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장막 건너편의 자유화 물결 국제, 시사






이하는 서방세계의 관광객들이 증가하고, 무역이 확장됨에 따라 점진적으로 '자유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 동유럽 사회의 모습을 미국의 시사주간지 <US News and World Report>지(誌)가 취재 ・보도한 것이다. 동구 전역엔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으며, 그때문에 모스크바의 동구권 지배가 점차 느슨해지는 듯한 형국이다. 최근 수년간, 폴란드와 헝가리가 마르크시즘 통치를 완화시켰고, 루마니아는 그 외교 및 경제정책 측면에 있어서 소련의 지시로부터 크게 이탈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같은 변화의 물결이 고조된 사정엔 두가지 중요한 상황이 작용했으니, 즉 데탕트 이래 동구권과 서방권간 무역 ・관광 및 사상의 교류폭이 넓어진 한편, 폴란드 출신 교황이 선출됨으로써 피지배민들에겐 새로운 희망을, 강경파 맑시스트들에겐 새로운 우려를 제공해주는 셈이다.

공산제국(共産諸國)에서 서방문명의 바람이 거세지는데 결코 반항의 기세가 없는것은 물론 아니다. 동구에서 가장 기술분야가 발달했고, 선진적이며, 소련의 군사 및 경제정책에 긴요한 위치를 차지한 체코슬로바키아나 '사회주의 우등생' 동독에서는 정권수립 30주년을 기해 반(反)체제 운동에 대한 탄압이 금년들어 부쩍 강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래로부터 자기주장의 소리는 분명히 표면화되고 있으며, 특히 가톨릭이 최대종교인 폴란드에서 더욱 그러하여 공산당 이하 지배층을 바짝 긴장시키는 모양이다. 지난 1970년 연말의 인플레 항의 노동자 스트라이크와 76년도의 대파업을 계기로 만성화된 이나라의 사회불안은 올해 6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개선(凱旋) 방문'으로 절정에 달했다. 교황의 방문을 맞아 당시 폴란드의 어느 주간지가 특필한 사설을 인용해보자.


"폴란드인은 무엇보다도 더좋은 생활조건을 희망한다. 더많은 생필품, 더좋은 주택을 원하며, 직장밖에서든 보다 만족스런 생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해외여행을 통해서 폴란드인들은 눈을 떴다. 작년 한 해 동안만 약 50만명이 서방세계를 방문하였다. 생활방식의 모델로서 미국외에도 서독, 프랑스를 우러러본다."


폴란드의 자유화는 어느정도 기반을 닦아놓은 모양새다. 교회에 대해 상당한 교육 및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어 있고, 정부 시책에 대한 언론비판도 약간이나마 허용되었다. 바르샤바나 크라코프의 카바레에선 수준높은 정치적 풍자를 엿들을 수 있다. 한편, 정부 당국은 중공업 위주의 소련식 산업화를 무리하게 추진함으로써 생산 균형과 다양성을 도외시한 채, 재원(財源)을 편파적으로 과도히 투입했다는 비난을 샀다. 사회조직의 능률에서부터 문제투성이인데, 정부내 정보처리기구의 책임자가 피력한대로 현(現)체제와 완전히 다른 사회체제로 현재와 같은 폴란드를 재건할 수는 없으나, 너무 많은 관리자들이 체제를 개선하고자 어떠한 조정을 가하고 위험을 무릅쓰기보단, 기존체제하에 안주하여 연명해가는데 급급하는 등 자기보신(保身)에 골몰하는 실상이다.

탄력적이면서 꾀많은 헝가리 국민들은 카다르의 영도하에 폴란드와 루마니아처럼 요란스럽진 않으면서도, 그보다 조직적으로 동일한 노선을 취하고 있다. 헝가리의 온건개량노선 채택은 60년대부터의 흐름으로 자체의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무난히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일부 외국 관측통은 카다르를 유럽에서 가장 재치있는 정치지도자로 보는데, 그가 56년 봉기 당시에 소련군 탱크에 탑승하며 등장했을땐 별다른 기대감을 주지 못했으나, 오늘날엔 통치 스타일을 완화시키면서도 모든 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수법을 앞세운 노련한 재주꾼이라는 것이다. 헝가리 정부는 68년의 '신(新)경제 구상'을 천명한 이래 경영인에게 일정한 재량권을 양보하고, 국가보조를 줄이는 등 자본주의 시스템을 일부 수용하여 국내외의 커다란 스포라이트를 받기도 했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자라면, 누구도 우리편이다'라는 슬로건하에 경제개혁과 대(對)서방 접근은 11년간 꾸준한 실적을 거두었다. 지난해 78년도의 헝가리의 대서방 무역량은 전체 동구권과의 무역량을 능가했고, 헝가리를 찾은 서방국가의 방문객 수는 120만명에 이르며, 헝가리의 서방제국 여행자 수도 35만명에 달했다. 또한, 대미(對美)관계 역시 재작년에 미국이 2차대전 때부터 압류해온 성(聖) 스테판 왕관을 반환하면서 아주 좋아지는가 하면, 헝가리는 미국 시장에서 최혜국 대우를 받고있다. 비록 여전히 공산당 1당의 통제가 지속되고, 교묘한 검열이 반체제 활동을 좌절시키고 있지만, 헝가리의 자유화는 동구 가운데 가장 진전되었다는게 일반적인 평이다. 그렇다면, 모스크바가 자기네 앞마당인 동유럽 각국의 변화를 태연히 관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학자들이 제시한 이유의 하나는 이러하다. 즉, 소련은 석유 등 더이상 위성국가에 저렴한 가격으로 천연자원을 제공해줄 수 없다는 부담의 증가로 헤게모니의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군사동맹체 바르샤바 조약(WTO)과 동구권 경제통합기구이자, EC에 대한 대응기구인 코메콘내 결속을 저해하지 않는 한, 동유럽 각국의 경제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교역패턴과 경제 목적을 확대하는 것을 권하고 있다. 다만, 체코슬로바키아만이 이러한 추세에서 예외로 '프라하의 봄' 이래 끊임없이 지속된 지하 반체제운동에 단호한 강경조치를 취하고 있다. 종교인은 국가 공무원만큼 엄격한 감독에 놓여있고, 대략 1백명의 성직자가 투옥중이며, 두브체크 전(前) 서기장을 포함하여 수백명의 반체제파 인사들이 하급 사무직원이나 경비원 따위로 생계를 유지하는 형편이다.

체코슬로바키아 경제는 2차대전 전전(前戰)부터 동구에서 기초체력이 가장 탄탄하고, 생산성 또한 높았던 것으로 평가되어 왔지만, 공산화의 그늘속에서 침체를 면치 못했다. 당국은 소위 보조가격 제도를 통해 여러가지 소비재를 구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식으로 여론을 달래왔는데, 이같은 노력도 보람없이 오일쇼크로 말미암은 재정난 탓에 보조금이 대폭 감소되고, 물가가 폭등할 조짐을 보이자 국민들 사이에선 후사크 정권에 대한 새로운 원성이 일어날 조짐이다. 체코 정부의 억압책과 관련해 이런저런 논의가 있으나, 가장 설득력있게 들리는 것은 1968년의 경험으로 겁을 먹은 지배층은 그 상처가 오래갈 것임을 숙지했으며, 따라서 자신들의 어깨 너머로 살피고 있는 수많은 소련 주둔군만 믿은 채 말썽이 재발하지 않게끔 쐐기를 박아두려한다는 것이다.

한편, 동독에서는 또다시 반체제파와 지배층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동독에 대해 소련이 남다른 관심을 기울인 것은 독일의 기술 및 군사력에 역사적인 공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자산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욕구로 볼 때 당연한 셈이다. 산업기술과 그 생산성에 있어서 동독은 소비에트 블록에서 손꼽히는 수준이며, 인민의 생활수준도 가장 높다. 동독 당국의 자체통계에 의하면, 65년도 이래 국민총생산은 배증해왔고, 전쟁으로 파괴된 국토 재건도 마무리단계에 놓였다. 동독 정권은 빈약한 천연자원과 서방세계 원조없이도 30년간 이룩해온 성과를 자화자찬하며 서독의 현란하고도 왕성한 재건보다 어떠한 의미에선 보다 매력적인 감동을 준다고 떠벌린다. 실제, 방문객들 중엔 동독에서 전쟁전 나치시대와의 유사점을 많이 발견하며 비아냥대는게 현실이지만 말이다.

동독의 공산통치는 체코에서처럼 철권은 아니지만, 명백히 스탈린주의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미국인 방문객에게 시청하도록 강권하는 맑시스트들의 상투적인 과장이 쉴틈없이 흘러나오는 요란스런 기록영화속엔 동독이야말로 매일의 생활이 아름다워지는 유토피아로 묘사되어 있다. 노동절에 수백만의 인파가 사회주의에 충성을 서약하고, '해방자' 소련군에게 영예를 바치는 장면엔 일말의 엄숙한 현실이 깔려있다. 1천 7백만 동독인들은 레이몽 아롱이 말한것처럼 '정복자'에 대한 복종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나라에서 자신들의 운명에 순종해버린지 오래다. 침울하고, 시대착오적인 스탈린주의 테제와는 별개로 지난 10여년간 동독정부는 데탕트 무드에 편승해 서독 주민의 방문을 대폭 허용하는 등 서방세계와의 교류 확대에 나름 진지한 태도로 임해왔다.

그러나, 금년들어 해빙 분위기는 줄어들고 있다. 얼마전, 당국은 일전에 미국에서 거주했던 소설가 스테판 하임과 물리학자 로베르트 하베만이 동독의 생활상에 관한 비판적 발언을 서독인들과의 대담에서 내뱉은 후, 통화법 위반 혐의로 벌금을 부과했으며, 서독 신문에 나타난 비판기사에 당황한 나머지 허가없이 외국인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자에겐 징역형을 과할 수 있다는 식의 모호한 법률들을 제정했다. 서독 TV가 방영하는 뉴스와 논평은 물론 미국의 시사 코미디를 동독 국내의 4/5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청취할 수 있는데, 그 호소력이 대단하단다. 외부와 격리되던 아니되던, 동독인들은 한가지 사실만은 잘 알고있다. 서방 연합국 군대를 마주본 동서독 국경에 소련군 20개 사단이 진을 치고있는 한, 가까운 장래에 소련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기란 쉽지않다는 것이다.

30여년전, 마셜플랜과 북대서양 조약기구 즉, 나토(NATO) 창설이란 역사적 조치를 통해 미국은 오늘의 서유럽을 형성시켰으며, 그 보호자가 되었다. 현재, 미국의 나토군은 28만 9천명에 달하고 대부분 서독에 주둔중이다. 이들은 동유럽에 주둔한 38만 6천명의 소련군에 맞서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방파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연합국의 대다수 전문가들은 소련이 재래무기와 병력을 앞세워 침공해올 위협은 5~60년대에 비해 감소된 것으로 평가한다. 파리 마르크시즘 조사연구소의 엘렌스타인 소장이 지적한대로, 모스크바는 이제 과거처럼의 카리스마적인 무력을 지니지 못한다. 소련이 전체주의적 독재국가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고, 유럽의 공산당들은 소련에 대해 과거처럼 들먹일 수 없게됐다. 그들이 믿는 신(神)은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덧글

  • jaggernaut 2013/10/11 18:10 # 답글

    그래도 아예 소련이 무너질거라고는 예측 못했을 겁니다.
  • 心月 2013/10/12 09:57 #

    병독에 침식되어 구멍이 생겼다는건 눈치챘는데, 그게 치명적일 것이라고까진 생각못한 셈이지요..

    ps. 오래간만이십니다.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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