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가을의 멕시코 시티 사진집




             식민시대 부왕(副王)의 별장으로 신설, 사관학교 ・황궁 ・대통령궁이 입주해왔던 차풀테펙 요새 전경   
             1860년대 신고전주의 양식에 따라 개축됨과 동시에 '공중 정원'도 조성해 주변 경관을 단장시켰다.    


               1847년, 대미(對美)전쟁 당시 미군에 맞서 항전하다 순국한 사관생도 6명의 '소년 영웅'을 기린 제단
               점령 1백주년만인 1947년 트루먼 미(美) 대통령이 예방한 바 있으며, 기념비는 52년도에 제막했다.  
              
             
            차풀테펙 관저의 동측 출입문 분수대, 막시밀리안 황제가 초빙한 유럽인 건축가들이 경내를 정비했다.  


                현관 테라스 전경, 후방의 망루는 육군 사관학교 시기에 부설된 '키가 큰 기사(Caballero Alto)'이다.
                관저엔 1882~1939년 멕시코 대통령궁이 입주했다가 1944년 역사 박물관으로 변용 ・개관되었다.    


                차풀테펙 요새로부터 대각선 방향으로 도심을 가로지르는 개혁 도로(Paseo de la Reforma)의 광경
                파리의 샹젤리제를 모방해 설계된 가도(街道)로 주변엔 서비스업 지구가 밀집 ・조성되어 있다. 


            멕시코 독립 1백주년을 기념해 1910년에 제막된 기념탑, 정상의 황금 천사상은 도심의 랜드마크이다.
           

             멕시코 방문에 수반해 현지의 독립 기념탑을 참배 ・헌화한 카터 미(美) 대통령 부처, 1979년 2월 14일
             조각상과 구조물은 1958년 보수 당시의 골격을 유지한 채 85년도의 대지진 여파 속에서 살아남았다.


              차풀테펙 공원 서북쪽 근방에 소재한 국립 인류학 박물관 입구의 틀라록(Tlaloc) 우신(雨神) 조각상 
              1964년에 개관해 관람실 23개소 ・야외 전시장 ・인공 정원까지 망라되어 8ha의 면적을 자랑했다.


           박물관 입구홀, 차풀테펙 관저로 입주했던 전시장이 포화 상태에 도달하자 현대식으로 신축한 것이다.
           신대륙 발견 전후의 원주민 문명사를 중심으로 생활사 및 고고학 테마에 집중 조명한 점이 특색이다.


            구내 홀의 벤치에서 휴식중인 관람객들, 정중앙 벽면으로 아즈텍 시대의 역석(曆石)이 배치되어 있다.


             물[水]의 여신 찰치우틀리쿠에(Chalchiuhtlicue) 조각상,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에서 이전해 왔다. 
         

              '날개 달린 뱀'을 형상화한 케찰코아틀(Quetzalcohuātl) 사원 피라미드의 조각상, 전시용 복제품이다.
            

             개혁 도로와 후아레스(Juarez) 가(街) 교차점에 세워진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4세(Carlos IV)의 승마상
             1803년 제막된 청동제 동상으로 독립 후 철거 논란에 휩싸였으나, 1852년 현(現) 장소로 이건되었다. 


             알라메다(Alameda) 공원 입구의 베니토 후아레스 기념비, 신고전주의 및 도리아 양식이 절충되었다.
             1906년 구국 영웅 후아레스의 탄신 1백주년을 기하여 신축했으며, 대리석과 황금으로 치장되었다.


            알라메다 공원 동북쪽에 소재한 국립 예술원(Palacio de Bellas Artes), 1934년 개관한 오페라 하우스다.  
            이탈리아산 호화판 자재로 건축된 아르누보 양식 외관은 내부 장식과 더불어 금상첨화를 이루었다.


             국립 예술원과 남쪽으로 마주한 멕시코 최초의 고층빌딩 라틴 아메리카 타워(Torre Latinoamericana)      
             고도 204M 44층의 사무실용 센터로 1956년 준공 이래 70년대초까지 중남미권 최고층 건축이었다.

           
             라틴아메리카 타워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국립 예술원, 오페라 하우스 외에 박물관도 개설되어 있다.
             지반이 불안정한 여건과 더불어 건물 중량이 가한 압박으로 말미암아 매년 수cm씩 침하되곤 한다.
          

             후아레스 가의 서쪽으로 멕시코 혁명 기념탑을 바라본 전경, 1938년 준공된 개선문 형식의 구조이다.
             본래 의사당 용도로 설계되었다가 혁명 지사들의 유골이 안치된 영묘 겸 기념 전당으로 개축시켰다.
            

             헌법 광장[Zocalo] 전면의 국립궁(國立宮), 매년 국경절마다 이곳에서 퍼레이드 및 행사가 소집된다.
             아즈텍 왕궁을 밀어낸 자리에 세워졌던 총독 부왕의 관저였으며, 바로크 양식에 따라 개축되었다.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전경,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양식이 융합된 근세 건축의 백미이다.
                식민시대 3세기간에 걸쳐 공역이 진행된 역작인 한편 멕시코 가톨릭의 대교구가 입주한 곳이다.
 
         
            정면에서 바라본 메트로폴리탄 성당, 아메리카 대륙 최대급인 성당의 내력답게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교권 귀속을 둘러싼 당국과의 분쟁으로 일시 폐쇄되었는가 하면, 1967년 화재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소칼로 북쪽 근방의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 교회, 1590년 도미니크 수도회에서 봉헌한 것이다. 
             신대륙 정복 후 누에바 에스파냐(Nueva Espana)에 최초로 세워진 유서깊은 수도원으로 알려졌다. 
            

             가리발디 광장(Plaza de Garibaldi)의 노상 무용 공연, 마리아치(Mariachi) 악단이 보조를 맞추고 있다.
             

            콘서트 중인 마리아치 악단원들, 할리스코(Jalisco)에서 전파되어 2차대전 후 세계적 지명도를 누렸다.       
              

              개혁 도로 종착점과 인접한 틀라텔롤코(Tlatelolco) 지구, 아즈텍 시대엔 대규모 시장이 열리곤 했다.
              전방의 빌딩은 1966년에 신축된 멕시코 외무성 본부로 이듬해 중남미 비핵화 회의가 개최되었다.


            외무성 본부의 비핵화 회의에 임석중인 디아스 오르다스(Diaz Ordaz) 대통령과 플로레스(Flores) 외상
            14개국 전권 대표가 회동해 31개조(條)로 구성된 '틀라텔롤코 조약'이 조인되었다. 1967년 2월 14일   


             옛 아즈텍 유적의 기반 위에 스페인 식민시대 교회와 근현대 빌딩군을 복합시킨 3문화(三文化) 광장
             외무성 관사가 밀집해있던 관청가였으나, 1968년엔 학생 소요로 군경(軍警)의 학살이 벌어졌었다.  

              
            3문화 광장에서 식민시대 유산을 상징한 산티아고(Santiago) 성당, 아즈텍 성벽의 잔해로 쌓은 것이다.
          

             틀라텔롤코역 승강장, 도심 중앙을 남북으로 달리는 지하철 3호선의 시종착역으로 1970년 개통했다.
             프랑스로부터 기술 제휴 및 원조를 받아 건설된 노선으로 알스톰사(社) 제작 전동차가 투입되었다.
               
             
             라틴 아메리카 타워의 동측 맞은편에 소재한 산 프란시스코(San Francisco) 성당의 내부 예배당 전경
           
           
              동정녀 탄신제 기념일을 맞아 인파가 운집한 도심 북쪽의 과달루페 이달고(Guadalupe Hidalgo) 성당
              마리아의 계시가 내려진 전설적 성소이자, 대미(對美) 강화조약을 체결한 국치의 현장이기도 하다.
             
             
            지반 침하로 일반인 출입이 폐쇄된 구(舊) 성당을 대신해 1976년 신축된 신(新) 과달루페 성당의 전경
          
          
            예배당에서 대주교 집전하에 기념 미사가 거행중인 광경, 실내는 총 1만여명이 수용 가능한 규모였다.
           

             백의 차림으로 왼손엔 아기 예수를 안은 마리아의 성(聖) 모자상(母子像), 모자에겐 왕관이 씌워졌다.
             근대 이후 성모는 멕시코 민족주의의 상징 요소로 부각되면서 국민적 경배의 대상처럼 자리잡았다.
          

            성 모자상을 향해 무릎꿇은 채 기도를 올리는 광경, 원주민 신도들의 순례는 이곳 일상의 한 부분이다. 
           

               가리발디 광장 근방의 라구니야(Lagunilla) 일요시장 조합회에서 기증한 동정녀 탄신제 축하 화환
              

           후면 방향에서 바라본 과달루페 성당, 1709년 완공된 바로크식 사원으로 1904년 바실리카로 승격했다.
           멕시코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 성지이며, 요한 바오로 2세도 즉위 직후 최초의 사목 여행차 내방했다.
               

            라구니야 시장의 노천 상점, 원주민 점주가 의류 및 수제 모자이크 견직물 따위를 진열시킨 광경이다.


            도기류 판매점, 스페인식 공예 기술과 디자인이 융합되면서 멕시코 요업(窯業)의 원류가 형성되었다.

           
             야채 및 과일 판매점 진열대, 감자와 토마토를 위시로 각종 구황 작물외 열대 과일이 비치되어 있다.
            

             멕시코 시티로부터 남동쪽 20여km 거리에 소재한 휴양지 소치밀코(Xochimilco) 호반의 카누 유람선
             1950년대 이후 관광업을 진흥시키면서 자연 생태공원이 조성, 유네스코 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관광객을 탑승시키고 출발하고자 노로 바닥의 수심을 짚는 사공, 운하와 호수를 횡단하며 운행했다.
            

            운하 한켠에 잠시 정박한 카누의 승객들, 이 일대의 경관은 '떠다니는 정원'이란 별칭으로도 알려졌다.
          



덧글

  • 이방인 2016/06/11 23:13 # 답글

    귀중한 자료들 잘 봤습니다. 늘 그렇지만,
    사뭇 겉으로 뵈는 문화적 역량은 여느 유럽 중견 국가 못지 않군요.
  • 心月 2016/06/13 10:52 #

    감사합니다.

    풍광이 참 아름다운 고장이던데, 30여년새 지금처럼 망가진 모습을 보자니 종종 착잡한 심정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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