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청일전쟁의 외전, 요동(遼東)의 풍파를 헤치고 (1) 사진집




              대본영이 개설된 히로시마성(廣島城) 앞 광장의 연병장 광경, 본래 제5사단 사령본부가 소재했었다.
              제1군이 조선반도로 선발 출병한 직후 제2군 예하 부대가 대기중이던 1894년 9월 하순의 모습이다.
  

              히로시마성 연병장 한켠에 가설된 대륙 원정군의 군마(軍馬) 사육장, 제1사단이 전용할 말들이었다.


             히로시마 시가지 전경. 산요도(山陽道) 제1의 번진(藩鎭)이자, 개국 후 유수의 군항 도시로 성장했다.  
             9월 15일부터 대본영 및 천황이 상주하면서 전쟁 지도를 일원화시켰으며, 거국일치가 확립되었다.  


               현대의 히로시마 전경, 세토내해와 접한 물[水]의 고장으로 일본 제11위의 도회지이다. 1977년 3월
               청일전쟁으로부터 반세기 후 원폭(原爆)의 대재난을 당하기도 했으나, 피폭 5년만에 복구되었다.


             우지나(宇品) 항구에 정박중인 연합함대 군함과 수송선단의 광경, 청일전쟁 당시 출정의 관문이었다.


                제2군의 출정식 당일인 10월 16일, 우지나항 부두에서 장병들이 군함 승선에 앞서 대기중인 광경
                일반 시민의 통행이 금지되고, 헌병대가 경계를 펼친 가운데 지휘관들의 명령이 하달되고 있다.  


               제1사단 장교들이 제방 위에서 승선 감독을 보조할 겸 운집한 장면, 수송선함의 명패가 꽃혀 있다.
               오야마(大山) 육군대신이 탑승한 나가토 마루(長門丸)를 위시해 원정군은 요동으로 향발했다. 


            간몬(關門)해협의 육련도(六連島) 부근에서 닻을 내린 이즈미 마루(和泉丸)와 가마야마 마루(釜山丸)


             고국의 산천과 작별을 고한 채 현해탄의 망망대해를 전속 항해중인 수송선함 나고야 마루(名古屋丸)


             10월 18일, 조선국 전라도 남해안의 거문도(巨文島)를 요코하마 마루(橫濱丸) 선상에서 바라본 광경  
             일본인들에겐 '3도(三島)'란 별칭으로도 알려졌으며, 1885년 영국 해병대가 상륙해 점거한 바 있다.


              10월 19일, 수송선단이 평안도 대동강 하구의 어은동(漁隱洞) 근해로 진입해 정찰선과 접속한 장면


              어은동에 도착한 직후 제1사단장 및 참모들이 증기선으로 순양함 하시다테(橋立)를 방문중인 광경
              사단장의 방문에 임해 연합함대 사령장관 이하 함선 수병들이 영접차 갑판으로 집결한 모습이다.


            연합함대 병참부가 개설되어 임시 기지로 활용된 어은동 일대의 광경, 군함 및 수송선이 집결해 있다.
            진남포와 마주한 천혜의 요새로 평양 함락 후 일본 해군이 이곳을 거점삼아 황해 연안을 순시했다.


              제1사단 참모장이 종군 기자들과 더불어 요코하마 마루의 갑판에서 기념 촬영차 포즈를 취한 장면
              장창(長槍)을 쥔 채 일본도로 무장해 수통과 쌍안경까지 구비중인 기자들의 양태가 이색적이다.
             

             10월 23일 오전 8시 30분경, 대동강을 출발해 요동으로의 진항을 개시한 제2군 수송선과 호위 함선단
           

                10월 24일, 북청(北淸) 성경성(盛京省) 남부 화원구(花園口) 앞바다에 나타난 제2군의 상륙 보트선  
                조수의 간만차가 심했으나, 만조시 해안 접근이 용이한 사정도 고려되어 상륙지로 선정되었다.


             해안가 언덕에 앉아 상륙을 구경중인 병사들, 전방의 암벽길로 후속 부대원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상륙지 인근의 어촌 민가에 자리잡은 제1사단, 우측 입구로 사령부를 상징한 적백기가 세워져 있다.
             제2군의 화원구 상륙과 동시에 제1군도 압록강을 도하함으로써 남만주 공략이 본격 개시되었다. 


              어촌 앞에서 휴식을 취하는 병사들, 이따금 범선이나 들리던 한적한 마을에 대군(大軍)이 출현했다.


             상륙 이튿날, 화원구를 출발해 옥수수 밭을 가로질러 후소가보자(後蕭家堡子)로 행군중인 선발 대대  


               구릉 샛길에서 정찰을 마치고 내려오는 마상(馬上)의 제1사단장 야마지 모토하루(山地元治) 중장 
               막말기 유신파로 도막(倒幕)에 가담한 이래 역전의 '독안룡(獨眼龍)' 장군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화원하(花園河) 상류에서 준설 작업중인 일본군 공병대, 식용수 저장을 위한 수책(水冊)이 놓여졌다.


               망원경으로 후소가보자 촌락 일대를 탐색중인 야마지 사단장, 구릉 아래로 화원하가 흐르고 있다.         


            후소가보자 부근에 야영소를 차린 제1사단 사령부, 마을의 민가가 숙영지로는 부적합해 세운 것이다.
            볏짚과 나무로 가설된 야영소의 움막 내부에 배석중인 장교들 가운데 정중앙이 야마지 사단장이다.


              마을 경내를 활보중인 일본군 병사들, 촌락 앞뒤로 펼쳐진 구릉의 도처에 막영(幕營)이 가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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