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그리고 공녀의 약점 잡소리






강제동원인가? 취업사기인가? 아니면 둘 다 인가?라는 식의 일본군 위안부 논쟁이 MB정권 말기부터의 한일관계 악화와 반일감정 고조 무드에 편승해 갈수록 치열해진 양상이다. 강제동원 여부를 속단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서도 솔직히 한국과 일본 누구나 상대를 떳떳하게 일방적으로 비난할만한 계제가 아니라는게 화근의 하나겠지. 자의냐 타의냐의 그 진위를 떠나 처녀를 전쟁터 군바리한테 性상납하는 것 자체가 현대사회 보편적 가치인 인권-인도주의 이념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만큼, 특히 유교적 명분론과 감상이라던지, '한(恨)의 문화'에 친숙한 한국인의 일반적인 정서상 어떠한 논리로도 아니 시대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납득하기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가 이슈화된지도 4반세기, 그동안 섬나라에서 저토록 뻔뻔스럽게 철면피 적반하장 스탠스로 일관해온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 쉽사리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며 불명예를 최악의 치욕으로 여기는 무가(武家)사회로부터 연원했을 풍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화(和)의 문화'로 종종 미화되는 책임분담형 의사결정 시스템이 명백한 규명을 곤란케 만들어, 집단적으로 죄의식을 약화시켜 그것이 돌출된 의식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혹은, 나의 주관적 추측이긴 하다만 소위 '피장파장'류의 논리, 즉 우리가 그들의 치부를 건드리면 그들도 우리의 치부를 건드리는 수법으로 맞서며 지엽적인 꼬리잡기를 통해 본질 전체를 호도하려는 속셈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위안부와 관련해 우리 또한 약점잡힐 치부, 아킬레스건이라면 6.25 당시 용공좌익 혐의 여성을 동원했던 국군의 위안부 운용이 1차적으로 거론될 대상일 터. 멀리 거슬러 올라가 고려후기, 양갓집 처녀들을 몽고에 헌상한 공녀(貢女)제도마저 만만한 트집거리가 될 공산이 있으려나? 전근대 고려시대와 20세기 세계대전기의 인신매매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오류라 반문할지도 모르겠는데, 사실 지구상의 모든 호모사피엔스가 인종과 성별에 관계없이 개개의 존엄성을 갖추었다고 국제 차원에서 '의례적'으로나마 어필한 것도 2차대전 직후, UN 인권선언이 처음 아니던가. 몽고로 끌려간 공녀들이 궁중 수발만 들며 절개를 지켰다고 믿지는 않겠지?




덧글

  • tex2100 2013/10/27 16:05 # 답글

    에드워디안씨, 그 분들에게는 씨도 안 먹힐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 그 선언조차, 실제로 서방 선진국의 헌법에서 적용 된 건 아무리 짧게 잡아도 1958년... 이 상황에서 므슨 위안부 운운을 할 건지. 일본? 미국? 인권 개념은 2차 세계대전 때 까지만 해도 광범위한 개념이 아닌 상황이였습니다. 당장 프로파간다만 봐도 인종주의가 난무했던 시절이였습니다.
  • 2013/10/27 16:2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몽몽이 2013/10/27 17:47 # 답글

    트랙백할까 하다가 걍 댓글에 쓰렵니다.
    이 문제는 이제 피장파장의 문제로 다룰 일이 아니죠. 어차피 포괄적 청구는 끝났잖아요.
    걍 위안부 개개인의 피해보상을 다룰 소송 문제입니다.

    고려 시대에 공녀를 바쳤으니 피해가 없던 게 되고 아니면 청구가 되고 그럴 건은 아니잖아요?
    물론 그런 의미로 포스팅한 건 아니겠지만,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역사적으로 옳고 그르고 하는 건 이제 더 이상 보상이라든지 하여간 뭔가 결과를 얻어낼 여지가 없습니다.
    물질적 보상이든 뭐든 피해자 개개인이 소송해서 받아내야 하는 거죠.
    일본도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계속 인정하고 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계속 헛발질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소송을 하려면 시간이 오래 흘렀으니까 증거가 여의치 않고 증언 뿐인데
    현재 위안부 분들 증언을 쭉 보면 일관성이 많이 떨어지고
    위안부 모집에 있어서 일본 정부가 직접 사기 계약을 했다는 근거가 나오지 않는 것이 문제죠.

    이걸 이유로 일본 정부에 보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일본군이 개입한 사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합니다.
    국뽕분자와 키배하는 이유는, 현재 상태에선 그것이 입증이 안 되는데 현실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기억이란 게 하루만 지나도 가물가물한 게 사실인데
    그 옛날 일이 한번에 정확히 기억이 날 수가 없지요.
    제 3자가 다시 교차 검증을 해 가면서 기억을 도와 주면 객관적인 당시 상황을 재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정대협에서는 이걸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오히려 정대협이 진상 파악과 보상에 1차적인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 음? 2013/10/29 20:59 # 삭제

    일본이 개인청구권을 소멸되지 않았다고 계속 인정했다라고요? 생소한 얘기라.. 물론 최근 뉴스등에서 91년 당시 참의원 회의록을 공개하며 당시 일본정부가 개인청구권을 인정했다, 라고 뉴스화 하긴 했는데 이런게 뉴스화 될 정도라는거 자체가 현재 일본정부가 한일협정으로 개인청구권 문제가 끝났다는 입장이니 이슈화 된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보다 일본내에서 91년도서부터 있었던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최종 판결만 하더라도 개인청구권이 한일협정으로 소멸했다며 일본정부의 배상책임을 물 수 없다는 판례가 존재하고 있거든요. 당시 일본고법의 판결 내용을 보면 일본의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 했습니다. 물론 그게 직접 책임을 인정한건 아니고 간접책임을 인정했는데, 한일협정으로 청구권이 소멸됬다는 것이었죠. 일본정부가 한국인 위안부, 징용피해자들의 청구권을 계속 인정을 했다면 이러한 판례가 나올리가 있겠습니까.. 거기다 현 일본정부의 입장을 볼때 위안부는 제외하고라도 한국인의 일본정부나 민간기업에 대한 개인청구권을 한일협정을 이유로 이미 끝난 일이라며 불인정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제가 추측하기에 91년 당시 해당 발언이 나왔던 이유가 암만봐도 한국인 -> 일본에 대한 청구권을 인정하기위해 나온 발언이라기 보다 일본인들이 조선에 가지고 있던 재산에 대한 대한청구권이 유효하다는 발언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 몽몽이 2013/10/29 21:59 #

    음?// 개개인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해선 보상해주지 않았지만 체불임금 지급 판결이라든지 피폭자 보상이라든지 개인적으로 증거가 입증된 것에 대해서는 계속 보상해주고 있는 걸로 압니다. 어디까지가 개인청구권이냐의 의미도 여러 말이 나와서 헷갈리던데, 제가 나름대로 보는 기준으로는 저게 답입니다. 일본인들이 조선에 가지고 있던 재산에 대한 청구권이야말로 한국 정부가 사기 계약을 해서 뺏었다든지 그런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개인청구권으로 인정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백범 2013/10/27 19:07 # 답글

    그 공녀들은 고려 본국에서도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렸지요. 그리고 조선시대에도 계속 공녀 상납...

    공녀와 금, 은, 인삼을 조공으로 바쳐서 명맥을 유지한 고려와 조선... ㅋ
  • 백범 2013/10/27 19:10 # 답글

    http://pds21.egloos.com/pds/201309/21/56/d0065056_523d7c511c497.png

    이미 일본한테 배상책임 묻지 않겠다고 대통령이 언명한데다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계나 지원 등을 약속한 아세아 여성기금의 지원도 중간에서 정대협 같은 놈들이 걷어차버렸고...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112061801261&

    그리고, 일본에서 준 위안부 할머니들 보상금 빼돌린 인간들까지 있으니...

    http://www.independent.co.kr/news/article.html?no=5517

    http://www.independent.co.kr/news/article.html?no=5490

    페미들의 패악질 때문에 일부 위안부들은 지만원 박사 찾아와서 진실을 폭로하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http://www.independent.co.kr/news/article.html?no=5508

    http://www.independent.co.kr/news/article.html?no=5487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가족이나 한국인 업자들에게 속아서 팔려간 사람들도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그 위안부들이 전부 일본이 끌고갔다고 볼 수도 없고, 또 이런 광고까지 있었으니...

    http://pds21.egloos.com/pds/201310/11/56/d0065056_5257c20ab5dd4.png

    http://pds26.egloos.com/pds/201310/11/56/d0065056_5257c2043d791.jpg
  • Fedaykin 2013/10/27 20:18 # 답글

    이건은 양쪽 다 떳떳할수가 없으니 풀기 어려울거같습니다.
    걍 이러다가 당사자분들 다 돌아가시면 조용히 묻힐듯
  • 나고야거주남 2013/10/28 23:23 # 삭제 답글

    솔직히 가정이 재정적으로 어려워지면 딸을 파는 풍습은 1940년대까진 한국 일본 중국 비교적 보편적 풍습이었습니다. 물론 그게 좋지 않다는 것은 막연히 알지만 그렇다고 범죄라는 의식까진 없었죠. 일본군이 개입한 경우는 물론 절대 있을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막상 우리나라에서 주장하듯 인간 사냥이었냐 하면 또 다른 문제죠. 아무리 일본군이 주둔해도 당시 헌병을 비롯하여 한국인 보조없이는 일을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 일본군차원에서 조직적으로 행했다면 분명히 한국인 보조대원의 증언이 있을텐데(일본군중 한국어 할줄 아는 이는 당시 적었습니다)(자신이 보조였으면 그래도 최소한 목격담이라도 있겠죠) 그게 아직까지 확정적인게 없고 실제로 위에 적은 분들이 올려주셨듯이 버젓이 신문에 광고도 났으니 아마 일부 일본군의 개입과 일부 한국인 포주들 그리고 일부 반자발적(집이 어려워져서)의 복합체였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아마 그게 제일 진실에 가까울겁니다.
  • 흑범 2013/10/29 15:41 #

    한국 같은 경우에는 6.25 직후 무렵까지는 존재했었던 듯 싶습니다. 남의 집 식모 등으로 보내는게...

    1958년 이후로 국민학교가 서울부터 의무교육으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1963년부터는 고등학교까지 진학했을 정도였지요.
  • jaggernaut 2013/10/29 22:14 # 답글

    항상 누군가를 팔아넘기는건 갑자기 덮치는 산적이 아니라 아는 사람들이죠. 파면 팔수록 답이 안나오는 문제입니다. 오히려 옆집 김씨 후손들이나 위안부 부모들을 족쳐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 시울음 2013/10/30 23:16 # 답글

    한의 문화 말씀하셔서 그런데..

    위안부 문제 자체가 아예 한국인들의 정체성 확인용으로 변질된 느낌이 없죠. 단적으로 위안부 뒤에 꼭 할머니 붙여줘야 하는 추태가 있고..
  • 心月 2013/11/07 16:42 #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규명한다는 본분따윈 망각한 채, 정대협처럼 저의가 의심스럽거나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잡것들이 개입해 정치적 커미션을 추구하려는 행태부터 그모양이고, 거기에 장단맞추는 일부 몰지각한 여론을 볼 때마다 구토가 나올 지경입니다. 이래서야 과연 우리가 도의적으로도 당당하다고 큰소리칠 수 있을까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