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BJ... 잡소리




5백만$가 넘게 경비가 소요되었으리란 사상 최대의 초호화판 대통령 취임식으로 워싱턴이 떠들석했을 무렵, 텍사스의 목장에서 칩거하던 린든 존슨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파리회담에서 베트남 평화협정이 마무리되어 곧바로 조인되리란 소식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1973년 1월 22일, 미합중국 제36대 대통령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64년의 생애(生涯)를 마쳤다.

LBJ를 가리켜 흔히 '비극적 대통령'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의 비극은 이미 에어포스 원에서의 취임식 당시부터 시작된 셈이다. 전임자의 피살이란 비극 속에서 '비극적 대통령'이 탄생했다. 하필이면 어째서 암살 사건이 댈러스에서 발생하였고, 하필이면 JFK의 텍사스 방문에 동행했던가. 민주당 텍사스 지부의 내분을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케네디는 존슨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던 상황이었다.

미국은 유언비어의 도가니 속에 빠져들었다. '오늘, 이자리에 서있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하겠습니다.'라고 대통령으로서 처음 의회 연설을 가졌을 당시 이렇게 말했다. '부적합한 상황에서 부적합한 시기에 부적합한 지방에서 나온 부적합한 인물이었으며, 대통령으로서는 비상(非常)했던 비극적 인물'이라 LBJ를 평한 것은 프린스턴 대학의 에릭 골드먼 교수였다.

주인을 잃은 케네디 왕조(王朝)였지만, 후임자를 달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특히나, RFK는 생리적으로 존슨과 맞지 않았다. 60년 대선의 후보 지명전에서 LBJ를 격파하는데 정력을 다했으며, 그가 러닝메이트로 지명되는 것을 철저히 반대했다. 8년 후, RFK가 경선에 출마한 것이 LBJ로 하여금 재선 도전을 단념케 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고, 그 로버트가 암살당했으니, 사람 팔자란 알 수가 없다.

대통령으로서 LBJ의 최고 순간은 역시 64년도 대선에서 압승했을 때였을까? 경우에 따라선 글래스버러에서 코시긴과 만났을 당시를 꼽기도 한다. 베트남 전쟁은 그에게 비극이자 불운이었지만, JFK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닉슨은 그보다 더욱 심한 북폭(北爆)마저 감행하지 않았던가.



덧글

  • 행인1 2012/01/22 23:33 # 답글

    닉슨의 취임식이 그렇게나 호화판이었다니...(불과 2년도 못가서 어떻게 될지는 상상도 못했을듯)
  • 에드워디안 2012/01/23 21:27 #

    '건국 2백주년기 대통령'의 꿈은 물거품으로...oTL
  • 누군가의친구 2012/01/23 00:37 # 답글

    베트남만 아니였으면 그렇게나 꼬이지는 않았을텐데라고 번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닉슨은...(...)
  • 에드워디안 2012/01/23 21:28 #

    적어도, 국내 정책에선 FDR 이래 가장 열성적으로 매달리며 성과를 이룩한 대통령이었지요. 하지만...;;
  • KittyHawk 2012/01/23 00:44 # 답글

    그 시절의 미국에서 벌어진 일들은 21세기인 지금에도 여러 이야기거리를 제공해주는 듯 합니다.
  • 에드워디안 2012/01/23 21:28 #

    과거의 교훈을 망각한 채, 뻘짓 크리를 이어나가는 작자들을 보면 한숨만 나옵디다.
  • 아무것도없어서죄송 2012/01/23 05:50 # 답글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도 있었군요.
  • 에드워디안 2012/01/23 21:29 #

    당장, 우리 주변에도 심장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걸요.^^;
  • tex2100 2012/01/23 20:40 # 답글

    사실 베트남 전쟁이야 말로 소련과 중국의 개입만 없었으면 이길 수 있었을 겁니다. 특히 구정 공새 당시 북베트남의 사회 기반시설을 모두 파괴한 거 보면 그렇지요. 그런데 슬슬 정치적 논리가 개입하고 반전여론이 불자 (그 히피라는 종자들은 한 때 우드스탁 콘서트에서 신나게 평화 운운 하다가 근본주의 개신교로 갔죠.) 버틸 수 없는 겁니다.
  • 공손연 2012/02/01 22:35 # 삭제

    그말의 틀린게 아니긴 한데 따지자면 북한의 남한침공도 미국의 개입만 없었어도 이겼겠지요.

    결국 문제는 중국과 소련의 개입이 있었어도 미국이 개념이 충실했다면 그래도 이길수 있었다는게 문제겠죠.북한도 미국의 개입이 있더라도 그들이 생각한만큼 남한의 국민들이 그들을 지지했다면 미국이 개입해도 이기는게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 BigTrain 2012/01/24 08:38 # 답글

    이 사람이 진짜 미국 국내 사정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지금 미국은 많이 다른 나라가 됐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 70년대의 우울과 80년대의 반동은 없었겠지요.
  • 에드워디안 2012/01/27 10:15 #

    위대한 사회가 안정 궤도에 올랐더라면 심지어 '서유럽식 복지국가'에 근접해졌으리란 추측도 있던데, 그 정도는 다소 과장인 듯 하구요...;; 상당히 유동적인 경제 동향을 딱히 가늠할 순 없지만(다만,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를 초래한 재정 악화는 베트남 전비, 사회개혁 프로젝트, 우주 개발과 더불어 씀씀이가 헤펐던 LBJ의 각종 다양한 지출로부터 일부 요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네오콘 세력의 발흥이야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여하튼, 이후의 미국이 걸어 온 행보를 돌이켜 볼 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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