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닦달로 자식 농사를 망쳐버린 황제 세계사








<송사(宋史)> 광종기(光宗紀) 소희(紹熙) 2년(1191) 11월 기록을 보자.



신미일, 태묘(太廟)에서 제사를 지냈다. 황후 이씨(李氏, 李鳳娘)가 황귀비(黃貴妃)를 살해하고선 [황귀비가] 갑자기 죽었다고 소문을 냈다. 임신일, 환구(圜丘)에서 천지(天地)를 합제(合祭)하면서 태조(太祖) ・태종(太宗)을 배향했다. 큰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예를 다 마치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황제는 이미 귀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데다, 또 이러한 변이를 당하여 두려움에 떨다가 병에 걸려 축하연을 그만두었고, 사절하고서는 조정에 나아가지 않았다. 수황(壽皇, 孝宗) 및 수성황후(壽聖皇后)가 와서 병세를 보았지만, 황제는 그때부터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본기(本紀)의 근원은 공식 문서인 만큼, 위 기사는 공식적 관점을 대변한다. 곧 광종의 병은 이황후의 귀비 살해에서 연원하는 것으로, 앞서 인용한 <제동야어(齊東野語)>의 설과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하지만 이러한 논단에는 매우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 광종의 '마음의 병[心疾]'은 송대의 통속 명칭으로는 '실심풍(失心風)'이었는데, 이는 오늘날 정신이상 ・정신착란에 해당된다. 사료 기록대로라면, 광종에게서 보이는 가장 뚜렷한 징후는 편집증(Paranoia)이다. 예를 들면, 효종이 자신을 죽이려 하거나 혹은 제위를 빼앗으려 한다는 등의 종류였다. 하지만, 소희 2년은 광종이 이황후와 생활한 지 거의 30년이 되는 때였다. 만일 이황후가 유일한 병의 근원이라면 어째서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발작했던 것일까? 게다가 광종은 즉위하고서 2~3년간 줄곧 건강 상태가 아주 좋았다.

유광조(劉光祖)는 조공(趙公, 趙汝愚) 묘지명에서 이렇게 말한다.



소희 2년 9월, 곧 이부상서(吏部尙書)가 되어서 불려 올라갔다. 공이 도착하자, 마침 주상은 약을 복용하는 중이어서 3개월간 대면할 수 없었다. 이보다 앞서 광종은 평소 병이 없어서 아침마다 조정에 나왔고, 용모는 온화했다.



우리는 위 인용문으로부터 광종의 '마음의 병'에는 또다른 원인이 있었고, 그 원인이 생긴 시기는 즉위 초기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관련 자료를 두루 검토한 후, 필자는 이제 광종의 정신이상은 효종의 압력에 의해서 생겨났음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구체적 경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효종은 최초 계획에서 광종으로 하여금 자신의 개혁 구상을 집행하도록 한다는 것을 일찍부터 예정해놓았다. 효종은 광종이 황위를 계승한 뒤에 따라야 할 모델은 바로 자신과 고종(高宗)간의 관계라고 가정했다. 곧 효종은 '이번에 발표한 정령(政令)과 어진 정책의 항목은 모두 문안 인사를 올리거나 곁에서 식사 시중을 들면서 얻은 것이었다[凡今者發政施仁之目, 皆得之問安侍膳之餘]'라고 말한 바 있다. 때문에 '[광종이] 한 달에 네 번 알현하는[一月四朝] 것'은 효종에게 더할 나위 없이 중요했다.

과거 고종은 그런 정기 모임을 거쳐 효종을 통제했고, 정해진 틀에서 효종이 지나치게 멀리 벗어나지 않도록 했다. 이제 효종은 당연히 전례에 따라 광종이 정기적으로 찾아와 '문안 인사를 올리거나 곁에서 식사 시중을 드는' 때에 연이어 지시를 함으로써 개혁과 인사 배치의 이중주를 하나하나 연출하려고 했다. 이렇게 정기적으로 대화하던 중 효종이 인재 등용과 정치에 관해 언급하다가 때때로 광종을 질책했으리라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새로운 황제가 주필대(周必大)를 재상직에서 파면하고, 강특립(姜特立)을 총애한 것은 태상황으로선 동의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래서 효종은 '주필대에게 무슨 당(黨)이 있는가?'라는 말을 하고, 유정(留正)이야말로 '진짜 재상'이라고 칭찬하는 말도 밖으로 흘러나왔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효종이 광종을 직접 질책하는 과정에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광종의 '자아'가 팽창했고, 게다가 이황후가 배후에서 교사해서 시간이 오래되자 광종은 태상황의 꾸지람을 더욱 감내할 수 없게 되었다. 중화궁(重華宮)으로 가서 문안 인사를 올리는 일은 광종이 어떠한 댓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피하고 싶은 정신적 고통으로 변했다. 발병하기 전 홀로 외원(外苑)에 행차하면서 효종을 청해 함께 즐기려 하지 않았고, 또한 태상황 이야기를 듣자마자 [효종이 하사한 술잔을 떨어뜨리며] 폭발하여 자제하지 못했던 것은 광종의 병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분명히 드러내준다. 광종의 성격과 성장 환경은 효종과 달라서 '꿋꿋하게 참는' 것을 그에게선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달에 네 번 알현'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제도라 광종으로선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었고, 정신이상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마음의 병이 일어난 진정한 원인이다.

이상의 요약은 관련 자료를 전체로 관찰한 후 얻은 것이다. 이제 그 구체적인 근거를 대략이나마 제시해보자. 남송 기록문 <조야유기(朝野遺記)>는 광종의 정신 질환이 최초로 일어났을 때의 정황을 아래처럼 묘사한다.



중화(重華, 孝宗)가 주상의 병을 위문하느라 직접 처소에 와서 봤으나, 주상은 입을 다물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입을 열고 잠꼬대 같은 소리를 했다. 수황이 걱정되고, 화가 나서 이황후를 불러 질책했다. '종묘와 사직이 위중한데 너는 주상을 조심스레 살피지 못하여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구나. 만일 [주상이] 회복하지 못한다면, 너희 가문을 멸할 것이다.' 얼마 후 유정을 불러 꾸짖었다. '너는 재상이 되어서 강력히 간언하지 못했는데 왜 그랬는가?' 유정은 '신(臣)이 [주상에게] 말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주상이] 듣지 않으시는데 어찌 합니까?'라고 말했다.

효종은 '너는 이후로 그에게 쓴 말을 해야 한다. 만약 듣지 않으면, 내가 그를 남겨 놓고 세세하게 말하겠다'고 했다. 광종이 병이 낫자 이황후가 울면서 광종에게 말했다. '이전에 주상께 술을 좀 줄이시라고 권했는데, 듣지 않으셔서 근래에 상태가 좋지 않으니, 수황께서 첩의 가족을 다 멸하려 하십니다. 첩의 가족이 무슨 책임이 있으며, 무슨 죄가 있습니까?' 유정이 수황의 칙유를 얻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만약 다시 중화궁에 온다면 결단코 돌려보내지 않고 여기서 머물게 하겠다'고 말했다. 마침내 부친을 무서워하여 광종의 수레가 조당에 가까이 가지 않게 되었다.



이 기록은 당시의 정황과 아주 잘 맞는다. 그 가운데에서도 광종이 '입을 다물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입을 열고 잠꼬대 같은 소리를 했다'는 분명 정신 분열 증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는 특히 중요한 부분이다. 효종은 이황후가 '[일을]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고 질책했는데, 앞서 인용한 공식 기록이 바로 이 말에 바탕을 두고 있다. 효종은 아들의 병환이 자신과 관련있음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듯하다. 그래서 그는 유정의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자신이 다시 직접 나서서 '광종을 남겨 놓고 세세하게 훈계하겠다'는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사실 효종의 그 '세세한 말'이야말로 광종이 정신병에 걸린 원인이었고, 광종이 가장 두려워하던 것이었다. 병이 조금 나아진 후, 광종이 온갖 수단방법을 다 써서라도 중화궁에 문안 인사를 가지 않으려 했던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황상(黃裳)이 소희 3년(1192)에 썼던 '수황에게 효도를 다할 것을 주장하는 상소[論盡孝壽皇疎]'는 광종이 부황에게 네 가지 '의심'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앞의 세 가지 의심으로 살해와 폐위 등을 언급한다. 황상은 이 세 가지에 대해 하나 하나 분명하게 오해를 풀지만, 유독 네번째 항목인 '책선(責善, 착하게 살라는 질책)의 의심'에 대해서 만큼은 부인을 하지 못한 채, 다만 광종이 부황인 효종의 '책선의 마음'을 오해했을 뿐이라고 언급하는 데서 그친다.

'책선'은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 나온다.


 
옛날에는 자식을 바꾸어서 가르쳤고, 부자지간에는 착하게 살라고 질책[責善]하지 않았다. 착하게 살라고 질책하면 [부자지간의] 사이가 멀어지고, 사이가 멀어지면 상서롭지 않은 일이 막대하게 된다.



이는 부자(父子) 관계에 대한 유가(儒家)의 깊이 있는 심리적 관찰이다. 효종이 이를 잘 깨닫지 못했던 것이 비극의 첫째 원인이었다. 광종이 즉위 후 2~3년간 '한 달에 네 번 알현'하는 동안 들었던 훈계는 대체로 책선에 속할 것이다. 책선과 관련해 진부량(陳傅良)은 소희 5년(1194) 4월 26일, 직전 차자(直前箚子)에서 좀 더 분명하게 분석했다.



"폐하께서 중화궁을 찾지 않으신 것이 어찌 오해로 인한 의심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신(臣)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중화궁을 의심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시중에서는 책선 때문이 아니면 권력 욕심[吝權]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이 헤아려 보건대, 이 두 가지 모두 오해입니다. 게다가 수황께서 책선하시는 것은 천하를 위한 계책이자, 사직을 위한 계책일 뿐입니다. 만약 폐하께서 정치를 잘 하셔서 사람들이 사랑으로 [폐하를] 옹호하려고 한다면 수황의 소망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폐하께서 이점을 살피지 못하셨으니 어찌 오해가 아닙니까? 만약 '권력욕'이라고 한다면, 모든 관원을 진퇴시킬 때 [수황이] 반드시 그 사람이 누군지 함께 듣고자 할 터이고, 각종 정책을 시행하거나 폐지할 때 반드시 그 일이 무엇인지 함께 들어보고자 할 터인데, 5~6년간 천하 사람들은 그런 일을 보지 못했습니다."



먼저 이 차자(箚子)의 중요성은 한참 동안 묻혀 있던 역사적 사실을 밝힌다는 데 있다. 곧 당시 외정(外庭)과 사회의 일반적 견해는 효종-광종 부자 사이가 나쁜 데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곧 '책선'과 '권력 욕심'이다. 책선이든 권력욕이든 주도권은 당연히 효종이 장악하고 있었다. 광종의 마음의 병은 효종의 압력과 관련이 있었고, 당시 사람들 역시 그점을 깨달았지만, 드러내놓고 밝히지 못했을 뿐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 진부량은 황상과 마찬가지로 책선의 사건이 확실히 있었음을 인정하지만, 일보 나아가 책선이 '천하를 위한 계책이자, 사직을 위한 계책'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효종 만년의 개혁 구상과 연결된다. 진부량은 개혁에 참여했던 사람 중 하나였으므로 자연스럽게 동기 측면에서 효종을 변호했다. 그런데 효종-광종 부자간 책선의 실제 상황은 대체 어떠했을까?

황상과 진부량의 상소는 함축된 부분이 많았던 반면, 대신 앞서 인용한 권호부시랑(權戶部侍郞) 원설우(袁說友)의 '궁(宮, 重華宮)에 와주시기를 또다시 간청하는 상소문[又奏乞過宮狀]'이 가장 노골적으로 이를 드러낸다.



"만약 수황께서 지나치게 방정하고 의로우시며, 위엄있는 낯빛이 지나치게 엄하시다면, 폐하께서는 예를 지키면서 어긋나지 않을까 걱정하시고, 조심스러워 하고, 많이 두려워하면서 힘과 노력을 다해 정말 즐겁게 해드려야 합니다. 어찌 구태대로 피하려 도모하십니까? 후세에 대한 훈계거리가 될 뿐 아니라, 외관상으로 좋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원한과 분노의 대상을 원수라 하고, 승부를 다툴 대상을 적이라 합니다. 수황께서 폐하께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담소 한 마디 나누지 않고 장기간 문안 인사를 하지 않으십니까? 거의 원한 및 분노와 승부 다툼 때문입니다."



원설우는 황제에게 진언할 때의 예절을 갖추기 위해 부득불 가정법에 따라 의탁할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 이 구절은 효종-광종 부자 관계 악화의 진상을 아주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구절구절 모두 직설적이다. 효종은 평소 '책선'할 때 필시 언행을 격하게 하고, 사나운 표정을 지었으며, 광종은 그것을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가 없어서 태상황을 마치 '원수나 적'으로 보았음을 위의 인용문으로부터 짐작할 수 있다. 사실 효종은 황위를 선양한 후 한평생의 정체성인 '자아 이상[=국정 개혁과 중원 수복]'을 더욱 더 굳게 견지했기에 정치적 인사 배치를 결코 중도에 그만둘 수 없었다. 한 달에 네 번 알현하는 제도는 태상황이 막후에서 잇따라 지시를 하달하기 위한 주요 통로였다. 광종이 받아들인 책선의 압력이 바로 거기에 집중되고 있었으므로, 그가 그 제도를 두렵게 바라본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 by 여영시(余英時) 著 <주희의 역사세계> 12장 황권(皇權)과 황극(皇極)




덧글

  • 명탐정 호성 2016/10/23 15:32 # 답글

    저런 안타까운
  • ㅁㅁ 2016/10/23 16:13 # 삭제 답글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에서 본 구도가 여기서도 나타나는군요. 사도세자와는 달리 광종이 보위를 이은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2016/10/26 15:4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10/29 12:3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6/10/29 13:0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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