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낭인이 바라본 대담무쌍 국태공의 면모 발언록








공덕리의 대원군 별장엔 궁중에서 파견된 10여명 경관(警官)이 주야(晝夜)로 내외를 경비하고 있었다. 만일 이들을 놓쳐 궁중에 보고를 하는 자가 생기면 대사(大事)는 완전히 수포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경관중에서 도망하거나, 저항을 하는 자가 있으면 이들을 베어버리기로 약속하고 바짝 긴장하며 발길을 옮겼다. 수양버들이 거의 없어지고, 한길의 막다른 고장에 높은 담장이 솟아 있는 것이 달빛 아래로 어슴프레 보였다. 반도의 노웅(老雄)이 이제는 한창 야반의 단잠에 취해 있을 공덕리 별장이 이것이다. 일행은 즉시 별장 주위를 포위하고, 경관의 도주를 막으려 했다. 너무 서두른 이들 가운데엔 벌써 일본도(日本刀)를 빼어든 자도 있었다. 이때, 만일 경관들이 문밖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서 뛰쳐서 나왔더라면 전광일섬(電光一閃), 때를 놓치지 않고 그들의 머리 위에 칼날이 떨어졌으리라.

그러나, 겁많은 한인(韓人)인지라 허리에 찬 일본제 양도(洋刀)를 옆에 두고 꼼짝 달싹도 않고, 일행이 시키는대로 따랐기 때문에 그들은 생명을 보전할 수 있었다. 때마침 일행과 함께 갔던 한국인 하나가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 대문을 열었기 때문에 오카모토 류노스케(岡本柳之助) 등이 먼저 들어가 대원군의 침실쪽으로 갔다. 살기등등했던 상황에서 잠시 떠나 반도의 노웅이 세상을 피해서 은거한 별장이 어떻게 지어졌으며, 또한 반도의 정치사에 이따금 기록되어 있는 공덕리의 한촌(閑村)은 어째서 대원군의 치솟는 마음을 가라앉힐 만한 장소가 못되었던가를 달빛을 통해서 조용히 살펴 보았다. [중략] 대문이 열리자 오카모토 등 10여명은 곧 호위 경관실로 들어가 그 패검(佩劍)을 빼앗고, 만일 도망치면 죽이겠다고 일갈했다. 경관들은 전전긍긍하며 시키는대로 따른 채 말도 하지 못했다.  

한 사람의 총순(總巡)이 주머니에서 총순과 순검 11명의 명부를 내보이며, 도망자가 없음을 보여줬으므로 별장내의 창고를 열고 여기에 감금했다. 그들은 오히려 안전한 곳을 얻었다고 기뻐했으리라. 오카모토와 호리구치 구마이치(堀口九萬一) 등은 일찍이 함께 대원군을 방문한 일도 있었던 터라, 이날 밤에도 한어(韓語)에 능통한 스즈키 쥰켄(鈴木順見)을 데리고 먼저 대원군의 침실로 들어갔다. 야밤중에 난데없이 낭인들이 들이닥치는 것을 단잠을 자던 대원군이 어떠한 감회로 맞이했을까? 오카모토는 전날 약속한 대원군 입궐(入闕)의 기회가 다달았으니, 궁중으로 들어갈 채비를 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대원군은 크게 기뻐하며 이를 승낙했다. 이에 오카모토는 궁중에 드는 방책을 자세하게 얘기하고, 또 스기무라(杉村, 일본 공사관 서기관)가 기초한 고시문을 꺼내어 그의 의견을 물었다.

대원군은 고시문을 샅샅이 살펴본 다음 별다른 이의가 없다고 표시하고, 이것을 한국인 수명에게 정서(淨書, 초안 베껴쓰기)시켜 [서울 시내] 각 장소마다 내다 붙이도록 준비를 시켰다. 고시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근일, 군소(群小)의 무리가 나라의 총명을 흐리게 하여 어진 이를 멀리하고, 간사함을 가까이 하고 있다. 이에 유신(維新)의 대업(大業)이 중도에서 빛을 잃어 5백년 사직이 일조(一朝)에 위태롭게 되었으니, 종친의 집안에서 태어난 이 몸으로서 감히 그 정경(情景)을 좌시할 수가 없는 바이다. 고로 이에 입궐함으로써 군왕(君王)을 보익(輔翊)하고, 사악한 무리를 쫓으려 하니, 이는 유신의 대업을 성취하고, 5백년 종사(宗社)를 부지함으로써 만백성을 안도케 하려 함이라. 백성들은 모름지기 그 가업(家業)을 지켜 추호의 경동(輕動)도 없기를 바라노라. 만일 망동하는 자가 있어 나의 길을 가로 막는다면, 반드시 대죄(大罪)로써 다스림을 받을지어니, 모름지기 후회를 사지 않도록 하라."

개국(開國) 504년 [음력] 8월 일(日)




비만풍협(肥滿豊頰)의 한 노옹(老翁)이 침대 위에서 비스듬히 기대어 만면에 희색을 띄우고 있었다. 오카모토 등은 침대 곁에 엎드리고 있었다. 이준용(李埈鎔)도 들어와서 그 옆에 서 있었다. 백발 노인은 때로는 점두(點頭, 공감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행위)를 하고, 때로는 얘기를 하면서 부드러운 화기(和氣)가 안면에 가득 찼으며, 태도는 한없이 눅져서 마치 대사가 경각(頃刻)에 박두해 있음을 도무지 몰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보는 사람들은 서로 과연 대원군의 기우(氣宇)가 비범한 것이 아닐 수 없다고 수군거렸다. 생각하면, 대원군은 그 반생(半生)의 과거에 있어 사람을 수십만이나 죽이고, 몇 차례나 생사(生死)의 지경을 오락가락한 사람이었던 만큼, 이날 밤에 갑자기 대사를 결행하려는데 유연하게 눅져 있는 채로 조금도 평소와 다름이 없음을 과히 의심쩍게 여길 바가 아니리라.

사변 후, 동행했던 친구는 깊은 밤 백발의 노웅이 등잔 앞에서 침착하게 대사를 논하고 있었던 광경은 마치 극(劇)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광경은 아직도 눈앞에 선하여 잊을 수 없다고들 했다. 잊을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날 밤의 좌중에 유동한 그 감회와 기취(氣趣)를 그려낼 수 없음이 참으로 유감이다. 경관들을 이미 가두어 놓아서 별장 안팎을 경계할 필요가 없어졌으므로 대부분의 낭인은 응접실에 모여서 대원군의 출발을 기다렸다. 대원군은 오카모토 등과 약 1시간 넘어 담론하고 나서 더운 물을 침실로 가져 오도록 하여 세수를 마친 다음 의복을 정제하고, 입궐할 채비를 꾸렸다. 오카모토 등은 이준용에게도 거동을 함께 할 것을 권유했으나, 그는 죄명(罪名, 閔妃에 대한 모반죄)이 아직 씻기지 않았음을 이유로 이에 응하지 않았다. 대원군은 가마를 타고 공덕리 별장을 출발했다.

때는 오전 3시, 장막을 두른 것 같은 길의 밤기운 속에 가을의 냉기가 서릿발처럼 찼다. 낭인의 한 사람인 우시지마 히데오(牛島英雄)가 일본 공사관으로 뛰어가 대원군의 출발 소식을 알려줬다. 내가 이날 밤처럼 밝은 달을 처절한 심정으로 쳐다본 일은 없었다. 한국의 가을은 10월이 되면 벌써 춥다. 이 가을밤에 한국 사람들은 곧잘 다듬이질을 한다. 달과 다듬이 소리, 그것만으로도 시정(詩情)이 넘치는데, 우리들은 지금 일본도를 몸에 지니고 사지(死地)를 밟으려 한다. 이리하여 공덕리로 향하는 길 앞에서 한 점의 구름도 없는 하늘에 얼음처럼 차가운 달을 쳐다보고는 어찌 처창(凄愴, 몹시 애석해진 감정)한 감회를 누를 것이 있었으랴! 오른편으로는 남산(南山)이 큼지막하게 중천에 솟아 있었다. 왼편으로는 한강(漢江)의 물줄기가 안개처럼 서리어 눈앞의 들판까지도 뽀얗게 덮고 있었다.

길이 수양버들의 그림자가 춤추는 속으로 접어들면서 달빛은 한층 청명하게 밝아 형용하기 어려운 심정에 말 못할 정감을 흩뿌려 주었다. 공덕리 별장에 도착한 우리들은 그곳을 지키고 있는 경관들과의 충돌에 대비하느라 극도의 긴장을 띠고 있었으나, 다행히 별다른 부딪침이 없이 뜰안으로 들어섰다. 우리들은 짚신 차림으로 그대로 응접실에 올라 혹은 의자에 기대거나, 혹은 서거나 하면서 침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원군과 오카모토 등과의 교섭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원군의 침대는 서쪽 벽밑에 놓여 높이 1척(尺) 반 내지 2척 가량 되어 보였는데, 그 위에 백발의 영감이 몸을 비스듬히 기대어 웃음띤 얼굴로 응답하고, 오카모토 등이 침대 아래로 바짝 당겨 앉아 노웅에게 말을 건내고 있었다. 응접실에서 보면 오카모토 등은 우리를 등진 채 앉았으나, 대원군의 모습은 정면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 영감의 태도란 마치 놀러온 손자나 아들 다루듯 오카모토 등을 대하면서 퍽이나 유쾌하다는 듯이 웃기도 하여 조금도 초조하거나 조바심내는 기색이란 없고, 축 늘어져 있어서 바로 눈앞에 건곤일척의 대장거(大壯擧)가 꾸며지고 있는 것을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한 태도였다. 그 담대함에 낭인 일행은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못했다. 물론 이날 밤, 대원군에게는 아무런 사전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런채로 밤중에 갑자기 문을 열어 젖치고, 침실로 들어가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자, 이제부터 입궐하시지요'하는 식으로 계획을 내밀었으니, 자칫 잘못하면 만사가 물거품되어 공중에 떠버릴 그런 위기일발의 지경이었다. 이 경우, 만일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침착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이 대원군의 유연한 태도는 도저히 범용한 소인배가 감히 따를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과연 대원군이다. 정말 훌륭한 사람이다' 이런 말이 누구의 입에서나 거침없이 나왔던 것이다. 대원군과의 교섭은 꽤 시간이 걸렸다. 나중엔 아다치(安達, 漢城新報 사장) 등의 낭인단 간부들도 대원군의 침실에 들어가 얘기를 했다. 그 사이 우리들은 차를 마시면서 응접실에서 기다렸고, 달은 서쪽으로 기울어가며 기나긴 가을밤은 괴괴(怪怪)하게 깊어 갔다. 대원군은 4인교(四人轎)를 타고 공덕리 별장을 떠났는데, 새벽녘의 밤 공기는 차고도 처량해서 일행의 가슴을 짓눌렀다. 한 마장쯤 가서 가마를 수양버들의 어둑한 그늘 아래 놓게 한 대원군은 일행을 불러 '오늘 밤, 나의 입궐을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지체없이 베어 없애라. 다만, 명심할 것은 국왕폐하껜 위해(危害)를 가하지 말 것이며, 왕태자 전하에게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다'며 몸소 분부를 내렸다. 곁에 있던 오카모토가 이를 통역해 주었다.

대원군의 음성(音聲)은 빼어나게 낭랑하여 깊은 한밤중의 정적을 깨뜨렸다. 말을 마치고 치는 손뼉 소리가 여기에 곁들여 그 광경이 또한 처창했다. 아아, 수양버들의 그늘이며, 달빛이며 하는 것이 이러한 때 이러한 장소에서 무슨 풍취(風趣)를 던져줄 수 있으랴. 차가운 바람이 살갗을 에고, 천지(天地)가 괴괴한 한밤중에 백발의 노웅이 가마를 멈추게 하여 뒤따르는 일행에게 행동해야 할 바를 분부하는 광경은 마치 소설에 나오는 한 장면만 같았다. 이때에 뜻밖에도 궁중으로 들어갈 준비에 큰 탈이 생겼다. 처음 일본 수비대 장병은 도중에서 대원군의 가마를 기다렸다가 이를 호위해 입궐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낭인 일행은 대원군을 호위해 경인가도(京仁街道)를 치달아 남대문 근처의 조그마한 고개[충무로]에 이르렀다. 이 고개에서 일본 수비대가 대원군의 가마를 기다려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가마가 닿았는데도 주위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도대체 수비대 장병들이 어디에 있는지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얼씬 안했다. 할 수 없이 가마를 길가에 멈추고, 수비대 장병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호리구치와 경부(警部) 오기하라(荻原) 두 사람은 말을 타고 있었기 때문에 경성 방면으로 가서 수비대를 안내해 오기로 했다. 밤은 더욱 깊어져가고, 바람은 점점 차기만 했다. 일행은 길가의 민가에 들어가 쉬면서 짚을 구해서 화톳불을 피워 추위를 녹였다. 대원군은 가마 안에 앉은 채 길가에 쉬면서 간부되는 자들을 가마 곁으로 불러 다시 자세한 분부를 했다. '모(某) 대신(大臣)은 베어버려라. 누구 누구도 살려두어선 안된다' 등등의 말을 했다. 만일 그날 밤 대원군의 분부대로 실행했더라면, 다음날 아침 벌어진 경성내에서의 변란은 더욱 참담한 비극을 연출하게 되었으리라.

- by 을미사변 당시 거사에 동원된 낭인 고바야카와 히데오(小早川秀雄)가 대원군의 인상을 회고하며




덧글

  • 2017/01/05 22:3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1/06 08:0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7/01/05 23: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1/06 08:1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Dddd 2017/01/06 03:07 # 삭제 답글

    멋진 늙은이네요.
  • 파파라치 2017/01/06 09:50 # 답글

    생사를 걸고 한 나라의 운명이 걸린 대사를 수행한 과거를 회고하면서, 당시의 정취나 감상에 대한 서술이 태반을 차지하는 걸 보면, 영락없이 전근대의 (교양있는) 동양인이네요. 자기보다 상수라고 생각되면 바로 감복하는 모습은 일본인스럽고.
  • 心月 2017/01/06 13:35 #

    저자의 직함은 신문사 편집장이었지만, 집안은 구마모토의 사족으로 아직 막말의 유습이 어느 정도 잔존해있던 시절이니깐요. 저 당시 일인 문사들의 수필을 읽다보면 상당히 유려한 문체라는 인상도 종종 듭니다.
  • 진보만세 2017/01/06 12:05 # 답글

    중간에 잠깐 등장하는 대원군의 적장손 이준용의 '애매모호'한 스탠스도 인상 깊군요..비록 일개낭인의 기록이라 할지라도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갖는 회고문입니다..
  • 心月 2017/01/06 13:36 #

    거사에 동조하는 입장이긴 했지만, 교동도 유배로부터 풀려난 직후라 몸을 추스린거라고 보더군요. 대원군은 별장을 나서면서 이준용더러 일이 틀어지면 낭인들의 원조를 받아 일본으로 망명하라며 충고했다나요.
  • 별일 없는 2017/01/06 22:49 # 답글

    역시 인물은 인물 대원군이군요.
    명성황후 드라마때 나왔던 이야기 인거 같기도 한데
  • 心月 2017/01/07 09:32 #

    왜곡의 결정판 명성황후가 아닌 찬란한 여명 아니었는지? 해당 드라마를 직접 보진 못해서요.
  • Minowski 2017/01/08 11:54 # 삭제 답글

    동학때도 그렇고 흥선군과 당시 일본과 비선으로 어떤 연결고리가 있지않았나 싶습니다.

    여하튼 보통 인물이 아닌 것은 분명...정조때 쯤 인물이면 한반도 역사도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 Behavior 2017/01/12 10:14 # 삭제 답글

    고바야카와는 다카카게 히데아키 이후로 단절됬다고 들었는데 살아는 있었나봅니다
  • Behavior 2017/01/12 10:17 # 삭제 답글

    대원군의 포스에 대한 경외감보단 경관들의 행태가(물론 나라도 경찰수준의 검술로 저 낭인들한테 개죽음당하기 싫어서 항복했을테지만)더 비참하네요...
  • ㅎㅎ 2017/02/08 14:08 # 삭제 답글

    여담이지만 대원군이 죽인 사람이 수십만이나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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