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과 퇴조에 직면한 美 외교 국제, 시사








세계를 주름잡아왔던 미국이 힘[力]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국제경찰'로서의 지위와 역할을 포기하느냐 마느냐 기로에 서있는 격이랄까. 이란 혁명, 중국과 베트남의 분쟁, 달러화(貨) 폭락, 니카라과 내전, 남아프리카 흑백(黑白) 분규에 대해 워싱턴은 팔짱만 낀 채 방관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해버렸다. 며칠전, 작년 중간선거에서 당선된 민주 ・공화 양당의 신참 하원의원 70여명이 카터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회합을 가졌다. 이들은 뷔페식의 점심을 마친후, 흡사 초등학교 학생들처럼 백악관 이스트 룸에 마련된 '강의실'에서 '카터 선생님'과 그의 '조교'들인 브라운 국방장관, 밴스 국무장관, 브레진스키 보좌관 등으로부터 외교노선과 관련해 '낙관적 견해로 충만된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이자리에서 대통령은 모든 국제적 현안, 정확히는 자신의 세계관을 설명했다.

호기심에 가득찬 신참 의원들의 질문은 숙달된 조교들이 훌륭하게 받아넘겼다. 카터는 앞서 여러차례 밝힌 것처럼 '세계는 변화중이고, 그러한 변화속에서 미국은 적극적으로 대응해나가고 있다'며 역설했다. 이란의 팔레비 정권을 지지해왔던게 현실이었다면, 혁명정부와의 접촉이나 승인 또한 현실임을 못박은 것이다. 나아가 앙골라-나미비아 사태, 이스라엘-이집트 협상의 전망, 캄보디아 사태, 전략무기 제한협상 등을 거론하면서 모든 사안이 미국에 결코 불리하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도 아니란 사실을 강조했다. 미국 주도의 헤게모니, 국제경찰 역할이 종말을 맞았음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뉘앙스일 수 있겠으나, 손길이 닿는대로 소련에 맞서려는 의사를 누차 천명했듯이 '미국의 힘은 여전히 강대하며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는 모순된 입장을 고수하는게 현실이다.

좋게 바라보면, 이념의 대결을 넘어서 실리의 경쟁을 추구하고 거기에서 미국의 새로운 리더십 발휘를 모색한다고 할 수 있겠다. 트루먼 독트린 기조하에 4반세기 동안 미국의 리더십이 '무력에 입각한 봉쇄정책'이었다면, 닉슨시대 이후의 리더십과 그 근간은 '호혜 ・평화'의 원칙에 입각한 상호 공존, 대등한 관계발전을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카터는 외교 차원에서 '미국의 이상(理想)'을 제시했음을 확신하고 있음은 물론, 그 이상주의는 미국의 건국이념과 합치되는 것이라고 즐겨 말하기 일쑤다. 그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흑인 외교관 영(Young)을 유엔대사로 임명, 남아공화국 인종분규와 쿠바군(軍)의 앙골라 개입에 대한 대사의 파격적 언행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었다. 동시에 카터 독트린의 특색으로 거론되는 점이 '人權'인데, 여기서 '인권외교'란 신조어가 파생되었다.

집권 초기 소련내 반(反)체제 인사들을 개별적으로 격려하는 바람에 크렘린의 거센 반발을 초래한건 차지하더라도, 매년 전세계 각국의 인권 현황을 조사하면서 지극히 미국적인 기준으로 심판을 내리고, 고발하고 있다. 카터행정부 출범 이래 워싱턴 정가에선 국무성 내부로 인권 압력단체의 로비가 부쩍 활성화되었다는 뒷소문이 파다한 가운데 서투른 인권외교 전개는 전통적 친미 우방국들의 관계에까지 심각한 파장을 미치는 형국이다. 전형적 사례가 지난 77년 9월, 인권탄압 실태로 말미암아 미(美) 국무성으로부터 비난을 받은 브라질 정부가 대미(對美) 방위협정 4건을 모두 파기해버린 것이다. 인권을 외치면서 자칫 현실과 이상을 혼동하는게 아닌가?하는 기준의 논란을 제기한 점도 카터 독트린의 또다른 단면. 미국 외교의 능동성이 저하되버렸다는 지적에 카터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카터의 매일 일과는 오전 5시반 기상, 7시 넘어 브레진스키 보좌관으로부터 국내외 각종 정세의 브리핑을 받으면서 공인(公人)으로서의 하루 업무를 시작한다. '그날 문제는 그날내로 처리해야만 한다'는 다시말해 집무실 책상위에 올려진 서류는 모두 그날내로 결재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로 케네디가 생전에 책상 정리하지 않기로 유명했고, 닉슨도 서류를 책상속에 두고 다니기 일쑤였으며, 존슨은 한층 더 심했던 것과 비교하면 딴판이다. 카터의 이같은 성품이 국내외 정치문제 해결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예시로 매주 금요일마다 개최되는 국가안보회의가 지목된다. 부통령과 국방장관, 국무장관, 보좌관 등이 집합한 회의겸 회식 자리에서 대통령은 회식비로 1명당 1달러 75센트씩 꼬박꼬박 걷는다. 최고위급 각료들이 1달러 75센트를 지불하고, 대사(大事)를 논하는 것이다.

카터 독트린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표출된 것은 이란 혁명을 둘러싼 대응이었다. 역대 행정부는 이란을 서아시아의 최고 우방으로 규정, 팔레비 정권을 충실한 대리인 겸 파수꾼으로 우대해왔는데 카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난 2월 20일, 대통령은 향리 조지아주 공대(工大)에서의 연설을 통해 '미국은 결코 변화에 반대하지 않으며, 현재 세계를 휩쓰는 조류는 미국과 공유 가능한 이상의 표현'이라고 자신의 인권외교 논리를 비호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전후(戰後) 30여년간 범세계적 규모의 대(大)전쟁없이 평화를 구가할 수 있었다고 자찬, 이러한 역할이야말로 미국 외교의 목적이라 지칭했다. 팔레비의 축출을 '이란 국내의 혁명'으로 규정, 그 변혁은 '전세계적 조류'라 둘러대면서 일단 거기에 부응하는게 미국의 이익과 부합된다는 식으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절충을 선언한 셈이다.

공사(公私)를 명백히하는 카터의 스타일이 단지 개인적 차원에서만 반영되진 않으리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카터식의 성격이 미국 외교관계의 기본적 성격이란 뜻이다. 모름지기 외교란 철두철미 국익의 관점에서 국가간의 실리를 추구하기 마련이고, 결코 한 시대의 이념적 약속이나 공약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왕년에 손꼽히는 우익 반공주의자였던 닉슨이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시도한 점이라던지, 케네디가 프론티어 외교를 제창하면서도 피그스만(灣) 침공을 지시했던 사실, 아이젠하워와 흐루시초프가 대면한 전례 모두가 현실외교의 면면이다. 정직한 외교를 구사하는 카터행정부의 노선은 결국 대통령 자신의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베트남전 종전 이래 대외공세를 강화해가는 소련과 첨예하게 대조를 이루면서, '미국 퇴조'의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덧글

  • 엽기당주 2014/04/18 09:32 # 답글

    어째 요새 우크라이나 사건으로 외교안보의 중요성이 더 심화되는 분위기던데..

    외교란게 명분을 말하되 실리를 취하는게 목적인게 되어야하는 분야 아닐까 합니다.

    괴거의 사례에서 뭘 배울수 있을지 생각이 필요하군요..
  • Let It Be 2014/04/18 10:55 # 답글

    신문기산옛날껀데 어째요즘하고도 매치가....?
  • KittyHawk 2014/04/18 11:13 # 답글

    카터... 자기가 빚어낸 최대의 실책인 이란건으로만 해도 할 말이 없을 판인데 북핵 관련으로도 끼어들려는거 보면 굉장히 꼴볼견이더군요.
  • ㅂㅈㄷㄱ 2014/04/18 12:59 # 삭제 답글

    중동이나 남미 근대 정치사를 보면 미국은 그냥 가만있었으면 중간은 갔을걸 쓸데없이 무리수 둬서 뒷일 말아먹는게 종특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 jaggernaut 2014/04/19 12:25 # 답글

    이상을 추구하는 건 대부분의 대통령이 같은데, 그걸 장치적인 기반으로 삼은 대통령은 문제죠. 대좌에 올라가기는 쉽지만 상처없이 내려오기는 어렵다는 말은 정치인은 항상 기억해야하는 말입니다.
  • 2014/04/20 14:57 # 삭제 답글

    조지 부시 주니어도 만만찮지만, 카터는 2차대전 후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무능한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Oso 2014/04/21 05:31 # 답글

    모 위키에서는 민주당이었다는 이유로 빨아주던데요 ㄲㄲ. 현실은 미국에서는 2차대전 후 대통령들 중 트루먼 다음으로 평균 지지율이 낮은 대통령이지만 말이죠.
  • K I T V S 2014/05/22 13:25 # 답글

    카터는 그냥 몸 속에 숨겨진 적국 독재자 죽이는 능력빼곤 안타깝게도 능력이 없다는 거라는데..ㅠㅠ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