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새해 정월의 서호(西湖)와 그 주변 사진집




                서호의 유일한 자연섬 고산(孤山) 전경, 서령인사(西泠印社) 및 누외루(樓外樓) 방면의 모습이다.
                섬의 동쪽은 백제(白堤), 서쪽은 서령교(西泠橋)와 맞닿아 소가 호수에 드리누운 형상이 되었다.


             눈발이 그친 직후의 안개 속에서 바라본 완공돈(阮公墩), 서호 3도(三島) 가운데 규모가 가장 작았다.


              겨울철 잔설(殘雪)이 녹으면서 다리가 끊어진 듯한 형상을 나타낸다 하여 명명된 백제의 단교(斷橋)
              백사전(白蛇傳) 설화의 허선(許仙)과 백소정(白素貞)이 처음 마주쳤던 무대로 알려진 명소이다.


              물결 없이 잔잔한 호수의 섬 사이로 솟아난 버드나무, 그 아래 벤치가 묘하게 운치와 조화를 이룬다.


               가을철 호반 야경과 달빛을 전망하는데 안성맞춤인 10경(十景)의 대표적 명소 평호추월(平湖秋月)
             

             서호 동남쪽 삼담인월(三潭印月)의 연못, 별칭 소영주(小瀛洲)로 섬내엔 인공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서호 서북쪽 서하령(栖霞嶺) 기슭에 소재한 항금명장(抗金名將) 악비(岳飛)의 봉분과 묘비(墓碑)
                송나라 가정(嘉定) 4년(1211)에 조성되었으며, 문혁 초기 파헤쳐진 것을 1979년에 복구시켰다.
              

             악왕묘(岳王廟) 묘정(廟廷)의 무인(武人) 석상, 기타 석조물들도 대부분 명대(明代)에 조성된 것이다.


               문무관(文武官) 석상, 일명 석옹중(石翁仲)으로 세월의 풍파와 문혁을 거친 탓인지 상처 투성이다.
         

             석수(石獸) 조형물, 석마상(石馬像)에 걸터앉아 승마(?)를 즐기는 꼬마의 해맑은 표정이 인상적이다.
           

              악비 숙청을 집행해 후세에 한간(漢奸)의 대명사처럼 낙인찍힌 재상 진회(秦檜) 부부의 철상(鐵像)
              남송대(南宋代) 권상(權相)정치의 선구자였던 한편으로 사후 8백여년 넘게 철저히 격하되어 왔다.


               북고봉(北高峰) 기슭의 영은사(靈隱寺), 동진(東晋)시대 이래 1600여년의 내력을 간직한 고찰이다.
               서기 960년 오월국(吳越國) 충의왕(忠懿王)이 중건하면서 선종(禪宗)의 성지로 입지를 굳혔다.

             
              대웅전의 불상, 오월국 시대 사찰을 중수하면서 제조된 것으로 당말(唐末)의 풍격을 간직하고 있다.
             

              북고봉 맞은편에 위치한 비래봉(飛來峰) 석굴(石窟)의 불상, 그 위로 다보철탑(多寶鐵塔)이 보인다.
              송원시대(宋元時代) 5백년간 집중 조성된 석불만 340여존(尊)으로 봉우리 도처마다 나열되었다.
               

             송대 석불의 최고 정예작이라 손꼽힌 노사나불회부조상(盧舍那佛會浮雕像), 1022년에 건조되었다.
            

               코끼리 위에 올라탄 보현보살(普賢菩薩), 원대의 작품으로 수려하고도 자비로운 용모를 강조했다.


               비래봉 최대 석굴인 대두미륵(大肚彌勒) 및 18 나한상(羅漢像), 송대 석조 공정의 대표적 걸작이다.


               북고봉 동쪽으로 운행중인 케이블카, 관광객 및 등산객의 편의를 위해 1980년에 신설 ・개통되었다.
            

              북고봉 정상에서 바라본 영은사 전경, 설산(雪山)의 녹음 속으로 자리잡은 고찰의 정취가 아늑하다.


                서호 고산(孤山)의 평호추월, 호수 수면과 비슷한 각도에서 조망된 경치가 일품으로 알려져 있다.
                후면엔 별도의 정원이 마련되었으며, 누각과 정자는 문혁 당시 철거당했다가 복구시킨 것이다.

              
             평호추월의 서쪽 광경, 청대엔 <사고전서>를 수장한 문란각(文瀾閣)이 고산내에 개설되기도 했었다.
            

              갈령(葛嶺) 끝자락의 북리호(北里湖) 입구에 위치한 서령교(西泠橋), 송대엔 재상의 사택이 있었다.
           

             삼담인월(三潭印月) 입구의 전경, '호수 가운데 섬, 섬 가운데 호수'라는 독특한 경관을 드러내고 있다.
             섬내의 연못 위엔 제방과 구곡교(九曲橋)가 가로지르며, 공중에서 바라보면 '전(田)'자처럼 생겼다.
            

             삼담인월 섬내의 규모 7ha 호수와 정원, 여름엔 연꽃이 집중 개화해 또 하나의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서리호(西里湖) 남쪽의 화항관어(花港觀漁), 수목 15000 그루와 잉어떼를 아우른 데서 유래되었다.
             

              보석산(寶石山)을 배경삼아 바라본 단교(斷橋)의 전경, 산 정상에 세워진 탑은 보숙탑(保俶塔)이다.
              불국토(佛國土)의 이상향을 꿈꿨던 오월국 충의왕이 아소카왕 신화를 모방하면서 남긴 유산이다.
             

             1973년 9월 16일, 서호의 VIP 전용 유람선 실내에서 포즈를 취하며 상념에 잠긴 주은래(周恩來) 수상
             이날 항주로 내방한 퐁피두(Pompidou) 프랑스 대통령 일행과의 선상(船上)회담에 앞서 촬영됐다.


              1842년 개업한 서호 호반의 최고 반점(飯店)으로 국내외 명사들이 즐겨 찾은 누외루 구내의 테이블
              서호초어(西湖醋魚)와 동파육, 거지닭 등의 절강 특산요리 위주로 취급하면서 인기를 구가했다.
            

               점심 오찬을 즐기며 담소가 오가는 테이블의 광경, 남색 인민복 차림이 시대상을 반영해주고 있다.
             

             냅킨을 정리하며 에티켓 교육중인 레스토랑 직원들, 개혁개방이 도래하면서 외국어 습득도 성행했다.
            

               누외루에서 바라본 호심정(湖心亭), 호반에 깔린 옅은 안개가 신비스런 색채마저 더해주는 듯하다.


              항주역(杭州驛), 상해까지 연결된 총연장 189km의 호항선(滬杭線) 철도 종착지로 1909년 개통했다.
              역사(驛舍)는 1942년 일본 점령군이 나라시대(奈良時代) 양식에 따라 신축한 것이며, 왜색풍이다.


              항주역 역전 광장, 자본주의성 광고판이 점차 게재되는 가운데 무궤도 전차(電車)가 질주하고 있다.


             역전 광장 북쪽의 주자창과 아파트 객사, 시계판은 여행객의 스케줄 고려에 없어선 안 될 구조물이다. 


              티켓 주문을 위해 매표소 앞에서 대기중인 승객들, 동시대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광경이다.


            항주역 구내 플랫폼, 본선인 호항선 외에 항용선(杭甬線)과 광동 방면의 횡단열차도 이곳에 기착했다.
            상해까지 4시간 반 가량 소요된 노후화 개선이 시급해지면서 87~88년부터 복선화 공정에 착수했다.


              호항선 여객열차의 1등석 실내, 5~60년대 수입된 소련제 객차를 일부 개조하거나 그대로 활용했다.
              

                객차 내부를 순시하는 차장(車掌), 우롱차 등의 다과를 승객들에게 제공해주는 서비스도 있었다.




湖上春来似畵圖    호수 위로 봄이 오면서 그림과도 같은데     
亂峰圍繞水平鋪    여러 봉우리들을 에워싸며 수면은 잔잔하네
松排山面千重翠    산에는 소나무가 늘어서 1천겹의 비취인데                                                                        
月點波心一顆珠    물결 가운데엔 달이 한 알의 구슬처럼 박혀있다.                                            
壁毯線頭抽早稻    푸른색 담요의 실마리처럼 뽑아낸 이삭벼                                         
靑羅裙帶展新蒲    푸른색 비단의 허리띠처럼 새로 늘어난 창포(蒲)
未能抛得杭州去    항주(杭州)를 내버리고 떠날 수 없으니
一半勾留是此湖    반쯤은 이 호수가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 1984년 및 1986년 1월에 각각 촬영




덧글

  • 진보만세 2016/05/26 19:24 # 답글

    늘 접하기 힘든 좋은 역사 자료들 잘 보고 갑니다..

    무더운 여름의 문턱, 언제나 건필하시길 ^^
  • 心月 2016/06/02 15:22 #

    답글이 늦어진 게 송구스럽네요. 언제나 격려의 말씀 감사드리며, 만세님도 즐거운 여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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