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상호기여시대


근대사(近代史)에서의 한일(韓日) 외교관계를 살펴보건대, 공식수교는 1876년의 병자(丙子)조약에서 시작되었다고 하겠다. 일본이 이미 조선을 병탄할 저의를 갖고 있었다고 우리네 사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그 저의의 여하는 차치하고서라도, 일본의 표면적 주장만 들어보면 조선이 노청(露淸)의 영향을 받지않는 '완전독립국가'가 되는 것도 그들의 안전을 위해 매우 긴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작년 11월, 사토(佐藤) 수상의 '한국의 안전은 일본 자체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절대 긴요하다'란 발언은 바로 1백년을 통해 지정학적으로 본 '일본을 위한 한국의 중요성'을 되풀이해서 설명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1905년, 일로(日露)전쟁에서 승전한 일본은 을사보호조약으로서 마침내 한국을 실질적으로 병탄하였고, 해방까지 40년간 한반도는 일본 대륙전략의 긴요한 발판이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한일 양국관계의 1백년은 '일본에 대한 한국의 일방적 기여'라고 단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한일관계 1백년을 돌이켜보면서 우리가 다짐할 것은 일본에 대한 원망도 원망이겠거니와, 그에 앞서 우리 스스로의 잘못도 반성해야 한다는 점이며, 1870년대 개국(開國)수교의 중요시대에 근대화 과업을 외면한 우리 조상들과 왕조(王朝, 李朝)에 대해 원망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이제, 우리는 조상들이 범한 우(愚)를 어느 형태로든지, 혹은 어느 의미로서든지 우리가 다시 되풀이해선 안된다는 결의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결의와 자세로부터 나는 1970년대 요청된 한일관계란... '일방적 기여'가 아닌 '쌍방을 위한 상호기여' 관계를 수립하며... 양국이 각자의 사명을 인식하고, 능동적으로 그 사명을 수행해나가는 자발적 노력에서부터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전후(戰後) 미국의 핵(核)우산 밑에서 한국의 대공방책 덕분에... 방위 부담도 없이 또한, 일본 국민들의 근면성과 노력으로 인류사상 북미대륙의 기적에 다음가는 위대한 번영을 성취했다. 우리는 일본이 구가하는 번영을 시기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축하하고, 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배후에 '번영된 자유국가'가 존재하는 것이 반공(反共)한국을 위해서라도 매우 긴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번영을 이룩한 일본은 작년 11월, 닉슨-사토 정상회담에서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일층 적극적인 공헌을 하고, 한국의 안전은 일본 자신의 안전을 위해 긴요하며, 대(對)아시아 원조계획을 확대 ・증강할 의도이고, 무역 자유화를 촉진할 뜻을 밝혔다. 이는 1970년대 일본의 아시아 정책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나는 이것을 확실히 신뢰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일본의 아시아 정책에서 우선 한일관계를 생각해 보면,

*일본은 한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어떠한 적극적인 공헌을 할 것이며,

*한국의 안전을 위해 기여를 할 것,

*대(對)아시아 원조계획을 확충한다인 이상,


앞서 말한바와 같이 일본이 스스로 공언한 사명을 인식하여 능동적으로 행동할 것이지, 한국은 일본에 대해  무엇을 해달라는 요구를 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럴 생각도 없다. 한일간 무역 역조의 심각성은 비단 양국간 문제일 뿐만 아니라, 관심있는 우방의 주시대상이며, 많은 동정이 우리에게 쏠리고 있다. 따라서, 일본도 이의 시정 ・개선을 위한 자체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불가피할 것이라 믿는다.

연간 2백억$의 수출시장을 확보한 일본으로선 이제 그 생산수단에서 한계가 있을 것이며, 모든 품목의 물품을 국내에서만 생산하여 파는 것보단, 이웃인 한국과 나누어 보다 많이 생산해서 팔아보자는 생각이 없을리가 만무하고, 여기에 무엇을 일본에서 만들고, 무엇을 한국에서 만들어 세계시장에 내보낼까 하는 공동작전이 지혜로운 한일 양국민간에 공통된 심정이라는 것이 나의 전망이다.

(중략)

따라서, 결론적으로 1970년대에 요청되는 한일관계란 '쌍방을 위한 상호기여'임을 다시 집약해서 말하는 바이다. 비단, 특정 부문에서만이 아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일본을 위해 한국의 무엇이 긴요한가를 양국이 서로 많은 분야에서 찾아내고, 상대방이 요구하기 이전에 (각자)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기여하는 노력이 1970년대 한일관계임을 나는 말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에게 더욱 귀중히 필요한 것은 남의 동정이나 선심이 아닌,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얻는 '정당한 대가'이며, 그의 축적인 것이다. 이것이 자랑스러운 대외정책의 근간임을 강조한다.

-1970년 2월 5일, 일본 부임에 앞선 기자협회 연설에서
                                         이후락(李厚洛)



덧글

  • 누군가의친구 2012/06/01 08:38 # 답글

    그러고보니 그때쯤이면 이후락이 중앙정보부 부장에 임명되면서 승승장구하며 권력의 절정기때쯤이였을텐데요. 그리고 3년후에는...(...)
  • 행인1 2012/06/01 09:35 # 답글

    당대 집권층의 관심사(?)를 요약해놓은듯 하군요. 상호기여보다는 '밀월'이 더 정확할지도...
  • jaggernaut 2012/06/01 10:55 # 답글

    순망치한 오월동주의 뜻을 담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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