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시즌을 맞이한 멕시코시티의 중심가 사진집








1940년부터 70년대 전반까지 멕시코 경제는 연평균 6%의 성장을 지속해 왔다. 30여년 동안 낮은 수준의 인플레에 기반한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멕시코의 기적(Mexican Miracle)'이라 지칭되었다. 멕시코 경제성장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개발도상국 사상 최초로 국가의 역할이 항구적이고도 광범위하게 수립되었다는데 있었다. 제도혁명당[PRI] 정권은 재정 투융자 및 수출입 제도, 농업 생산의 향상을 위한 토지 개혁과 신용 공여, 외국 자본의 소유 형태에 관한 엄격한 규제 등의 관치주의 수단으로써 지속적인 성장을 계획하고, 주도해 갔다. 물론 '멕시코의 기적'은 빈곤층의 증가와 1~2차 산업간의 격차 확대, 외채의 누증(累增) 현상을 수반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중산 계층에 꾸준한 실질 소득 증대를 가져다 주었고, 무엇보다 대다수 계층으로 하여금 사회-경제적 유동성의 기회를 보장해 주었다.

제도혁명당 전성기와 시기상으로 거의 일치한 '경제 기적'의 가장 포괄적이고도 심리적인 효과라면 '멕시코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해 가고 있다'는 신념이 국민 여론 사이에 암묵적으로 합의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저소득 ・열악한 고용 구조 ・사회적 불평등의 온존이라는 모순과 다른 한편으로 '못가진 상태'로부터 '가진 상태'로의 변화를 수백만 명의 멕시코인들이 체험할 수 있었으며, 이들을 통해 발견한 '희망적 요소'는 기타 계층에까지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성장의 분배로부터 하위 노동자와 농민 ・도시 빈민이 소외당했음에도 불구하고, PRI에 대한 지지는 대단히 완만하게 감소했는데, 당장의 모순된 현실을 '운수' 탓으로 치부하면서 부조리도 장래 언젠가 해소되리라는 기대 예상하에 불평등을 용인한 소위 '터널 효과'가 작용했던 배경이 체제의 결속 및 안정화에 기여한 셈이다.

그러나, 1968년 하계 올림픽 개최를 목전에 두고 벌어진 틀라텔롤코(Tlatelolco) 광장에서의 소요와 학살은 이러한 희망적 요소에 가정한 터널 효과가 필시 반석 위에 올려져 있지만은 않다는 징후를 PRI 집권 40년만에 표면화시킨 최초의 사건이었으며, 정권의 정통성과 항구적인 안정을 계속 유지시키려면 아래로부터의 요구에 부분적으로나마 수응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절박감을 집권당 내부 일각에서 통감하게끔 되었다. 요컨대 기존 체제에 대한 '신용도'가 점차 저하되기 시작한 분수령을 거치는 과정에서 멕시코는 1970년대를 맞이하였고, 국제 유가의 급등에 따른 석유 호경기에 자극받아 경제대국으로의 도약은 '민중주의적 노선'과 더불어 달성 가능하리란 낙관을 담보한 채 2차대전 이후 최대의 정치 실험에 착수하고자 시도했다. '일장춘몽'의 폭로를 증명하는데 오랜 시일이 걸리진 않았다.


* 짤방은 1974년 12월 21~22일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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