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진(秦)의 6국겸병전쟁 연표 (1) 세계사


효공 원년(BC 361) : 위(魏)나라의 섬성(陝城, 하남성 섬현)을 침공하고, 서방의 융족(戎族, 지금의 감숙성 일대에 거주하던 이민족)을 정벌하여 그 왕을 죽였다.

효공 3년(BC 359) : 위앙(衛鞅, 商鞅)의 1차변법 시행.

위앙은 좌서장(左庶長 : 진나라 제10등급의 작위)에 임명되었다.

효공 4년(BC 358) : 웅이산(熊耳山, 하남성 웅이현)에서 한(韓)나라와 교전해 승리하였다.

효공 8년(BC 354) : 원리(元里, 섬서성 등성현 남쪽)에서 위나라와 싸워 위군(魏軍) 7천명의 목을 베었다.

효공 10년(BC 352) : 위앙이 대량조(大良造, 진나라 제16등급 작위)에 임명되어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의 수도 안읍(安邑, 산서성 하현)을 포위, 항복시켰다.

위나라가 대량(大梁, 하남성 개봉)으로 천도하였다.

효공 11년(BC 351) : 위앙이 위나라를 공격하여 고양(固陽, 섬서성 연안현 동쪽)을 함락시켰다.

효공 12년(BC 350) : 위앙의 2차변법 시행.

이 해에 진나라는 함양(咸陽)으로 천도하였으며, 그 영역은 동쪽으로 낙수(洛水)를 넘어섰다.

효공 19년(BC 343) : 주(周) 왕실이 진효공(秦孝公)에게 '패자(覇者)' 칭호를 하사함.

효공 22년(BC 340) : 위앙이 위나라를 공격하여 위장(魏將) 공손연(公孫衍)을 포로로 잡았다.

효공은 위앙을 열후(列侯)에 봉하고 상군(商君)이라 호칭, 상앙(商鞅)으로 불리게 된다.

효공 24년(BC 338) : 위나라를 공격하여 안문(岸門, 산서성 하진현)에서 위군을 격파하고, 위착(魏錯)을 포로로 잡았다. 이 해에 효공이 죽고, 태자 혜문군(惠文君)이 즉위하여  상앙을 숙청했으나, 상앙변법의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어 진나라 부국강병의 초석을 다지게 된다.

혜문군 3년(BC 335) : 한나라의 의양(宜陽, 하남성 의양현 서쪽)을 공격하였다.

혜문군 6년(BC 332) : 위나라가 음진(陰晉, 섬서성 화음현 동쪽)을 진나라에 할양하자, 이를 영진(寧秦)으로 개명하였다.
 
혜문군 7년(BC 331) : 위나라와 교전하여 위장(魏將) 용고(龍賈)를 포로로 잡고, 8만명의 목을 베었다.

혜문군 8년(BC 330) : 위나라가 하서(河西)지방을 모두 진나라에 할양하였다.

혜문군 9년(BC 329) : 진군(秦軍)이 황하를 건너 위나라를 공격, 분음(汾陰, 산서성 만영현 서쪽)과 피지(皮氏, 산서성 하진현 동남쪽)를 빼앗고, 초(焦)와 곡옥(曲沃, 하남성 섬현 서남쪽)을 포위하여 항복시켰다.

혜문군 10년(BC 328) : 장의(張儀)가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6국에 대해 연횡책(連衡策)을 시도한다. 

위나라가 15개 현(縣)을 진나라에 할양하였다.

혜문군 11년(BC 327) : 진나라가 위나라에 초와 곡옥을 반환하였다. 의거(義渠, 경수 상류에 거주한 융족)왕이 신하를 자청하며 항복해 오자, 진나라는 의거에 현을 설치하였다. 

제(齊)나라와 교전하였으나, 패배하였다.

혜문군 13년(BC 325) : 장의가 위나라를 공격하여 섬(陝, 하남성 섬현)을 빼앗고, 그곳에 거주한 위나라 사람들을 모두 쫓아냈다.

혜문왕 원년(BC 324) : 혜문군이 칭왕(稱王)하여 개원(改元)을 단행, 혜문왕 원년이라 하였다.

혜문왕 3년(BC 322) : 위나라를 공격해 곡옥(曲沃)을 함락시켰다.

혜문왕 7년(B.C. 318) : 한(韓), 조(趙), 위(魏), 연(燕), 제(齊), 흉노(匈奴)가 합종(合從)을 맺어 공동으로 진나라를 공격하였다. 서장(庶長) 질(疾)이 지위한 진군이 합종 연합군을 수어(修魚, 하남성 원양현 서남쪽)에서 격파하여 한장(韓將) 신치(申差)를 포로로 잡고, 조나라 공자(公子) 갈(渴)과 한나라 태자 환(奐)을 패퇴시켰으며, 연합군 병사 8만 2천명의 목을 베었다. 

혜문왕 9년(BC 316) : 사마착(司馬錯)이 파촉(巴蜀, 사천성)을 정벌하여 멸망시켰다. 물산이 풍부한 파촉지방의 영유는 진나라의 6국겸병전쟁 수행에 커다란 기반이 되었다. 조나라를 공격해 중도(中都, 산서성 평요현 서남쪽)와 서양(西陽, 산서성 중양현)을 빼앗았다.

혜문왕 10년(BC 315) : 한나라를 공격하여 석장(石章, 호북성 당양현 서남쪽)을 빼앗았다. 

조군(趙軍)과 교전하여 패퇴시키고, 서방원정에 나서 의거(義渠)의 25개 성(城)을 함락시켰다.

혜문왕 11년(BC 314) : 저리질(樗里疾)이 위나라의 초(焦, 하남성 섬현)를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안문(岸門, 하남성 허창시 북쪽)에서 한군(韓軍)을 격파하여 1만명의 목을 베었다.

혜문왕 12년(BC 313) : 서장(庶長) 질(疾)이 조나라를 공격하여 조장(趙將) 장(莊)을 포로로 잡았다.

혜문왕 13년(BC 312) : 서장 장(章)이 초나라를 공격하여 단양(丹陽, 하남성 서협현 서쪽)에서 초군(楚軍)을 대파하고, 초장(楚將) 굴개(屈丐)를 포로로 잡았으며, 8만여명의 목을 베었다. 한중(漢中, 섬서성 남쪽과 호북성 서북쪽 일대)을 공격하여 600리의 땅을 뻬앗고, 한중군(漢中郡)을 설치하였다.

초군이 한나라의 옹지(雍氏, 하남성 우현 동북쪽)를 포위하자, 서장 질이 군사를 이끌고 한나라를 구원하고 동쪽으로 제나라를 공격하였으며, 도만(到滿)을 파견하여 위나라를 도와 연나라에 침공하였다. 수도 함양 근교의 남전(蓝田, 섬서성 남전현)에서 초군과 다시 교전하여 이를 격파하자, 초나라는 2개의 성을 진나라에 할양하였다.

혜문왕 14년(BC 311) : 초나라를 공격하여 소릉(召陵, 하남성 언성현 동쪽)을 빼앗았다.

이 해에 혜문왕이 사망하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였는데, 한(韓), 위(魏), 조(趙), 초(楚), 제(齊)나라가 모두 진나라에 귀의(歸依)하였다.

무왕 원년(BC 310) : 장의(張儀)가 위나라로 돌아갔다.

의거(義渠), 단(丹, 융족의 支派), 여(犂, 융족의 支派)를 토벌하였다.

무왕 2년(BC 309) : 승상(丞相)직을 설치해 저리질과 감무(甘茂)가 각각 좌승상(左丞相), 우승상(右丞相)에 임명되었다.

무왕 3년(B.C. 308) : 감무와 서장 봉(封)이 한나라의 의양(宜陽, 하남성 의양현 서쪽)을 공격하였다.

무왕 4년(BC 307) : 진군(秦軍)이 의양을 함락시켜 한군(韓軍) 6만명의 목을 베고, 황하를 건너 무수(武遂, 산서성 원곡현 동남쪽)에 성을 쌓았다.

무왕이 주(周) 왕실의 보기(寶器) 9정(九鼎)을 들다가 사고사하자, 연나라에 인질로 있던 혜문왕의 차남이 귀국하여 즉위하니, 이가 소양왕(昭襄王)이다.

소양왕 2년(BC 305) : 진나라 국내에서 반(反)소양왕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으나[계군의 난], 도리어 실패로 끝나 혜문왕후(惠文王后) 이하 다수의 대신 ・제후 ・공자들이 숙청, 주살되고 무왕후(武王后)도 추방되었다. 반란 진압에 공훈을 세운 선태후(宣太后, 소양왕의 母后)의 이복동생 위염(魏冉)이 진나라의 대권(大權)을 장악하였다. 상용(上庸, 호북성 죽산현)을 초나라에 돌려주었다.

소양왕 3년(BC 304) : 제(齊), 위(魏), 한(韓) 3국이 연합하여 초나라를 침공하자, 진나라는 객경(客卿) 통(通)으로 하여금 초나라를 구원케 하였다.                                                         

소양왕 4년(BC 303) : 위나라를 공격하여 포판(蒲阪, 산서성 영제현 서쪽), 진양(晋陽, 산서성 태원시), 봉릉(封陵, 산서성 영제현 서남쪽)을 빼앗았다.

소양왕 5년(BC 302) : 포판을 위나라에 돌려주었다. 

진나라에 인질로 있던 초나라 태자[훗날의 楚頃襄王]가 본국으로 달아났다.                         

소양왕 6년(BC 301) : 촉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사마착이 이를 평정하였다. 한나라를 공격하여 양성(穰城, 하남성 등주시)을 빼앗았는데, 이곳은 후에 위염(魏冉)의 영지가 되었다. 

진(秦), 제(齊), 위(魏), 한(韓) 4국이 연합하여 초나라의 방성(方城, 하남성 방성현 동북쪽)을 공격, 중구(重丘, 하남성 비양현)에서 초군(楚軍)을 대파하고 초장(楚將) 당매(唐昧)를 죽였으며, 3만명의 목을 베었다.  

소양왕 7년(BC 300) : 초나라를 공격하여 8개성을 빼앗고, 초장 경쾌(景快)를 죽였다.         

소양왕 8년(BC 299)-화양군(華陽君, 魏冉의 동생)이 이끄는 진군(秦軍)이 초나라를 침공해 신시(新市, 호북성 경산현 서북쪽)를 빼앗았다. 진나라는 속임수를 써서 초회왕(楚懷王)을 납치, 억류하였다. 

제나라 왕족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이 진나라로 건너와 승상이 되었다.     

소양왕 9년(BC 298) : 초나라를 공격하여 16개 성을 함락시키고, 초군 5만명의 목을 베었다.

맹상군이 승상직에서 파면되었다.

소양왕 11년(BC 296) : 제(齊), 한(韓), 위(魏), 조(趙), 송(宋) 5국이 합종을 맺어 진나라를 공격, 진군을 대파하고 염지(鹽氏, 산서성 운성현)까지 진격하였다가 철수하였다. 진나라는 위나라에 봉릉(封陵)을, 한나라엔 무수(武遂)를 각각 할양하는 조건으로 강화를 맺었다.

진나라에 억류되어 있던 초회왕이 사망하자, 그 유해를 돌려 보냈다.

소양왕 12년(BC 295) : 양후(穰侯) 위염이 진나라의 승상이 되었다.

백기(白起)를 기용하여 본격적인 6국공략전에 착수하게 된다.

소양왕 13년(BC 294) : 한나라를 정벌하여 무시(武始, 하북성 한단현 서남쪽)를 빼앗았다. 좌경(左更, 진나라 제12등급의 작위) 백기가 신성(新城, 하남성 이천현 서남쪽)을 공략하였다.

소양왕 14년(BC 293) : 백기가 이끄는 진군(秦軍)이 이궐(伊闕, 하남성 낙양시 용문)에서 한위(韓魏) 연합군을 대파하고, 위장(魏將) 공손희(公孫喜)를 포로로 잡았으며, 24만명을 참살하여 목을 베었다. 이궐에서의 대참패로 한나라는 독자적으로 진나라에 대항할 수 있는 국력을 상실해버렸다.

한나라의 5개 성을 점령하였다.


* 재작년에 작성한 포스팅이지만, 이번에 수정해서 다시 올립니다.



덧글

  • 쿠쿠 2012/06/16 20:24 # 답글

    24만명 정도 죽였으면 유적지가 나올법도 한데 언제 발견될지 궁금하네요. 당시 인구를 생각하면 24만이라니 世代를 통째로 죽여버린 느낌.
  • 담배피는남자 2012/06/18 15:05 # 답글

    반지의 제왕에서 개미떼처럼 몰려오는 오크군세가 1만여명인데 24만명이면 대체...ㅎㄷㄷ
  • 위장효과 2012/06/22 15:37 # 답글

    김택민 교수님 글 보니까 백기가 조군 40만-조괄은 진짜...ㅄ도 그런 ㅄ이...-을 생매장한 장평전투 유적지에 대한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라고 하던데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런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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