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그런 거스름돈 어떻게 써먹을까요? 세계사








케넌은 선(善)과 악(惡)에 대한 절대적인 구분에 기초하여 국제 정치를 바라보고, 정치적 현실의 한계를 무시하고 추상적인 도덕주의적 원칙을 적용시키려는 시도를 '도덕주의(Moralism)'라고 비판한다. 케넌은 이 도덕주의가 미국 외교의 뿌리깊은 전통의 하나로 이 전통은 미국이 [1898년 이후]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국제 정치 무대에 등장하게 되었을 때 부정적인 결과들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국가의 생존을 위해 폭력의 행사가 정당화될 수 있는 현실에서 오히려 폭력 행사 그 자체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도덕적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강대국들간 권력 균형 및 이해와 저촉되어] 오히려 더 많은 폭력이 행사됨으로써 인류는 더 많은 고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도덕주의가 미국인의 뿌리깊은 법리주의적 사고와 결합될 때 더욱 큰 문제점을 낳게 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케넌은 국제 정치를 국내 정치와 동일시하여 국내에서나 가능한 사법적 판단을 국제 정치에 그대로 적용시키려는 시도를 '법리주의(legalism)'라고 비판했다. 미국은 13개의 주(州)들이 상호간의 법적인 합의를 통하여 유럽 대륙과 같은 무정부적 국제 질서의 형성을 지양하고, 단일의 연방을 건설하여 평화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미국은 자국의 연방 형성 과정에서의 경험이 국제 정치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국제 정치 현실에서의 문제점들도 국가간 조약이나 법적인 합의를 통하여 해결할 수 있다고 간주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케넌은 1928년의 파리 부전조약[켈로그-브리앙 조약]을 들고 있다. 국가간의 조약 체결과 합의를 통하여 전쟁을 국제 정치의 현실에서 제거하려는 시도는 일본의 만주 침략과 무솔리니의 에티오피아 침공, 히틀러의 등장으로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결국, 법리주의는 법적 합의를 집행할 수 있는 마땅한 중앙 권력체가 존재하지 않는 국제 정치의 현실에서 국가간에 존재하는 이해관계의 충돌의 상존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형식적이고도 법적인 기준을 통하여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려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이러한 법리주의적 사고는 도덕주의와 결합될 경우 국제 정치에서 한층 더 위험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케넌은 주장한다. 국제 정치에서 사법적 판단을 적용시키려는 측은 법을 위반한 국가에 대해서 분노함과 동시에 도덕적 우월감을 만끽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분노가 군사적 대결의 양상으로 발전하게 된다면, 상대국으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어 그 국가를 완전히 굴복시킬 때까지 전쟁 수행을 지속할 수밖에 없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는 2차대전 당시 미국이 독일과 일본에 대해 내걸었던 무조건 항복 조건을 들 수 있다.

설령 전쟁에서 군사적으로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전쟁의 목적이 상대국 국민들의 태도와 전통을 바꾸고, 기존 정치 체제의 성격을 완전히 변화시키기 위한 '도덕적'이고도 '이념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목적들은 결코 군사적 수단을 통해서 단기간내에 성사될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하다. 이처럼 전쟁을 통하여 성취될 수 없는 도덕적 이상을 추구한 과정에서 인류 문명엔 또다른 파탄이 초래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의 목적은 '실질적'이고도 '제한적'이어야 하며, 우리는 그 목표에 대한 근사치를 중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케넌은 [태프트의 중재조약이나 윌슨의 국제연맹 구상, 루스벨트의 신탁통치론 같은] 비현실적인 도덕주의와 법리주의의 한계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무정부적 국제 정치 현실이 만들어내는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가간의 '세력 균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포스트 나폴레옹 시대를 맞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에서 소집된 범유럽 국제회의 석상의 각국 전권
            보수 반동과 신성동맹의 외피를 두른 강대국간 유럽 균형 질서의 구축은 협조 체제의 기원이 되었다.




그는 특정 시점에서 국가간의 힘의 분포 상태는 불균등성에 의해 특징지어지고, 국제 정치는 주요 강대국들 사이의 힘이 균형을 유지할 때 안정적이라고 본다. 물론, 특정 시점에서의 강대국간 세력 균형의 성립에 의해 국제 정치에 존재하는 불확실성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 상태가 파괴되었을 때 발생하는 힘의 공백 상태는 불안정한 세력 균형보다도 훨씬 더 불확실성으로 특징지어진다는 것이다. 국제 정치에서 평화를 유지하고, 폭력의 행사를 완화시킬 수 있는 주된 임무는 외교에 있다고 케넌은 주장한다. 외교는 국제 정치 현실을 개혁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외교는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도 없다. 따라서 외교는 '무정부적 국제 정치 질서에 내재적인 한계'를 뚜렷하게 인식하고, 그 범위 내에서 '폭력의 행사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나간다는 것이다.

케넌은 2차대전 이후 현대적인 군사력을 양성할 수 있는 산업 시설 기반과 고도로 훈련된 기술 인력을 갖추고 있는 국가는 전세계적으로 다섯 곳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엔 미국 ・영국 ・일본 ・서유럽 제국 ・소련이 포함된다. 케넌에 의하면 당시 중국은 인구 문제와 취약한 산업 기반 ・원시적 농업 조건 ・1세기간의 정치적 불안정 등 때문에 향후 상당한 기간 동안 군사적 강대국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케넌의 봉쇄정책의 핵심은 소련이 이 국가들 가운데 어느 것도 차지하지 못하도록 서유럽과 일본을 미국의 동맹권으로 흡수시킨 다음, 이러한 전략적 구도 하에서 미국이 인내심을 갖고 봉쇄를 추구하면 정통성이 결여된데다, 체제 생존의 여부마저 검증받지 못한 소련은 미국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채 내부 모순이 분출되어 붕괴하리라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5대 중심국가론을 통하여 케넌은 중국이 아닌 일본을 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라는 전후 미국 외교 전략의 전제를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일본의 부흥을 통하여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는 케넌의 주장엔 전후 이 지역의 세력 균형이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에 처해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케넌은 이 불안정의 원인을 동아시아의 역사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는 외교관 존 V.A. 맥머레이(John V.A. MacMurray, 1925~29년 주중 공사 재임)가 1935년 작성한 예언적 각서를 원용하고 있다. 맥머레이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일본을 완전히 패배시키더라도, 아시아가 떠안고 있는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패배는 오히려 아시아에서 소련의 영향력 증가를 초래해 미국의 극동 정책 수립을 더욱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며 경고했다.

2차대전의 결과, 일본 제국주의가 아시아 대륙으로부터 완전히 패퇴한 후 그와 반비례해 만주와 한반도에선 소련의 영향력이 증대됨으로써 미국은 이 지역에서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는데 일본 제국이 과거에 해왔던 역할을 떠맡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케넌은 주장했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대소(對蘇) 봉쇄정책을 추구해가는 과정에서 미국의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선 일본의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민주화된 일본을 미국의 확고한 동맹국으로 만드는 것이 긴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당시 미국 내에선 야당인 공화당을 중심으로 중국의 장개석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었기 때문에 케넌의 일본 중시 정책 구상에는 중국 문제가 자칫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대한 국내 합의점을 도출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해야 된다는 고도의 전략적 판단도 깔려 있었다.

한편,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마찬가지로 5대 중심국가에 속하지 않는 한반도에 대해서 케넌은 한반도에 반드시 소련에 적대적인 체제가 들어설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그는 일본으로부터 이제 막 해방된 한국이 명목상으로는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해야 하지만, 소련의 영향권 아래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1947년 9월, 미소 공동위원회가 전격 무산되고 난 후에 국무성 정책 기획실장이었던 케넌은 미국은 재정적이고 군사적인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 남한에서 가능한 한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는 미국이 한국을 버리고 도망쳐 나오는 듯한 인상을 다른 국가들에게 줄 경우 미국의 위신은 많은 손상을 입을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품위있게 한국에서 철수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보고, 한국 신탁통치 문제의 유엔 이관에 적극 찬성했다.




           포츠머스 강화의 중재자 테디 루스벨트를 묘사한 삽화, 이 공적으로 그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극동의 세력 균형이란 전략적 관점에서 대일 후견인이라 자처하면서도 러일간 상호 견제를 추구했다.   




실제로 국무성이 자신에게 한국 문제에 관해 정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해 줄 것을 요청했을 때 케넌은 이상의 주장을 간단한 비망록으로 제출하는데 그쳤으며, 정책 기획실 명의로 된 한국 문제의 보고서조차 쓰기를 거부했다. 결국, 케넌은 미국이 군사적으로나 재정적으로 확고하게 한국의 독립을 보장해줄 수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없다면, 미국의 위신을 손상시키지 않는 방식을 선택해서 일단 한국에서 철수해야 하며, 그 이후의 한국 정책은 사태의 추이를 봐서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몰락 후 아시아에서 발생한 권력의 진공 상태를 메우고 들어온 것은 중국이 아니라 소련이었다는 사실을 케넌은 지적했다. 일본이 패전의 늪에서 당분간 재부상할 가능성은 없고,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한반도 전체는 소련의 잠정적인 영향권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던 것이다.

케넌이 한반도가 실질적으로는 소련의 영향권으로 들어가면서 명목상의 독립을 유지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일본의 국력이 회복되었을 때 일본이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다시 행사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데에 있었다. 케넌의 주장은 2차대전 후 일본이 여전히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면, 한반도에서 미국이 직접 소련에 대항하는 부담을 떠맡지 않아도 되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전략적 발상이지만, 미국의 대외정책이 얼마나 철저하게 '국가 이익'이란 관점에서 입안되는지를 보여준다. 1947년 11월에 작성된 정세 보고서인 PPS/13에서 케넌은 한반도에서는 더 이상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발전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고, 앞으로 한국에서의 정치적 삶은 미성숙 ・편협함과 폭력에 의해 지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인들로부터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는데 필요한 어떠한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고 간주했다. 결국, 한반도는 미국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의 중요한 목적은 미국의 위신을 크게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한반도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라는 이전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미국이 한반도 전역에 대한 소련 영향력의 팽창을 인정하면서 한반도의 배후지인 만주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완전히 넌센스(Nonsense)라고 주장하면서 장개석에 대한 계속적인 지원을 요구한 미국 내의 일부 세력[중국 상실론을 주장하게 될 공화당 강경파 등]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케넌에게 만주와 한반도가 중요성을 갖는다면, 그것은 오로지 일본의 경제적 부흥을 뒷받침하기 위한 원자재 공급처와 시장으로서였다.

전후 동아시아에선 일본의 몰락과 중국의 국공내전으로 소련의 세력이 급격히 팽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결과, 미국은 이 지역에서 제정 러시아 및 소련에 대항하여 전통적으로 세력 균형을 유지해왔던 일본과 중국을 대신하여 현지의 안정을 도모하는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 내전에 직접 개입한다는 것은 미국의 국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고, 한국은 미국에게 전략적 가치가 없다고 케넌은 판단했다. 따라서 그는 5대 중심국가론에 기초하여 일본을 경제적으로 재부흥시켜 이 지역의 세력 균형을 회복하고, 소련의 팽창에 대응하고자 했다. 이처럼 케넌은 미국이 과거처럼 '문호 개방(Open Door)'이나 '중국의 영토 보존'이라는 애매모호하고도 비현실적인 정책적 입장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군사 ・경제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동아시아를 바라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 By 김영수 著 <동아시아와 케난(Kennan)의 딜레마>에서 발췌




            쿨리지 행정부에서 '최고의 중국통(通)'이라 지칭되며 공사로 부임한 국무성 차관보 존 V.A. 맥머레이          
            미일전쟁 발발과 볼셰비즘의 확산을 경고했던 그의 선견지명적 각서는 케넌으로부터 절찬받았다.  




덧글

  • 킹오파 2017/05/20 18:16 # 답글

    미국은 야마가타 아리토모이군요... ? 근데 고기방패를 쳐부순건 미국 본인이잖아..

    근데 이것은 맥아더와 같은데....
    문제는 맥아더 본인 스스로가 헌법 9조를 만들라고 강요한 사람...

    맥아더 역시 아는게 전무한 바보에 불과하고....

    근데 미국은 만주가 일본령이 다시 되는 걸 원할까요?
    만주가 일본령이 된다면 일본에게도 좋지만 미국에게도 좋은 일인데?

    미국이야 만주 개발에 돈 투자해서 이권 따 먹으면 되고.... 이제 미국이 일본에 바라는게 있다면 만주를 소유했던 제국주의 시절 일본으로 돌아가 한반도와 중국 대륙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겠죠.

    반도는 물론이고 만주외에 짜잘한 지역도 가능한 일본령이면 좋고...

    그리되면 일본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미국 지키는 고기방패가 되는 일인데...

    근데 일본 입장에는 반도는 그냥 친일 스탠스의 지역 소국으로 두고... 중국 먹는게 좋지 않음?(아 이토구나.. 이토가 중국 먹자는 것은 중국을 자국령으로 한다는게 아니라 이권 따 먹자고 한건데..)

    추신 : 사실 미국이 한국을 지켜야 합니까? 한국이 석유가 나오는 것두 아니고 금은보화가 넘쳐나는 것두 아닌데 왜 미국이 한국을 피를 흘려가며 지키는 부담을 져야 합니까? 한국은 미국의 부담일뿐이죠.
  • 心月 2017/05/20 22:21 #

    고기 방패를 쳐부수기 전부터 밉상이더라도 어쨌든 소련 견제라는 대국적 견지에서 따져볼 때 일본은 유용한 존재이니깐 무조건 견제구만 날릴 게 아니라, 달래야 할 땐 달래야 한다며 대일 유화책 주장했던 논자가 위에서 소개된 맥머레이라는 양반임. 저때 아시아의 병자 소리 들었던 중국은 실력부터 딸리는데다가 일본 제국주의 이상으로 골치아픈 특유의 중화사상에 근간한 민족주의 감정 때문에 외국에 은의를 표할 만큼의 도량도 없는 나라라 판단했고. 그래서 일전에 소개한 테디의 의견처럼 현실적으로 동양에서 소련 견제의 파트너로는 일본이 적합하고, 만한 영유까진 용인해주는 댓가로 대륙 세력에 맞선 방패 막이로 써먹자는 게 요지인거죠.

    케넌은 맥머레이의 메모랜덤 견해를 자신의 전후 봉쇄 이론에 응접시켜 극동 정책을 다듬은 셈이고..

    한마디로 조선이랑 만주는 먹어도 크게 상관없는데, 열강의 공동 재산인 중국에까지 함부로 수작부리지 말라. 그랬다간 즉각 견제구 날라간다. 이걸 무시하고 고기 방패 주제에 대동아 공영 운운하며 아시아 전체를 저 혼자 꿀꺽하려다 제대로 사단나버린 게 중일전쟁~태평양전쟁 결과에 따른 일제의 패망이라 보시면 되겠고요.ㄲㄲ

    PS : 맥아더의 수정주의 발언도 원래 저 케넌의 조언에 영향받은 바가 컸습니다. 미국의 대일 점령정책이 48년 이후 재건과 역코스로 전환되면서 새 정책 요강을 설명할 특사로 GHQ에 파견된 이가 케넌이었는데, 이때 봉쇄 이론을 수강(?)할 기회가 있었던 맥원수도 공감하면서 대일전쟁에 회의적인 스탠스로 전향했다고 하죠.
  • 心月 2017/05/20 23:00 #

    미국이 남한을 지켜주는 것은 당초 케넌의 구상엔 없었으나, 주한미군 철수가 남한을 전면적으로 포기한거라 착각한 김일성이 남침전쟁 도발하면서 방침이 전환되었음. 북한 주도의 한반도 적화를 용인해 독립국으로서의 남한의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간 공산 세력에 한 수 밀렸다는 인상을 세계에 과시하는 꼴이고, 일본의 안보에도 치명적인 비수로 다가올 뿐만 아니라, 기타 지역의 봉쇄정책도 차질이 빚어질거라는 예상에 따라 개입한 것.

    한국전 후에 일본이 주권 회복하면서 헌법 개정-재무장 수순에 따라 신속히 정상국가화 노선을 걸어갔더라면, 남한에 대한 미국의 관심도 역시 저하되었겠으나... 일본이 헌법 9조의 울타리로 안주해버리면서 부득불 일본의 고기 방패라는 점에 착안해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재설정하게 된거고, 이 현상이 지금껏 고착화되어온거죠.
  • 아리아인 2017/05/20 21:36 # 삭제 답글

    러일전쟁 이후에 상전 모르고 대미 선전포고까지 주장하다가 백색함대 보고 정신차린 당시의 일본 민도나 35년후에 살림 좀 커졌다고 상전들 뒤통수 때리던 때나 버블 때 역시 개맞듯 쳐맞던 기억 잊어버리고 땅값뽕에 취했던 일본이나 근본적으로 민도가 대륙이나 반도에 비해 나을 것도 없이 그 기저는 미개한데 그 미개한 일본에게 다시 만주와 반도를 준다? 미국이 미쳤나? 하여튼 상전모르고 깝치는 건 대륙 반도 열도 안가리지 여기서도 진짜 주인을 몰라보고 하등한 몽골로이드 빠는 건 여전하네 미개한 니그로하고 몽골로이드 족속들은 무조건 생식기능을 제거해서 멸절해야 옳은데 무슨 헛소리냐
  • 心月 2017/05/20 22:25 #

    네 다음 빙의술사 조센징. 미느님 외교 책사가 현실주의 통밥에 따라 가치 등급을 매긴건데, 웬 민도 타령?
  • 흑범 2017/05/20 22:25 # 답글

    일본을 크게 만들어준 것은 테오도르 루스벨트, 일본을 아작낸 것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좀 묘하네요.
  • 心月 2017/05/20 22:32 #

    후자가 전자의 조카사위였지만, 국제 정치와 대외 접근 방식에 있어선 편차가 컸기 때문이라 봐야죠.
  • 킹오파 2017/05/20 23:25 # 답글

    일본이 정상국가가 되는걸 한국정부가 반대하는 이유는 국민여론도 있지만 반도의 전략적 가치가 없어진다는 거겠죠...
  • 心月 2017/05/21 00:10 #

    개헌이 현실화된다면, 전수방위의 족쇄마저 털어버린 일본의 방위 분담 증가와 더불어 미국이 남한에 투사한 지분도 그만큼 감소할테고, 북핵이라는 실재적이고도 당면한 위협이 여실히 체감되는 정세하에서 '일본군'의 한반도 유사시 재상륙 가능성까지 상정해야 할 태세니깐요. 이 경우, 미국은 자기네 이해만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한국전 때 자위대 끄나풀들을 기뢰 작업에 동원했듯이 일본의 재진주에 특별히 딴지걸진 않을 겁니다. ㅇㅇ

    반면, 냉전 종식 후 북한 민족주의에 대한 안티 테제이자, 신화로서의 항일 민족주의가 제1 국시로 자리매김한 한국 사회에서 부활된 일본군의 재상륙 같은 주제만으로도 미칠 파장이란 예측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것인데... 한국 정부가 여론에 앞장서서 일본의 재무장에 유달리 편집광적 히스테리 반응을 나타내는 배경엔 바로 그러한 정체성의 위기 의식으로부터 발로된 초조감이 깔려있다고 해석하는 측면도 꽤나 개연성이 높을 듯 싶네요.
  • KittyHawk 2017/05/20 23:58 # 답글

    박정희의 과오는 권위적 통치가 아니에요. 실무는 잘했음에도 한국인들이 자기들 주제파악을 하게 만드는걸 기피했던 것. 거기에 근원한 한국 대중들의 왜곡된 심리구조가 한국내 김씨일가 찬양자들의 심리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도 있는걸 생각하면...
  • 心月 2017/05/21 00:09 #

    뭐, 프린스 리박사 시절부터 필요 이상의 왜곡된 혐일론 씨앗이 뿌려진 상태였고, 이북과의 체제 경쟁 일환으로 박정희가 거기에 민족 사관을 소스로 얹히면서 양산된 사생아들이 판을 망가뜨린 이상 둘 다 자업자득이죠.ㅋ
  • 2017/05/21 00:0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5/21 01:0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7/05/21 00:0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5/21 01:1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7/05/30 22:5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퍼-시발 장군 2017/05/21 00:45 # 삭제 답글

    그래서 거스름돈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진 미국은 주한미군은 언제 철수시키고 적화통일은 언제 된다는 겁니까?
  • 無碍子 2017/05/21 13:27 # 답글

    '미국은 13개의 주(州)들이 상호간의 법적인 합의를 통하여 유럽 대륙과 같은 무정부적 국제 질서의 형성을 지양하고, 단일의 연방을 건설하여 평화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고 하셨는데요.
    초기 워싱턴ㅡ재퍼슨은 지방분권국가를 지양했고
    링컨이 전쟁(엄밀히는 내전)으로 강력한 연방정부를 만들었다고 알고있습니다.
  • Minowski 2017/05/24 08:40 # 삭제 답글

    요즘 아베의 대러외교를 관찰하고 있으면 위의 글이 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달까요...

    결국 일본의 위치상 동북아를 러시아나 중국이 석권하게 내버려둘 수 없고, 그 결과 서구권의 대러제재가 진행중임에도 불구하고 소치 올림픽 참가 등 푸틴과의 관계개선, 극동 프로젝트 협력 등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여 러시아의 중국 경도를 막기위해 노력하고 있고...

    어떻든 트럼프도 많은 국내적인 반발과 논란 속에서도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진행하고 있고 보면, 위의 글에서 러시아와 중국만 치환하면 여전히 동북아에서 유효한 이야기이고.........

    뭐 대북문제에서 미국도 외교적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당근 (김정은 체재 보장)을 제시하였음에도 성과가 없는 것 보면 내년 중간선거 이전에 뭔가 결심을 할 모멘텀은 점점 커지는 것 같고.......... 이때 과연 미일이 러시아를 중국과의 공조에서 때어낼 수 있느냐가 실제 행동의 관건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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