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진(秦)의 6국겸병전쟁 연표 (2) 세계사


소양왕 15년(BC 292) : 대량조(大良造, 진나라 제16등급의 작위) 백기가 위나라를 공격하여 원(垣, 산서성 원곡현 서쪽)을 빼앗았으나, 다시 위나라에 돌려주었다.

초나라에 침공하여 완성(宛城, 하남성 남양시)을 빼앗았다.

소양왕 16년(BC 291) : 좌경 사마착(司馬錯)이 위나라를 공격하여 지(軹, 하남성 제원현 동남쪽)와 등(鄧, 하남성 맹현의 서남쪽)을 빼앗았다. 위나라가 하동(河東)지방의 땅 400리를, 한나라가 무수(武遂)지역의 땅 200리를 각각 진나라에 할양하였다.

소양왕 18년(BC 289) : 사마착이 위나라에 침공하여 원(垣)과 하옹(河雍, 하남성 맹주시)을 포위, 교량을 끊고 두 땅을 빼앗았다. 양후(穰侯) 위염(魏冉)과 대량조 백기가 위나라를 대대적으로 공략하여 하내(河內)지방의 61개 성(城)을 함락시켰다.

소양왕 19년(BC 288) : 진소양왕(秦昭襄王)이 서제(西帝), 제민왕(齊湣王)이 동제(東帝)라 각각 자칭했으나, 이내 제호(帝號)를 취소하였다.

소양왕 20년(BC 287) : 위나라를 공격하여 곡양(曲陽, 하남성 제원현 서쪽)과 신원(新垣, 산서성 원곡현)을 빼앗았다.

소양왕 21년(BC 286) : 사마착이 위나라의 하내(河內)지방을 공격하자, 위나라는 옛 도읍인 안읍(安邑)을 진나라에 할양하였다. 진나라는 안읍에 거주하는 위나라 사람을 모두 쫓아내고, 사면받은 죄수들을 이주시켰다.

소양왕 22년(B.C. 285) : 몽무(蒙武)가 제나라를 공격하였다.

하동(河東)에 9개의 현(縣)을 설치하였다.

소양왕 23년(B.C. 284) : 위(尉) 사리(斯離)가 삼진(三晋), 연(燕)나라와 함께 제나라를 정벌하여 제수(濟水) 서쪽에서 제군(齊軍)을 대파하였다.

소양왕 24년(BC 283) : 위나라에 침공하여 안성(安城, 하남성 원양현 서남쪽)을 빼앗고 수도 대량(大梁, 하남성 개봉시)까지 공격해 들어갔다. 조연(趙燕) 연합군이 위나라를 구원하러 왔으므로, 철수하였다.

소양왕 25년(BC 282) : 조나라에 침공하여 2개의 성을 함락시켰다.

소양왕 26년(B.C. 281) : 조나라에 침공하여 석성(石城, 하북성 석가장시)을 빼앗았다.

소양왕 27년(BC 280) : 대량조 백기가 조나라를 공격하여 대(代, 하북성 울현 일대)의 광랑성(光狼城, 산서성 고평현 서쪽)을 빼앗고, 조군(趙軍) 2만명의 목을 베었다. 사마착이 이끄는 진군(秦軍)이 촉군(蜀郡, 사천성)을 출발, 한수(漢水)를 거슬러올라가 초나라에 침공하여 검중(黔中, 호남성 서북쪽 일대)을 점령하였다. 초나라는 상용(上庸, 호북성 죽산현)과 한수 이북 일대를 진나라에 할양하였다.

소양왕 28년(BC 279) : 백기가 초나라를 대대적으로 공략, 언(鄢, 초나라
의 부도로, 호북성 의성현 동남쪽)과 서릉(西陵, 호북성 의창시)을 점령하였는데, 장강(長江)의 지류를 이용해 수공(水攻)으로 10배가 넘는 초군(楚軍)을 일거에 격멸했다고 한다.

소양왕 29년(BC 278) : 백기가 이끄는 진군이 초나라의 수도 영(郢, 호북성 강릉현 동북부)을 함락시키고, 초(楚) 왕실의 역대 능묘인 이릉(夷陵, 호북성 의창시 동남쪽)을 불태웠다. 진나라의 공격을 피해 달아난 초경양왕(楚頃襄王)은 진성(陳城, 하남성 회양현)으로 피신해 그곳을 도읍으로 삼았다. 

진나라는 영도에 남군(南郡)을 설치하였으며, 백기는 초나라 정벌의 공적으로 무안군(武安君)에 봉해졌다.
 
소양왕 30년(BC 277) : 촉군태수 약(若)이 초나라를 토벌하여 검중군(黔中郡, 호남성)을 설치하였다.
 
소양왕 31년(BC 276) : 초나라가 강동(江東)에서 10만 대군을 모아 진나라에 반격하여 장강 중류의 15개 읍(邑)을 수복, 군(郡)을 설치하고 진군의 동진을 저지하였다. 

무안군 백기가 위나라를 공격하여 2개 성을 함락시켰다.

소양왕 32년(BC 275) : 양후 위염이 위나라에 침공하여 대량성(大梁城)을 공격, 위장(魏將) 포연(暴鳶)을 패퇴시키고 위군(魏軍) 4만명의 목을 베었다. 위나라는 3개 현을 진나라에 할양하였다.

소양왕 33년(BC 274) : 객경(客卿) 호양(胡陽)이 위나라를 공격하여 권성(卷城, 하남성 원양현 북쪽), 채양(蔡陽, 하남성 상채현 동남쪽), 장사(長社, 하남성 장갈현 서쪽)를 모두 빼앗았다. 위염이 재차 위나라를 공격하여 4개 성을 함락시키고 위군 4만명의 목을 베었다. 

소양왕 34년(BC 273) : 조위(趙魏) 연합군이 한나라를 공격하자, 진나라는 무안군 백기로 하여금 한나라를 구원케 하였다. 진군은 화양산(華陽山, 하남성 신정현 북쪽)에서 조위 연합군을 공격하여 위장(魏將) 망묘(芒卯)를 패퇴시키고, 위군 13만명의 목을 베었으며, 조군(趙軍) 2만명을 황하에 수장(水葬)시켰다.

위나라는 남양(南陽, 하남성 초작시 서쪽)을 진나라에 할양하였다.

소양왕 35년(BC 272) : 진나라는 위나라와 한나라에 상용(上庸)을 주어 군(郡)을 설치하고 항복한 남양 백성들을 그곳으로 이주시켰다. 한(韓), 위(魏), 초(楚) 3국과 연합하여 연나라를 공격하였다.

처음으로 남양군(南陽郡)을 설치하였다.       

소양왕 36년(BC 271) : 객경(客卿) 조(竈)가 제나라를 공격하여 강(剛, 산동성 영양현 북쪽)과 수(壽, 산동성 동평현 서남쪽), 두 지역을 빼앗아 양후 위염에게 바쳤다.

소양왕 37년(BC 270)- : 중경(中更, 진나라 제13등급의 작위) 호양(胡陽)이 조나라를 공격했으나, 연여(閼與, 산서성 화순현 서북쪽)에서 조사(趙奢)가 이끄는 조군에 대패를 당하고, 호양은 달아났다. 

위나라 사람  범수(范睢)가 진나라에 왔다.

소양왕 38년(BC 269) : 진나라가 재차 연여를 공격하였으나, 빼앗지 못하였다.

소양왕 39년(BC 268) : 위나라를 공격하여 회성(懷城, 하남성 무척현 서남쪽)을 빼앗았다.

소양왕 40년(BC 267) : 위나라에 인질로 있던 소양왕의 도태자(悼太子)가 죽었다.                 

소양왕 41년(BC 266) : 응후(應侯) 범수(范睢)가 진나라의 승상이 되어, 6국에 대해 원교근공(遠交近攻)을 시도한다. 위나라에 침공하여 형구(邢丘, 하남성 온현)를 빼앗았다.              

소양왕 42년(B.C. 265) : 조나라를 공격하여 3개 성을 빼앗았다.

소양왕의 차남 안국군(安國君)이 진나라 태자가 되었다. 소양왕의 모후(母后) 선태후(先太后)가 죽고, 양후 위염이 봉지(封地)로 추방되어 진나라 정계에서 외척 세력은 사실상 몰락하였다.

소양왕 43년(BC 264) : 백기가 한나라를 공격하여 9개 성을 빼앗고, 한군(韓軍) 5만명의 목을 베었다.

소양왕 44년(BC 263) : 백기가 이끄는 진군(秦軍)이 재차 한나라에 침공하여 태행산(太行山)을 공격, 수도 신정(新鄭, 하남성 신정시)과 북부 상당군(上黨郡, 산서성 동남부 일대)간의 교통을 단절시켰다. 

소양왕 45년(BC 262) : 한(韓)의 상당군 태수가 조나라에 투항하자, 조효성왕(趙孝成王)은 염파(廉頗)를 상당으로 파견해 진나라를 저지하도록 했다. 이에 진소양왕도 좌서장(左庶長) 왕흘(王齕)을 파견해 조군(趙軍)과의 결전에 대비케 하였으니, 양측은 장평(長平, 산서성 고평현 서북쪽)에서 장기간 대치하였다.

소양왕 47년(BC 260) : 조나라는 장평전역(戰域)의 사령관을 조괄(趙括)로 교체했다. 진나라는 무안군 백기를 장평에 파견하였는데, 기병과 별동부대를 이용해 조군을 완전히 포위하는데 성공하였다. 소양왕이 친히 하내(河內)로 행차하여 15세 이상, 60세 미만의 장정들을 총동원해 장평에 투입하였다.

조장(趙將) 조괄은 포위망을 돌파하려다 전사하고, 결국 40만에 이르는 조군이 전원 항복하였다. 백기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항복한 포로 40만여명을 대부분 갱살(坑殺)하고, 소년병 200여명만을 살려 보냈다고 한다. 장평대전(長平大戰)을 계기로, 진나라의 6국병탄은 기정사실화된다.

패전한 조나라는 영토 할양을 조건으로 진나라에 강화를 요청하였다.

소양왕 48년(BC 259) : 조나라의 수도 한단(甘鄲)에 인질로 있던 소양왕의 손자 자초(子楚)가 아들을 얻었으니, 이가 바로 영정(嬴政, 秦始皇)이다. 한나라가 원옹(垣雍, 하남성 원양현)을 진나라에 할양하였다. 조나라가 강화조약을 준수하지 않자, 진나라는 재차 동원령을 내려 조나라를 정벌하였다.

진군(秦軍)은 두 갈래로 침입하여 왕흘이 피뢰(皮牢, 산서성 익성현 동쪽)를 점령하고, 사마경(司馬梗)이 태원(太原)을 평정하였으며, 한나라의 상당을 완전히 차지하였다. 오대부(五大夫, 진나라 제9등급의 작위) 왕릉(王陵)이 이끄는 진군이 한단(甘鄲)에 육박하자, 조나라는 초나라와 위나라에 합종을 제의하며 구원을 요청하였다.

자초가 한단을 탈출해 진나라로 귀국하였다.

소양왕 49년(BC 258) : 왕릉이 한단을 공격했으나 성과가 없자, 소양왕은 무안군 백기를 출정시키려 했다. 백기가 거절하자, 대신 왕흘을 파견하여 한단을 공략케 하였다. 

소양왕 50년(BC 257) : 무안군 백기가 왕명(王命)을 거역한 죄로 죽임을 당했다.

춘신군(春申君)과 신릉군(信陵君)이 이끄는 초위(楚魏) 연합군이 한단 근교에서 진군을 대파하자, 포위를 풀고 철수하였다. 한단에서 패퇴한 왕흘은 분성(汾城, 산서성 임분현)으로 옮겨 주둔하였다. 진나라는 재차 초위 연합군을 공격하여 6천명의 목을 베고, 2만명을 황하에 수장(水葬)시켰으며, 영신중(寧新中, 하남성 안양시)을 점령하고 그곳을 안양(安陽)으로 개명하였다.

처음으로 황하에 하교(河橋)를 설치하였다.

소양왕 51년(BC 256) : 진장(秦將) 규(樛)가 한나라를 공격하여 양성(陽城, 하남성 등봉현 동남쪽)과 부서(負黍, 하남성 양성현 서남쪽)를 빼앗고, 한군(韓軍) 4만명의 목을 베었다. 조나라에 침공하여 20여개의 현(縣)을 빼앗고, 조군 9만명의 목을 베었다.

서주(西周, 기원전 367년 이래 주나라는 東周와 西周로 분열되었는데, 둘을 가리켜 二周라 칭한다)의 군주가 제후들과 합종하여 이궐(伊闕)을 거쳐 진나라를 공격하자, 장군 규가 서주를 토벌해 항복시키고 그 영토를 병합하였다. 

소양왕 52년(B.C. 255)-주(周) 왕실의 보기(寶器)인 구정(九鼎)이 진나라의 수중에 들어왔다.

응후 범수가 승상직에서 물러났다.

소양왕 53년(BC 254) : 천하가 모두 진나라에 귀복(歸服)하였다. 위나라만이 마지막까지 버티자, 장군 규가 이끄는 진군이 오성(吳城, 산서성 평륙)을 공격하여 뻬앗았다. 위나라도 진나라에 귀복하였다.

소양왕 56년(BC 251) : 소양왕이 죽고 태자 안국군이 즉위하니, 이가 효문왕(孝文王)이다. 소양왕이 사망하자 각국 제후들은 사절을 보내 조문케 하였는데, 인접한 한나라에서는 국왕이 직접 진나라를 방문해 상복을 입고 조문하는 등, 전대미문의 추태를 보여주었다.

효문왕 원년(BC 250)-소양왕의 복상(服喪)이 끝난 지 불과 3일만에 효문왕이 급사하자, 태자 자초가 즉위하였으니 이가 장양왕(莊襄王)이다. 

장양왕 원년(BC 249) : 동주(東周)의 군주가 제후들과 합종하여 진나라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자, 진나라 상국(相國) 여불위(呂不韋)가 동주를 토벌하여 항복시키고 그 영토를 모두 병합하였다. 이로써, 주나라는 완전히 멸망하였다.

장군 몽오(蒙驁)가 한나라를 공격하자, 한나라는 성고(成皋, 하남성 영양현 서쪽)와 공(鞏, 하남성 공현)을 진나라에 할양하였다. 진나라의 영역은 동쪽으로 대량(大梁)에까지 이르렀고, 처음으로 삼천군(三川郡, 하남성 낙양시 서쪽 일대)을 설치하였다. 

장양왕 2년(BC 248) : 몽오가 조나라를 공격하여 태원 일대를 평정하였다.

장양왕 3년(BC 247)-몽오가 위나라의 고도(高都, 산서성 진성현 동북쪽)와 급(汲, 하남성 급현)을 침공하여 함락시키고, 조나라의 유차(楡次, 산서성 유차현), 신성(新城, 산서성 삭현 서남쪽), 낭맹(狼孟, 산서성 양곡현 서북쪽)을 공격하여 37개 성을 함락시켰다.

왕흘이 상당을 공격하여 처음으로 태원군(太原郡)을 설치하였다.

위(魏), 조(趙), 초(楚), 한(韓), 연(燕) 5국이 합종하여 연합군을 결성, 위나라 신릉군(信陵君)의 지휘하에 하외(河外)에서 몽오가 이끄는 진군을 대파하고, 함곡관(函谷關, 하남성 영보현 
북쪽)까지 추격해 들어가고 나서 철수하였다. 하외에서의 패전으로, 진나라는 상당 일대의 영토를 상실하였다.

이 해에 장양왕이 사망하고 태자가 즉위하니, 이가 진왕 정(秦王政), 즉 진시황제(秦始皇帝)이다.



덧글

  • 엽기당주 2012/06/16 20:17 # 답글

    이 글 이전에 있던 진효공(孝公)때의 위앙이 정말 대단한 인물이긴 합니다.

    위앙의 변법 이전의 진나라는 진목공때 잠깐 반짝하고 나서 계속 약소국이었는데 순식간에 글쓰신것처럼 공세적으로 전환이 가능한 초강대국이 되었으니까요.

    확실히 당대의 인물중에는 위앙만한 인걸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 에드워디안 2012/06/16 20:51 #

    위앙도 위앙이지만, 장의, 위염, 백기, 범수처럼 기라성급의 걸출한 인사들이 내외정면에 걸쳐서 맹활약했고, 소양왕이란 영주(英主)까지 나타났으니, 어차피 호랑지국의 천하제패는 시간문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명림어수 2012/06/17 05:02 # 삭제 답글

    당시 해동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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