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에 눌러앉은 폴란드 국제, 시사


폴란드가 짊어진 240억$에 해당한 외채가 오히려, 폴란드를 구제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모스크바가 68년도의 체코사태와는 달리 폴란드에 대한 무력침공을 쉽사리 결정내리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다름아닌 침공후에 떠맡아야할 방대한 외채의 뒷처리 때문이며, 서방제국에서 폴란드 사태를 결코 강건너 불로만 쳐다볼 수 없는 이유도 지난 10여년간 공여해준 차관, 엄청난 빚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방측은 폴란드의 파산을 막고자 새로운 차관을 제공하는 전제조건으로 경제 시스템을 보다 자유화하는 개혁을 요구하고 나서, 외채문제는 단순히 돈거래의 차원을 넘어 체제 자체의 문제와 직결시되었다. 잠정 휴지기로 들어간 폴란드 사태는 점차 외채상환의 화제로 귀착되고 있다. 새로운 차관공여를 받아내지 못할 경우,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식량과 생필품의 수입이 불가능해져 또다른 불만이 고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폴란드의 대(對)서방 부채는 약 35~40%가 각국의 정부기관 및 정부 보증에 의거해 제공된 것이고, 나머지는 주로 민간은행들의 상업용 차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차관들은 상환기간 3~5년기한의 비교적 단기차관이어서 81년도 이내로 당장 80억$가 상환기간이 도래할 예정이다. 그밖에도 생필품 및 원자재 수입에 필요한 자금 35억$를 포함, 폴란드는 금년중에 최소한 115억$를 다시 조달해야만 나라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는 형편이다.

전통적인 농업국이었던 폴란드는 2차대전후 소련식 모델을 본받아 중공업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70년대에 들어와 데탕트 무드에 힘입어 동구권에서는 처음으로 서방은행에 접근하는데 성공, 대규모 차관을 들여와 각지에 콤비나트를 건설했다. 그러나, 비효율적인 경제관리, 관료 부패, 노동규율 저하로 말미암아 생산성이 저조한데다, 오일쇼크로 수출의 부진, 공장 가동을 위한 원자재 수입 부담은 가중되어 부채폭이 갈수록 확대되었다.

1980년, 폴란드는 63억$ 수출에 80억$ 수입으로 17억$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는 공산화 이후로도 뿌리깊은 농업국의 전통을 무시할 수 없어 전체 경작지의 75%를 사유로 인정한 채, 25%만을 국영화했다. 그러나, 정부는 수요량의 20%밖에 차출해내지 못하는 국영농장에 대한 지원만 강화했고, 편법으로 사유지 몰수를 꾀함으로써 이농(離農)현상을 가속화, 농민의 사기를 저하시켜 농업생산 부진을 초래하였다.

서방의 금융전문가들은 폴란드가 부채문제와 관련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세가지로 분석한다.

1. 일정기간, 대외채무에 대한 지불유예를 선언할 것.

2. 이자만 지불하면서 원금의 상환을 보류할 것.

3. 당장, 상환기한이 도래한 원리금은 지불해가며, 전체적인 상환기한의 재조정을 추진할 것.

2년전, 터키가 취했던 방식과 똑같은 1번의 방식을 채택할 경우, 폴란드의 모든 해외자산은 동결되고, 현금지불이 아닌 모든 수입이 금지된다. 2번의 경우, 역시 해외자산 동결을 제외하고는 1번과 같은 효과를 가져와 식량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야하는 폴란드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방식이다. 결국, 유일한 해법은 차관을 얻어 다시 채무를 갚아나가면서 장기적으로 부채를 축소시켜나가는 3번밖에 없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폴란드에 차관을 제공중인 프랑스, 영국, 서독, 일본, 미국, 이탈리아, 스웨덴, 벨기에, 스위스, 캐나다 10개국은 장차 파리에서 비밀회담을 개최, 대(對)폴란드 차관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다. 서방측은 대체로 상환기한이 도래한 채무를 갚기 위한 차관의 제공에는 이의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폴란드가 희망한 새로운 추가차관엔 서방 금융기관들로 구성된 은행차관단을 구성, 이행해야할 부대조건을 붙여서 제공한다는 태도로 나올 듯 하다.

부대조건이란, 폴란드가 서방측의 부채를 지속적으로 상환할 수 있도록 물가체계를 현실화하고, 임금을 억제하여 소비 수요를 줄이는 동시에 수출을 촉진시켜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곧, 폴란드 경제의 대개혁을 의미한다. 또한, 폴란드는 세계은행 등으로부터 보다 유리한 장기차관을 얻고자 IMF에의 가입도 추진중인데, 이렇게 된다면 폴란드 정부는 모든 경제지표를 자세히 공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새로운 개혁과 변화를 각오해야 한다.

폴란드의 IMF 가입이 현실화될 경우, 단계적 외환 자유화를 구상중이라는 헝가리 역시 가입을 신청하고 나설 것이 분명하리라 예상된다. 그렇다면, 유고나 루마니아와 더불어 동구권 IMF 회원국이 4개국으로 확대, 코메콘 체제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 소련이 허용해 줄 것이냐는 의혹도 문제다. 추가차관을 제공하면서 제시한 조건을 폴란드 공산당이 악용, 민생 피폐화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내세우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있다.


덧글

  • Kael 2013/01/28 22:29 # 답글

    이 글을 보고 나니... 폴란드 자유노조 운동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게 1980년 외채사태 이후인데 자유노조 운동과 외채사태가 어떤 연관이 있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네요.
  • 지나가던과객 2013/01/29 01:38 # 삭제 답글

    그러면 우리도 중국과 러시아의 침공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에 대량의 빚을 지는 방법을 쓰는 것도......
  • KittyHawk 2013/01/29 17:48 # 답글

    역시 모든 문제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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