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합방 설(說)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피살된 후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한국 국내 '일본당(日本黨, 一進會)'의 두목인 송병준(宋秉畯)이 먼저 공개적으로 제안하였고, 그 배후에는 분명 일본인의 사주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러한 제안은 곧바로 동경(東京)으로부터 적극 호응을 얻었다. 일본 정부는 메이지(明治) 초년 '폐번치현(廢蕃置縣)'의 방법을 참조하여 한국의 황실 및 귀족들에 대한 대우 조처를 마련하기로 하였으며, 러시아 ・ 독일 및 미국 등 관련 국가도 각각의 사정상 반대 의사가 없으므로 다른 나라에서도 이의를 제기할 것 같지는 않다...
중일전쟁[=淸日戰爭] 후 일본은 조선을 독립국으로 내세웠고, 러일전쟁 후 일본은 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들었는데, 그 조약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이제는 조선을 완전히 차지하려고 한다. 메이지 이래 먼저 유구(琉球, 沖繩)부터 멸(滅)하고, 이어서 대만(臺灣)을 할양받고, 또 이어서 화태(樺太, 남사할린)까지 할양받았는데, 이제는 또 조선마저 병합하려고 하니 앞으로 일본의 웅심(雄心)이 과연 조금이라도 수그러들지는 실로 감히 예측할 수가 없다. 요컨대, 저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오고[得步進步] 있으니, 미래의 대비책을 강구해두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생각된다."
- 1910년 6월 27일, 주일(駐日) 청국 대리공사 오진린(吳振麟)이 한일합방의 전망을 본국으로 타전하면서




덧글
한때는 일청한 3국동맹도 검토됐으나 갑신정변으로 가망없음이 드러나자[후쿠자와 센세가 반도를 요마악귀의 지옥국이라 디스한 계기ㄳ], 대신 거론된 것이 '세르비아나 룩셈부르크 유형의 조선 중립화'였고, 아오키 슈조 같은 대외 초강경파 제외하면 큰 틀에선 일본 정부내에서 꽤나 이상적(?)인 방안으로 주목받았기는 했습죠.
물론, 중립화고 자시고 동학란 발발과 일청 개전으로 폭ㅋ망ㅋ
어차피 개전 무렵에 가면 일본측이 전쟁을 더 원했던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뭐, 무쓰공께선 청국이 명목상 '독립국'이라던 조선을 계속 자기네 속방으로 두면서 정작 내치나 외교상 문제에 있어서 책임 회피하는 행태를 두고 순전히 공명심 때문이라고 질타한 바 있어요. 동일한 시각에서 하라 다카시 역시 병합을 추진하려는 가쓰라 일파의 책동을 공명심에 비유하며 조소했는데, 이 하라도 따지고보면 왕년에 무쓰의 부하로 외교관으로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나름 시사점이 많다고 사료됩니다.
[무쓰-하라가 사적으로 얽힌 후루카와 재벌이 아시오 광독 사건 주범이란 건 안자랑]
ps : 어그로의 분탕질에 대해선 방장으로서 대신 사과드립니다. (1)
키티호크//
아따, 우리의 일진회 성님들 계보 자체가 갑오년 궐기했던 동학당으로부터 연원했당께?!
2016/12/10 20:11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2016/12/11 10:28 #
비공개 답글입니다.얼마나 인재가 없었으면 ㅋ
대강의 방침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는 하지만, 신중론파의 거두 이토공 생전엔 그래도 정세가 유동적이었고 변수를 배제할 수 없었는데, 공께서 흉탄에 쓰러지시자마자 내외 관측통 막론하고 병합 확ㅋ정ㅋ 크리ㄲㄲ
ps : 어그로의 분탕질에 대해선 방장으로서 대신 사과드립니다. (2)
((다들 차근 차근 순서대로 대일본 제국은 조선을 잡아 먹고 ... 궁극적으로 대동아 공영을 위해서 용왕 매진했다고 들었는데.... 물론 대동아 공영 따위는 미제국에 쳐 발리니까 들고 나온 궁여 지책이라지만.))
한국인들이 일본을 두려워하길래 안심해... 제국주의 시절마저 버릴패로 봤쪄염. 그냥 군사력 키우삼..이라고 적었더니 이번엔 반도를 무시하냐고 그러고 아니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어쩌라는건지. 일본을 두려워해서 한국인들 안심시키려고 글 적었더만....
킹오파에 얼음집주민에 키티호크에 그나물에 그밥들끼리 뒤엉켜서 잘 노네ㅋ
그 잘난 식견과 전문성 갖춘 사학자 자처한 적도 없는데 쉐도우 복싱질로 어그로 끄려는 수법 노잼.ㅇㅅㅇ
남들처럼 먹을거먹고 입을거입고 다니실텐데, 왜 괴상한 행동을 하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