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美日)통상항해조약의 폐기 세계사






미(美) 국무성이 워싱턴 현지시각으로 7월 26일, 일본정부에 6개월 기한 예고로 1911년 체결된 통상항해조약안의 폐기를 통고했음을 발표하였다. 이날 오후 4시, 세이어(Sayre) 국무차관보는 스마(須磨) 참사관을 호출해 미국측의 의향을 설명하며, 헐(Hull) 국무장관 명의로 호리노우치 겐스케(堀內謙介) 주미(駐米) 일본대사에게 보내는 통첩을 전달해주었고, 급보를 받은 호리노우치 대사는 여행중인 버지니아에서 워싱턴으로 귀임한데 이어 와카스기(若杉) 뉴욕총영사도 동행하여 신(新)조약 교섭에 만전을 기하도록 했다. 본(本)조약은 메이지(明治)44년 2월 21일 체결 ・조인되고, 같은해 4월 4일부터 발효된 것인즉 지난 28년간 우호관계를 증진하는데 적지않은 공헌을 하였지만, 이제 미국과 일본은 페리 내항(來航) 이래 처음으로 '무(無)조약시대'를 맞이하게 된 셈이다.

물론, 보통 통상조약이란 유기한과 무기한의 두가지 방식이 있는데, 그것이 유무(有無)기간에 조약 당사국의 어느 일방(一方)이 하등의 불편함을 느낄시엔 일정한 기한부로 해당조약건의 폐기를 통고할 수도 있다. 이는 국제관례상 이상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미국이 돌연히 일본과의 통상조약 폐기를 통고한 연유는 무엇일까? 통첩문 중에 소위 '조약이 체결된 목적을 보다 바람직하게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고려가 필요하게 되었다'는 결론은 작위적인 구실에 불과할 뿐, 지나사변(支那事變, 中日戰爭)을 둘러싼 극동 권익(權益)문제가 진정한 의도 저변에 깔려있는게 아닐까? 근좌에 일본 면제품의 대미(對米)수출이 왕성해지자, 미국으로선 방어책을 강구하고자 여러가지로 고려한 결과, 행정부가 자국내 민간재계의 요구에 부응했다는 주일(駐日) 미국대사관의 관측도 주목간다.

아리타 하치로(有田八郞) 외무대신은 히라누마(平沼) 수상이 동석한 가운데 7월 28일의 정례각의(閣議)에서 27일, 미국으로부터 일미(日米)통상항해조약 폐기에 관한 통고를 접수했다는 사실을 보고, 전말과 통고 내용건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는 동시에 각료들의 질문에 답해가면서 미국의 대일(對日)노선을 두고 견해를 피력했다. 제국(帝國, 日本)으로선 금번의 문제에 냉정하게 사태추이를 관측하는 한편, 미국외 기타제국(諸國)에 관해서도 이같은 경우에 대처할 만한 제반대책은 벌써 수립하고 있으므로, 한층 정비해 유감없을 준비를 갖추어 가기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리고, 제국정부는 향후에 체결될지 모르는 새로운 대미(對米)조약에 적극적으로 공작하진 않을 것이며, 미국측의 태도 여하를 기다려 시의적절한 조치를 취하고자, 정관 태도를 고수할 방침이라 한다.

7월 27일 오후 3시까지 동경의 외무성엔 조약폐기 통고와 관련한 공전(公電)이 도착하지 않았으나, 최근 미국내의 불가해한 정치동향과 존슨(Johnson) 주지(駐支, 駐中) 미국대사의 언동 등으로 말미암아 추측컨대, 미국측이 조만간 대일조처를 구사하리란 점은 예상되어온 바이다. 모든 경우에 맞서 대비한 만큼 일본으로선 새삼스레 놀랄 이유가 없으며, 동아신질서(東亞新秩序) 건설이란 중대사명 달성을 위해 약간의 마찰이나 알력도 일찌감치 각오, 제3국의 그 어떠한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의연히 배제해버리겠다는 강경한 결의를 다졌다. 설령, 미국에서 신(新)조약의 체결 의향을 시사하더라도 제국정부는 미국정부의 진의(眞意) 여부야말로 일미(日米) 양국간 국교 조정의 기본적 요건이라 전제, 오히려 미국 입장에서 동아사태 인식의 호기(好機)로 작용하진 않을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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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간 미합중국 정부는 미국과 기타 국가간에 존재하는 통상항해조약에 대하여 조약이 체결된 목적을 보다 바람직하게 달성하기 위해 어느정도의 변경이 필요한지 결정하게끔 목표로 삼아 검토중에 있다. 상기 검토를 통해 미합중국 정부는 지난 1911년 2월 21일, 워싱턴에서 조인된 미일통상항해조약이 '새로운 고려'가 요구되는 조항을 포함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한 고려에 따른 준비공작과 사태에 대응, 미국인의 권익을 보호 ・증진시키고자 합중국 정부는 본(本)조약 제17조에 규정된 수속에 의거, 조약기한의 만료를 희망하는 뜻을 통고한다. 통고한 이상, 본(本)조약과 부속(附屬)의정서는 금일로부터 6개월 이후 만기될 것이라 기대한다. 



                        1940년 6월 29일, 뉴욕 만국박람회장을 시찰방문한 호리노우치 대사와 와카스기 총영사



덧글

  • Niveus 2013/07/29 10:42 # 답글

    이래저래 저때부터 국제외교에 그리 밝지 않았던 일본은 고립되기 시작하는거로군요.
    ....뭐 3국동맹이야 그렇다 치지만 다른점에선 정말 외교력이 황이었다는게;;;
    .......더 슬픈건 저놈들이 그나마 아시아권에선 가장 외교를 잘했다는건데(...아;;;)
    (사실 당시 멀쩡히 주권 가지고 있던 나라가 몇개 없어서일지도 모르지만 해방후에도 그모양인걸 보면 그냥 경험이 없다보니 생긴 문제들같기도함)
  • 心月 2013/07/30 22:25 #

    다른건 몰라도, 고노에 성명만큼은 레알 일본외교사 최악의 병크로 남는데 부족함이 없을 듯 합니다.;; 하기사, 섬나라라는 한계와 도쿠가와시대 쇄국노선, 전후의 대미의존이 일본인의 외교감각을 무뎌지게 만들었다지만, 중화제국만 바라보며 우물안 개구리였던 우리도 큰소리칠 입장은 못된다는게 함정.
  • 위장효과 2013/07/29 17:08 # 답글

    그리고 그 끝에 있는 건...오퍼레이션 다운폴이냐 리틀보이와 팻맨의 방문이냐...
  • Kael 2013/07/29 18:42 # 답글

    저렇게 기존 조약을 파기하게 되면 미국과 일본은 전후에 통상항해조약을 다시 했다는 이야기인데
    언제 다시 통상항해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나요?
  • 心月 2013/07/30 22:09 #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발효되어 재독립한지 1년쯤 지난 시점, 그러니깐 1953년 4월 2일자로 새로운 통상조약에 합의했습니다. 패전후 일본이 연합국과 체결한 최초의 통상조약이기도 했구요.
  • 재팔 2013/07/30 05:56 # 답글

    아아, 이제 대동아전쟁으로 나아가는~(퍽!)
    진짜 바지저고리 원로 사이온지 대신에 저때까지 (좀 무리지만) 야마가타 아리토모나 이토 히로부미 정도가 살아있었으면,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했을 텐데 ㅋㅋㅋ
  • 心月 2013/07/30 22:03 #

    대한독립에 일조하시려는 신의 한수~(퍽!) 괜시리 대동아전쟁기의 重臣들은 輕臣으로 불려야한다는 조소마저 나오는게 아니죠. 군부와의 대립을 무마시키려는 일환에서였다지만, 사이온지 역시 상해사변-열하작전 견제를 위한 중신회의 개최 반대나 책임회피 행태로 호감도를 갉아먹은 편이고...-_-;
  • ㅎㅎㅎ 2014/08/17 03:41 # 삭제 답글

    미국이 어떤 놈들인데.. ㅎㅎㅎ 그냥 지 먹을떡을 내려놓겠수. 꼭두각지 줄이 안 보일뿐이겠지 ㅎㅎ
  • ㅎㅎㅎ 2014/08/17 03:42 # 삭제 답글

    드런 놈한테 걸리더니.. 더러운 짓을 우리한테도 한게지요 일놈이 어찌한지 보면 양놈이 일놈한테 어찌한지도 보일게요
  • ㅎㅎㅎ 2014/08/17 03:44 # 삭제 답글

    양놈들에 저 문서 짓거리를 오늘 일놈들이 문서짓거리를 아주 고급고상으로 지랄을하네. 무식한놈보다 지능적인놈들이 더 지랄에다발광까지을하는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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