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도부 인사개편의 배경 국제, 시사


중국공산당 제5기 전인대 상무위 17차 회의의 의결로 3월 6일 단행된 국무원내의 대규모 개각(改閣)은 여러면에서 중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번 개각은 국방상을 비롯한 14개 부처의 각료 및 각료급 인사를 일거에 교체했다는 내용인데, 작년 9월 제5기 전인대 3차회의에 이어 반년만의 인사 개편이다. 가장 특기할 만한 점은 신중국 성립 이후 최초의 비(非)현역, 문민(文民) 국방상 출신으로 경표(耿飇)가 기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제5기 전인대 3차회의 당시 조자양(趙紫陽)이 화국봉으로부터 총리직을 인계받은 이래 개각은 예견되어온 것이다. 혁명 1세대 원로파 각료들에겐 고문 직책을 부여, 일선에서 후퇴시키는 한편, 신진 관료를 기용하여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것이다. 다만, 이번 개각에서 대외무역부장, 경공업부장의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은 점을 미루어, 등소평과 조자양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한 것은 아니며, 차후에 부분적인 개각이 재차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하는 개각 각료의 명단.


* 국방부장 : 경표(耿飇)
* 석유공업부장 : 강세은(康世恩)
* 농업부장 : 임호가(林乎加)
* 국가가족계획위원회 주임 : 진모화(陳慕華)
* 국가경제위원회 주임 : 원보화(袁寶華)
* 국가기본건설위원회 주임 : 한광(韓光)
* 대외문화담당국가위원회 주임 : 황진(黃鎭)
* 교통부장 : 팽덕청(彭德淸)
* 우전부장 : 문민생(文敏生)
* 방직공업부장 : 학건수(郝建秀)
* 제1기계공업부장 : 요빈(饒斌)
* 전력공업부장 : 이붕(李鵬)
* 국무원 비서장 : 두심원(杜心源)
* 당(黨) 고문 : 이강(李强)


여하간, 인사개편은 최고 실권자 등소평을 위시로 한 실용파 3두마차 즉, 등소평, 호요방, 진운(陳雲)의 지배체제가 확고하게 굳어졌음을 의미하고, 당 세대교체 문제가 실현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입증해주었다. 또한, 4개 현대화 프로젝트의 열성적 추진자인 '약진파'의 여추리(余秋里), 곡목(谷牧)도 부수상직에서 물러났다. 이것은 경제방면의 성급한 개혁에 제동을 걸며, 일정기한내 조정기를 갖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개각'이라고는 하지만, 1당독재체제하 내용상 한계야 불가피하다. 속살을 들여다보면, 국무원 내부에서의 승진과 각료 안배, 자리바꿈에 지나지 않아 '같은 술에 상표만 새로 붙인 것'으로 중공의 인재난을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14개 부처 책임자의 교체라는 점, 모사후(毛死後) 권력투쟁을 청산한 실용파가 그 노선을 행정면으로 뒷받침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중국 내정(內政)의 향방을 가늠하는 단서를 제공한 만큼, 의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국방상 교체와 관련하여 와병중인 화국봉파의 서향전(徐向前) 역시 경질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이었다. 450만 대군을 감독하는 후임에 주은래-등소평 라인의 경표가 앉은 것은 군(軍) 현대화 및 대외협력을 추구하려는 변화를 암시한다. 대장정에 참가하고, 당 군사위 비서장직을 수행한 경력은 있지만, 신중국 성립 이후론 줄곧 외교활동에 전념해왔던 경표는 대(對)서방 협력을 통해 중소대립, 중월전쟁 휴유증 타개에 나설 듯 하다.

인구대책을 염두에 둔 가족계획위원회의 신설도 주목가는 대목이다. 10억에 도달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구증가로 말미암아 경제성장의 효과 상쇄를 방지하고, 4개 현대화와 인민의 생활수준 향상을 촉진시키기 위해선 포화상태에 다다른 인구의 억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1가구 1자녀 정책이 더욱 철저히 시행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등소평이 역설한 공산당내 세대교체 물갈이, 특히 이붕의 전력공업상 기용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부(副)전력부장 7명중 최하위 서열로 52세의 이붕이 일약 부장으로 승진한 것은 소련과 더불어 대표적인 노인정치 국가 중국에 있어서 획기적 사례이다. 여기서, 중공 지도층이 젊고 유능한 소장파들에게 행정을 일임하려는 의욕을 읽을 수 있고, 곡목 등을 해직시켜 국무원 고문 간판만 내려준 조치는 원로 간부에 대한 인사정책 방향을 단적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번 인사엔 화국봉파에 대한 인책 의미가 오히려 적다는 시각도 많다.

일례로, 지난해 가을 발해만(渤海灣) 석유시추시설의 붕괴사고로 석유부장직을 박탈당한 송진명(宋振明)의 경우를 감안하면, 감독 책임을 맡았던 강세은이 대신 석유상에 임명된 것은 인책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또한, 북경시장 재직시 시정(市政) 실패로 비난받은 임호가가 농업상에 임명된 사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번 개각은 화국봉 1인의 책임만 묻고, 나머진 '융화'라는 명분하에 무마한 선의 화해적 성격이 짙다고 하겠다.


덧글

  • 위장효과 2013/03/18 23:52 # 답글

    조자양 이붕 호요방 진운...참 옛날 이름이네요^^. 마오대인 사후 한동안은 화국봉이 권력잡고 계속 이어갈 거 같더만 결국 부도옹이 최종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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