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씨가 제갈무후를 귀감으로 삼다 잡소리








세 차례에 걸친 북벌이 방두(枋頭)와 양읍(襄邑)에서의 참패로 흐지부지 끝나버리고,
보급 실패로부터 비롯된 패전 책임을 회피한 채 떠넘기기까지 한 환온의 처사는 가히 스캔들 감이었습니다.
그나마, 서부군단의 수령이란 지위와 무력, 촉(蜀) 수복 이래 쌓아온 권위가 무시못할 수준이었기에 망정이지. 
조정 귀족이야 내심 조소했을진 몰라도, 황실에선 어주를 하사하고 승상 회계왕까지 마중보내는 등  
파격적 예우를 갖춰가며 '패장' 환온의 눈치만 살피는데 급급합니다. '힘앞에 장사없다'는 이치랄까요?


환온으로선 북벌의 공훈으로 구석(九錫) 예우를 수여받고, 나아가 제위까지 넘볼 기세였지만,
모용수한테 한 방 먹은뒤론 명성이 예전만 못하질 않나, 연령 탓인지 슬슬 초조감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한물 간듯한 사마씨나 속검은 귀족들을 당장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을진 몰라도,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엔
환온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확립되지 못했으며, 역성혁명을 수반할 만한 명분또한 마땅치않은 실정이었으니깐요.
동진에서 역성혁명을 수반할 명분이라면 북벌을 성공시켜 사마씨를 능가한 위망부터 확립해보는게 관건인데...


예기치 못한 실패탓에 위망은 커녕, 자칫 축적된 지분마저 허물어지는건 아닐까 걱정하는 처지로 내몰렸습니다.
환온의 나이 60세. 당시 기준으로 환갑은 '長壽' 소리도 들을법 했네요. 이 시점에서 오기가 발동한 모양입니다.
'사나이가 빛나는 명성을 1백년 넘게 떨칠 수 없을바엔, 악취나마 1만년 넘게 남기는게 낫다'는 격언으로
후폭풍 따위(?) 개의치 않고 황제만큼은 따먹고싶다는 본색을 숨기지 않으면서 선양 공작에 착수한 것이죠.
어주까지 하사하며 자기 비위를 맞춰준 황제 해서공을 고자로 몰아 폐위시키고, 회계왕을 대신 옹립합니다.


회계왕 사마욱, 즉 간문제(簡文帝)는 원제 사마예의 막내아들로 사마중달의 고손자에 해당됩니다.
본래 황실의 장로격으로 역대 천자를 보좌해왔는데, 평소 환온에 대해 가급적 저자세로 처신한 인물이었다죠.
사람됨은 온순했으나 거기까지였을 뿐, 사안은 '청담술 하나만 빼고 혜제와 비슷한 부류'라며 비평할 정도.;;
환온의 의사는 자명했습니다. 간문제는 위나라 조환처럼 선양에 대비한 임시용 얼굴마담이란 사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기묘한 스토리가 탄생합니다.


이 소심한 성격의 허수아비 황제가 찬탈 악몽에 시달린 휴유증 때문이었는지 8개월만에 세상 하직하고 만 겁니다.
임종 전날까지 스스로 운명이 다했음을 직감하고선 네 차례 환온의 입조(入朝)를 요구하는 조서를 내립니다.

그렇게 유조를 남기면서 이르기를,



"대사마 환온은 주공(周公)이 거섭(居攝)한 고사에 의거할 것이며, [간문제의] 어린 자식 가운데 보필할 만하면 그를 보필해주고, 만에하나 어려울 듯 싶다면 스스로 그 자리를 빼앗아도 좋다..."



삼국지팬이라면, 이 대목에서 무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간문제는 거의 반쯤은 체념한 심경하에 의식적으로 유비의 최후를 모방하려 했던 것입니다.
당대의 실력자 환온을 제갈량과 동일선상에 놓고, 그에게 '열쇠'를 넘겨주겠다는 의미죠.
가만히 보고만 있을 귀족들이 아닙니다. 환온이 대권을 장악한다면, 그들의 정치적 우월성은 끝장나니깐요.
망명정권의 구심 역할을 수행하고, 그들의 권익을 대변한 사마씨 왕조가 귀족들에겐 여전히 필요했습니다.


귀족집단의 대표자인 시중 왕탄지와 사안이 환온의 집권 저지를 위한 행동에 나섭니다.
유조가 조정으로 내려오자, 천하에 공표하는걸 연기시키고는 직접 병상의 황제를 찾아가 그걸 찢어버린거죠.
황제의 조서를, 그것도 면전에서 찢어버린 행위는 다른 시대같으면 대역죄에 해당될 사안이겠지만,
전장(典章)이 없으며, 군주의 위엄도 세우지 못했다는 동진시대였으니 가능한 도발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죽음을 코앞에 둔 황제는 태연스럽기만 합니다. '천하가 제 갈길 찾아 굴러갈 따름인데, 아무렴 어떠냐'고.


왕탄지가 반박합니다.



'이 나라는 선제(宣帝)와 원제(元帝)의 천하이거늘, 폐하께선 어찌 함부로 넘기려 하십니까?!"


      
사마중달과 사마예가 세운 나라인데, 그 상속자라는 당신은 부끄럽지도 않냐는 책망...
황제로 하여금 사마씨로서의 자각을 새삼 일깨워 왕조 존속의 결의를 굳히게한다는 책략은 결실을 거둡니다.
그제사 마음을 고쳐먹은 간문제가 개작한 내용의 유조를 새로이 내린 것이죠. 이게 또 압권입니다.



"국가지사는 한결같이 대사마 환온과 논의하되, 제갈무후와 왕승상(王丞相)의 고사처럼 하라."



제갈무후와 왕승상을 본받아 환온 역시 그들의 궤도에서 이탈하면 안된다는 선언.
제갈무후는 물론 제갈량, 왕승상은 진왕조 중흥초기 사마예를 보필하며 내정을 감독했던 왕도를 가리킵니다.
둘다 군주를 능가하는 권력을 보유하고, 행사했음에도 한치의 사심없이 충실히 주군을 보좌한 명재상들이죠.
왕도야 북래(北來)귀족의 수장격이자, 동진 중흥의 1등공신인만큼 당연한 언급이었겠다만...
선조와 운명의 지략 대결을 펼친 적장을 귀감 사례로 지목한 간문제의 유언은 볼수록 미묘한 감이 들더군요. 

정녕 사마씨조차 유비를 흉내낸 것으로 모자라 제갈량의 위엄을 인정했다는 말인가?



인간사 아이러니 드라마의 집합체, 그것이야말로 역사의 흥미진진한 소재가 아닐련지. 


 

덧글

  • 만슈타인 2014/03/03 22:07 # 답글

    그만큼 제갈무후는 사기캐...
  • 재팔 2014/03/03 22:07 # 답글

    역사야말로 진정한 소설!
    ps.그나저나 환온을 하진처럼 보내버린다는 선택지는 없었나요?
  • 3인칭관찰자 2014/03/03 22:38 # 답글

    그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네요.
  • 행인1 2014/03/03 22:38 # 답글

    조상님이 어떻게 대업(?)을 이루셨는지 아무도 말을 안해준건지... 아니면 조상님들 중에는 모범사례가 없었던건지...
  • 위장효과 2014/03/03 22:49 # 답글

    사마씨는 확실히 사마사와 사마소 형제까지가 한계...그 이후는 사마염부터 일단 천통이루자마자 병신 짓거리 시작했으니까요.
  • jaggernaut 2014/03/04 17:48 # 답글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겼습니다...
  • 별일 없는 2016/04/18 13:36 # 답글

    조상능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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