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중우 사건에서 주희의 망상과 열폭을 보면 잡소리








먹물 세계의 오묘함이라던지, 자칭 가방끈 길다는 고매하신 분들이 자존심에 흠집이 가면 얼마나 피해망상적으로 돌변하는지 절실히 증명해 보였다는 점에서 가관임.ㅋㅋㅋ 어제도 썼지만, 다시 한 번 간략히 정리해 봄.

사연인즉슨 효종 순희연간... 정확히는 서기 1182년 여름.

주희가 절동제거(浙東提擧)로 태주(台州)에 부임하면서 지사 당중우랑 업무상 자주 부딪치게 되었는데,

야사에 따르면 당중우의 형 당중의와 매형지간이자, 주희와도 교류가 있었던 진량(陳亮)이 평소 점찍어둔 절동지방 최고의 관기(官妓) 엄예(嚴蘂)를 내달라며 조름. 그 와중에 당중우가 엄예에게 '진량한테 가면 고생한다'는 뉘앙스로 농담한 것이 진량의 앙심을 샀고, 주희한테 달려가 '당중우가 당신더러 까막눈 한량이라 비웃는다'며 참소, 태주를 순시할 적에 당중우가 영접에 지각한 일화마저 결부되어 주희는 진량의 참언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리고 만다.

그 이전부터 양자는 이념적으로 대립관계인데다, 주희 본인의 당중우에 대한 컴플렉스까지 얽혀져서 감정이 좋지 않았던 터에
당중우가 지폐를 위조하고, 엄예를 불러다 술 시중 들게 했다는 첩보를 입수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후 6차례에 걸쳐 탄핵 상소를 제출함. 문제는 그 과정에서 주희가 자기 주관대로 스캔들의 규모를 부풀리고...

화근의 진앙지인 엄예를 체포해 1개월간 하옥시킴은 물론, 고문도 병행하여 자백을 강요하면서 이 사건을 단순한 수뢰형 비리가 아닌 치정 싸움으로 비화시키려는 무리수를 두는 바람에 조정의 내외와 사대부 사회로부터 악평을 사는 계기가 됨. 더더욱 나빴던 것은 하필 당시의 재상 왕회가 당중우랑 인척지간인지라 권력층의 심기를 정면으로 건드린 꼴이 되버렸음에도, 평소 근엄한 척 꼬장꼬장한 타입의 주희 성님은 앞뒤 안 가리고 판때기를 키우심.

결국 당중우의 비위 사실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었던 왕회가 자중하고, 효종황제까지 개입해 주희와 당중우를 모두 파면 ・좌천시키는 선에서 마무리됐지만, 이때 어그로가 <宋史> 왕회전에선 '경원연간 위학(僞學) 금령', 즉 주자학 탄압사건의 빌미가 되었다며 논평할만치 후폭풍을 몰고와 버렸으니, 주희가 '요주의 인물'마냥 찍혔던거지.

당중우 사건 전후로도 오히려 기세가 등등해진 도학파는 여조겸, 육상산, 엽적 등과도 일대 논전을 벌이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거기까진 좋은데 특유의 관념론과 당대 감찰어사의 비아냥대로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오만함, 자기 주장을 절대 기준으로 삼으며 타인에 강요하는 독단 때문에 파벌의 성장과 비례해 그만큼 반감도 높아져갔다. 당중우 스캔들의 상처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했던 중앙정부 고관들 시각에선 여간 고까운게 아니었던 거시다.

그렇다면, 주희가 어떠한 연유에서 당중우에게 그토록 비이성적으로 지나치게 굴었느냐... 배경을 따져보자면, 그가 단순히 회자를 위조하고 공금을 횡령하거나 기생이랑 놀아났다는 비위 행각보다 본질적인 사안으로서 도학파에서 배척 ・이단시하는 순자 등의 저서를 공간했다는 사상적 반감이 깔려 있었음. 그보다 사실 중요한 점으로...

집안 내력이나 스펙면에서 자신이 차마 당중우에 필적되지 못한다는 자격지심, 먹물 특유의 자부심이 열패감으로 뒤바뀐 것도 한 몫 했을 공산이 높아. 즉 상
기한대로 당중우는 재상 왕회랑 동향 인척지간인데다, 주희와 비슷하게 소흥연간 진사로 급제했지만, 남송시대 통틀어 세차례만 시행된 황제 주관의 특례 고시였던 제과(制科)에 재응시해 합격한 수재였을 뿐만 아니라, 저서도 경연 교재로 활용될 정도의 명성을 겸비한 '빽이 든든한' 석학이었거든.

반면 주희는 복건의 중하급 관료 가정 자식으로 진사 출신이긴 하나 자의반 타의반 정계와 거리를 둔 타입인데다, 합격 정원 330명 가운데 278번이라는 과거 성적처럼 그렇게 특출난 1류 엘리트까진 아니었고. 주희 휘하 문인들은 '士風'을 바로잡기 위한 처사였다며 변명했으나, 엄한 기생 상대로 고문까지 저지른건 이해불가한 행태지.

그 업보였는지, 주희 역시 경원당금의 풍파를 맞아 '비구니랑 어울렸다'는 혐의가 발각되버려 낙직파사(落職罷祠, 삭탈관직) 처분으로 공직 추방의 수모를 겪어야 했으니깐. 당금이 진전되면서 주희 도학파에 대한 탄핵의 선봉대로 활약한 직학사원 고문호(高文虎)란 사람은 전날 태주에서 당중우의 휘하 막료로 재직했었다는 여담도 있어. 처음엔 일상적인 권력투쟁의 희생양이라 동정했는데, 알고 보니 아니땐 굴뚝에 연기날리 없다고. 이유가 다 있었다.




덧글

  • 백범 2015/01/15 11:07 # 답글

    한국의 먹물들이 보여주는 비이성적인 "상대방을 증오하는 수준을 넘어서 마녀로 매도하는 패턴"과 상당히 유사하네요.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어쩌면 주희야 말로 어쩌면 현대 한국 좌파 지식인들의 사상적 직계조상인지도 모릅니다. 조선의 성리학탈레반의 직계자손들이 바로 현대의 좌파 지식인들이니까...

    교조주의와 원리주의, 맹신, 자신들은 뒤에서 별짓 다하면서 상대방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풍토는 17세기의 성리학 탈레반이나 20세기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이나 다 똑같지요. 놀라우리만치...
  • 나고야거주남 2015/01/15 11:41 # 삭제 답글

    성추행 한 윤창중은 죽일 ㄴ 되었지만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온다는(어딜 판 건지? ㅋㅋ) 채 모는 자식까지 있었는데 먼 산만 보는 좌파와 포털사이트 보면 답 나오죠 ㅋㅋ

    저 처럼 한국서 80년대 대학 다닌 사람들은 당시 소위 운동권들이 그 안에서 얼마 안되는 여자 동지(?)들 놓고 엠티네 합숙이네 같이 하면서 얼마나 추잡했는지 압니다. 재벌들이 미국에 집 산 것은 욕하지만 노통이 현직 국가원수일때 미국에 집 산 것은 입 다물고 있는게 딱 그네들 의식수준이죠. 아마 이 명박 자식들이 미국에서 불법으로 집 샀으면 볼만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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