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충 對 양행밀의 전쟁기사 세계사


회남(淮南)은 이전에 수전(水戰)을 잘하였으나  말타기와  활쏘기를 알지  못했는데, 하동(河東)과 연(兗), 운(鄆)의 병사들을 얻으면서  군대의 명성이 크게 떨치게 되었다. 사엄(史儼)과 이승사(李承嗣)는 하동의 용맹한 장수로  이극용(李克用)이 그들을 회남(淮南)에 사신으로 파견, 양행밀(楊行密)과의 '공수동맹'을 제의하였다. 양행밀 역시  보답으로 사신들을 파견해와 이극용과 우호관계를 맺었다.

황상(皇上, 唐昭宗)이 조서를 내려 양행밀을 강남제도행영도통(江南諸道行營都統)으로 삼아, 무창(武昌, 호북성 무창시)절도사  두홍(杜洪)을 토벌케 하였다. 4월에  양행밀이 공격해오자  두홍은  주전충(朱全忠, 朱溫)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주전충이 그의 장수인 섭금(聶金)을 파견해 사주(泗州, 강소성 우태현)를 약탈하였고, 주우공(朱友恭)은 황주(黃州, 호북성 황주시)를 공격하도록 했다.

양행밀이 우흑운(右黑雲)도지휘사  마순(馬珣) 등을  파견해  황주를  구원하였다.  황주자사 구장(瞿章)은 주우공이 도착한 소식을 듣자 성(城)을 버리고, 무리들을  거느려 남쪽 무창채(武昌寨, 호북성 악주시)를 지켰다. 5월 신사일(7일), 주우공이 번항(樊港)에 부교(浮橋)를  설치하여 나아가서 무창채를 공격하였고, 함락시켜 구장을 체포했으며, 황주를 빼앗았다. 마순 등이 모두 패배해버려 달아났다.

주전충은 이미 연운(兗鄆)을 얻었고, 갑병(甲兵)은 더욱 강성해지자 마침내 크게 일으켜 양행밀을 치고, 방사고(龐師古)를 파견해 서(徐), 숙(宿), 송(宋), 활(滑)의 군사 7만을 데리고 청구(淸口, 강소성 회음현)에 성을 쌓아  양주(楊州)로 진격코자  했다. 갈종주(葛從周)는 연(兗), 운(鄆), 조(曹), 복(濮)의 군사를 데리고 안풍(安豊, 안휘성 수현 남쪽)에 성을 쌓았으며, 주전충은 숙주(宿州)에 주둔하였다.

회남(淮南)에서는 떨며 무서워하였다.

양행밀은 주근(朱瑾)과  더불어 군사  3만을 거느리고, 주전충의  군대를  초주(楚州, 강소성 회안시)에서 막았으며, 별장  장훈(張訓)이 연수(漣水, 강소성 연수현)에서 합류하자, 그를 선봉으로 삼았다. 방사고가 청구에 군영을 두었는데, 누군가가 '군영터가 음푹 패여버렸으니 오래 버티기  곤란합니다'고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방사고는 무리가  많은 것을 믿고, 적을 가볍게 보아  바둑이나 즐겼다.

주근은  회하(淮河)의  상류를 막아 주전충군의 진영에  수공(水攻)을 가하고자  했다. 누군가 방사고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자, 방사고는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여겨 그를 참수했다. 11월 계유일(2일), 주근이 후찬(侯瓚)과  더불어  기병 5천을 거느리고 몰래 회하를 건넜으며, 주전충군의 깃발을 사용해 북쪽으로부터 그들의  중군(中軍, 방사고의 부대)쪽으로 재빨리 들어가 기습을 가했다.

장훈이 목책을 넘어 들어가자 주전충군의  병사들이 창황(蒼黃)하는 가운데 맞서 싸웠으나, 회하의 물이 대량으로 밀려들면서 주전충군은 놀라고 혼란하게 되었다. 양행밀이 몸소 대군을 이끌고 회하를 건너서 주근 등과 함께 그곳을 협공, 주전충의 군사는 대패하였다. 방사고  이하 장사(將士)의  머리 1만급(級)을 베어버리자, 나머지 무리들마저  모두  무너졌으니, 양행밀군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듯 하였다.

갈종주(葛從周)는 수주(壽州, 壽春)의 서북쪽에 주둔했는데, 수주단련사(壽州團練使) 주연수(朱延壽)에게 격파당하자 퇴각하여 호주(濠州, 안휘성 봉양현)에 주둔하였다가, 방사고가  패퇴한 소식을  듣고  도망쳐 돌아갔다. 양행밀과 주근, 주연수는 승리한 기세를 타고 추격해 비수(淠水)에 이르렀다. 갈종주가 절반쯤 건넜을 때 공격, 살해되거나 익사해 전멸당하고, 종주는 도망가 모면하였다.

알후도지휘사(遏後都指揮使) 우존절(牛存節)이 말을 버리고 걸어가면서 전투를 지휘하여 여러 병사들이 조금씩 회하를 건널수 있었지만, 무릇 나흘간 먹지를 못하였고, 때마침  폭설이 내려 주전충군의 병졸은 길가에서 얼거나 굶어 죽어갔으니, 돌아온 사람들이 1천명이 채 못되었다. 주전충도 패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선 돌아왔다. 전투가 종료되고 나자, 양행밀은 주전충에게 편지를 보내어 말하였다.

"방사고와 갈종주는 적수가 되질 못하니, 공(公)께서 친히 회상(淮上)으로 와서 결전해보시오."

양행밀이 제장들을 크게 모아놓고, 행군부사(行軍副使) 이승사(李承嗣)에게 말하였다.

"애당초 내가 먼저 수주(壽州)로 달려가려 했거늘, 부사(副使)는 먼저 청구(淸口)로 향하는 것만 못하다고 말하였다. 방사고는 패배하였고 갈종주는 스스로 도망쳤으니, 과연 예상했던 바와 같도다."

전(錢) 1만민(緡)을 포상으로 내리는 한편, 표문(表文)을  올려  이승사에게 진해(鎭海)절도사를 관장토록 하였는데, 양행밀은 이승사와 사엄(史儼)에게 대우해줌이  지극히 두터웠으며, 저택과 희첩(姬妾)은  모두 그들 가운데  가장 좋은 것만을 골라서 하사하니, 두 사람은 양행밀을 위해  전력을 다하여 누차 공로를 세우고 회남에서 죽었다. 양행밀은 이로부터  강회(江淮)지방을 보유하여 점거했던 것이다.


                        청구지전(淸口之戰)의 무대인 강소성 회음현 서남쪽의 홍택호반(洪澤湖畔)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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