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달에 가신 옆나라 총리 국제, 시사


지난 5월 19일, 동경시내 요정(料亭) 신기라쿠(新喜樂)에서 열린 모임에 참석하던 도중 뇌일혈로 쓰러진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前) 일본 총리가 혼수상태 보름째만인 6월 3일 오전 0시 55분, 지케이(慈惠) 의과대학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74세. 사토 전 총리는 재임기간 한일(韓日) 국교 정상화와 대학분규 수습, 오키나와(沖繩) 반환 등의 실적을 남겼으며, 비핵(非核) 3원칙의 공로가 참작되어 74년도 노벨평화상을 수상받았으나, 사전 배후로비설과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노벨평화상 수상(受賞) 소식을 듣고 미소짓는 사토, 1974년 10월 



닉슨과 사토 공동성명, 그것은 오키나와 반환을 위한 주춧돌이었다. '오키나와의 반환없이 전후(戰後)는 끝나지 않는다'는 공언대로 반환은 성사된다. 일본의 전후는 일단 마무리지어진 셈이다. 재임 7년 8개월, 보수기질이 숱한 일화들을 남겼지만, 숱한 업적들도 남겼다. 비핵 3원칙의 명분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자격이 없다는 식의 논란이 뒤따랐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태도와 신중함, 관료 스타일로 오랜 집권기간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인기는 거의 바닥을 기었다. 퇴임식날 'TV 카메라는 어디있나? 편파적 신문은 질색이다'라며 기자회견을 박차고 뛰쳐나가는 모습을 남긴 것도 그였다. 'One Man 재상' 요시다(吉田) 문하 우등생이었던 그의 죽음을 두고 '보수본류의 종막(從幕)'이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모양이다.

'1만 있지, 2,3은 없다'고 스스로가 생전에 토로했듯이, 파벌간 다툼 ・후계자난(難)으로 자민당내 내홍이 가시화된 기미가 역력하다. 다나카(田中) 파벌의 도각(倒閣)선언설마저 나도는 현재, 사토의 업적을 딛고 나아갈 '박력의 인재'가 아쉬운 것만은 사실인 듯 하다. 장례식 예우문제를 놓고, 당내(黨內) 불협화음이 쏟아져나왔다는데, 53년만의 국민장(國民葬)으로 '낙착'을 보기에 이르렀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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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최악의 부적격자 3인을 꼽자면, 단연 키신저와 사토, 슨상님.



                                           1979년 1월, 중의원에서 시정방침을 연설하는 오히라 총리
                                           의장석에 앉은 호리 시게루(保利茂)가 경청중이다



과로에 따른 협심증으로 지난 5월 말부터 입원중이던 오히라(大平) 일본 총리가 6월 12일 새벽 5시 54분, 동경시내 도라노몬(虎門) 병원에서 급성 심부전증으로 별세했다. 향년 70세. 오히라 총리의 서거에 따라 일본정부는 관방장관을 임시대리로 지정했으며, 내각은 오후 5시경 임시각의를 열고 총사직, 총선 후에 신(新)내각의 발족시까지 '직무내각'으로 남아 잔무를 처리하게 된다.

지난 5월 16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야당측이 제출한 내각불신임안이 자민당내 비(非)주류파의 반란으로 가결되자 의회를 해산, 오는 22일자로 중참(衆參) 양원(兩院) 동시선거를 발표했었는데, 병세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중진들에 의한 세대교체론이 강력히 대두됐다. 일본의 현역 총리가 사망한 것은 48년전, 이누카이 쓰요시(犬養毅) 총리가 군(軍) 장교들에게 암살당한 이래 처음있는 일이다.

서거한 오히라 총리는 시코쿠(四國) 태생의 대장성 관료출신으로 대장상 ・외상 ・통산상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고, 1962년 당시 유명한 '김(金)-오히라 메모'로 난항을 거듭하던 한국의 대일(對日)청구권 협상을 매듭지어, 한일 국교정상화 실현에 주역을 담당하였다. 또한, 1972년엔 다나카(田中) 내각에서 외상으로 재직, 대중공(對中共) 국교정상화를 적극 주도 ・성사시킨 외교통이기도 했다.

77년도 참의원 선거시엔 자민당 간사장으로서 진두지휘, 예상밖의 승리를 거두어 보수회귀 현상에 일조, 78년 연말의 총재경선에서 승리해 수상직에 취임하였다. 전원도시(田園都市) 구상을 골자로 한 '일본형 복지사회' 건설을 국정슬로건으로 내세웠으나, 총재경선 과정에서 빚어진 비주류파와의 갈등, 그 여파로 내각불신임안이 통과되는 사태가 발생하였으며, 충격과 과로마저 겹쳐  운명한 것이다.

 


덧글

  • kuks 2012/06/15 22:35 # 답글

    나름 업적과 성격을 보면 죽을 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 에드워디안 2012/06/16 12:38 #

    말년을 영예속에서 보낸 사토씨야 여한은 없었겠죠. 다만, 오히라는 임종 직전까지 '미키와 후쿠다는 어째서 그토록 나를 증오하는 건가?'란 탄식을 내뱉을 정도로 파벌항쟁의 대가를 톡톡히 치룬 채 가버렸으니...;;
  • 담배피는남자 2012/06/16 06:11 # 답글

    정치가들이 장수하는 비결 중에 하나가...
    권력욕이라고도 하죠.

    별 능력이 없는 인물조차
    "언젠간 내 차례 오겠지."하며 징하게 오래살죠...ㅋ
  • 에드워디안 2012/06/16 12:48 #

    권력을 전단하고, 장기집권한 독재자일수록 회춘에 집착하고, 명이 질기죠.

    막판에 가서 쿠데타만 일어나지 않는다면야...ㅋ

    ps. 뭐, 그래도 위에서 소개한 두 사람이야 나름 실력을 갖춘 인재들이었지만요.
  • jaggernaut 2012/06/19 15:06 # 답글

    전 그 부적격자 목록에 카터랑 아라파트도 집어넣곤 합니다.
  • 에드워디안 2012/06/20 20:33 #

    땅콩장수 할배와 테러분자는 둘째치고,

    콧수염 총통과 강철 대원수, 카스트로조차 후보감으로 거명되었단 사실만으로도 '평화상'의 의의는...oTL
  • tex2100 2012/06/24 02:01 #

    에드워디안/스탈린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은, 카스트로도 스탈린에 비해 약하지만 못지 않았지요. 그는 혁명 직후 체 게바라와 함께 동생애자 수감, 종교의 자유 억압, 언론인 탄압, 굴락 건설 등 수 많은 학살을 지휘했습니다. 그러나 좌빨들은 이 사실을 애써 부정합니다. 당장 드러난 문건만 해도 나와 있는데..
  • tex2100 2012/06/24 01:59 # 답글

    키신져는 칠레 피노체트 정권, 동티모르, 키프로스, 그리스만 봐도 충분히 반환 감입니다. 그러나 키신져는 들통나니깐 엉뚱한 소리를 내 뱉더라고요.

    아라파트도 '팔레스타인의 독립과 해방' 운운 하면서, 사망 후에 남겨놓은 거라고는 부패한 팔레스타인 정부와 하마스-파타 간의 내전이 전부입니다. 이스라엘과 성전 운운하는 중동 친구들은 이 사실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습니다만은, 가끔 알 자지라에서 '팔레스타인 페이퍼' 라고 보도됩니다. 중동 친구들은 보도 되기만 하면,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성전을 벌여야지, 그깟 팔레스타인이 부패한게 대수냐?" 라고 하더라고요.
  • KittyHawk 2012/07/02 17:13 #

    이스라엘을 상대로 싸운 전적이 있는 중동 아랍 국가들이 하나 둘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사실상 그냥 손을 뗀 게 아니죠. 이란의 샤도 이스라엘을 그냥 편들었던 게 아니었고요. 한 마디로 현재 이란 시아파 지도자들이 너무 머리가 안 돌아가는데다 무능한 거라고 밖엔...
  • tex2100 2012/07/02 20:35 #

    키티호크/이스라엘 진짜로 멸망해서 "이스라엘 내 무슬림과 드루즈"가 어떻게 될 건지는 상상이 안 갈 겁니다. 보나마나 "배신자 처벌" 운운 하면서 인민재판이 이스라엘 내에서 벌어지는 훈훈한 광경이 발생 할 겁니다. 아랍 동맹국과 서구권 좌파들은 수수 방관 할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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