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네가 당해볼 차례다! 발언록




독일의 전권대표단 제군들! 거두절미하고, 긴말할 시간 없습니다.
잔악한 전쟁에 힘을 모아 대항해왔던  연합국 대표자들이 지금 그대들에 눈앞에 앉아있지요.
4년간 쉬지않고, 규모에 상관없이 연합국은 강요된 가혹한 전쟁을 치루어야만 했습니다.
자, 우리가 당한 빚을 그대로 되갚아주는 순간이 왔군요.
그대들 독일인들은 (항복으로) 평화를 보장받았으며, 우리도 평화를 부여해 줄 용의가 있습니다.
이 조약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루게한 결과로 나타난 산물이니만큼, 
평화의 영속을 위해서라도, '충분한 경계와 보장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 1919년 5월 7일, 베르사이유궁(宮) 회담장에서 독일 대표단에게 일갈하며
                                           조르주 클레망소(George Clemenceau)





* 짤방은 1974년판 1차대전 종전 기념 팸플릿에서 인용.



덧글

  • 김진희 2012/11/11 15:09 # 답글

    그리고 21여 년 후 저것이 다시 반복됩니다.
    다만 그때의 갑은 아돌프 히틀러....
  • 에드워디안 2012/11/11 23:14 #

    다시 5년이 지나 랭스에서 상황종료.
  • 리리안 2012/11/11 15:17 # 답글

    이 회담 이후에 케인즈가 쓴 책이 일품이라지요...
  • 에드워디안 2012/11/11 23:14 #

    <평화의 경제적 귀결> 말씀이시군요. 그 귀결은 파시즘의 도래와 또 한차례의 세계대전이었지요.
  • 백범 2012/11/11 15:28 # 답글

    1871년에는 프랑스가 처참하게 발렸었는데 말이죠.
  • 에드워디안 2012/11/11 23:15 #

    근대 이후의 전적으로 따지자면, 2對2 동률 스코어(...) 애증의 독불관계입니다.
  • 백범 2012/11/12 12:56 #

    비시 정부에 대해 비이성적일만큼 히스테리를 보인게, 나름 이유가 있긴 있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렇지만 죄없는 사람들까지 희생시킨 것은 용납하기가 힘들죠.
  • 에드워디안 2012/11/13 10:30 #

    드골 임시정부의 정통성 확보를 위한 프로파간다적 성격이 강했던게죠..
  • 파파라치 2012/11/11 16:21 # 답글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종전 조약의 가혹함보다 독일 국민들이 패전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데 있을 겁니다.
    2차대전 때처럼 연합군이 베를린으로 밀고 들어가서 점령해 버렸으면 등뒤의 일격이니 뭐니 하는 소린 나오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그런 점에서 루덴도르프의 "민간 정부에 책임 떠넘기기"는 대성공인셈...
  • 에드워디안 2012/11/12 03:33 #

    뭐, 연합국으로서도 국내외 염전사상과 인명피해를 의식(스페인 독감또한 유행중이었으니)할 수밖에 없었던 입장인지라 냉큼 조기종전으로 기운 것이고, 전범재판마저 아예 넘어가버린 탓인데... 돌이켜보면, 책임회피의 시간과 소재만 제공해준 이상 씁쓸할 따름이죠. 궁극적인 원인은 프로이센식 군국주의-경찰국가 시스템하에 지배계층의 여론조작이 수월했다는 점, 거기에 길들여져온 대중의 타성적 관념이 가장 화근이라고 봅니다만. 더군다나, 바로 얼마전까진 '브레스트-리토포스크의 성취'로 도취되었다가 난데없이 패전이라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느껴지고도 남았을 겝니다. 자기기만과 근시안의 대가치곤 후세에 미친 악영향이 엄청났죠.;;
  • 까마귀옹 2012/11/11 16:31 # 답글

    확실히 20세기 초의 프랑스 외교를 보면 참 뭣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대독 외교.
  • 에드워디안 2012/11/12 03:28 #

    그렇게 치부하기엔 키더렌류 얼치기들이 설쳐댄 빌헬름시대 독일의 외교적 병크도 만만치 않은지라...;;

    오히려, 독일측 약점을 역이용해 3국협상을 유도해낸 델카세의 수완이 돋보였죠.
  • 셔먼 2012/11/11 19:12 # 답글

    저때 프랑스가 독일에게 내린 배상금만 135만 마르크였다지요...
  • 김진희 2012/11/11 23:14 #

    그리고 독일은 이십여년 후 프랑스 자체를 먹어버리는데....
  • 에드워디안 2012/11/12 03:16 #

    셔먼//

    배상문제와 관련해 의견을 조정하다 1921년 처음 낙착된 액수가 무려 1320억 금화 마르크였는데, 개전 전해인 1913년도 가치로 환산, 독일 GNP의 약 2.5배에 해당한 수치입니다...;; 대공황 직전까지 소위 도스안, 영안 등의 추가조정과 루르지방 점령사건 같은 파문은 차치하고, 32년도 로잔회의에선 30억 마르크로 감액되는 선까지 나아갔으나, 그마저도 힛통이 생까는(...) 바람에 흐지부지 되버렸죠. 다만, 2차대전 후 서독정부와 연합국간의 채무협정에 의거 1차대전 배상금 지불을 재개했으며, 재작년에야 상환이 완료된 것이구요.

    김진희//

    얼마 못가 전쟁에서 또다시 패배하고, 나라 자체가 분단.ㄳ
  • Montcalm 2012/11/11 19:59 # 답글

    가혹한 조건을 내건건 좋았는데.. 문제는 강제할 능력이 없었다는게.. 사실 정확히 말하면 강제할 의사도 그닥..;
  • 에드워디안 2012/11/12 03:23 #

    채무자 신세로 영미의 눈치보기는 프랑스도 마찬가지였으니깐요. 클레망소와 푸앵카레가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국제공조'를 중시하는 급진당 좌파의 득세로 대독자세가 다소 완화된 점도 감안해야겠죠.
  • 누군가의친구 2012/11/11 20:01 # 답글

    쥐어짤수 있을 만큼 쥐어짜겠다는게 클레망소의 입장이었죠.ㄱ-
  • 에드워디안 2012/11/12 03:24 #

    막상 현실은 시궁창.
  • PKKA 2012/11/11 20:41 # 답글

    너무 잔혹했던 클레망소 호랑이 할배입니다. 링크 신고 합니다.
  • 에드워디안 2012/11/12 03:24 #

    호랑이가 장담한 20세기 버전 '카르타고식 평화'는 4반세기에 걸친 또다른 폭풍우를 동반해온 셈입니다.

    ps. 링크 감사드립니다.
  • 백범 2012/11/12 12:57 #

    그 전에 프로이센한테 당한 것을 생각한다면야...
  • 에드워디안 2012/11/13 10:36 #

    백범//

    보불전쟁도 나폴레옹 3세의 외교실책으로부터 빌미가 제공되서리... 프로이센이 배상금 지불기한내 점령으로 끝낸 것에 비하면, 수십배는 되갚아준 건데 '독일, 너 죽어' 이런 소리나 매한가지 아니었겠음?ㄷㄷㄷ;;
  • 2012/11/12 14:0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sa 2012/11/13 05:32 # 삭제 답글

    일본 독립얘기가 오갈때 달라스가 애치슨에게 이랬다지요

    "일본을 지난날의 독일처럼 만들어선 안됩니다"
  • 에드워디안 2012/11/13 10:38 #

    그 덜레스가 베르사이유에선 '독일의 극악무도한 범죄'를 강조했다는 사실이 역설적입니다.ㅋ
  • 메이즈 2012/11/15 22:23 # 답글

    1차대전 시기와 2차대전 시기 독일인들의 책임의식의 차이도 원인이라고 봅니다.

    2차대전 당시에는 전쟁의 주체가 독일이며 그 목적이 인종주의적 침략 전쟁이라는 게 명백한데다(인류 역사에서 찾기가 극히 어려운, 절대악에 대한 응징 중 하나가 바로 2차대전입니다) 상식적으로 인간이라면 하기 힘든 만행이 워낙 많이 저질러진 탓에 책임 의식을 가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죠. 즉 피할 구석이 없었고 제대로 된 반성만이 살길이었다는 게 철저한 반성과 각성을 낳은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반면 1차대전 때는 전쟁의 주체가 독일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인데다 전쟁의 목적도 오스트리아와의 동맹을 지켜 프랑스와 러시아를 패배시키는 정도였고 반인륜적인 만행도 거의 저질러지지 않은 탓에(없진 않습니다만 대체로 신사적인 편이었죠) 책임의식을 피할 구석이 꽤 많았습니다. 즉 책임회피에 아주 유리한 조건이 조성되었던 셈이죠. 개인적으로는 이 상황에서 독일이 점령당했다고 해도 이를 더 갈면 갈았지 반성했을 것 같진 않습니다.
  • 담배피는남자 2012/11/22 16:53 #

    비록 총력전이라는 개념이 생겨나서 민간인도 허리 휘어지게 고생했지만
    직접적인 살육의 대상은 아니었죠. 1차대전까지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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