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의 붕어(崩御) 세계사




임오년(壬午年, 1222) 가을, 금나라 황제가 다시 사신을 보내어 화의를 청하였다. 그때 칭기즈칸은 회골국(回鶻國, 위구르)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금나라 사신을 만나고선 이렇게 말했다.

"지난날 하삭(河朔)땅은 나에게 주고, 너희나라 왕은 하남왕(河南王)으로 삼아 전쟁을 그만두자 했건만, 너희는 따르지 않았다. 무칼리가 그 땅을 모두 취하였는데 이제와서 화의를 구걸한단 말이냐?"

드디어 허락하지 않았다.

계미년(癸未年, 1223) 봄 3월, 몽고의 태사(太師) 국왕(國王) 무칼리가 죽었다. 

병술년(丙戌年, 1226), 칭기즈칸이 서하(西夏)를 쳐서 감숙(甘肅) 등의 주(州)를 취하고, 사타(沙陀)를 넘어 황하 구도(九度)에 이르렀다. 정해년(丁亥年, 1227)에 몽고가 서하를 멸해  그 군주를 죽였다.

보경(寶慶) 3년(1227) 7월 12일, 원태조(元太祖) 칭기즈칸이 감숙의 육반산(六盤山)에서 붕어했다.

칭기즈칸은  죽음에 이르러 좌우에게 이렇게 유언하였다.

"금나라 정병(精兵)이 동관(潼關, 섬서성 동관현)에 있는데 남쪽으로는 산이 둘러싸여 있고, 북쪽으로는 태하(太河)와 황하가 막혀 당장은 깨뜨리기가 어렵다. 송(宋)에 길을 빌려달라는 것만 못하다. 송과 금은 대대로 원수지간인 만큼 분명 우리의 부탁을 들어줄 것인즉, 당주(唐州, 하남성)와 등주(鄧州, 하남성)로 곧바로 진격하여 변경(汴京, 하남성 개봉)을 공략할 수 있다.

변경이 급해지면 금나라는 틀림없이 동관의 군사를 빼내어 변경을 구원키 위해  달려갈 것이리라. 허나, 수만대군이 천리(里)길을 급히 행군하게  되어 사람과 말이 모두 지쳐버려 설령 변경까지 도착하더라도, 제대로  싸울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고로, 이들을 깨뜨리는 것은 틀림없다."

말을 마치고 태조는 숨을 거두었다.

칭기즈칸은 재위 22년, 세수(歲首) 66세였다. 기련곡(起輦谷)에 장사지냈다. 지원(至元) 2년(1265), 성무황제(聖武皇帝)라 추시(追諡), 묘호를 태조(太祖)라 하였다. 태조는 깊이 있고, 침착하며, 큰 지략을 지녔으며, 용병(用兵)은  신(神)과도 같았다. 그리하여 40여 나라들을 멸망시켰으니, 공적이  엄청났다.

태종(太宗)은 이름이 오고타이(窩滑台), 칭기즈칸의 3남(男)이다. 모친은 광헌황후(光獻皇后) 옹기라트씨(弘吉剌氏, 보르테)였다. 기축년(己丑年, 1229) 여름, 부친상을 치루고 나서  홀로반설부지(忽魯班雪不只)에 이르자, 태제(太弟) 툴루이(拖雷)가 찾아와서 뵈었다. 이에 여러 왕공(王公)과 백관들을 모아 쿠릴타이를 개최하고, 칭기즈칸의 유언에 따라, 오고타이가 대칸(大汗)으로 즉위했다. 


* 짤방은 칭기즈칸의 임종 장소인 육반산 일대의 전경



덧글

  • 위장효과 2012/09/03 12:49 # 답글

    그리고 그가 어디서 영면을 취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 에드워디안 2012/09/03 13:01 #

    비단 테무진 뿐만 아니라, 몽고 대칸들의 정확한 매장지는 신께서만 아신다죠.ㅋ
  • 위장효과 2012/09/03 13:19 #

    정말 철저한 증인 말살책이었지요.
  • 시울음 2012/09/03 13:56 # 답글

    칸의 매장지.. 엄청난 미스테리 중 하나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미스테리가 동아시아 고고학의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다는 걸 생각한다면... 인간의 호기심이라는 게 참 경우에 따라서는 막강한 원동력인 듯 합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2/09/03 14:02 # 답글

    칸의 고분이 발견된다면...호오~~대봑일 듯!!
  • 골든 리트리버 2012/09/04 22:07 # 답글

    어디선가 유골 더미가 발견된다면 그곳이 칸의 무덤...
  • 누군가의친구 2012/09/05 01:33 # 답글

    아마도 무덤 찾기는 쉽지 않을듯 합니다. 덕분에 도굴당하는 수모따위는 없으니 당사자에게는 다행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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