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이 다 뭐냐? 잡소리





후량(後梁) 태조(太祖) 주전충(朱全忠)하면, 당제국(唐帝國)을 찬탈해 5대(五代)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스타트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주전충 자신은 본래 황소(黃巢)의 휘하 무장으로 비적 출신이었으며, 주전충 정권 자체가 황소군단에서 명패만 바꾼 것에 다름아닌 탓에 후세의 평가는 별로 좋지 않았다. 실제로, 후량왕조는 종실 구성원들 사이에 살벌한 기풍이 강한데다, 교양이 부족하여 치자(治者)로서의 자격이 부족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주전충의 숙적 이극용(李克用)-이존욱(李存勗) 부자가 세운 후당(後唐)은 대당제국(大唐帝國)의 계승자를 자임했던 만큼 후량을 역적으로 규정했고, 북송시대에 편찬된 사료집 <책부원귀(冊府元龜)>에서도 후당 이후의 4대왕조는 정통으로 간주하지만, 후량에 대해선 참위부(僭僞部)로 분류하여 차별을 명확히 했다.

이같은 태생적 한계와 혹평에도 불구하고, 반면 주전충의 재평가도 음미해 볼만한 대목이다. 만당(晩唐)시대 내내 궁정(宮廷)의 암적 존재로 군림해 온 환관세력을 일거에 숙청시킨 점이라던지, 당조의 귀족정치하에서 상대적으로 등용되지 못한 채 불우한 상태에 놓여있던 하급사인(士人)을 발탁해 과감하고도, 현실주의적인 시책을 펼쳐갔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후량 정권에 등용된 하급사인 대다수는 당조말기, 과거시험에 낙제하여 당나라에 애착을 지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명분과 허례를 싫어하는 현실주의자들이었다. <통감(通鑑)>에 기재된 에피소드로, 주전충이 즉위하기 직전 개봉(開封) 교외의 어느 버드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할 때였다. 버드나무를 바라본 주전충이 혼자서 '이걸로 수레를 만들어야 한다'며 중얼거리자, 앉아있던 유객(遊客) 몇몇이 맞장구를 치며 지껄였다.

그러자, 주전충은 갑자기 언성을 높이더니 '서생(書生)이 구미에 맞춰 사람놀리기 좋아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병신같은 놈들. 수레는 반드시 느릅나무를 끼워서 만들어야 하거늘, 어찌 버드나무로 만든다는 게냐?!'라고 외치며 장사(壯士)들에게 시켜 유객들을 그 자리에서 곤봉으로 쳐죽였다고 한다. 수레의 재료가 어떤 나무인지 기본적인 이치조차 모르면서 실생활에 도움되지 않고, 남에게 훈수두길 좋아하며, 고상한 척하는 인텔리야말로 주전충에겐 경멸스럽고, 혐오가는 존재였던 것이다. 당나라 최후의 귀족관료 30여명을 '탁류(濁流)'에 빗대어 황하에 수장시킨 '백마(白馬)의 화(禍)'도 그의 반당(反唐)의식과 인텔리 계층에 대한 혐오감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처럼 좋고 싫음이 분명한 성격에다, 과격했다는 주전충에게 즉위 당시의 또 한가지 재밌는 일화가 있다.

당나라 마지막 황제 소선제(昭宣帝, 哀帝)로부터 선위받아 등극한 주전충은 개봉 궁전의 현덕전(玄德殿)에서 크게 연회를 열어 신료들과 더불어 춤추고, 먹고 마신 연후에 종실 인척들을 모아 주사위로 도박을 즐겼다. 술이 거하게 무르익자, 주전충의 친형인 전욱(全昱)이 주사위를 던져 술병을 깨뜨리고 눈을 부릅뜬 채 경고했다.


"주삼(朱三, 셋째라는 뜻)아! 너는 본래 탕산(碭山)의 일개 백성으로 황소를 따라 도적이 되었다. 그럼에도 천자께선 너를 4진(四鎭)절도사로 삼아 부귀가 극에 달했건만, 어떻게 하루아침에 당가(唐家) 3백년 사직을 멸망시켜 스스로 제왕을 참칭하느냐?! 그 행동으로 보아 마땅히 멸족당할 것이니, 도박이 다 뭐냐!"


연회는 곧바로 해산되었으나, 형의 일침으로 주전충의 성장 배경이 들춰져 망신당한 셈이었다.



덧글

  • 위장효과 2013/06/05 17:33 # 답글

    주온의 막장 행각에 대해서는 정말 별의 별 게 다 있죠-역대 황제중 보기드문 색마이자 살인마였고...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