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宋史) 외국전 서문(序文) 세계사



宋史 잡담



옛날, 당(唐)나라는 수(隋)나라를 계승했고, 수나라는 주(周, 北周)와 제(齊, 北齊)를 계승하여 원위(元魏, 北魏)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던고로 서북(西北)의 강역엔 한(漢, 劉氏)나라와 진(晋, 司馬氏)나라의 정삭(正朔)이 도달하지 못한 곳도 있었으며, 역시 사신이 서로 통하지 못한데다 이따금 공빙(貢聘)이 왔을 뿐이다. 당나라의 덕(德)이 이미 쇠락해 황복(荒服)에 이르지 못했고, 5계(五季, 五代 역대왕조)가 번갈아 흥기했으니 강기(綱紀)가 문란해져 머나먼 지방의 사람이 의로움을 사모함에도 [중국으로] 찾아와 [황제를] 따를수 없었다. 송조(宋祖, 宋太祖)가 천명을 받아 제국(諸國)을 빼앗아 평정하자 해내(海內)가 맑고 평온해졌다. 동방의 고려와 발해[여진족?]가 요(遼)에 막혔음에도 불구하고 먼곳으로부터 항해하거나, 산넘고 물 건너는 것마저 마다하지 않으며 왔다.

서방으로는 천축(天竺)과 우전(于闐), 회골(回鶻), 대식(大食), 고창(高昌), 구자(龜茲), 불림(拂林) 등의 나라가 비록 요나라와 서하(西夏) 사이에 끼었음에도 역시 광주리와 수레[여기선 조공품을 뜻함]를 보내와 자주 관인(館人)들을 고생하게 만들었다. 당항(黨項)과 토번(吐蕃)의 곡시라(唃廝囉), 동전(董氈), 할정(瞎征)의 여러 부(部)는 서하에서 병력(兵力)으로 오로지 그들과 싸우려했고, 송나라의 위덕(威德)이 역시 그곳까지 미치거나 그들의 원조를 받기도 하였다. 교지(交趾, 베트남)와 점성(占城, 참파), 진랍(眞臘, 캄보디아), 포감(蒲甘, 버마), 대리(大理)처럼 바닷가에 접한 여러 번(蕃)들은 유창(劉鋹)과 진홍진(陳洪進)이 스스로 귀부하자 뒤따라 접촉해 조공을 바쳤다. 송나라 또한 이들을 도의적으로 대우해주었고, 그들이 후하게 쌓도록 배려하며 바친 공물을 따지지 않았다.

영예로운 명칭을 하사하고, 번거롭게 한다고 책망하지도 않았으니 오면 거절하지 않았으며, 떠나더라도 추격하지 않았다. 변방이 서로 접하여 이따금 침범해오면 장수에게 명하여 토벌시키고, 항복하면 집으로 돌려보내 무(武)를 더럽히지 않았다. 선왕(先王)이 먼 지방을 복속시키는데 어찌 이만한 것이 있겠는가! 남도(南渡) 이후[南宋시대]론 삭막(朔漠)이 통하지 않았으나, 동남(東南)의 구석과 서쪽의 변방엔 예전처럼 관개(冠蓋, 사신의 수레)가 이르렀다. 교인(交人, 베트남)들이 [南宋의] 작위를 멀리서 받았지만, 마침내 송이 멸망하자 단절됐다. 여직(女直, 女眞)은 송초(宋初)에 자주 명마(名馬)를 바쳤고, 훗날 강대해져 요나라에 원한을 쌓았다. 반신(叛臣) 아소(阿疏)를 찾고, 빼앗긴 송나라의 조서를 돌려주도록 요구했는데, 가히 송과의 통교가 중요함을 알던 셈이다.

해상지맹(海上之盟)이 변질되어 커다란 난(亂)이 일어났고, 송은 이윽고 치욕을 당하고 말았다.
[정강지변이] 어찌 스스로 자초한 과오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순희(淳熙) 원년(1174), 안남왕(安南王)에 대한 책봉을 최초로 승인해 준 송효종(宋孝宗)
                         중국 조정이 1천년간의 지배를 포기, 베트남 독립을 공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남송시대 중국~동남아간 육해상교통로, 1979년 대만판 중국사부도집




덧글

  • 앨런비 2013/10/31 14:36 # 답글

    발해는 여진보다는 정안국일 것 같네요.
  • 킹오파 2013/10/31 23:44 # 답글

    책봉이라는 것은 중국의 신하가 되어 중국의 관작을 받는다는 것으로, 이것을 수여받는 순간 아무리 그 나라가 자치권을 가지고 있고 독자적으로 움직였다 하더라도 중화문명권에 포섭되어 그 밑의 부속국으로 들어간 것이 되어버림...즉 스스로 인정하고 천명하는 일이란 말임.

    아사카가 막부가 중국의 책봉을 받자 머저리 같은 놈이라며 반발하던 일본이나...,통일을 하거나 세력이 강성 하여 져서 중국도 무시 못할 강국이 되면 중국과 대등한 외교를 표방하며 책봉을 거부했던 여러 북방 유목민족이 그랬음... 그것이 자주권과 종주권을 포기하는 일이며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동시대 사람들도 인식하고 있었음. 결론은 독립국 아닙니다. 스스로 중국의 신하가 되겠다고 천명하는데 무슨 독립국.
  • 앨런비 2013/10/31 16:04 #

    자. 한번 더 키배 해줄까?(...)
  • 킹오파 2013/11/01 00:31 #

    책봉을 받았다는 거 자체가 속국이라는 걸 의미할텐데?
    안 그럼 일본이 그렇게 난리칠 이유가 있나...
    단순히 무역만 원한다면 책봉 받을 이유가 없음.
    고대에 아라비아나 로마가 책봉 받았다는 소린 들은적 없음.

    단 내정에 대해서는 중국도 간섭 안함.

    책봉체제는 중국왕조가 주변 제국을 영유했다 라는 의미는 아님.
    주변제국의 자주는 보장되고, 내정은 확실히 보장받음.

    중국을 자기보다 상전으로 인정해주면 자기네 땅에서 뭔짓을 하든 중국은 관심 끊겠다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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