군부와 민간 관료간의 마찰을 어떻게 해소시켜 나갈지가 주목된다. 또한, 슐츠 재무장관에겐 경제문제 담당보좌관의 직위까지 주어져 심각한 양상에 이른 무역 불균형 시정을 촉구하였다.

그런데, 닉슨의 1기 집권 당시에 코널리 재무장관이 유일한 민주당원 각료였듯이, 노동장관 피터 브레넌은 현(現) 내각에서 유일한 민주당적(籍)을 가진 멤버이기도 하다. 한편, 보좌관 시스템을 살펴보면 수석보좌관 할더먼, 대내(對內)문제 담당보좌관 에릭먼, 대외(對外)문제 담당보좌관 키신저가 모두 유임되었고, 슐츠 재무장관이 경제문제 담당보좌관을 겸임한 것 외에 텍사스 출신의 여성 앤 암스트롱이 대통령상담역이란 타이틀로 보좌관팀에 추가되었다. 예산국장엔 기업인 출신의 로이 애쉬를 기용했다.

닉슨이 보좌관 체제를 존속시킨 것은 막후(幕後)정치가 대부분의 문제를 결정하는 국제정치 구조에 적응키 위한 것으로 판단되며, 보다 자유로운 입장에서 제반정책을 계속 입안, 수행해 나가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듯하다. 닉슨이 정책을 수행해가는 팀워크 중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각료도 아니고, 보좌관도 아니면서 정책 수행 과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2명의 인사를 들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은 법무장관과 공화당 선거 사무장직을 역임하다, 부인의 압력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존 미첼이고, 다른 한 사람은 민주당원이면서 1기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 닉슨의 재선을 위해 민주당내에 닉슨 지지파를 심어 놓았던 존 코널리다. 어찌되었든, 닉슨은 행정부 체제의 강화를 도모하면서 2차대전 이래 가장 미묘한 정세에 직면하게 될 미국의 대내외 입장을 감안한 정치적 처방을 내린 셈이다.



덧글

  • 행인1 2012/01/22 23:36 # 답글

    당시의 미국 대선은 오늘날의 제3자가 보아도 좀 어처구니가 없었지요.(맥거번이 당내 보스들을 적으로 돌리는 통에 '닉슨 지지 민주당 위원회'라는 조직이 공공연히 생길 지경. 그런데 그 와중에 도청을 왜 시켰는지...)
  • 에드워디안 2012/01/23 21:15 #

    괜스레 긁어 부스럼을 자초한 병크인데다, 불운에 불운이 겹쳐 벼랑끝으로 내몰린 격이지요...;; 항시 동부 엘리트-언론과 마찰을 빚던 냉소적이고, 의심 많은 성정도 부분적으로나마 일조했다면 일조한 셈이구요.
  • daffy12 2012/01/24 00:02 # 삭제 답글

    닉슨 옆에서 쪼개는 애그뉴 부통령도 메릴렌드 주지사까지 지낸 사람이 뇌물먹어서 그만.....
  • 에드워디안 2012/01/24 02:05 #

    주군이 하필 닉슨이었다는 것이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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