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잘난 성리학자의 자업자득인가... 잡소리




"근자에 요사스런 무리들이 단지 '도학(道學)'의 명분으로서 정호(程顥)와 장재(張載)의 학설을 절취(竊取)한 것이 많아지고, 오래되어 어리석은 풍조를 만연시켰습니다. 권신(權臣, 趙汝愚)도 그 말을 힘써 주장해가며 사당(死黨)을 결성했습니다. 폐하께서 분명히 드러난 그들의 우두머리[罪魁=朱熹 등]를 잡아 파직시키고, 유배만 보내어 나머지 사람들을 불문에 부치셨으니 살려준 뜻으로 말미암아 지극하다 하겠습니다. 어찌 깊숙이 배우면서 악함에 의지해 깨닫지 않으며 날로 원망을 품겠습니까만, 도리어 스스로 원우당적(元祐黨籍)에 견주려 합니다. 근일, 서의(徐誼)가 아우로 하여금 균주로 유배가던 날에 한유(韓維)를 극진히 도운 것처럼 여러 아들들이 관직을 반납해 속죄하면서 받들고 돌아와 구했는데, 모두가 '元祐大賢'의 명성을 거짓으로 빌려 천하와 후세를 속이려는 것입니다. 

의당 원우연간 당시엔 재보(宰輔)가 사마광(司馬光)의 무리와 같았지만, 그들이 사악한 모의를 은밀히 품었다던지, 신기(神器)를 엿보거나 스스로 혼미하게 수황(壽皇, 孝宗)에게서 삼공(三公) 직위를 받아 백룡(白龍)이 승천했다고 말한 조여우처럼 임금도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까? 시종(侍從)은 소식(蘇軾)의 무리와 같았지만, 권신에 아부하고, 풍뢰(風雷)의 변고를 망령되이 말하면서 지금 하늘의 움직임을 주공(周公)의 덕(德)이 드러난 위엄으로 삼은 유광조(劉光祖) 같은 사람들이었습니까? 겸손해질 때에 단지 조가(趙家, 國家)의 족발 덩어리를 얻어 조여우의 간사함을 도와준 서의 같은 사람들이었습니까? 나머지 관리들은 진관(秦觀)의 무리와 같았지만, 종파(宗派)를 찾아내 받들어 조여우가 초왕(楚王)의 후예이니 마땅히 대통을 계승한다고 했었던 유중홍(游仲鴻) 같은 사람들이었습니까?

조여우에게 아첨을 바치면서 외간(外間) ・군민(軍民)들에게 상공(相公)을 추대하자고 했었던 심청신(沈清臣) 같은 사람들이었습니까? 은밀히 조여우의 지시를 받아 병권(兵權)을 장악해 아우르는 것을 획책한 장지원(張知遠) 같은 사람들이었습니까? 이들 무리처럼 논의하고 소통하는데서 바라보면 하나 뿐이 아닙니다. 천하가 다같이 아는 바로 어떻게 속일 수 있겠습니까?! 대저 원우의 당(黨)이 이와 같았고, 지금 위학(偽學, 道學)의 당은 저쪽과 같았습니다. 바라건대, 특별히 밝으신 조서[明詔]를 내리어 천하에 널리 알려서 중외(中外)로 하여금 간사함[邪]과 올바름[正]의 실체를 확연히 알 수 있도록 하시고, 그 일당이 간사하고 거짓된 무리들이란 사실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분간하기 어려운 것을 거짓으로 빌림으로써 명성을 훔친다거나, 세상을 속이려는데 이르지 못하게끔 해야 합니다."


- 영종(寧宗) 경원(慶元) 4년(1198) 5월 12일, 도학파에 대한 강경책을 건의한 간의대부 요유(姚愈)의 상소문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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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학파, 대개 주희의 程朱理學派 탄압으로 알려진 경원연간의 '사상통제령' 경원당금(慶元黨禁).

말이 사상통제령이지, 시시콜콜한 철학적 논쟁과는 백만 광년 거리가 멀었음. 실체인즉슨 순전히 권력투쟁, 한탁주 개인의 주도권 부식 과정에서 적당히 명분용으로 써먹은데 불과한 것으로 사실 주희 본인과 휘하 문인의 반골 성향, 당중우(唐仲友) 사건으로 대표된 지나친 네거티브 공세랑 타학파와의 연이은 설전, '나만이 할 수 있다[己獨能之]'는 먹물 특유 오지랖까지 한몫해 사방 곳곳에 적을 많이 심어왔다는 점에서 반쯤은 자초한 측면이 있었다. 

이런 도학파에 대한 기득권, 조정내외 관료군의 반감이 점증해간 시점에서 광종 퇴위-영종 즉위 직후 논공행상에서 푸대접받은 한탁주가 내궁(內宮) 관리를 책임지는 자신의 지각문사 직책을 활용해 종실 재상 조여우를 축출하고자 反도학파 관료그룹의 심경을 자극하고, 조여우와 정치적 연합관계인 주희 이하 도학파 관원들을 1차 타겟삼아 대거 실각시키는 한편, 반대파 인사도 싸그리 '僞學逆黨'으로 몰아 블랙리스트 작성한 것이 경원당금의 대체적 과정.

<宋史> 왕회전(王淮傳)의 표현대로 경원당금의 발단 계기였던 당중우(唐仲友) 스캔들 당시 주희가 보여준 인격적 결함은 후세 성리학 디스의 좋은 가십거리가 되버렸고...  제딴엔 권부와 연계된 지방 토호층의 비위를 시정하겠단 취지가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연회 석상에 불려가 당중우의 술 시중만 들었을 뿐인 관기를 투옥한 것으로도 모자라 고문까지 자행하며 소위 치정 싸움으로 비약시키려는 그 행태는 도저히 옹호할 수도, 변명의 여지도 없음.      

주희가 당중우를 필요 이상으로 건드린 사연엔 아무래도 자기가 스펙과 배경면에서 그보다 못하다는 자격지심이 작용한 듯 한데... 그도 그럴듯이 이 당중우란 양반, 재상 왕회랑 동향 인척지간이고 주희와 마찬가지로 소흥연간에 진사로 급제했지만, 남송시대 통틀어 세차례만 시행된 황제 주관의 특례 고시인 제과(制科)에 재응시하여 합격한 수재 엄친아였을 뿐만 아니라, 저서 일부도 궁중 경연에서 교재로 활용되는 만큼의 명성을 갖춘 석학이었거든.

반면 주희는 진사 출신이긴 하나 자의반 타의반 관직과 거리가 먼 타입인데다, 합격 정원 330명 가운데 278번이라는 과거 성적처럼 그렇게 특출난 1류 엘리트는 아니었지. 여하튼 주희의 여섯번에 걸친 탄핵, 거기에 응수한 당중우의 항변이 감정 싸움으로까지 치닫으면서 영문도 몰랐던 효종황제가 '쟤들 왜 저러는 거냐?'고 묻자 왕회는 '수재간의 한가한 기싸움'이라며 얼버무리고, 둘 다 해임시키는 선에서 덮어두었다지만... 미운털이 박혔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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