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9월 28일, 4개국 정상회담 참석차 뮌헨역에 도착한 무솔리니와 히틀러
1938년 9월 29일, 뮌헨의 오베르 비젠펠트 공항에 도착한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
독일군 의장대를 사열중인 체임벌린, 오른쪽은 독일 외상 리벤트로프
리벤트로프, 달라디에(Daladier), 요셉 바그너(Josef Wagner), 카를 휠러(Karl Fieler)
무개차에 탑승해 회담장으로 이동중인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와 리벤트로프
나치당 간부들과 체임벌린, 그 우측은 헨더슨(Henderson) 주독(駐獨) 영국대사
영불(英佛) 정상들의 맞이로 분주한 오베르 비젠펠트 공항, 1938년 9월 29일 촬영
정상회담 개최지로 4국 국기가 게양된 뮌헨의 총통관저, 1938년 9월 29일
관저내 홀에서 한 컷, 최우측 나치 완장을 두른 자가 히틀러이다.
뮌헨역 광장에서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환영하는 시민들, 1938년 9월 28일
1938년 11월 8일, 뮌헨폭동 15주년 축하행사를 위해 도열한 나치 친위대
뮌헨폭동 '순교자' 추도식이 거행중인 오데온(Odeon) 광장의 장군기념당
동일 장소의 40년후 풍경, 기념당 자체는 1844년 준공된 것이다. 1978년 8월 촬영
괴링과 히틀러, 뒷줄 오른쪽은 알프레드 로젠베르크. 1938년 11월 9일 촬영
맥주홀에서 나치당 간부들을 상대로 폭동 15주년 축사(祝辭)를 낭독하는 히틀러
수정의 밤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소집한 괴벨스, 1938년 11월 10일
1939년 2월 25일, 뮌헨 총통관저의 나치당 간부 연회에 참석한 히틀러
오스트리아 나치당의 실세이자 담당장관 자이스-잉크바르트(seyss-Inquart)
약제사 출신의 총통 보좌관, 율리우스 샤우프(Julius Schaub)
관방장관이자, 총통의 재산관리인 노릇을 했던 마르틴 보어만(Martin Bormann)
자이스-잉크바르트, 힘러(Himmler) 부부와 담소중인 히틀러
요제프 뷔르켈(Josef Burckel)과 오이겐 폰 쇼베르트(Eugen von Schobert) 장군 부처
뉘른베르크 시장(市長) 프리드리히 빌헬름 라이벨(Friedrich wilhelm Liebel)
기행의 화신으로 이래저래 말들이 많았던 부총통 루돌프 헤스(Rudolf Hess)
1939년 3월 26일, 메멜(Memel) 방문을 마치고 뮌헨으로 귀환한 히틀러
1939년 7월 16일, '독일예술의 날'을 기념하여 뮌헨 예술전당 앞에서 거행된 퍼레이드
예술전당 강당에 입장한 히틀러에게 나치식 경례를 올리는 직원들
'독일예술의 날' 전람회 개회식전에 참석한 나치스 수뇌와 고위급 당간부들
전람회 참관, 최좌측 히틀러 옆의 흰색 제복은 이탈리아 선전상 알피에리
보헤미아-모라비아 총독 콘스탄틴 폰 노이라트(Konstantin von Neurath) 남작
총통의 주위 인파로부터 떨여져 잡담을 나누는 힘러와 노이라트
뮌헨을 방문한 주독(駐獨) 일본대사관 대표단, 1939년 10월 30일 촬영
맥주홀 폭동 사망자들이 안장된 명예신전을 참배하고 나오는 일본대사
당국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뮌헨 총통관저로 향하는 일본 대표단
나치당 재정부장 슈바르츠
(Schwarz)와 대담중인 오시마 히로시(大島浩) 대사
총통관저 응접실에서의 담화, 히틀러 초상화가 시대 분위기를 반영해준다.
에바 브라운과 자매지간인 그레텔(Gretl, 1915~87)의 초상사진, 1939년경
덧글
저런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적 감수성이 엄한데 사용되었다는게 인류의 비극이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