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이 협정 국제, 시사





중동전쟁의 상흔이자, 3차대전의 불씨를 지닌 시나이 반도에 대한 평화협정이 조인되었다. 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전략요충지 기디와 미틀라, 아부-루데이스 유전(油田) 등을 포함한 반도점령지 5천평방km를 포기했으며, 보답으로 이집트는 무력 불사용과 홍해(紅海)봉쇄의 철회, 이스라엘 화물선의 수에즈 운하 통과를 허용키로 했다. 미국은 기디와  미틀라에 휴전감시차  민간감시단을 파견할 예정이다.

이스라엘로선 국내 강경여론의 항의를 무릅쓰고, 점령지 양보의 대가로  이집트로부터 문서상으로나마 '생존권'을 보장받은 셈이다. 그리고, 미국은 양국을 타협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자국의 민간감시단을 휴전선에 투입, 시나이 평화를 위한 담보로서 '인질'들을 제공해버린 꼴이 되었다. 여기에, 이스라엘측의 불안을 덜어주려는 일환으로 미국은 20억$에 달하는 추가원조까지 약속하였다.

소위 '평화의 대가'라는 것이  참으로  막대하지  않은가.
이러한 대가로도 4반세기간 곪아터진  중동분쟁의 종식을 장담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앞서 백일몽으로 끝난 세차례의 '휴전'과  같은 전철을 답습치 않기만을 바란다.


이하는 9월 1일에 가조인, 5일에 제네바에서 정식 조인된 시나이 협정의 발췌문이다.



이집트 아랍 공화국과 이스라엘 정부는 다음과 같이 합의하는 바다.

*제1조

쌍방간 중동분쟁은 무력이 아닌 평화적 방법에 의해 해결되어야만 한다.
본(本)협정은 1973년 10월 22일자 유엔 안보리 결의안 338호에 의거한 '공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지향한 1단계 조치이며, 협정 당사국들은 본 결의안이 촉구한 협상수단에 의한
최종적인 공정한 평화 해결을 추구한다.

*제2조

당사국들은 이에 따라, 상대국에 대한 협박과 무력사용, 군사적 봉쇄 등의 행위를 취할 수 없다.

*제3조

당사국들은 육해공군의 휴전을 계속 준수하며, 모든 군사 ・준(準)군사적 행위를 자제한다.

당사국들은 부속서류에 포함된 의무들을 확인하고, 본협정이 체결되면 의정서는 협정의 일부가 된다.

*제4조

새로운 휴전선에 관련한 세부사항은 본협정의 일부인 부속문서와 지도, 의정서의 사항들에 의거한다.

*제5조

유엔 비상군은 반드시 필요하며, 계속 기능하고 매년 주둔기간을 연장한다.

*제6조

당사국들은 협정의 지속을 위한 공동위원회를 설립한다.
위원회는 유엔 중동 평화유지위원단 수석조정관의 후원으로 본협정에서 야기된 각종 문제들을 검토,
유엔 비상군의 임무 수행을 지원한다. 공동위원회의 기능은 의정서에 규정된 절차에 의거한다.

*제7조

이스라엘로 반입되는 비(非)군사 화물은 수에즈 운하로의 통행을 허용한다.

*제8조

본협정은 '공정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중대조치로 간주되나, 최종적인 평화협정은 아니다.

제네바 평화회담과 유엔 안보리 결의안 338호의 범위내에서 최종 평화협정의 협상을 위해  노력한다.

*제9조

본협정은 의정서 조인과 동시에 발효되며, 새로운 평화협정이 조인되는 시기까지 유효하다.



덧글

  • KittyHawk 2012/09/14 21:34 # 답글

    사다트는 적어도 90년대까진 이집트를 통치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어집니다. 적어도 그가 무스타파 케말의 역할을 상당 기간 수행해야 했는데 너무 일찍 죽었다는 감이 듭니다...
  • 에드워디안 2012/09/14 21:54 #

    다만,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민심이반의 기운도 높았던지라..
    본인부터가 암살을 예견하질 않나, 자칫 팔레비 시즌2를 찍을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었죠.
  • KittyHawk 2012/09/14 21:59 #

    좀 아이러니하더군요. 사다트처럼 아랍권에서 유능하다는 평을 받았던 지도자들은 적어도 케말을 본받으려 했던 것과 달리 그 밑의 민중들은 그러한 방침을 잘 따르려고 하지 않았으니 말이지요. 적어도 케말은 그의 능력도 능력이었지만 지도자인 그를 기꺼이 믿고 따라준 터키 국민들도 무시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이따금씩 들기도 합니다. 아마도 사다트는 4차 중동전 때 전임 나세르와 달리 이스라엘에게 결코 밀리지 않고 싸움으로서 빼앗긴 시나이를 되찾는 것으로 자국민들이 터키 국민들이 케말을 믿고 따라줬던 것처럼 자신도 따르리라 믿었던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 담배피는남자 2012/09/14 22:20 #

    우선 히잡 벗기기부터...
  • あさぎり 2012/09/14 23:29 #

    더 웃긴건 과거 이집트 여성들과 달리 지금의 이집트 여성들은 오히려 히잡을 스스로 쓰려고 하고 있다고 하니까요. 3, 40년 전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짐.
  • 파파라치 2012/09/15 01:00 #

    무스타파 케말의 역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지요. 터키 공화국 수립 이전에 케말이 이룩한 공적을 보면, 이집트에서 사다트가 비슷한 역할을 하려면 마호메트 알리 정도의 위업을 이룬 다음에 서구화를 추진했어야 했을 겁니다.
  • 에드워디안 2012/10/13 15:43 #

    키티호크//

    親서방외교의 추진, 그 부수적인 후광덕에 흔히 간과하기 십상인데, 나세르 사후 취약한 권력기반을 보강할 심산으로 오히려 내정면에선 율법의 강조와 콥트교 탄압, 이슬람 단체활동의 해금처럼 한동안 국내 무슬림 세력에 대하여 회유책(=당근)을 장려했던 점도 고려해야 할 부분입니다. '신앙과 과학의 실천'이란 모토까지 제시해간 이상, 케말-팔레비식의 완전한 세속주의 노선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으니깐요.

    다만, 정교분리 원칙을 고수하면서 여성의 권리증진 등 일부 세속화 스탠스를 취한건 사실이고, 對이스라엘 접근은 원리주의자들을 빡치게 만들고도 남았으니... 국정 자체가 얼핏 모순적으로 각인되기 십상이었으며, 경제개방의 휴유증도 사다트 정권의 존립을 위태롭게끔 하는 요소였습니다만,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결국 외교정책에 따른 반발. 본인이야 '무슬림 실용주의'라며 자부했을진 몰라도, 현실은 녹록치 않았죠.
  • 위장효과 2012/09/15 07:51 # 답글

    자유장교단-군부 쿠데타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중 하나죠. 대전당시에는 독일군과 협력해서 영국군 뒤통수치기 시도하다가-카이로를 중심으로 한 독일 첩보망이 우선적으로 연결하려고 했던 대상이었으니-체포된 적도 있었고 말입니다.
    (전임자와 후계자의 사이지만 사실 나세르와 사다트 둘이 동갑이란 것도 어느 정도는 충공깽...^^;;;. )

    이른바 서구화에 대한 저항은 워낙 역사가 오래된 것이니까요.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 시절부터 유구한 것 아니겠습니까. 다른 종교라 해도 교조적이고 전통고수적인 것은 동방정교회도 이슬람교 못지 않은 곳이고 그거 타파하려고 표트르 대제도 무지 고생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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