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주변정세 국제, 시사


지난해 가을부터 동북아시아 외교, 그러니깐 미중(美中)관계와 중일(中日)관계의 변화에 따른 파고가 소용돌이친 이래 암영(暗影)이 드리우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북한의 계속되는 대남(對南) 도발은 이같은 지적의 타당성을 입증했으며, 향후의 주변정세도 낙관할 수 없게끔 위기감을 조성시켰다. 동북아 태풍의 눈, 조선반도의 불안 요소는 두 가지로 집약된다. 소련 극동군의 군사력 증강과 예측을 불허하는 북한의 호전성이 그것이다.

최근, 미(美) 태평양지구 사령관 와이즈너 제독은 <아태(亞太)지역 미(美) 군사력 동향>이란 논문을 통해 경고하고 나섰다. 하와이 서쪽에 배치된 미군 병력은 14만명으로 진주만 공습 이래 최저의 수준을 기록한 반면, 소련은 전체병력의 1/3을 극동에 배치, 서태평양의 제해권을 노리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하와이대(大)의 러멜 교수도 계간지 <한국과 세계문제>에 기고한 '소련의 전력과 동북아'라는 논문에서 비슷한 논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동북아는 1만 5250대의 탱크, 2만 9천문의 포(砲), 240척의 대형군함을 포함한 1700척의 함정, 220척의 잠수함, 7900대의 폭격기와 전폭기, 7300대의 전투기, 292개 사단 6백만명의 병력이 집결된 최대의 군사대결장이다. 그 긴장의 근원지는 북만주와 조선반도이다. 소련이 극동에서 미국, 중국, 일본 3각(角)세력과 대결해야한다는 점, 월남전 이후 위축일로인 미국의 영향력은 극동의 군사 균형을 유동적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일로(日露)전쟁 당시 쓰시마에서 참패했던 제정(帝政) 러시아의 쓰라린 경험을 지닌 소련이 일본해(日本海)에서의 제해권 쟁탈을 노린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소련은 이미 최신예 SS-20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핵잠수함 등을 극동기지에 배치했고, 키예프형 항모용 도크 설치와 백파이어기 배치계획에 이르기까지 극동의 육해공군을 대폭 증강하는 움직임이다. 소련 극동군 증강이 조선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여러 논의가 있다.

작년 11월, 일본 동경에선 '동아시아에 있어서 새로운 평화체제의 추구'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여기서 미국의 스코트 톰슨 교수는 북한의 대남 군사력 우위, 북중관계의 긴밀화에 대한 소련의 견제를 감안할 때 소련이 북한을 앞세워 전시효과가 높은 한국을 자국의 전략적 우위 과시장으로 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가장 커다란 관심이라면 최근의 주변정세에 북한이 어떻게 대응해 나올것인가에 달렸다.

이에 대해 서울대 김학준 교수는 2개의 대립되는 견해가 있다며 전제한다. 하나는 새로운 극동체제가 출현함으로써 포위감을 느낀 소련이 북한과 밀착, 대남 무력도발을 기도하거나 북한이 남한과의 경제력 격차에 초조해진 나머지, 이상행동을 취하는 등 계속 호전적인 자세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모사후(毛死後), 중공의 개방노선을 따라 경제건설을 우선 추진하고, 전면 도발보단 남측의 불안감 조성을 위한 국지 도발의 '가능성'이다.

반면, 연세대 정진위 교수는 중공이 현재의 실용정책을 추구하게 되기까지, 문혁(文革) 이래 수많은 진통을 겪어온 점으로 미루어 훨씬 교조적인 북한이 쉽사리 북경의 전철을 답습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러한 전제하에 오히려, 알바니아의 사례처럼 국내 통제의 고삐를 강화, 긴장 속도가 가속되리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폐쇄적이고 베일에 가려진 김일성 체제의 존재 자체가 주변 4강(强)의 변수보다 더욱 불확실한 요인이다.

여러가지 사정에서 지난 2년간 카터행정부의 극동정책은 많은 우려를 자아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주한미군의 철수로 인근제국에 불안감을 심어주고, 김일성에게 오판의 빌미를 제공해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작년 8월, 북한의 권력서열 변동에 의해 대남공작책 김중린이 재기용된 것은 새로운 대남 도발의 신호탄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동북아 화해무드에 아랑곳없이, 남북대결의 긴장감은 단시일내로 해소될 성질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덧글

  • KittyHawk 2013/03/11 20:10 # 답글

    역시나 도움이 안 되는 카터... 이란 문제부터 여러모로 자유진영에 골치거리들을 안겨줬으니...
  • 갈천 2013/05/13 15:02 # 삭제 답글

    1. 이 자료의 생산자가 누구인지 궁금하군요. 한국정부인가요?

    2. 1979년 북한의 대남공작책 김중린이 재기용되었다고 하는데, 신경완의 글을 보면 김중린은 1975년 말 역대 대남사업실패에 대해 총책임을 지고 실각되었다고 합니다. 복권을 했다해도 김중린은 이미 실무권한이 없는 허수아비가 된 상태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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