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근대 건축의 걸작 중앙청 구경하러 가보자~ 사진집








광복 50주년 3.1절 기념 문화제는 그간 뜨거운 쟁점이 되어온 옛 총독부 청사 철거 문제에 종지부를 찍었다. 정부는 박두진 시인의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97년 말까지 총독부 건물을 완전히 해체시킨다고 선포했다. 총독부 청사의 첨탑을 제거하는 8.15 기념식은 성대할 것이 분명하다. 그날, 서울의 광화문 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룰 것이고, 모든 전파 매체가 행사를 전국에 생중계할 것이다. 일본의 TV들도 '사라지는 총독부'를 본국에 송신할 것이다. 기념 잔치 초대에 응하지 않은 북한측을 아쉬워하면서 매스컴들은 '일제 잔재의 청산'과 '민족 정기 회복' 등을 마치 앞으로는 다시는 사용하지 못할 용어나 되는 듯이 연신 입에 올릴 것이다. 철거 ・보존론으로 팽팽히 맞선 최근까지의 총독부 보존 논쟁이나, 광복 50주년 행사들을 둘러보면 그것이 이른바 문화 민족의 '이성적 합의'라고 믿고는 싶다.

하지만, 거기엔 다음과 같은 본질적인 질문이 생략되어 있는 듯 싶다. 총독부 건물을 철거한다고 과연 일제 잔재가 청산되는 것인가? 경복궁을 복원한다고 민족 정기가 선양되는 것인가? 철거되는 총독부 건물 앞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의 내부로 시야를 돌려봐야 한다. 보이지 않는 총독부, 즉 '마음속의 총독부 건물'은 과연 없는 것인지 냉철하게 자문해 보아야 한다. 미(美)군정 청사,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중앙청, 혁명정부,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식과 영결식, 국립박물관으로 이어진 한국 현대사는 저 총독부의 긴 그림자와 전혀 무관했던 것이었는가? 그리고 누가, 무엇이 민족 정기를 가로막았는가? 또, '과거의 일제'와 '미래의 일본'을 어떻게 보자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 총독부 건물'을 뼈아프게 확인하는 데서 광복 50주년은 출발해야 한다. 청산하지 않은, 청산하지 못한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14개월간 공역을 마치고 재개관한 중앙청 복구 기념식전에서 테이프를 끊는 박정희 재건회의 의장  
             총 수리비 30억환으로 300억환의 효용 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는 명분하에 복구를 실행한 것이다.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신축 공사가 초읽기에 돌입한 가운데 촬영된 중앙청 앞 광화문 삼거리의 전경
             65년 연두교서 이래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부착된 증산 ・수출 ・건설의 3대 표어가 인상적이다.  


             아태지역 10개국 장관의 방한을 맞아 국기와 현수막으로 장식된 중앙청 현관 전경, 1966년 6월 14일 
             외상 각료회담 개최를 기념해 중앙청 외벽엔 해방 후 20년 9개월만에 처음으로 일장기가 내걸렸다.  
              

            메인홀 남측 현관 방면을 바라본 전경, 수출 확대회의를 비롯해 관제 전시회 개최 장소로 활용되었다.
            벽면 상단의 양풍 벽화는 하고로모(羽衣) 설화를 모티브로 제작된 것이며, 해방 후에도 존치시켰다.   


              남측 벽면의 중앙에 내걸린 세로형 태극기, 무궁화 문장은 70년대초 새롭게 조각해 장식된 것이다.
              본래 8점의 벽화 가운데 2점이 전쟁통에 소실되면서 그 자리엔 무궁화 문장을 대신 집어넣었다.


                북측 후면의 3층 회의실로 향하는 계단, 6.25 이전까지 국회의장석과 발언석이 배치되어 있었다.


                1948년 5월 31일, 중앙청 메인홀의 초대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선출 소감을 표명중인 이승만 의장
                발언석 정중앙으로 하지(Hodge) 사령관이, 그 우측엔 군정장관 딘(Dean) 소장이 착석해 있다.


              1950년 9월 29일, 중앙청 메인홀에서 거행된 환도식전에서 축사 겸 기도문을 낭독중인 맥아더 원수  
              제헌의회 소집 장소로 6.25 이전까지 국회가 입주했으나, 휴전 후 의사당은 태평로로 이전해갔다. 


                메인홀 북측의 전경, 3층 회의실 출입문 위로 국장(國章)이 정부 청사의 권위를 대변해주고 있다.
                메인홀과 접속된 회랑마다 보안상 이유로 설치된 가림막들은 박물관 개조시 모두 철거되었다.  


              메인홀 천정의 무궁화 문장들, 백색 대리석 및 석고로 마감된 바탕에다 도리아 양식을 가미시켰다.


                메인홀과 현관문 사이의 정면홀에서 바라본 옥상 반구형 돔, 준공 초기엔 동양 최대의 규모였다.
                8각형 원주로 치장된 스테인드글라스의 기하학 양식은 청동색 타일과 금상첨화를 이루었다. 


              현관 계단 입구의 우측에 주재중인 안내원, 성인 키를 능가한 대형 청동제 조명등이 설치되어 있다.

            
             본관 동측의 국가안보회의 지하 벙커로 연결된 입구의 전경, 박물관 개조 후 유물 저장소로 쓰였다.  


               237호 국무회의실 출입구, 본래 3층의 대회의실 및 307호에 입주했다가 1981년 이전해 온 것이다.


              국무회의실 전경, 매주 2회씩 정례 소집된 회의는 입주 기관이 떠나기 시작하면서 1회로 축소했다.  
              1983년 5월 19일에 개최된 국무회의를 마지막으로 중앙청의 청사 시대는 57년만에 막을 내렸다.   


              2층 승강기 입구, 오일쇼크의 암영하에 에너지 절약이 급선무인 시대상을 반영해 운행 정지되었다.


             3층 국무총리실과 총무처 장관실간 정면홀 전경, 68년 이후 총리실 방향은 출입 통제구역이 되었다.


              307호 중앙회의실 출입구, 본관이 수리된 1963년부터 18년간 국무회의는 이 방에서 개최되어 왔다.


                중앙회의실 출입구 우측에 전시된 독립 선언서를 기초한 3.1 운동 대표 33인의 모습을 담은 벽화


            국무회의실이 입주해있던 중앙회의실 실내 광경, 3공~유신시대의 국사(國事)가 여기서 처리되었다.
            개헌 ・긴급조치 ・계엄령 선포로 굴곡진 현대 정치사 결정적 순간들의 핵심 무대 장소이기도 했다.


               중앙회의실과 대회의실[제1회의실]간 복도의 전경, 박물관 입관 후엔 일반인 휴게소가 들어섰다.


             대회의실 내부 출입구에 장식된 커튼, 90년대 본관을 철거하던 와중에 최후까지 잔존한 부분이었다.


              청사 준공 당시에 촬영된 대회의실 전면의 옥좌, 시무식 등의 행사를 개최하면서 총독이 착석했다.
              해방 직후 마지막 조선총독인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가 항복 문서에 조인한 장소이기도 하다. 
                      

              옥좌를 치워낸 자리에 대한민국 국장과 정부 로고가 대신 부착된 광경, 기존의 계단도 축소시켰다.
              대형 국무회의나 지방관 회의 개최 장소로 활용되었고, 이따금 국빈 환영 만찬회가 거행되었다.


              대회의실 후면의 벽난로와 거울, 천정과 벽면의 무궁화 문양들은 국화를 대부분 교체시킨 것이다.
              중앙홀 후방에 위치한 대회의실은 3~4층을 수직으로 증축해 청사내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25M 높이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 총독부 청사를 신축하면서 일제는 유럽산 장식 자재를 투입했다.


              대회의실에서 개최된 가봉 대통령 환영 국빈 만찬회, 정부 수립 이래 최고의 의전을 갖춘 연회였다.


             국무총리실 근방 정면홀의 산업화 프로파간다 기록화들, 작품 30여점이 청사내 도처에 전시되었다.  


             310호 국무총리실 출입구. 해방 이전엔 총독실이었으며, 이승만 대통령의 초기 집무실이기도 했다.


              준공 초기의 총독실, 일본인 총독 6명이 이곳에서 조선 통치의 대강을 집무 ・총괄하며 군림했었다.
              테이블 뒷편의 출입문 쪽 벽면으로 사쿠라가 장식된 거울과 호화 공예품 따위가 비치되어 있다. 


               총독실 전면의 벽난로 장식과 소파가 비치된 모습, 가구들은 일본 내지와 통영으로부터 조달했다. 
             

              중앙청으로 내방한 모로코 왕자 일행이 총리실에서 국무총리의 접견을 받는 광경, 1977년 6월 9일
              테이블 거울엔 대통령 초상화가 걸렸으며, 내부 벽지와 창틀 역시 비교적 한국식으로 개조했다.
              

               행청 청사로서의 연혁을 마감하고, 박물관 개수 작업이 착수되기 직전에 촬영된 국무총리실 광경
               본관 수리 후 총리실 전용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근무한 전적도 있다.
               

               총리실의 샹들리에, 이승만 대통령이 일제 가구들을 치우는 과정에서 떼어냈다가 다시 내걸었다.
               

            총리석 테이블, 가뜩이나 마빡이 빈약한 그분은 샹들리에 조명을 감수한 탓인지 더더욱 빛나 보인다. 
             

             국무총리 대접견실, 일일 수십명에 이르는 정례 방문자들의 영접을 소화하기 위해 마련된 장소이다.  

              
              301호 총무처 상황실 벽면의 역대 장관 초상화, 문민정부 이후 신설된 행정자치부에 통폐합되었다.

             
             305호 총무처 장관실 출입구, 행정 사무를 총괄하는 부처로 중앙청 청사의 관리도 전담하고 있었다.


                총무처 장관실 실내의 집무 테이블, 창밖으로 60년대 말 복원된 콘크리트 광화문 문루가 보인다.


                319호의 국무총리 비서실장실, 벽면의 만국 지도를 바라보면서 실장님은 무슨 생각에 잠긴건지?


             총리 비서실에서 근무중인 직원들, 단명한 2공 시절에 설치된 이래 23년간 중앙청에 자리잡아 왔다.


             208호 기자실 출입구. 국무회의 취재가 이 방에서 보도되었고, TV 방송실은 1층에 별도로 마련했다.  


             105호 중앙청 당직 총사령실을 출입구에서 바라본 광경, 각 부처 당직실의 통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139호 총무과 출입구, 총무처 부처내의 감사 등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던 기구로 권한이 상당했다.


             총독부 우편국 시절부터 입주해왔던 중앙청 1층 우체국, 종로구의 우편번호 110번이 표시되어 있다.


             한은 국고 대리점 명목의 농협 중앙청 지점, 저축 장려에 편승해 공무원들이 여기서 적금을 들었다.


             청사 현관 앞 계단의 광경, 총무처 관리과가 조경을 담당하면서 묘목 수백여 그루를 이식해 꾸몄다.   


             광복 3주년 및 역사적인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이 거행된 중앙청 현관의 전경, 1948년 8월 15일
             유신 이전까지의 역대 대통령 취임식 등을 위시로 국경일과 관제 행사가 본 광장에서 개최되었다.  


               1953년 8월 15일, 제2대 대통령 취임 1주년 및 광복 8주년 기념식전이 거행중인 중앙청 광장 전경
               전쟁 초기에 발생한 방화와 총격전으로 옥상 돔 부분의 유리창은 완파되고, 내부도 전소당했다.


              휴전 직후인 1953년과 67년도의 중앙청 방향 세종로를 비교한 장면, 관청가의 심장부 그 자체였다.
              돌격 大건설 슬로건을 모토로 시공된 광화문 지하도의 개통과 맞물리며 8차선으로 확장되었다.


             본관 좌측에 소재한 제1별관, 문화공보부 및 부속 기관이 사용해오다 중앙청사 이전 후 철거되었다.
             환도 직후인 1953년부터 본관이 수리될 때까지 임시 국무회의실이 2층에 입주했던 내력도 있었다.


           제1별관 후방의 정부 기록물 보존소, 일제시대엔 총독부 학무국이 입주한 곳으로 86년 봄에 철거했다.
           본래 일본식 기와 지붕이 씌워져 1층이 추가되었으나, 휴전 후 해체시켜 콘크리트로 땜질한 것이다.


             중앙청 서측 광장에 소재한 청사 기관실과 온실, 조경에 공급될 화초를 집중 재배시키던 장소였다.


            중앙청 근무 공무원들의 편의 시설로 1978년 신축된 후생관 전경,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이 들어섰다.


               청사 본관의 좌측 후면을 바라본 전경, 아스팔트 도로를 끼고 경복궁 근정전과 마주하고 있었다.


              1979년 12월 13일, 중앙청 서측 광장으로 진주 ・배치된 육군 제9사단 29연대 소속 전차와 장갑차들
              유신의 잔재를 뒤로 한 채 격동의 80년대 한국 현대사는 이날부터 그 서막을 열어가기 시작했다.


            청사 본관의 우측 측면을 바라본 전경, 측면 중앙의 1층엔 차량이 통과할 수 있도록 출입구가 뚫렸다.


             청사 동측의 측면 출입구. 내부의 중정(中庭)으로 연결되면서 출퇴근 차량이 이곳을 통과하곤 했다.


             중앙청 동측 광장 전경, 국립박물관 입관 후 민간에 개방되면서 아스팔트는 보도블럭으로 교체했다.


             동측 광장의 북측에 마련된 직원용 테니스장, 일제시대 개장했던 것을 그대로 확장 ・개수한 것이다.
             뒷편의 휴게실과 담장 경계 너머로 보이는 조선식 문루는 경복궁의 정문인 건춘문(建春門)이다.


              옛 경복궁 유적지 안내도, 핵심 정전과 전각을 제외한 나머지 일대엔 인공 정원을 조성해 개방했다.
              학 ・예술원과 국립박물관 및 민속박물관이 밀집해 문화 생활의 중추적 권역으로서 기능하였다. 


            건춘문에서 바라본 경천사 10층 석탑 전경, 현재는 용산의 국립박물관 실내로 이전되어 전시중이다.  
            대리석 기반에 원나라의 라마교 양식이 절충된 고려조 불탑 건축을 상징한 걸작으로 각광받았다. 


             경천사 석탑을 배경삼아 포즈를 취한 여인들, 맞은편 건물은 학 ・예술원 본부로 87년까지 사용했다.
             본래 용도는 일제시대 총독부 박물관이었다가, 학술원을 거쳐서 공예품 전시관이 입주하게 된다. 
              

             전시장 정원에 배치된 법천사 지광국사(智光國師) 현묘탑(玄妙塔), 전방으로 근정전 누각이 보인다.


              경회루 동쪽의 불탑 전시장에서 중앙청 방면을 촬영한 광경, 우측으로 세종로 종합청사도 보인다.


            해방 직후에 미군이 공중 촬영한 경복궁, 60년대까지 궐내 권역은 전람회장으로도 종종 활용되었다.  


               청와대 옥상에서부터 바라본 중앙청 전경, 돔 양측으로 새마을 운동기와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덧글

  • 이글 2016/04/19 21:46 # 답글

    노태우 이후에 김대중 슨상님 먼저 대통령을 하고 땡삼이 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좋은 일본 문화 받아들이자 라고 하셨던 슨상님 그립습니다...
  • 나인테일 2016/04/19 23:03 # 답글

    저 시절 경복궁은 정말이지 아무 것도 없었군요...
  • 역시 2016/04/20 00:45 # 삭제 답글

    역시 미개했다... 유럽에 가면 흔하게 널려있는 건물이 어울리지 않게 휑뎅그레...
  • 손님 2016/04/20 01:03 # 삭제 답글

    1. 그럼 동독이 프로이센 왕궁 부수고 거기에 지은 공화국 궁전 부숴버린 후에 왕궁 복원 들어간 현재 독일 정부나 후에나 하노이의 구 왕궁들 복원 들어가는 베트남 정부도 바보짓 하는건가요?

    2. 궁궐 복원은 애시당초 문화재 복원이나 정기 회복에 관광자원 확보 목적도 큼. 일단 흔해보이는 서양식 건물보다는 그 나라 전통양식 왕궁이 사람 끌어모으기는 딱일듯 한데요.

    3. 94년 당시 한국 예산이 5-60조인데 당시 돈으로 이전 비용이 1조 넘게 잡힘요. 이전비용이 너무 비싸서 부수는게 싸게 먹힐 판국이었습니다만. 더군다나 건축학적으로만 따지면 생각보다 흔해빠진 건축양식이라 가치는 그저 그런 수준에 원래 있던 왕궁의 역사적 가치나 제대로 복원시 건축학적 가치도 더 큰 판이고요.
  • 心月 2016/04/20 07:45 #

    1. ㅇㅇ 뻘짓 맞음. 베트남은 잘 모르겠고, 동독의 공화국 궁전이 석면 자재로 건축된 만큼 건강상 유해 요인을 감안해 철거가 불가피했다 칩시다. 그렇다고, 프로이센 왕궁까지 복원시키려는 행위는 좀 오버한다는 감이 듬. 1차대전으로 말아먹은 군국주의 최선봉 호엔촐레른 왕가 역시 나치스와 동독 못지않게 단죄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 보는데, 어째서 그치들의 망령을 되살려주는 행태를 굳이 자초하는지 개인적으로 노 이해.

    2. 민족 정기가 실재한다면 중앙청 허물자마자 imf 크리 쳐맞는 일도 없었을 듯.ㄲㄲ

    건물의 내력상 철거와 존치 여부를 놓고 진지한 논의가 수반되어야 했던게 정상인데, 땡삼이가 중앙청을 계속 청사나 박물관으로 활용해왔던 군사정권과의 차별화만 의식한 여론몰이 전략 차원에서 선동하니깐 그쪽으로 몰려간거임. 심지어 경복궁 복원도 신응수가 개입된 순간부터 시망 확정이었고, 최근의 광화문 현판 논란에서 회자된 바대로 고증마저 허점 투성이었음이 속속 드러난 판국에 이런 식이라면 흔해빠진 영화장 세트 조립과 매한가지라고 사료됨. 하다못해 흥례문에다 제헌국회랑 정부 수립을 암시하는 표식이라도 세워놔야 마땅하지.

    3.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고궁 복원을 저 따위로 엉성하게 할 바엔 차라리 중앙청의 철거는 물론, 이전-이축도 가당치 않다고 봄. 다 박살내고 이제와서 이런 소리 운운한 자체가 우습기조차 하다만, 그만큼 미련이 남을 만한 건축인데다, 흔해빠진 '파쿠리 양식' 이런 것보단 청사가 가진 실질적 상징성을 더 중시하는 입장이라서.

    일제 식민지배도 치부이나마 엄연히 역사의 한 단면이었고, 총독부 사용 연혁보다 갑절이나 더 오랫동안 한국 정부의 중앙청사['조선총독부'만 머릿속에 박혀있지, 이걸 여전히 망각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임]로 자리매김해 현대사와 뗄래야 떼놓을 수 없는 공간이었는데, 어떤 측면에선 대원군이 왕실 주거지로 중건했다가 30년만에 내팽개친 경복궁과 비교해서도 더 의의가 있다고 생각함. 초대 헌법이 제정-공포되고, 명색이 주권재민 공화국 정부가 수립했으며,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되었고, 수천회의 국무회의가 열려왔던 청사를 '역사 바로 세우기'란 허울좋은 명목으로 건물의 탄생 배경만 트집잡아 산산조각 내버린 나라가 대명천지 또 어디에 있었나요?
  • 바람불어 2016/04/20 13:26 #

    2. 민족정기가 아니라 그 자리의 장소성 역사성을 따졌을 때 지금 경복궁 자리의 의의는 경복궁 >>>>>>>>>>>>>>>>>>>>>>>>>>>>>조선총독부입니다.

    3. 고궁복원을 '저 따위로' 엉성하게 했다는 건 뭔 얘긴지. 님이 고궁복원에 관심이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않습니다.

    또 조선총독부 건물이 경복궁과 비교해서 역사적 의의가 더 있다는 님의 얘기는 한숨만 나옵니다. 500년 왕조의 법궁이 우습게 보이고, 36년 제국주의의 총독부가 존경스러운 건가요? 일제식민지배도 엄연히 역사의 한 단면인건 분명 사실인데 그 단면이 500년 왕조의 궁궐 그것도 법궁을 무시하고 존재해야할 역사성은 없습니다. 식민지배가 옳았다거나 일본에 헤롱헤롱거리는 사람이 아닌다음에야.


    *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경복궁과 조선총독부 건물은 한자리에 같이 존재할수없습니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어디 빈터에 그냥 세운 게 아니라 의도 자체가 조선왕조를 부정하며 일제식민통치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경복궁이 사라지거나 조선총독부건물이 사라지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죠. 그게 저 자리의 장소성입니다.

    그 장소성때문에 경성부청 , 조선은행 건물과 달리 조선총독부는 허문겁니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거기에 세운 의도가 뻔히 보이는 건물인데도 님은 계속 안보여 안보여 그냥 멋진 건물이야....순진한 척 합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일제의 순정'따위는 없습니다. 님만 그렇게 억지로 주장할뿐.

    2010년대 지금은 일제시대 건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허물거나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님 얘기대로) 일제시대도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 생각해서 근대건축물로 등록도하고 보존도 합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 건물은 등록보존하기엔 그 자리의 장소성 즉 악랄하고 유치졸렬한 의도가 있던 건물입니다. 님이 단순히 무슨 양식의 크고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찬사를 내뿜는 건 님이 순진한게 아니라 님이 필요한 부분에선 역사를 전혀 모르는척 하는 사기죠.

  • 명탐정 호성 2018/08/26 09:04 #

    1. 복원이나 철거나 돈이 많이 들어가니 안하는게 좋습니다

    2. 그래서 관광객들이 안오면 그 복원 비용은 어떻게 뽑나요

    3. 그럼 철거도 이전도 안하고 그냥 두면 되겠군요
  • 바람불어 2016/04/20 13:35 # 답글

    조선총독부 건물 허물기 직전에 경복궁 구경 갔더랬습니다. 근정전에서 (안보이는) 광화문쪽 거대한 벽을 바라보니 피식 웃음이 나오더군요. 일제애들의 그 졸렬한 발상에. '애들도 아니고 이게 뭐야? 으 유치해'하며. 그때문에 영삼이의 절단쇼를 재미있게 티비로 봤던 기억도 납니다.
  • ㅇㅇ 2016/04/20 19:17 # 삭제

    유치하다고 자기 세뇌하지 마시길. 뭐가 유치함? 총독부 건물 멋있는데
  • ㅇㅇ 2016/04/20 19:20 # 삭제

    상징성이라면 조선 초의 경복궁이 상징성이 있지. 하지만 불탔고 중건 된 경복궁은 써봐야 얼마나 더 썼나? 총독부를 허물었어야할만큼 중건 경복궁은 그닥 가치가 없음. 차라리 시간이 걸리고 돈이 들어도 총독부를 옮겼어야지.
  • ㅇㅇ 2016/04/20 19:21 # 삭제

    지금 경복궁 복원하는 부분들을 살펴보면 졸속 복원이라고 할만한게 꽤 있는데 알고나 적길.
  • 백범 2016/04/24 19:57 #

    건물 하나 해체하면 민족정기가 되살아날 거라는 망상을 떠는 영삼이의 사고방식이 더 유치한 듯...
  • 명탐정 호성 2018/08/26 09:04 #

    IMF 이후 김영삼 : 일본에 돈 빌리러 감
  • 머지? 2016/04/20 14:51 # 삭제 답글

    경복궁 자리가 아니라면 님 말이 맞죠
    뭔 말장난도 아니고
  • 心月 2016/04/20 15:47 #

    애당초 금천교랑 흥례문 회랑만 있던 자리에 세워진 청사였고, 광화문도 어찌됐든 이전시켰잖슴? 기실 궐내의 전각들 신나게 뜯겨나갈 동안에도 근정전과 편전 등 핵심은 보존되었겠다, 무엇보다 저 청사를 세울 시점으로 따진다면 경복궁도 중건한 지 40년에 불과하고, 빈 궁터라 그렇게 가치가 대단하다는 인식까진 없었음.
  • deokbusin 2016/04/21 15:59 # 답글

    처음 뵙겠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정부종합청사를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이 된 시기에 유물 관람차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해당 건물이 해체될 거라는 이야기가 많았던 시기여서 박물관을 방문했고, 건물 내부를 돌아보면서 마치 자신이 절대적인 지배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며, 그래서 건물 해체를 결정한 김영삼에게 비판적이기도 했습니다.



    건물이 해체되고 얼마 후 <헤르메스의 기둥>이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소설 중 일부 서술에 나치 정권이 공공건물의 위엄을 유난히 강조한 이유가 있었는데, "장엄하고 위대한 건물 내부 한 구석에서 거울을 바라보며 아리안 민족은 지배자가 될 운명의 민족이다, 독일은 강대국이 되어야 한다, 유태인은 박멸되어야 한다고 뇌까리는 히틀러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체험한 조선총독부 내부의 위엄있는 구조가 결국은 총독부 건물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야 말로 절대적인 지배자라는 암시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이 조선총독부 건물을 방문하고서 느꼈던 지배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바로 착각이라는, 총독부 관료들에게 자기들이야 말로 지배자라는 암시를 주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허영과 위선과 기만으로 중첩된 것임을 말입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라도 총독부 건물 해체는 정당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조선반도의 현대인 2016/04/22 22:49 # 답글

    완전철거가 아닌 다른곳으로 이전하는게 정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총독부건물이 단순히 일제 지배의 상징일 뿐만이라
    대한민국 건국초기 역사에서도 빼놓을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죠
  • 백범 2016/04/24 19:55 #

    건국 초기부터 김영삼 집권 전까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 2016/04/24 19:5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백범 2016/04/24 19:55 # 답글

    다른 곳으로 이전해서라도 보존해야 했습니다. 다른 나라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는데...

    이건 정신승리 밖에는 안됩니다. 건물 하나 없애서 생겨날 민족정기 같으면 벌써 생기고도 남았지!!!
  • ㅋㅋㅋ 2016/10/06 10:14 # 삭제

    그럼 반대로 생각하면 건물 하나에서 역사의 교훈을 얻는 훌륭한 민족이면 벌써 다른 쪽에서 교훈을 얻고도 남았겠습니다
  • 2016/05/15 15:5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5/15 18:2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6/05/15 18:4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6/05/15 19:0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초야우생 2016/10/25 01:05 # 삭제 답글

    경복궁이 조선총독부보다 중요하다고 해도 없애버릴 성격의 것은 아니지. 유치하고 졸렬해도 그것도 우리 역사인데. 그 자리에 경복궁이 있는 게 조선총독부보다 더 가치있다고 해도, 조선총독부를 독립기념관 옆에다 복원해놓고 거기다가 항일독립운동 관련 전시를 잔뜩 두면 되었을 것을. 뇌 없는 몇몇 일본인들이 천안의 그 후미진 곳에서 항일 관련 자료들로 꽉 찬 조선총독부를 보고 자위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걸 단지 돈 많이 든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복원할 필요는 없다고 철거하는 위정자들이나 일반 국민들의 생각이나 이해가 안 간다. 돈 많이 든다고, 보기 추악하다고 없애버릴거면 문화재 보존은 왜 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위대한 민족이라고 자위질하려고 문화재 보존 하는 거였어? 그저 추악한 반일주의의 산물일 뿐이고, 아무리 일제가 미워도 저건 진짜 반성해야 할 짓.
  • 초야우생 2016/10/25 01:11 # 삭제 답글

    그래도 저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저 추악한 반일주의가 많이 사라져서 다행. 부디 오늘날에는 추악한 기억 없애고 건물 때려부수려는 생각 하지 말고, 위안부 문제같은 오늘날에도 해결되지 않은 것들부터 더 고려해주고, 일본 정부가 진정 전쟁이나 제국주의를 반성하게 해도록 노력해주길. 하지만 이런 문제가 건물 때려부수는 것보다 더 어려우니 뇌가 없는 반일병신들은 못 할테지.
  • 나그네 2018/08/12 09:55 # 삭제 답글

    중앙청은 우리의 건국 역사와 함께 우리가 활용했던 역사를 이유로 이전이나 보존했어야 했다며 철거를 비난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큰 착각이며 낚이고 있는 겁니다.
    철거 전 일본이 중앙청을 보전하기 위해 들었던 이유기도 하고 이후 민족반역자 및 후손이나 벌레 같이 생존하기 위해 당위성을 주장하는 용도로 악 이용하고 있는 주장입니다.
    중앙청이 정치적인 선동에 놀아났다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절대 아닙니다.
    중앙청 건물의 시작과 일제 강점기 때 만행이 우리나라 건국의 역사와 활용을 이유로 감쌀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과 해방 후 건물 사용은 당시 우리 무지로 역사를 바로 보지 못하고 무능했던 정부의 만행이라는 겁니다.
    존재 자체가 우리나라의 가장 큰 혈을 누르고 있어 철거를 결정한 것이고 아픈 역사도 역사라며 남겨야 했다고 말하는 건 아주 생각이 모자란 발상이죠.
    중앙청 철거이후 우리 문화재 복원사업으로 오히려 더 큰 결실을 맺고 있는데 생각 없이 뚫린 입이라고 막 쏟아내지 맙시다.
  • ㅇㅇ 2018/08/22 12:41 # 삭제 답글

    댓글에 미친놈들 많네.
  • MKD 2018/10/31 20:15 # 삭제 답글

    귀한 사진들 잘 보고 갑니다.
  • 미쳤나.. 2019/12/20 09:29 # 삭제 답글

    총독부를 뭔 중앙청이라고... 여기가 일빠모임인가봐요
  • ㅇㅇ 2019/12/20 14:11 # 삭제 답글

    일제 청산 아직 멀었다... 중앙청??

    일본으로부터 콩고물하나 얻어먹지도 못한것들이 딱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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