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르~ 조선? 그거 무슨 애피타이저인가염?ㅇㄱㅇㄱ 세계사








한일병합은 무엇보다도 일본이 '장기간 추구해 온 외교 활동의 결과'였다. 일본이 20세기초 열강들과 외교 관계를 발전시키며 극동에서 점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902년 체결된 제1차 영일동맹에 이어 1905년에 체결된 제2차 영일동맹으로 영국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이권을 보장해 주었고, 영국과 프랑스는 1904년 영불(英佛)협상으로 북아프리카에서의 상호 영역을 인정하면서 독일의 이 지역 진출 시도를 경계하였다. 1907년에 체결된 불일(佛日)협상은 인도차이나와 한국 ・남만주에 대한 프랑스와 일본의 영향력을 상호 인정했으며, 동년의 제1차 러일협약 ・영러(英露)협상 체결로 영불러일 '4국 협조체제(Quadruple entente system)'가 구축되면서 '그레이트 게임'은 종언을 고했다. 이 '4국 협조체제'에서 배제된 미국은 1909년 '만주철도 중립화' 방안을 주창하였다.

이에 러시아와 일본은 1910년 7월에 제2차 러일협약을 체결, 미국의 만주 정책에 대항하는 공동 전선을 구축했다. '러일전쟁의 패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독립 원칙을 지지함으로써 일본의 대륙 진출을 저지하고자 했던 러시아'는 이 협약을 통해 '동아시아 정책의 보루였던 한국을 포기한 댓가로 몽골을 확보하기로 결정'하면서 일본의 한국 병합 추진 과정에 눈 감았다. 프랑스의 주일(駐日) 대사 오귀스트 제라르(Auguste Gerard)는 1910년 6월 17일자로 작성한 보고서에서 한국 병합에 대해 일본이 이미 '영국 및 러시아 정부와 합의'를 봤다고 적고 있다. 보불전쟁의 패전으로 알자스-로렌 지방을 신생 독일 제국에 빼앗긴 프랑스는 이후 1차대전까지 국제 무대에서 독일을 고립시키는 것을 자국의 최대 목표로 삼았다. 이에 따라 '공화국' 프랑스는 1894년 차르의 '제국'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체결한다.

또한 1904년 영불협상을 통해 영국의 이집트에 대한, 프랑스의 모로코에 대한 영향력을 상호 인정했다. 아시아에선 인도차이나 식민지 지배에 집중했기에 한반도에 대한 이해관계가 많지 않았던 프랑스는 한반도에 보다 큰 관심을 보였던 영국과 러시아가 사전에 묵인한 것으로 파악한 한일병합에 대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제라르는 두 차례의 영일동맹 ・러일협약 부속 의정서 내용에 의거해 일본이 한국에 대한 지배를 '결정적 단계로 진입'시키는 조치에 대해 영러의 '동의를 구해야만' 하는데, 양국 정부에 '이미 이에 대한 언질을 준 듯하다'고 1910년 5월 23일자 보고서에 기록했다. 프랑스가 병합에 반대하지 않고 방관한 다른 이유는 자국이 선발 제국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특히 프랑스는 마다가스카르를 '보호국' 체제에서 '병합'으로 전환시켜 식민 지배를 확대한 경험이 있었다.

프랑스는 1885년 12월 17일, 마다가스카르 여왕과 동맹 조약[타마타브(Tamatave) 조약]을 체결했으나 해당 조약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구실로 1895년에 군사 원정을 감행해 새로운 보호령 조약을 강제했으며, 이에 대한 현지인들의 저항이 발생하자 1896년 8월 프랑스 의회에서 합병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직후부터 이미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정책이나 지배 방식들을 주의 깊게 파악하고 있었다. 서울의 프랑스 영사는 1909년 11월 23일자로 본국의 피숑(Pichon) 외무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일본의 입장에서 볼 때 보호령 체제는 성공적이지 않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의 병합을 추진하는 것은 놀랍지 않으며, 일본이 프랑스가 마다가스카르를 보호국에서 정식 식민지로 변화시킨 것에 커다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고, 이토 저격 사건의 파장과 연관시키며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영국인들이 특히 이집트에서 사용한 식민지[보호령] 경영 방식을 모방한 것으로 간주된 흐름은 이토 공작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일본인들이 칭찬하는 우리의 방식, 무엇보다도 튀니지와 마다가스카르에서 우리들이 거둔 성과에 커다란 호의를 보이는 경향이 통감부에서 점차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보호령에서 식민지로 변모한 후자의 사례에 대해서 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호령 체제는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일본의 활동은 재정 및 행정 개혁 실현이란 목적하에 이뤄지고 있습니다만, 보호령 체제는 이 목적을 달성함에 있어서 좋은 조건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당국이 보다 효과적인 수단인 병합을 생각하는 건 놀랍지 않습니다."

- by 민유기 著 <프랑스의 1910년 한일병합과 그 결과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1909년 10월 25일, 하얼빈 방문의 도상 장춘(長春)에 기착한 이토 추밀원 의장의 환영 연회장 광경  
               반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인 이튿날 오전에 저격을 당함으로써 '최후의 만찬'이 되버리고 말았다.




덧글

  • 엑스트라 2016/12/03 14:48 # 답글

    그당시 우리나라를 어떻게 빼앗았는지를 자세히 알고 두번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면 안되겠죠.
  • 心月 2016/12/04 10:39 #

    그 역사의 과정을 객관적으로 복기해도 모자를 판국에 모든 불행은 남탓으로만 돌리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 혜성같은 얼음의신 2016/12/03 16:43 # 답글

    아닙니다. 아닙니다. 일본만 나쁜놈이란 말입니다. ㅠㅜ
  • 心月 2016/12/04 10:44 #

    이렇게 된 이상 나쁜 구미 국가 전원 Out!!

    서구 열강도 죄다 한통속이니, 친중으로 가자는 얼빠진 부류도 만만치 않다는게 함정.ㄳ
  • 담배피는남자 2016/12/05 02:59 # 답글

    역사에서 배워야 되는게 바로 저런거임.

    일본이 조선을 먹기 위해 국제적으로 뭘했는지
    그리고 조선은 일본에게 먹히기 전까지 국제적으로 뭘했는지

    근데 제대로 가르칠리가 없겠지. 우린 최선을 다했는데 일본놈들에게 나라를 뺐긴거고
    독립운동 열심히 해서 광복 맞았다고 뇌까릴뿐, 실상은

    일본에게 먹히기 전까지도 지구상에 어떤나라들이 있고 걔들 사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전혀 몰랐고, 36년 동안 독립운동 한답시고 죽인 일본놈은 미군이 태평양 전선에서 하루에 죽인 수의
    1/10도 안되고...
  • 心月 2016/12/04 10:44 #

    명분론적 감성과 떼법이 먹히는 사회이다보니, 바깥 세상에 대해서도 먹힐거라 망상 자위하는 격이죠, 뭐.ㅋ

    핀트가 어긋난 국사 교육을 주도하고, 강제해왔던 정치권이나 지식층만이라도 정줄 잡고 바짝 정신차려야 할 타이밍인데, 돌아가는 꼬라지봐선 오히려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는 말이 통감되는 현실이니.ㄲㄲ
  • Minowski 2016/12/04 14:30 # 삭제 답글

    요즘 들어 의심이 드는게 흔히들 가쓰라-테프트 협약만 강조하는 것도 아마래도 일제-미제로 이어지는 식민지역사라는 식의 해석이 바닥에 깔린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상 1910년 들어서면서 일본을 제외한 모든 열강이 한반도에 대한 개입의 여지도 없어지고 관심도 약해져 일본과 딜의 대상이 되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 心月 2016/12/06 15:19 #

    반일 민족주의와 반미감정을 연계시키려는 저쪽 진영에서 가쓰라-태프트 협약의 의미를 과대포장 선전한 감이 없지 않다는 입장인고로 동의합니다. 물론 외교권 박탈이란 점에서야 병탄으로 나아갈 첫 단추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이 시점에선 일본 정부조차도 영국형 보호령 방식의 간접 통치 방안을 선호하던 단계였거든요.

    기실 '완전 병합'의 결정적 요인이라면 만철 경영과 만몽에서의 특수 권익을 둘러싼 열강간 합종연횡이 한반도 안보에 미친 파급력, 거기에 대한 일본의 경각심으로부터 그 연원을 찾아야 하고, 크림전쟁 이래 지속되어왔던 그레이트 게임이 1907년의 외교 혁명을 계기로 총결산되어간 연장선상에서 파악해봐야 비로소 전체적인 핵심 맥락을 짚을 수 있는데, 기존 세간의 인식이라던가 연구 방향은 너무 미일관계 및 한일관계에만 편중된 측면이 강했으니깐요. 단순한 이해 부족 아니면, 어쩌면 이토 암살에 따른 보호령파의 퇴조나 '천조국' 미국이 일본과의 외교전에서 밀렸다[=러일 공동 보조로 만철 중립화 구상안 실패]는 후폭풍에 따라 조기 병합이 단행되어버린 사실을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차마 인정하기 어렵다는 당혹감 or 반발 심리가 깔려있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진보메이슨클랜 2016/12/10 14:10 #

    여기 오시는 분들 전부 다//
    시진핑-트럼프 판 가쓰라 태프트 협약이 일어날 일도 혹시 있다고 보시나요(진짜 중립적으로 진지하게 하는 질문)
  • 2016/12/04 16: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12/06 15:1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6/12/07 23:4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나고야거주남 2016/12/06 09:40 # 삭제 답글

    한국선 죽으나 사나 카쯔라 태프트 밀약만 외치죠 ㅋㅋ 그 당시 미국은 지금같은 초강대국이 아니어서 미국만 조선의 식민지화를 용인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조금만 대가리 굴리면 당시 최강이었던 영국을 비롯하여프랑스, 러시아등도 승인하지 않으면 제대로 먹힐수 없는 조약이었는 걸 알 수 있는데 말이죠. 이 땅의 민초들은 당시 상황 살펴보지도 않고 그저 단세포처럼 미국은 옛날부터 일본편이다 이렇게만 외치고 있죠. 영국의 지지 없이 러일전쟁서 일본은 이길수 없었고 여러 복잡한 변수가 있었는데 아예 알려고 하질 않음
  • 心月 2016/12/06 15:24 #

    일본 따위(?)는 옛부터 무조건 미국의 사냥개로 처신해야 한다는 근자감 멸시와 정신승리가 빚어낸 촌극이라면 그 나름대로 개그죠.ㅋ 원교근공을 아전인수식으로 곡해하면서 청국과 러시아 같은 기둥서방 끌어들였던 민비 시대나 등거리 외교처럼 듣기 그럴싸한 용어만 각색시킨 현대나 외교력은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ㄲㄲ
  • 2016/12/07 16:2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12/09 13:4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Behavior 2017/01/12 10:00 # 삭제 답글

    한일합병에서 배워야하는 교훈은 나라가 힘이없고 외교적으로 처신 잘못하면 언제든지 나라를 뺏길 수 있다는 거지 일본만 나쁜놈이고 일본놈을 죽이자 이런게 아닌데...
  • Behavior 2017/01/12 10:01 # 삭제 답글

    솔직히 민중은 개돼지라는 나향욱씨의 말이 너무 핵심을 잘 짚은것 같습니다. 이 분 복직시켜서 장관까지 올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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