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중국, 오늘의 한국 국제, 시사




머나먼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오월동주(吳越同舟)는 옛적이야기라 덮어두더라도, 어천만사(於千萬事)에 '만만디'란 중국인의  유연한 배짱은 새겨볼만한 일이다. 그들의 기질을 이해하노라면, 성급한 한국인의 척도로는 어림도 없으니,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양자강에서 거슬러 올라가기를  1만리(里), 오지(奧地)에서 물오리  2마리를 조각배에  달아서  매고온 가족이 서서히 노를 저어내려  살아간다.

밤이되면 강변에서 자고,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절  바뀌어가는 동안  오리는  알을 까고, 그 알이 다시 오리로  태어나고. 상해(上海)에  도착할  무렵이면  오리는  무려  3천마리로  불어난데다, 오리들을 시장에 모두 팔아치우는 순간까지  상해 생활이 계속된다. 그리하여 번 돈으로  밑천을 장만하면, 다시 양자강을 따라 유유히 고향마을로 돌아가는데, 왕복시일엔  대개 2년, 여의치 않으면 3년마저 소요된다.

배안에서 자식을 낳고, 손자를  보면서  한 평생에  많아야  열댓번 양자강을 오르내리는  '물오리 장수'의 인생을 이해해야만, 비로소 중국을 이해한다는 우스갯소리다. 전세계  어느곳에를 가보더라도, 화교들의 생활력은 강인하기로 유명하다. 자기대(代)에 성공하지 못하면 아들대에, 아들도 안되면 손자대에 가서 눈앞의 일기일복(一起一伏)에 직면해 놀라지 않는다. 처변불경(處變不驚)의 신조다.

그런 중국인들이건만, 일본에 대해서만큼은 인내의 한도를  넘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최근 자유중국의 대일(對日)감정은 여간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재작년 9월, 일본정부의 특사 자격으로 대만을 방문했던 시이나(椎名) 자민당 부총재가 거리에서 계란세례를 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평소 방문객에 대해 예의를 갖추기로 소문난 대만정부의 당국자들로부터도 모욕에 가까운 쌀쌀한 대접을 받았었다.
 

"다음은 한국이 배신당할 차례이니 꼭 두고 보시오."


현재  대만정부의 요직에 있는 관계로  신의상 이름은 거론하지는 않겠으나, 일본의 '배신근성'을 통렬히 비난한 끝에 내뱉은 어느 중국인의  말이다. 중공이 유엔의석을  빼앗아간 이래, 국제정세의 물결속에서 일본으로서도 불가피한 측면이야  없지는 않았지만, 과거사 문제부터 돌이켜 보노라니 대만측의 시각은 괘씸하기가  그지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2년도 못가서  이번엔  우리들의 차례가 된 모양이다. 다만, 중국식과 한국식이 다른 것은 일본경제를 도입하더라도 침투시키지는 않았던  자유중국과 도입이 곧 침투가 되어버린 10년간 한국의 대일태도, 일본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되 오리가 알을 까서 3천마리로 불어날 때까지 유유자적 기다리는 중국인의 방식, 비행기로 3천마리를 당장 공수해오라는 한국인의  방식간의 차이다.

그런지는 몰라도, 일본의 '배신행위'에  분노를  쏟아내는  방식도  대만과  한국은 사뭇  다르다. 대일자세, 특히 재계의 주체성이 어떠했는가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짤방은 1972년 9월 18일, 단교 해명의 특사로  대북(臺北)을  방문한  시이나  일본자민당 부총재



덧글

  • 파파라치 2012/09/21 10:16 # 답글

    실제로는 한국이 일본에게 배신당한 게 아니라 한국으로부터 대만이 배신당했죠.(원래 한번 뒤통수 맞은 놈이 또 맞는법) 20년도 더 뒷날 일이긴 하지만.
  • 누군가의친구 2012/09/22 00:46 # 답글

    그러고보니 박정희 저격 미수사건때 일본측은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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