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海陵王 총평 세계사


해릉은 재위 12년간 겉치레로 다스렸다. 거위요리가 수라상에 올라오면 거절하면서 얼핏 근검절약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사냥때마다  으레 거위와 메추라기 1마리씩을 요구해 수많은 돈을 들였고, 소 1마리로 메추라기 1마리를 맞바꾸어 산 적도 있었다. 낡은 이불로  만든 옷을  군신들에게 보여주는가 하면, 옷을 꿰메어 입는다던지, 관리가  이를 기록하도록  명령하기까지 했다.

군사의 음식과 황상의 수라상을 함께 놓고선 군사들의 음식을 먼저 먹이기도 했으며, 어느때엔 평민의 마차가 진흙탕으로  빠지자 호위병에게 마차를 구해내도록 하였다. 근신(近臣)과 담소를 나누면서  짐짓 고대의 현군(賢君)과 자신을 비교하고, 공개적으로 대신을 책망하여 직언토록 했다. 장중가(張仲軻) 등을 간관(諫官)으로 임명했는데, 기재(祁宰)가 결국 직언하다가 도리어 죽임을 당하였다.

소인들과 가깝게 지내고, 포상엔 법도가 없었다. 좌우에 많은 관리들이 있는데, 이름으로 낮추어 부르기 일쑤였지만, 포상을 받았을 경우엔  관등(官等)을 밝혔다. 황금을  침실 이불속에 숨겨놓아 총애하는 자가 가져가도록 나뒀다. 여색(女色)을  탐했던 나머지 근친마저도 가리질 않았으며, 유죄불문(有罪不問)하고 형(刑)으로 살인하기를 즐겼다. 무용한 공사를 일으켜 민력을 피폐시켰다. 

개봉의 궁전을 건축하면서  나무기둥 하나를 운반하는 데만  2천만전(錢), 차(車) 하나를 이동시키는 데만 5백명이 동원되었다. 궁전 양식을 황금과 오채(五采)로 장식했고, 금가루가 허공에 날려  마치 눈내리듯 하였는데, 건물 하나에 억만전의 비용이 들어갔다. 송나라 정벌을 위해  전함을 건조한답시고, 백성들의 민가를 부수어 목재로 사용했으며, 죽은 사람의 시체를 끓여 기름으로 사용할 정도였다.

백성을 소와 말처럼 부려먹어 기력을 소진시켰고, 재물을 물쓰듯 했다. 국고가 고갈되면서 다른 나라를 도모하고자 하니, 마침내 실패하게 되었다. 해릉의 견식은 간언을 물리쳐  말을 그럴듯하게 꾸며대더니,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모름지기 황제를 지켜주어야 할 사람이 황제를 시해하고, 국가를 전복한 사람이 그  국모를 시해하였다. 남의 처(妻)를 빼앗은 사람이 그 때문에  남편을 죽였다.

삼강(三綱)이 끊어졌는데 누구를 시비한단 말인가? 종실의 친척을 도륙하기에 이르렀고, 충량(忠良)들을 베었으며, 부고자매(婦姑姉妹)들을 빈(嬪)으로 맞아들이기까지 했다. 32 총관지병도(三十二總管之兵圖)는 1일천하(一日天下)였고, 졸지에 악한 기운이 감화되었으나 몸은 비극으로 끝나버렸으니, 천하로 하여금 후세에 칭하기를 무도주(無道主)라 불렀으며, 해릉을 무도한 군주의 으뜸으로 여겼다.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없겠는가?!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없겠는가?!



덧글

  • 2012/09/12 13: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9/12 19:5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2/09/12 20:16 # 답글

    해릉왕하면 http://bulbbang.egloos.com/2719645 이분의 포스팅 시리즈가 자연스래 떠올라버려서 말입니다.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인물이죠.ㄱ-
  • 에드워디안 2012/09/14 05:01 #

    대륙의 기상!!

    저런 폭군들이 자주 등장했던 것도 고삐풀린 황제독재체제의 단점이 극대화된 결과라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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