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城線... 잡소리


철도청은 오는 4월 1일부터 천안~안성간의 여객열차 운행을 중단하고, 화물열차만 운행키로 했다. 철도청에 따르면 안성선 여객열차 운행 중지는 올해 1월부터 3월까지의 여객 이용률이 1일 2왕복 운행에 평균 92명으로 극히 저조하고, 84년도엔 월 2400만원씩 총 2억 8천만원의 적자를 기록하였으며, 계속 운행시엔 선로 개량비만 10억원이나 소요되어 비경제적이기 때문에 취해진 것이다.


만남, 이별, 그리고 향수의 설레임이 얽힌 곳, 역(驛). 경인선 철도가 최초로 개통되어 화륜차가 개화바람을 싣고 달린 지 올해로 벌써 86년. 끊겨진 경의선을 다시 연결하자는 남북경제회담 제의가 나오기까지, 숱한 발길들이 오가는 동안 역마다엔 온갖 드라마가 연출되었고,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국토 분단의 비극마저 응어리져야 했던 곳. ...눈이오나 비가오나 고장의 얼굴처럼 버티고서는 기차역엔 서민의 애환과 사연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그 역들을 따라 철길에 얼룩진 사연들을 더듬어 본다.

(중략)

'세상이 참 무던히도 변했습니다. 정거장은 역으로, 기차는 열차로 호칭부터 달라졌지요. 주막이 즐비하던 장터엔 스탠드 바가 생겼고, 군내(郡內)에 다방만도 80군데랍니다...' 25세부터 55세로 정년 퇴직하기까지 30년간 줄곧 천안~안성간 열차에서 기관사로 근무했던 김수억(金壽億)씨는 안성선 철도의 산 증인이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누가 세상이 변치 않았다고 우기겠는가.

그러나, 썰렁한 눈밭에 마치 절간처럼 우두커니 선 안성역. 대합실관과 사무실 등을 모두 합쳐 건평 26평의 조그마한 목조 기와집인 이 건물만은 옛 모습을 조금도 잃지 않았다. '충남 천안에서 안성간 28.4km의 안성선 철도가 1925년 11월 1일자로 개통되었고, 안성역사(驛舍)는 그해 12월 15일에 준공되었다고 해요. 올해로 꼭 환갑이지요. 하지만, 이제는 잊혀져가는 정거장 아닙니까...'

안성역장 이천영(李千永)씨의 심드렁한 설명이 아니더라도, 환갑을 맞은 안성역은 잔칫집 기분보다는 초상집 분위기가 오히려 제격이다. 적자노선인 안성선이 곧 폐쇄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스피커 안내방송도 들을 수 없으며, 그 흔하디 흔한 역 주변의 다방이나 여관도 눈에 띄지 않는다. 요즘 같아선 도무지 역으로 부르기조차 민망스런 안성역이다.

아침과 저녁으로 비둘기호 열차가 천안 사이를 두 차례 왕복할 뿐이며, 하루 승객은 고작해야 10여명 뿐. 객차 2량이 연결된 완행열차에서 타고 내리는 승객이 10여명에 불과한 것이다. 역장을 포함한 4명의 역무원이 근무하는 이 역의 하루 차표 판매액수도 기껏 2천원 꼴이다. 직원들에겐 역에서 근무한다기보단, 역을 지킨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물론, 애초부터 안성역이 노상 한적한 곳은 아니었다.

안성이 어디였던가? 사통팔달한 지리적 여건에 농산물의 집산지가 이곳이었다. 충청 ・전라 ・경상도의 산물이 이 고장을 거쳐 서울이나 강원, 혹은 함경도로 오간 삼남지방 교통의 요지였고, 한때는 전국 3대시장으로까지 거들먹거리던 고장이었다. '안성맞춤'이란 속담도 만들어 낸 유기장, 규모가 큰 싸전과 쇠전, 과일전 등으로 개화기 이전에 이미 안성은 굴지의 상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처럼 군침도는 시장과 곡창에 주목한 일본은 서둘러 사철(私鐵)을 개통시켰다. 삼남의 요지에 철길이 트이자, 2일장 ・7일장 등 안성장날엔 수많은 장꾼들이 역을 거쳐 쏟아져 들어오고 나갔다. 그런데, 이미 개통된 경부선 철도는 고래의 안성시장을 뿌리째 흔들었다. 각지의 화물이 안성을 거치지 않은 채 직접 기차로 수송된 것이다. ...고속도로의 개통은 안성 상권에 결정적 타격을 안겨주었다.

그 중에서도 치명타를 맞은 것이 바로 철도다. 비포장 도로를 4시간이나 달려 겨우 서울에 닿던 버스길이 1시간대로 단축되었건만, 기차는 여전히 2시간 40분을 소요하는 엄청난 격차가 생긴 것이다. 하루 23회꼴로 운행되는 시내버스를 두고, 기차를 이용하는 통학생은 아무도 없다.

* 1985년 1월 5일자 경향신문 기사



덧글

  • tex2100 2012/03/31 19:42 # 답글

    경부고속도로 같은 고속도로의 건설은 꼭 필요했습니다만은, 철도가 자동차 시대에 재대로 대응하지 못 한 거 같습니다. 특히 한국의 근대화로 인한 중산층 형성은 본격적으로 80년대였는데, 고속도로가 정비되어 마이카 시대가 열렸습니다..
  • Kael 2012/03/31 20:04 # 답글

    안성선은 안성 사람들이 삼성그룹이 에버랜드 짓는 걸 반대하지만 않았더라도 (처음 에버랜드 부지는 안성선 역세권) 지금 잘 굴러가다못해 터져나가면서 천안분기가 아닌 수원분기가 되었을텐데 아쉽죠.
  • 에드워디안 2012/03/31 22:56 #

    안성선-수려선간 연결 계획이 무산되고, 공출 크리를 맞은 것이 직격탄의 신호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 Hyth 2012/03/31 20:44 # 답글

    경부-안성선 분기고가가 몇 년 전(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서)만 해도 남아있던거 같은데 지금은 모르겠군요..
  • 에드워디안 2012/03/31 22:56 #

    안성선도 수인선처럼 경부선을 고가로 지나가는 형태였나요?
  • Hyth 2012/04/01 00:42 #

    두정-천안 사이에 고가 분기선이 있긴 있었습니다. 사진 찍어놓은게 없지만요-_-;;;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